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들의 행진
바보들의 행진
  • 최태선
  • 승인 2019.06.11 18:37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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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글을 쓰는 목적은 하나다.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인 하나님 나라 백성들이 모여 성령공동체인 교회를 이루어보자는 것이다. 꼭 나와는 아니더라도 세상 어느 곳에 그런 공동체가 생기기를 바란다. 그래서 내 글에 관심을 보이는 사람들을 만나왔다. 누구라도 원하면 나는 원근을 불문하고 달려 나갔다. 하지만 결과는 꽝이다. 사실 꽝이라는 표현으로는 부족하다. 솔직하게 말하면 비참하다. 그것도 너무나.

소모적이기만 하고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이 일을 계속해야 하는가.

늘 이런 고민 가운데 글을 쓴다. 참 묘하게도 절필에의 의지가 다잡아졌다 싶은 순간 내 의지를 꺾게 만드는 일이 일어난다. 하지만 내 입장에선 이렇게 내 삶을 소모하고 있는 내가 참 불쌍하다. 이젠 누가 보아도 늙었다. 하루가 다르게 더 늙어간다. 연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분명히 말하지만 나는 내가 차라리 빨리 늙어 죽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감히 덧붙이지만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내 안의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삶을 살고자 하기에 내가 늙는 것이 안타까운 것이다.

주님의 시선으로 오늘날 교회를 바라보라. 누구라도 주님의 아픈 마음을 느끼지 않을 도리가 없다. 그런데 왜 성령공동체를 향해 나가려는 사람이 이토록 드문가. 이유는 분명하다. 성령공동체가 바보들의 공동체이기 때문이다.

이반 투르게네프
이반 투르게네프

러시아 소설가 투르게네프가 쓴 <바보>라는 소설이 있다. 대충 이런 내용이다.

어느 마을에 바보 한 명이 살았다. 처음에는 자신이 바보인 줄 모르고 평화롭고 만족스럽게 살았다. 그런데 차츰 자신이 사람들에게 바보 취급을 당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가 무슨 말을 하던 사람들은 어리석다며 비웃었다. 옳은 말을…해도 마찬가지였다. 사람들 눈에는 그저 모자라는 바보일 뿐이었다.

수치심을 느낀 그는 그 상황에서 벗어날 방법을 고민했다. 때마침 한 현자가 마을을 지나갔다. 그는 몰래 현자를 찾아가 자신이 처한 상황을 설명하고 지성인이 될 수 있는 길을 물었다. 현자는 단지 지성적으로만 보이는 것도 괜찮으냐고 되묻고 방법을 일러 주었다.

"한 가지만 하면 된다. 누가 무엇을 말하든 그것을 부정하고 비난하라."

바보는 지체없이 현자의 조언을 실행에 옮겼다. 다음날 길에서 만난 친구가 어떤 작가를 칭송하자 그는 탄식하며 말했다.

"맙소사! 그 작가는 매우 비현실적인 사람이야. 그 사실을 모르다니! 그렇게 되면 너도 비현실적인 사람이 되는 거야."

친구는 놀라서 얼른 바보의 말에 동의했다.

또 한번은 다른 친구가 말했다.

"어제 정말 좋은 책을 읽었어. 신간인데 책 제목이 <좋은지 나쁜지 누가…>"

바보는 소리쳤다.

"부끄럽지도 않아? 읽어 볼 필요도 없이 형편없는 책이야. 모두가 속고 있는 거야. 네가 그렇게 어리석은 줄 몰랐어."

친구는 흠칫하며 바보의 의견에 고개를 끄덕였다.

세 번째 친구가 말했다.

"마음에 드는 시인을 발견했어. 이 시인의 시를 읽어 봐."

바보가 샛된 소리를 지르며 말했다.

"분명히 말하지만, 그자는 엉터리 삼류시인이야. 모두가 알고 있는데 너만 순진하게 모르는 거야. 그가 뛰어난 시인이라는 걸 증명할 수 있어?"

차츰 사람들은 그를 똑똑한 사람으로 여기기 시작했고, 신문과 잡지에서도 비평 칼럼을 맡아 달라고 요청했다. 한 달도 지나지 않아 그는 마을을 대표하는 지성인으로 자리매김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 투르게네프가 말하는 바보 지성인들이 되었다. 일단 지성인으로 자리매김한 사람에게는 어떤 말을 해도 소용이 없다. 그것을 부정하고 비난할 줄만 아는 사람들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들에게는 옳은 것이 없다. 모든 것은 다만 부정의 대상일 뿐이다. 바보가 지성인 대접을 받으면 헤어날 길이 없다. 그들은 더 이상 배울 수 없는 사람들이 되었다.

내 말이 지독한 풍자라는 생각이 드는가. 아니다. 이것이 오늘날 기독교의 현주소이며 자화상이다. 복음에 대해 일천한 사람들이 하나님의 자리에 앉아서 모든 걸 판단한다. 사단이 가장 원하는 분위기가 무르익었다. 주님이 부인하라던 자아가 점점 더 강화된다. 누군가를 부정하고 비난하면서 우월감을 느끼고 만족해하는 사람들이 된 것이다.

마침내 터가 무너졌다. 바야흐로 자기를 부인할 줄 모르는 지성인들의 세상이 되었다!!!

나는 투르게네프가 말한 현자가 사단이라고 생각한다. 사단은 바보를 지성인으로 만들어 사람들의 에고를 강화한다. 에고가 전부인 사람들에게 그 에고를 부인하라고 말하는 그리스도는 어리석다. 사람들이 누구의 말에 감화를 받겠는가. 하나마나한 질문이다. 우리는 지금 그 결과를 보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글을 쓴다. 지성인이 될 수 있는 자신을 부인하는 바보들을 위해서. 그리스도 때문에 기꺼이 바보가 되려는 사람들이 어딘가 남아 있을지 모르니까. 생각해 보니 하나님 나라 운동은 ‘바보들의 행진’이다. 득도 없이 글을 쓰는 나는 바보다. 그러나 그것이 주님을 위한 것이기에 기꺼이 바보가 되고자 오늘도 이렇게 글을 쓴다. ‘바보들의 행진’에 함께 할 사람은 없는가. 나는 오늘도 주님을 위해 주변을 둘러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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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석용 2019-06-12 10:26:28
내 안에 계신 예수님이 드러나는 삶을 살아야 하지만, 아직도 내가 살아서 내 안에 계신 예수님이 드러나지 않고 능력없는 삶을 살아가는 현실이 저와 현재 기독교인들의 삶인듯 합니다.

내 안에 계신 예수님이 삶에서 드러나고 ,성령의 아홉가지 열매가 주렁주렁 열리고, 능력있는 삶을 사는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