변종 기독교인
변종 기독교인
  • 박충구
  • 승인 2019.04.04 0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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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충구 교수의 사순절 묵상] 예수생각-1

돈이 많은 사람은 그저 저 사람은 돈이 많다고 하면 된다. 사실이니까. 그러나 저 사람은 돈이 많으니까 훌륭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 지위가 높은 사람도 마찬가지다. 저 사람은 지위가 높다 하면 된다. 사실이니까. 그런데 저 사람은 지위가 높으니까 훌륭한 사람이다 라고 말하면 안 된다. 어떤 사람이 박사 학위를 가지고 있다면 그 사람을 일러 무슨 박사다 라고 하면 된다. 박사니까 훌륭하고 좋은 사람이다 라고 말하면 안 된다. 목사도 마찬가지다. 저 사람은 무슨 목사다 라고 하면 된다. 목사니까 좋은 사람이라고 판단하는 것은 정확한 판단이 아니다. 기원전 1 세기에 살았던 키케로가 사람을 판단하는 기준이다. 그에 의하면 좋은 사람은 지위, 돈, 권력, 학식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 선과 악을 제대로 판별할 덕을 갖춘 사람이다.

키케로(Cicero, 106 BC)
키케로(Cicero, 106 BC)

유학 시절 늘 내게 겸손하게 웃으면 인사하던 교단이 다른 후배가 있었다. 어느 세미나를 같이 듣던 시간 그가 어설픈 영어로 버벅대면서 주장하는 바를 듣다가 내가 무안을 느낀 적이 있었다. 그는 한국 교회가 부흥 성장하여 세계에 모범을 보이고 있다는 듯이 한국 교회를 자랑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저 한국 교회가 100년 남짓 지나는 동안 교세가 근 800만에 달했다고 하면 될 일이다. 듣는 사람들이 경이로워 할 수도 있고, 궁금해 하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800만이나 되는 많은 신자를 가지고 있으니 한국 교회가 자랑스럽고 좋은 교회라고 판단하는 것은 잘못된 판단이다. 이런 판단이 큰 교회는 좋은 교회, 큰 교회 목사는 훌륭하다는 자의적 판단을 유통시킨다.

흔히 장로 교단 사람들이 스스로를 일러 한국 교회의 장자 교단이라고 지칭하는 경우를 본다. 페친 중에도 무심코 이런 표현을 하는 이가 있다. 그릇된 주장이다. 내가 감리교인이라서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이 아니다. 한국 교회에서 장로교가 교세가 크다고 말하면 된다. 왜 장자인가. 스스로 장자면, 다른 교단은 차남, 삼남인가? 왜 장녀는 아니고 하필 장남인가? 우리의 판단에는 무엇인가 정당한 평가없이 편견을 유통시키는 경향이 있다. 정밀하게 생각하지 않아서 진실하지 않다. 교만과 오만한 욕심이 있는 경우 그 양태가 더 극심하다. 타방을 위한 배려가 없다.

앞서 말한 그 후배가 학위를 마치고 돌아온지 얼마 되지 않아 그의 모교의 총장이 되었다. 학위를 가진 교수가 비교적 적은 군소 학교 총장이 되는 것은 의외로 쉬운 일이었다. 그가 총장이 된 후 어느 학회에서 그와 함께 식사를 하는데 어떤 젊은 사람이 총장의 밥그릇을 날라오고, 계속 해서 먹을 것과 물과 커피까지 날라다 주고 있었다. 그 후배는 거드럭거리면서 마치 종 부리듯 그를 대했다. 누구냐고 물었더니 자기 운전기사라고 했다.

총장이 되면 저절로 훌륭하고 좋은 사람이 되어 당연히 아랫사람의 서비스를 받아야 한다고 착각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내 경험으로 미루어 좋은 총장도 있겠으나 학문에 성실하지 않은, 남달리 욕심이 많고, 자기보다 더 좋은 성품을 가진 이를 밀어낼 줄 아는 교활한 이가 자기 양심을 반쯤 잘라 버리고 총장이 되는 경우가 허다했다. 너무 혹한 평가라 여길 사람도 있겠지만 사실이 그랬다. 그의 주변에는 머리를 헤프게 잘 숙이는 꼬붕들이 늘 따라다닌다. 지위가 사람을 훌륭하게 만든다면 박근혜가 감옥에 왜 가 있겠는가?

그가 중시했던 것은 

신앙 양심을 지닌 품위 있는 삶이었다

교회에서 만나는 장로들도 마찬가지다. 장로만 되면 훌륭한 사람이 저절로 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커다란 착각이다. 이승만 장로, 이명박 장로, 황교안 장로 다 훌륭한 신앙의 본을 보인 사람이라고 생각하는가? 물론 머리를 조아리기 잘하는 사람은 그들을 하나님이 난세에 보내주신 훌륭한 인재라고 치켜세우기도 할 것이다. 나는 그런 평가에 전혀 동의하지 않는다.

퀘이커 신앙운동의 문을 연 죠지 폭스는 늘 검은 모자를 쓰고 다녔다. 그는 어떤 세속적인 권위 앞에서도 모자를 벗지 않았던 사람으로 유명하다. “고난 없이 영광 없다”는 책을 쓴 윌리암 펜은 그 책을 런던 탑에 갇혀 있을 때 썼다. 퀘이커로서 그가 중시했던 것은 신앙 양심을 지닌 품위 있는 삶이었다. 그는 겸손했지만 세속 권위자에게 복종의 태도를 보이며 머리를 숙이지는 않았다. 비록 그가 국왕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너무 쉽게 머리를 숙이고 아부하기를 잘 하는 사람은 겸손한 이도, 좋은 사람도 아니다. 그렇다고 오만하거나 거만하자는 말이 아니다. 돈이나 권력, 지위와 학위만 가지고 있어도 좋은 사람으로 둔갑하는 세상을 만들지 말자는 것이다. 우리 주변을 보면 학위를 가지고 있으면 좋은 사람이 되는 것도 아닌 데, 그것도 제대로 공부를 하지도 않고 학위를 받으려는 이들이 즐비하다. 학위를 가지고 있으면 높아 보이고 잘나 보인다고 생각하는 한 그는 결코 퀘이커들이 지닌 품위 있는 기독교인으로서 사는 태도를 따라잡을 수가 없을 것이다.

예와 아니오를 분명하게 하는 사람은 최소한의 양심을 지키며 살아갈 수 있을 것이지만 돈과 권력과 지위를 가진 이를 향하여 너무 쉽게 머리를 조아리는 이들은 예수의 제자이기 보다 자본주의의 산물인 물신주의, 권위주의의 산물인 권력숭배, 배타와 오만이 불러오는 차별주의에 깊이 감염된 기독교 변종이다. 이런 변종들이 대형 교회마다 차고 넘친다. 이들의 눈에는 조그만 교회는 양에 차지도 않고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다. 목사도 작은 교회 버리고 큰 교회로 가는 것을 큰 성공으로 여긴다.

예수는 돈과 권력과 명예를 가지고 타협하자는 마귀를 물리쳤다. 그게 예수의 길이고, 예수를 믿는다면 십자가만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그런 타협의 태도를 버려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는 변종 기독교인이다. 변종 기독교인의 특징은 십자가를 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들이 사순절 노래는 불러도 그들에게는 비아돌로로사로 난 길은 없다. 이런 예증을 보이듯이 자칭 장자 교단의 한 목사는 2주 만에 목사 자격을 다시 얻어 교단의 비호와 신자들의 환호를 받으며 영광의 자리로 돌아갔다. 이 사순절에.

박충구 교수 / 전 감신대 기독교윤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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