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복을 빕니다'가 한국말로 뭐죠?" 내게 물어온 헝가리 사람들
"명복을 빕니다'가 한국말로 뭐죠?" 내게 물어온 헝가리 사람들
  • 클레어함
  • 승인 2019.06.04 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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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다페스트 현지 리포트] 다뉴브강 유람선 사고 현장에선 지금
어둠이 깃드는 토요일 주말 저녁에도 추모객으로 붐비는 다뉴브강 마가렛트 다리. ⓒ 클레어함
어둠이 깃드는 토요일 주말 저녁에도 추모객으로 붐비는 다뉴브강 마가렛트 다리. ⓒ 클레어함

흰 꽃을 든 노부부를 보았다. 6월 1일, 헝가리 부다페스트 도착 이틀째 날. 주말이라 인파로 붐비는 트램 안에서였다.

시내에서 홀로 늦은 점심을 먹고 숙소로 돌아가는 길. 다뉴브강 유람선 침몰 사고를 취재하느라 이틀 밤을 새다시피 했다. 계속된 강행군에 피로가 몰려왔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그들을 따라 가보기로 했다.

역시나 그들은 다뉴브강 마가렛트 다리로 향했다. 이곳에서 지난 5월 29일 밤 한국인 관광객을 태운 유람선 허블레아니가 침몰했다. 뉘엿뉘엿 석양이 지고 있었고, 강둑에서는 사고 현장이 정면으로 보였다. 이미 많은 시민들이 촛불을 밝히며 추모하고 있었다.

지난 5월 29일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일어난 유람선 침몰 사고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꽃과 글. ⓒ 클레어함
지난 5월 29일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일어난 유람선 침몰 사고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꽃과 글. ⓒ 클레어함
한국어와 영어, 독일어로 희생자들을 추모한 쪽지. ⓒ 클레어함
한국어와 영어, 독일어로 희생자들을 추모한 쪽지. ⓒ 클레어함

다리에는 그전보다 더 많은 촛불과 꽃, 추모글이 남겨져 있었다. 무려 한국어, 영어, 독일어 3개국어로 고인의 명복을 빌고 실종자들의 생환을 기원하는 쪽지도 있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하루 빨리 가족들의 품으로 돌아오셨으면 좋겠습니다. 가족분들이 헝가리 현지에서 여러분들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어요. 바라보고만 있을 수 밖에 없기에 너무 마음이 아픕니다. 부디 가족들 품에서 따뜻하고 행복한 기억만 가지고 편히 쉬세요. 정말 죄송합니다.

Rest in Peace.
I hope you will come back to your family in a day. Your family is waiting for you in Hungary. I am so sorry that I can't do anything for you.
Please rest in your family comfortably with warm and only warm memories.

Herzliches Beileid,
Bitte hoffen Sie, dass jeder der vermisst wird, sobald wie möglich zu ihrer Familie kommt.
Ich hoffe, die Vermissten können in einer warmen und guten Erinnerung schlafen.

맥주 한 캔도 종이 쪽지와 함께 나란히 놓여져 있었다. 친하게 지내던 언니의 실종 소식에 그간 더 따뜻하게 배려하지 못한 것을 아쉬워 한 동생의 선물 아닌 선물이었다. 사람들은 가족, 연인, 친구와 함께 끊임없이 강둑을 찾았다. 홀로 찾아온 노인들도 눈에 띄었다.

삐뚤빼뚤 태극기가 그려진 추모 쪽지. ⓒ 클레어함
삐뚤빼뚤 태극기가 그려진 추모 쪽지. ⓒ 클레어함
'안타까운 마음을 전합니다'라고 쓴 부다페스트 시민의 쪽지. 한켠에는 추모의 꽃을 그려넣었다. ⓒ 클레어함
'안타까운 마음을 전합니다'라고 쓴 부다페스트 시민의 쪽지. 한켠에는 추모의 꽃을 그려넣었다. ⓒ 클레어함

그러다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한 할머니와 눈이 마주쳤다. 이미 눈가가 촉촉했던 그 어르신이 먼저 나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나도 답례로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몇 초간의 침묵 뒤, 그 분이 성큼성큼 나에게 다가와 날 크게 안아주었다.

우리는 언어로 소통할 순 없었다. 하지만 그 분의 따뜻한 마음은 내게로 온전히 전달되었다. 지금 이 순간 다뉴브강에서만큼은 '낯선 이들의 포옹'이, 전혀 낯설게 느껴지지 않았다.

촛불을 든 유태인들

지난 1일 부다페스트의 유태인들이 추모 기도회를 열고 있다. ⓒ 클레어함
지난 1일 부다페스트의 유태인들이 추모 기도회를 열고 있다. ⓒ 클레어함

그곳에는 한 무리의 청소년들도 있었다. 그들과 함께 온, 선생님으로 보이는 중년 여성이 땅바닥에서 열심히 추모 메시지를 적고 있었다. 그런데 그녀는 한국어로 '고인의 명복을 빈다'는 표현이 궁금했던지 구글 번역기를 돌리고 있었다.

"도움이 필요하시면 내가 대신 적어드려 될까요?"

내 말에 같이 있던 한 학생이 반가운 얼굴을 한다.

