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바니에에게 배운 것
장 바니에에게 배운 것
  • 지성수
  • 승인 2019.05.08 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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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에 살다가 1년에 한 번 정도 한국에 가면 오라는 교회에 가서 설교를 하게 된다. 처음에는 큰 교회에서 설교를 할 기회가 많았지만 외국에 오래 살다 보니 인연이 점점 멀어져서 점점 작은 교회를 가게 되더니 나중에는 10명 정도의 작은 교회에 가게 되었다. 그런데 작은 교회로 설교를 다니다 보니 새로운 경험을 할 수가 있었다. 

이런 교회의 특징은 사람이 많은 교회에는 좀처럼 느끼기 어려운 진지한 분위기가 있다. 소수정예일 수 밖에 없기 때문일 것이다. 예배를 마친 후 대화 시간에도 활발하게 자기들의 의견을 발표해서 토론이 흥미 있게 이루어진다. 큰 교회에 나가서 앉아 있다가 오기만 하는 것 보다 100 배가 더 유익한 일이다. 물론 모든 사람에게는 그럴 수 없을 것이고 체질에 맞는 사람들에게만 그럴 것이다.

어느 교회에 갔더니 담임 목사가 "사람들이 이야기를 잘 안하는데 술술 이야기를 잘 하게 만드시네요. 지 목사 님은 사람들을 무장해제 시키는 기술이 있는 것 같네요." 라고 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전에도 누군가에도 '무장해제'라는 단어를 들은 것 같다. 그건 맞다. 만나는 사람을 무장해제 시키는 법, 그것은 그냥 쉽게 배운 것이 아니고 힘들게 배운 것이다. 나에게 사람을 만나서 무장해제를 가르쳐준 사부는 바로 장 바니에라는 사람이다.

장 바니에
장 바니에

장 바니에는 전세계에 퍼져있는 정신지체 장애인들의 공동체인 ‘라르슈(노아의 방주)’ 공동체를 시작한 사람이다. 

20년 전 호주에 온지 몇 달 되지 않았을 때의 일이었다. 어느 날 늦은 밤 시간인데 집 근처에 있는 가톨릭 여학교 주차장은 물론이고 학교 주변 골목까지 차가 빈틈없이 주차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네가 조용하고 학교안도 너무 조용해서 마치 아무 일도 없는 것 같았다. 

나는 원래 궁금한 것이 있으면 먹은 것이 소화가 안 되는 체질이어서 살금살금 학교 안으로 잠입을 해서 희미한 불빛이 흘러나오는 강당으로 침투했다. 살그머니 열린 문틈으로 정탐을 해보니 강당 안의 대부분의 전등은 꺼져 있고 원형 테이블 마다 초가 밝혀져 있었다. 그렇게 어두운 상태에서 사람들이 수십 개의 원형 테이블을 둘러싸고 앉아 있었는데도 마치 바늘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조용했고 무대의 연사가 있는 테이블에만 작은 등이 켜 있었다. 그리고 테이블 앞에 어떤 늙은 남자가 조용조용히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나는 분위기에 그만 기가 질려서 살금 살금 조용히 문을 닫고 나왔다. 청중이 전부 백인들이기도 했고 영어로 하는 강연을 알아듣는 것도 효율성이 없기 때문이기도 했을 것이다. 나오면서 안내판을 보니 유명 인사의 유료 강연회였다. 그런데 나중에 놀란 것은 그 때 강연을 하던 그 사람이 오랜동안 내가 책을 읽고서 큰 영향을 받았던 장 바니에 이었던 것이다. 세상에! 장 바니에가 우리 동네에 와서 강연을 할 줄이야! 당시는 내가 아직 호주에 와서 살고 있다는 것이 피부로 느껴지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현지 상황을 잘 몰라서 일생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했던 기회를 놓치고 만 것이다. 뒤 늦게 알고 그의 다른 강연을 신청하려고 하였더니 이미 모두 자리가 매진 되었었다.

그런데 몇 일 후 다행히 TV에서 장 바니에 인터뷰 방송에 나와서 그의 모습을 자세히 볼 수 있었다.  내용은 잘 못 알아 들었지만 나는 그의 인터뷰에서 한 가지 충격적인 사실을 발견했는데 그것이 더 큰 수확이었다. 그것은 보통의 인터뷰와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바니에는 자기가 인터뷰를 당하는 것이 아니고 마치 진행자를 대상으로 상담가가 상담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 TV 카메라 앞이 아니고 그들 앞에 다른 아무 것도 없는 것처럼 오직 대담자에게 100% 집중을 하고 있었다. 나는 ‘아! 바로 저런 바니에의 모습이 오늘의 그를 있게 만들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를 만나든 상대방에 전적인 신뢰를 보내는 그 모습이 수많은 사람들을 감동 시키게 했고 그 힘으로 그 많은 공동체를 이끌어 나가게 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 것이다. 실제로 우리는 아무리 중요한 상대방과 이야기를 할 때라도 전적으로 집중이 되지 못하고 슬쩍 슬쩍 다른 생각이 들기도 한다. 아이가 엄마에게 하듯 누가 나를 100% 믿고 신뢰를 보내준다는 인상을 주었을 때 나는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

장 바니에가 상대방이 누구이든지 그에 대하여 100% 신뢰를 보내는 모습! 아마 예수가 그랬을 것이다.  그런 까닭에 누구든지 예수를 만나면 그 앞에서 무너지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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