냄새는 권력이다
냄새는 권력이다
  • 김기대
  • 승인 2019.06.16 0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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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보고 쓰는 ‘기생충’ 리뷰- 영화관에서 책을 읽다(6)

봉준호 감독의 황금종려상 수상작 '기생충'이 관객 800만 돌파를 앞두고 있다. 이 정도 영화면 미국 시장에도 동시 상영될 법 한데 10월에나 개봉된다는 소식이다. 이렇게 늦어지는 이유는 10월부터가 2020년도 아카데미상을 겨냥한 적기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연예 매체 인디와이어는 "한국은 '기생충'을 2020년 오스카상의 외국어 영화 부문 공식 출품작으로 선택할 것 같다. 한국은 그 부문에 후보를 올린 적이 한 번도 없다. '기생충'이 외국어 영화 부문에 후보로 오른다면, '기생충'은 또 다른 역사적인 영예를 안게 되는 것"이라고 썼다. 

칸 영화제뿐 아니라 아카데미상에서 외국어 영화상을 수상한다면 감독과 제작자에게는 영예이겠지만 미국에서의 뒤늦은 개봉은 봉준호 영화를 기다리는 미주 동포들에게는 실망스러운 일이다. 그때쯤 되면 ‘어둠의 경로’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이미 봤을 가능성이 있다.

감독이 스포일러를 자제해 달라고 간곡하게 부탁했지만 인터넷에는 스포일러가 차고도 넘친다. 포털 사이트 ‘다음’의 영화 소개만 봐도 내용은 어느 정도 짐작되지만 네티즌들은 누가 죽고 누가 사는지의 결정적 스포일러까지 제공하니 이미 영화의 결말은 거의 모든 사람에게 알려져 있다고 해도 무방하다. 이처럼 수집한 정보로만 쓰는 리뷰이므로 일부 내용이 실제와 다를 수도 있다. 독자들의 양해를 바란다.

<기생충>에 펼쳐진 공간은 영화의 스토리와 직결된다. 로케이션과 실제 오픈 세트가 동시에 사용된 <기생충>의 프로덕션은 전원백수인 기택네 가족의 공간인 반지하 집에서 출발해 언덕 위 박사장 집에 이른다. 기우의 과외 면접 동선이기도 한 이 수직 구조는 두 가족의 사회적 위치를 대변한다. 따라서 기우가 면접을 보러 가는 동안 오르는 계단들과 다시 반지하 집에 이르기 위해 내려가야 하는 계단들은 공간과 공간을 이어주는 역할을 넘어 역시 현대사회의 수직적 질서에 대한 메타포로 기능하고 있다.

줄거리 60% 이상의 무대가 되는 박사장 집은 유명 건축가가 지었다는 설정이었기 때문에 취향과 예술적 혜안이 반영된 건축이어야만 했다. 특히 굽이굽이 코너를 돌 때마다 새로운 비밀이 나오는 것 같은 이 집의 독특한 구조는, 봉준호 감독이 시나리오를 쓰기 전부터 주문한 사항이었다. 관객들에게는 자연스럽고 아름다운 주거 공간으로 비춰지면서도, 캐릭터들이 만나고 단절되는 다층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어야만 했던 것이다.

두 집 사이의 대조와 각 공간의 리얼리티, 그리고 영화의 메시지를 내포한 다수의 디테일을 통해 완성된 <기생충>의 공간들은 동시대를 살고 있으나 엮일 일 없어 보이는 두 가족의 삶의 배경을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그리고 인물의 동선을 따라 드러나는 비밀과 사건들에 훌륭한 이유를 제공한다.  - 포털 사이트 ‘다음’의 영화 

가정교사로 입주한 가짜 대학생 기우(최우식)는 가족인걸 숨긴채 아버지는 운전기사로 어머니는 가정부로 누이동생은 미술교사로 박사장 집에 데려와 함께 기생한다. 그곳에서 같은 ‘을’의 관계인 기존의 가정부와 갈등이 폭발하고 결국 ‘갑’ 박사장(이선균), ‘을’ 기택(송강호), 다른 ‘을’ 문광(이정은)의 세 가정에서 가정 당 한 명씩 죽는 비극으로 끝난다.

많은 평론가들이 의견처럼 거대한 자본주의 모순과 싸우기 보다는 을들끼리의 갈등에 초점을 맞춘 영화다. 봉준호의 ‘괴물’(2006년)이 민족모순을 다룬 영화라면 ‘기생충’은 계급모순을 다룬 영화다.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온 독극물이 괴물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SNS에서 읽은 괴물은 NL영화 기생충은 PD 영화라는 분석이 재미있다.

'기생충'은 수직 상승을 하려는 가난한 이들이 결국 다시 폭우 속에서 하강하는 슬픈 영화다. 박사장의 아내 연교(조여정)에게 비내리는 날씨는 좋은 날씨지만 기택의 가족에게 비는 폭우 속에 떠내려 가는 하강의 저주다.