"바닥에 대고 쓰는 것보다는 제 등에 대고 쓰면 더 편할 거예요."

그는 기꺼이 나에게 자신의 등을 내어준다. 이윽고 학생들은 차례로 촛불을 밝혔다.

1일 부다페스트 마가렛트 다리에서 만난 유태인 중학생과 기자가 함께 쓴 추모 글귀. ⓒ 클레어함
1일 부다페스트 마가렛트 다리에서 만난 유태인 중학생과 기자가 함께 쓴 추모 글귀. ⓒ 클레어함
추모의 촛불을 켜다. ⓒ 클레어함
추모의 촛불을 켜다. ⓒ 클레어함

그들은 유태인 중학생들과 교사, 랍비들이었다. 일요일에 예배를 보는 개신교와 달리, 토요일이 주일인 그들은 유태인 회당(시나고그) 참배 후 들른 듯했다.

랍비는 경건한 모습으로 추모 기도회를 주재했다. 교사는 "우리 유태인은 꽃을 바치지 않고 촛불과 돌을 사용한다"고 설명한다. 한국 나이로 중학생인 이들 학생들은 내가 현지 교민인지, 아니라면 무슨 일로 부다페스트를 찾았는지 질문을 퍼부었다.

나이 지긋한 랍비는 다리 난간에 기대어 강바닥을 물끄러미 응시한다. 깊은 생각에 잠긴 그의 모습이 예사롭지 않다. 헝가리 유태인에게 다뉴브강은 단지 '깊고 푸른 다뉴브강'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다뉴브 강가의 신발들

부다페스트는 인기 있는 관광명소이자, 유럽에서 제일 큰 유태인 회당인 도하니 거리 교회(Dohány Street synagogue), 별도의 유태인지구가 있을 정도로 유태계 인구가 많은 곳이다.

이런 헝가리에서 2차 세계대전으로 대략 육십만 명의 유태인들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헝가리는 당시 나치 독일과 동맹관계를 맺고 있었기에 전쟁 초기 몇 년간 대부분 유태인들이 보호됐다. 하지만 전쟁 말기인 1944년 독일의 헝가리 점령 후, 지방에 거주하던 유태인과 집시 들은 아우슈비츠 수용소로 보내졌다.

수도 부다페스트는 당시 정세에 밝았던 주지사 미클로스 호시 덕분에 보호되었다. 하지만 나치 독일에 동조한 헝가리 극단주의자단체 애로우크로스(Arrow-Cross)는 1944년 10월, 권력을 찬탈한 후 시내 유태인 게토에 격리됐던 유태인 수천명을 무참히 총살했다. 애로우크로스는 유태인들을 다뉴브강에 모아놓고 신발을 벗게 한 후 물에 밀어넣어 죽였다. 1945년 2월까지, 총 4개월에 걸친 대학살의 희생자는 오천 내지 팔천 명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지난 2005년 홀로코스트 희생자를 추모하기 위해 영화감독 캔 토게이와 조각가 귤라 파우에르의 협업으로 조형물 '다뉴브 강가의 신발들'이 태어났다. 바로 유람선 '허블레아니'가 침몰한 마가렛트 다리에서 불과 1킬로미터 지점, 그곳에 '다뉴브 강가의 신발들'이 있다.

나치에 의해 다뉴브 강에서 죽어간 유태인들을 기리는 작품 '다뉴브 강가의 신발들'. ⓒ Mirna Maric
나치에 의해 다뉴브 강에서 죽어간 유태인들을 기리는 작품 '다뉴브 강가의 신발들'. ⓒ Mirna Maric
작품 '다뉴브 강가의 신발들'. ⓒ Mirna Maric
작품 '다뉴브 강가의 신발들'. ⓒ Mirna Maric

아까 만난 랍비는 한국인들이 실종된 다뉴브 강을 바라보면서 아버지 혹은 어머니로부터 들었던 다뉴브 강의 유태인 학살을 떠올렸을까. 나를 안아준 은발의 할머니가 혹시 다뉴브 강물에 가족을 잃은 홀로코스트 생존자가 아닐까. 별의별 생각이 꼬리를 문다.

나의 헝가리인 친구에게는 홀로코스트 생존자인 할머니가 있다. 할머니는 그 야만의 역사로 초등학교 친구들을 모두 다 잃었다. 할머니 이야기를 듣고 자란 40대 내 친구는 아직도 독일 땅을 밟는 것이 두렵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이미 슬픈 역사를 통해 깊은 고통의 심연을 겪었던 유태인들. 한국인들을 위해 촛불을 켠 유태인들에게 말없는 위로를 받았다. 부다페스트 유태인들에게 이번 사건은 어떻게 기억될까.

"내가 너무 사랑하는 이 도시, 부다페스트가 한국인들에게는 슬픈 '허블레아니'의 침몰로 기억된다는 게 무척 안타깝다."

31일 있었던 부다페스트 한국대사관 추모 촛불에서 만난 나탈리가 한 말이다. 도시 중심에 강물이 흘러 "다뉴브의 진주", "다뉴브의 장미"로 불리는 부다페스트. 지금 그곳에 슬픔의 역사가 한꺼풀 덧씌워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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