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기, 오정현, 김삼환과 감리교 삼형제의 공통점은...
조용기, 오정현, 김삼환과 감리교 삼형제의 공통점은...
  • 최태선
  • 승인 2019.05.15 08: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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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연 사건과 김학의 사건을 보면서 많은 사람들이 분노합니다. 사람들은 그 사건들을 보면서 사람에게 분노합니다. 하지만 저는 사람이 아니라 돈과 권력에 주목합니다. 다시 말해 저는 그 사건들을 통해 힘과 영향력이 어떻게 사람을 함몰시키는지를 봅니다. 돈과 권력은 사람에게 힘과 영향력을 제공하고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그 힘과 영향력은 반드시 사람을 타락하게 만듭니다.

예수님의 광야시험 기사에서 마귀는 예수님에게 자신에게 엎드려 절하면 천하만국과 그 영광을 주겠다는 제안을 합니다.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이 기사를 읽으면서 마귀에게 엎드려 절하는 것의 의미를 깊이 묵상하지 않습니다. 마귀를 뿔 달리고 창을 든 괴물로 생각하고 그런 괴물에게 절하지 않은 자신이 마귀에게 절하지 않은 것이라 생각합니다. 여기서 마귀가 제안하는 것이 바로 힘과 영향력입니다.

성서는 믿지 않는 사람의 상태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여러분도 전에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사람들입니다. 그 때에 여러분은 허물과 죄 가운데서, 이 세상의 풍조를 따라 살고, 공중의 권세를 잡은 통치자, 곧 지금 불순종의 자식들 가운데서 작용하는 영을 따라 살았습니다.”

마귀는 공중의 권세를 잡은 통치자입니다. 그 마귀는 사람들을 허물과 죄 가운데 빠지게 합니다. 또한 그것이 곧 세상의 풍조를 따라 사는 것입니다. 장자연 사건의 내용이나 김학의 사건의 내용은 대동소이합니다. 그것은 공중의 권세를 잡은 마귀의 영을 따라 사는 모습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힘과 영향력의 실체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라고 말씀하시며 단호하게 마귀의 제안을 거절하십니다.

그분이 거절하신 것은 마귀에게 절하지 않는 것이지만 그것은 곧 힘과 영향력을 포기한다는 선언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분만을 섬기는 것은 힘과 영향력을 포기하겠다는 의지의 천명인 것입니다.

마귀는 정확하게 실상을 파악하고 예리하게 파고들었습니다. 다시 말해 예수님은 지금 공생애를 시작하시려 광야의 시험을 받고 있습니다. 공생애의 시작이란 곧 예수님의 사명을 시작한다는 의미입니다. 예수님의 사명은 복음을 전해서 땅에서도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곳이 바로 하나님 나라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의 사명은 이 땅에 하나님 나라를 알리고 그 하나님 나라를 이 땅에 건설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일에 힘과 영향력이 사용된다면 예수님의 사명은 쉽게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마귀는 이 모든 것을 꿰뚫고 정확히 그것을 파고 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복음이 어려운 것은 바로 이 힘과 영향력을 포기하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분을 섬기는 것은 세상의 권세를 잡고 있는 영, 다시 말해 마귀의 유혹을 거절하겠다는 선언이며, 그 선언의 의미는 힘과 영향력을 포기한다는 것이고, 힘과 영향력을 포기한다는 것의 의미는 곧 자발적인 가난을 택하는 것입니다.

조용기와 오정현과 김삼환과 감리교 김씨 삼형제를 비롯해 수많은 성공한 목사들이 실패한 것이 바로 이 힘과 영향력의 포기입니다. 그리고 그런 그들을 추종하는 이들이 그토록 넘쳐나는 것 역시 힘과 영향력의 포기가 불가능해 보이기 때문입니다.

세계에서 가장 큰 교회, 에스컬레이터가 있는 웅장한 건물, 수백억의 비자금 바로 이런 것들이 힘과 영향력의 결과물인 것입니다. 사탄은 뿔 달린 괴물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오지 않습니다. 힘과 영향력이라는 인생의 달콤한 꿀을 사람들에게 제공하면서 스스로 죄와 허물에 빠질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장자연 사건과 김학의 사건과 오늘날 문제가 되고 있는 교회의 부패와 타락은 그 본질이 같은 것입니다. 힘과 영향력을 추구하는, 다시 말해 그 모습은 불순종의 자식들 가운데서 작용하는 영을 따라 허물과 죄 가운데서, 이 세상의 풍조를 따라 사는 모습입니다.

자발적인 가난을 택하신 예수님은 오병이어의 기적 기사에서 가진 것이 없는 제자들에게 너희들이 먹을 것을 주라고 말씀하십니다. 오천 명이 넘는 사람들이 굶주려 있는데 가진 것이 떡 다섯 조각과 물고기 두 마리밖에 없는 제자들에게 너희들이 먹을 것을 주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너무도 허황되고 무모하게 들릴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아무 것도 없는 사람들이 나누기 시작할 때 기적이 일어납니다. 오천 명이 먹고 열두 광주리가 남을 만큼 아무도 상상치 못할 일이 벌어집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오병이어의 기적 기사에서 하나님은 등장하지 않으십니다. 당시 그곳에 있던 군중들과 마찬가지로 우리는 예수님이 기적을 행하실 수 있는 권능자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우리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아니라 인간이셨습니다. 그러나 그분이 힘과 영향력을 포기하고 가난을 선택했을 때 그분은 하나님의 일하심을 촉발할 수 있는 촉매제가 되셨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오늘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복음을 전하고 이 땅에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겠다고 힘과 영향력을 추구하는 길을 갑니다. 그러나 그들의 종착역은 오늘날 우리가 보고 있는 부패와 타락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일을 하고 있다고 주장하지만 실상은 마귀를 위해 열심히 일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이 가시적인 성취를 내세울수록 그들은 더 깊이 힘과 영향력에 함몰되고 그들이 믿는 예수님으로부터 멀어질 뿐입니다. 이것이 바로 영적인 실상입니다.

힘과 영향력을 포기하고 자발적인 가난을 선택하는 이에 의해서만 하나님의 뜻과 정의가 땅에서 이루어진다는 이 역설을 이해하실 수 있는 그리스도인들이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그런 분들이 이루어내는 기적을 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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