영화에서 기택은 대만카스테라 가게를 하다가 망한 것으로 설정되어 있다. 대만 카스테라는 2017년 3월12일 채널A의 '먹거리 엑스파일'은 달걀·밀가루·우유·설탕 외에 어떤 것도 넣지 않는다고 선전한 것과 달리 식용유와 일부 첨가제를 사용한다고 폭로했다. 과장 보도라는 비판이 이어졌으나 이미 악화된 여론으로 거의 모든 대리점이 폐업했다. 맛 칼럼니스트인 황교익씨는 당시 시사인과의 인터뷰에서 색다른 주장을 했다.

 

그는 '먹거리 엑스파일'이 일부 대만 카스테라 프랜차이즈 본사에는 좋은 핑계가 된 측면이 있다”라고 말했다. 몇몇 프랜차이즈 본사가 반짝 특수를 노린 ‘단기 아이템’으로 대만 카스테라를 들고 나왔는데, 인기가 시들해질 때쯤 '먹거리 엑스파일'이 뺨을 때려줬다는 것이다. - 시사인 499호

 

대만 카스테라는 종편의 선정적 보도, 네티즌들의 부화뇌동, 본사의 무책임한 전략, 중소상인들의 과도한 욕망이 일체가 된 사건이다. 봉준호는 자본주의의 모순에 직격탄을 날리기 보다는 기택의 사업실패를 공동의 책임으로 보면서 정의당 지지자답게 계급모순을 직접 언급하지 않는다.

이 주제를 전개해 나가는 두가지 화두는 냄새와 선이다. 박사장은 갑질이라고는 모르는 인자한 부자지만, 그래서 전 가정부 남편으로부터 ‘respect’라는 찬사를 받지만 그들이 그어 놓은 보이지 않는 선을 넘어 올 때 견디지 못한다. 박사장이 ‘사랑’을 말할 때 그것에 맞장구 치는 기택의 '사랑'은 다른 사랑이다. 사랑에도 차별이 있음을 모르는 기택은 박사장이 그어 놓은 선을 넘는다. 연교가 아들의 생일잔치를 위해 기택에게 인디언 분장을 해달라고 정중하게 부탁할 때 아이를 위해 이런 연출까지 해야하는 사모님도 애쓰신다고 말한 기택은 또 선을 넘는다. 기택은 어떤 개념에 대해 박사장과 동일한 정의(DEFINITION)를 가져서는 안된다는 자본주의의 규칙을 몰랐다.

플래너리 오코너의 단편 ‘추방자’에서 매캔타이어 부인은 자신의 농장에서 일하는 폴랜드계 백인 노동자가 자신의 조카를 미국으로 데려오기 위하여 ‘검둥이’ 노동자와의 결혼을 추진하자 당사자가 아님에도 끝까지 반대하다가 비극적인 죽음을 맞는다. 매캔타이어도 젊은 시절 주변의 시선에 아랑곳 않고 나이가 훨씬 많은 농장 주인이자 판사였던 남편과 결혼했지만 백인과 흑인이 선을 넘으려는 시도는 견딜 수 없었다.

계급 사회에서는 함께 사는 사람이 아무도 아닌 존재가 되기도 한다.  

시골 저택에 사는 부인에게 ‘함께 사는 분이 없어요?’라고 물어본다고 가정하세. 질문을 받은 부인은 ‘하인 한 명, 마부 세 명, 하녀 한 명과 함께 살고 있습니다’라고 하지 않을 걸세. 비록 하녀가 방 안에 있고 하인이 바로 뒤에 있다 해도 말이야. 그 부인은 아마 이렇게 답하겠지. ‘네, 함께 사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아무도 없다’가 이 사건에서의 ‘아무도 없다’일세. 하지만 어떤 의사가 전염병을 조사하면서 ‘함께 지내는 분이 있습니까?’라고 묻는다면, 이 부인은 하녀와 하인, 그 밖의 모든 사람들을 기억해낼 걸세. - 길버트 체스터턴의 소설집 ‘결백’ 중 ‘보이지 않는 남자’ 

기택의 가족은 투명인간이어야 했다. 그런데 그들은 냄새때문에 있는 존재가 된다. ‘보이지 않는 남자’에서처럼 전염병을 조사할 때만 하인, 마부, 하녀는 비로서 보이는 사람이 된다. 가난한 자의 냄새 속 박테리아가 부자의 삶에 개입못하게 막으려고 해도 선을 넘으면서 자신을 드러내듯이 말이다. 마침내 냄새를 견딜 수 없어 하는 박사장의 표정이 우발적인 살인을 부른다.

칼렙 콜튼의 말처럼 “부가 있으면 남에게 호의를 베풀 수 있지만 품위와 예의를 갖춰 베푸는 데는 부 이상의 것이 필요”한데 박사장 부부는 품위와 예의도 가지고 있었다. 다만 타자가 내 삶의 경계를 넘어 오는 것은 용납할 수 없었다.

