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리스터 맥그래스와 가인의 후예들의 처신
알리스터 맥그래스와 가인의 후예들의 처신
  • 최태선
  • 승인 2019.06.14 07:11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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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리스터 맥그래스는 사랑의교회 헌당식에 참여하여 오정현 목사가 추진하는 '제자 훈련의 국제화'를 지지한다고 말했다. 많은 사람들이 사랑의교회 헌당식에 참여한 사람들에게 실망감을 표시하며 그들을 잊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것을 보았다. 그런 맥락이다. 출판업에 종사하는 한 분이 맥그래스에게 어떻게 문제가 있는 교회의 헌당식에 참여해서 그런 말을 할 수 있느냐고 묻는 메일을 보냈다. 그리고 그가 보낸 답메일을 보았다. 영어 원문으로 자세히 보지는 않았지만 대충 자신은 사랑의교회가 그런 문제가 있는 교회인지 모르고 다만 한국교회를 위하는 일이라 생각하고 그 자리에 참석했다는 것을 반복적으로 밝히고 있었다.

알리스터 맥그래스와 사랑의교회
알리스터 맥그래스와 사랑의교회

정말 그랬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가 정말 지각 있는 신학자라면 대형교회라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참석을 망설여야 했다. 그러면 사랑의교회가 문제가 없는 교회였다면 문제가 없다는 말인가. 나는 대형교회의 초청에 응하면서 그것이 한국교회를 위한 것이었다는 그의 사고에서 크고자 하는 그의 욕망을 본다. 내 개인적인 사고나 추론이 아니다. 그가 정말 제대로 된 신학자라면 사랑의교회가 메가처치라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자신의 행보에 더 주의를 기울였어야 한다. 그가 사랑의교회의 헌당식에 참여하면서 그것이 한국교회를 섬기기 위한 것이었다고 생각했다면 그것은 근본적으로 더 큰 문제가 된다. 그것은 그가 사랑의교회 오정현과 그를 추종하는 무리들의 사고와 같은 사고를 지녔다는 명백한 증거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그가 몰랐다고 발뺌을 하는 모습은 전형적인 가인의 후예들의 처신이다. 책임전가라는 말이다. 물론 그의 입장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그가 올바른 신학자이고 올바른 신앙인이라면 잘못을 인식했을 때 그렇게 처신해서는 안 된다. 그는 자신의 입장을 합리화할 것이 아니라 정중한 사과를 해야 한다. 물론 그가 사과를 전혀 안 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의 메일을 다 읽으면 애초에 잘못된 선택이었다는 정중한 사과라기보다는 상황을 잘 인식하지 못했었다는 해명이 주를 이루고 있다. 그의 사과는 진정성이 빠져 있는 형식적인 사과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그런 그에게서 나는 대인들의 전형을 본다. 그것은 자신이 이미 하나님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는 명백한 증거이다. 김일성 일가는 결코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래서 북미회담의 실패를 실무자들에게 지우는 것이다. 정상회담의 책임은 당연히 정상들에게 있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하지 못한다. 그것이 절대자가 된 사람의 전형적인 행태이다. 알리스터 맥그래스 역시 자신이 대단한 신학자라는 자의식에 빠져 있음을 보지 못하고 있다는 말이다.

그런 그를 보고 떠오르는 사람이 하나 있다. 프란치스코 교종이다. 교종이 한국을 방문했을 때 그는 세월호 가족들을 찾았다. 고통받는 사람들과 함께 하려는 그의 신앙과 사고가 담겨 있는 상징적인 행동이다. 그는 방탄유리가 장착된 큰 차를 타지도 않았다. 그는 1500cc 소형차를 탔다. 그의 그런 행보가 쇼라는 생각이 드는가.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가 선택한 프란치스코라는 이름도 교황 역사상 최초이고, 교황청 안에 초막을 지어놓고 그곳에서 생활했던 첼레스티누스 이래 최초로 화려한 교황의 처소를 마다한 교황이다. 그의 행동 하나, 하나에는 예수를 좇고자 하는 그의 열망과 제자로서의 삶의 방식이 올올이 담겨 있다. 그런 건 의도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말씀이 체화된 사람의 자연스러운 삶의 방식이다.

프란치스코 교종은 한국을 방문했을 때

소형차를 타고 세월호 가족들을 찾았다.

알리스터 맥그래스와 얼마나 대조되는가. 그가 진정으로 한국교회를 위한다는 생각으로 한국을 방문했고, 그리고 한국의 어딘가를 방문한다면 그는 쪽방촌과 같은 한국의 소외된 사람들이 살고 있는 곳을 방문해야 했다.

‘황금의 입’이라 불리던 요한 크리소스톰의 말이 생각난다.

“우리가 양으로 남아 있는 한 우리는 승리할 수 있다. 비록 우리가 늑대 천 마리에 에워싸인다 할지라도, 우리는 정복하고 승리한다. 그러나 우리가 늑대가 되는 즉시 우리는 패배한다. 우리는 늑대를 기르지 않고 양을 기르는 목자의 지지를 잃기 때문이다.”

나는 요한 크리소스톰의 이 말에 하나님 나라와 하나님 나라의 방식이 담겨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맞는다면 우리는 힘을 가진 늑대가 되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스스로의 힘으로 자신을 보호하려던 가인의 길이다. 우리는 여기서 다시 한 번 대형교회의 정체성을 확인할 수 있다. 그것은 늑대 천 마리에 에워싸인 양이 아니라 늑대들이 모인 에녹성이다. 적어도 신학자라면 이 정도의 상식은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그리스도인들에게 가장 큰 유혹은 힘과 영향력이 하나님의 일을 하는데 크게 유용할 것이라는 생각이다. 그것은 이미 예수님의 광야 시험에서 예수님께서 거절하신 것이다. 요한 크리소스톰의 말대로 우리는 양으로 남아 있어야 한다. 늑대 천 마리에 에워싸여 있어도 결국 양으로 남아 있는 우리가 이긴다. 핍박과 멸시를 당할 것이다. 늑대들이 우리를 십자가에 달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죽지 않고 부활한다. 그리고 마침내 힘과 영향력을 포기한 우리 양들이 정복하고 승리한다. 이것이 복음이고 이것이 하나님 나라이다.

오늘도 이 땅의 그리스도인들은 알리스터 맥그래스와 마찬가지로 하나님 나라를 향해 간다면서, 하나님의 일을 한다면서 힘과 영향력을 가진 대형교회로 몰려간다. 미안하지만 나는 그런 사람들이 정말 불쌍하다. 물론 그곳으로 가는 이유가 있다. 자신에게 무릎 꿇고 절한 사람에게 사단은 천하만국을 준다. 그 어찌 대단한 일이 아닌가. 능히 현혹될만한 선악과이다.하지만 그 천하만국은 멸망으로 향하는 넓은 길이다. 그래서 나는 그런 분들에게 감히 말할 수 있다.

돌아서 나오라 양들이여!!

어쨌든 다시 한 번 하나님 나라를 이 땅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실감나게 소개할 수 있게 해준 알리스터 맥그래스에게 감사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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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 2019-06-14 09:04:00
프란치스코 교황은 종교 다원주의자입니다. 마리아를 숭배하며 개신교 탄압을 위한 단체인 예수회 출신의 교황입니다. 사탄은 이미 카톨릭을 통해 6천만명 이상의 개신교도들을 고문하고 죽였습니다 . 누가 사탄의 종인지 분별을 잘 해야 합니다. 대형교회가 사탄의 것이 아니라 일부 몰지각한 목사들이 문제이지 대형교회와서 강의하는게 문제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