‘냄새’에 관한 영화로 기생충보다 훨씬 계급적인 영화는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소설 ‘향수: 어느 살인자의 이야기’를 원작으로 한 동명의 영화다. 18세기 파리의 시장통에서 태어난 그루누이(벤 위쇼)는 뛰어난 향수 제조가로 파리 사교계에서 이름을 날린다. 생선 장사인 그루누이의 어머니는 생선을 팔던 중 태어난 아기를 생선 내장 더미에 던져 놓고 그냥 장사를 계속한다. 벌써 다섯 번째 아기로 그렇게 던져 놓으면 아기는 알아서 죽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달랐다. 생선 내장의 냄새를 감지하던 아기는 살아났고 그의 어머니는 교수형에 처해졌다.

고아원에서 성장한 그루누이는 자신에게 예민한 후각이 있다는 것을 알고 향수 제조를 직업으로 삼는다. 그가 만든 향수에 대한 찬사가 이어지자 더 좋은 냄새를 만들기 위해 사람을 원료로 쓰기 시작한다. 말하자면 연쇄 살인범이 되어 버린 것이다.

그의 범죄가 발각되어 십자가형에 처해지려는 순간 사형장면을 구경하러 나온 주교, 귀족, 평민들에게 그가 만든 향수의 향기를 날린다. 사형집행인들은 그 앞에 무릎을 꿇고 “이 분은 죄가 없으시다”라고 외친다. 군중이나 주교 할 것없이 모두 향수에 취해 광장은 거대한 집단 난교의 장이 되어 버린다.

그 사이를 틈타 탈출한 그루누이는 자기가 태어난 파리의 뒷골목으로 가서 처음으로 자신의 몸에 향수를 뿌린다. 냄새에 도취한 거리의 가난한 사람들이 그에게 달려들어 성찬식을 하듯이 그루누이의 피와 살을 나누고 모든 것이 사라져 버렸다. 영화의 나래이터는 다음과 같이 결론을 낸다.

     그는 난생 처음으로 순전한 사랑을 온몸으로 보여준 것이다.

고급 향수 즉 좋은 냄새는 누군가의 희생으로부터 나온 것이고 그 사용자들은 좋은 냄새를 독점한다. 여기서 냄새는 권력이 된다. 방귀를 낀 이승만에게 '각하 시원하시겠습니다'라고 했던 야사처럼 말이다. 죽음의 위기 앞에서 그루누이는 냄새의 평등함을 인지하고 가난한 이들에게 자신 스스로를 던져 냄새의 평등을 이룬다.

그루누이는 본래 몸에 체취가 없는 존재였다. 라캉 식으로 말하자면 어떤 이데올로기에도 속하지 않는 텅빈 공간으로서의 실재계의 존재였던 셈이다. 삶에서는 실재계가 실현될 수 없다는 것을 인식한 그루누이는 계급과 이데올로기가 지배하는 상징계로 돌아와 자기의 몸에 냄새가 나게 만들고 그것을 빈민 대중들에게 예수의 빵처럼, 불교에서 공양하듯이 나누어 준다.
 

반면 '기생충'의 기택은 상징계의 냄새도 구별 못하던 '순수한' 존재였다. 거울을 보듯이 부자들을 바라보며 그들을 따라하는 상상계를 벗어나지 못했다. 냄새의 차별을 깨닫고 상징계로 접어드는 순간 그는 마침내 호모 사케르가 된다. 제물로는 바쳐질 수 없으나 죽여도 되는 호모사케르, 조르조 아감벤은 현대 세계는 난민과 같이 소외된 호모 사케르들이 정치적 주체가 된다고 전망했다.

기택은 정치적 주체가 되지 못하는 호모사케르였으나 마침내 분노를 실현한다. 그러나 그 행위는 우발적이었고 복수의 성격이 짙었다. '복수는 나의 것'에서 유괴된 뒤 살해당한 딸의 복수를 위해 직접 유괴범(신하균, 배두나)을 죽이던 아버지(송강호)가 겹쳐 진다.  '복수는 나의 것'에서 송강호가 그의 복수가 과도했음을 깨닫는 순간 배두나의 ‘동지’들에게 자신을 내어준다. 향수에서 그루누이가 그랬던 것처럼.

반면 기택은 계급적 저항을 지속시키지 못하고 다시금 지하실로 숨어든다. 봉준호가 박찬욱이나 향수의 톰 티크베어 감독보다 비겁해 보인다. 어쩌면 슬레보예 지젝이 말한 환상이라는 돌림병, 다시 말해 이성을 마비시키고 특정한 계급에는 특정한 냄새가 있다는 환상 바이러스에 감염된 영화인지도 모른다. 기택은 부, 계급, 복수처럼 자신을 타자의 욕망에 상응할만한 것으로 인식하려는 환상에서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플란다스의 개(200년)'부터 이어지는 봉준호의 비슷비슷한 세계관이 안보고 쓰는 영화평을 가능하게 했다는 견강부회로 독자들의 관대함에 호소한다.  

<영화>

기생충, 봉준호 감독, 2019년

향수, 톰 티크베어 감독, 2006년

복수는 나의 것, 박찬욱 감독, 2002년

<책>

플래너리 오코너, 플래너리 오코너 지음, 고정아 옮김, 현대문학, 2014년

결백 - 브라운 신부 전집 1, 길버트 체스터턴 지음, 홍희정 옮김, 북하우스, 2002년

환상의 돌림병, 슬라보예 지젝 지음, 김종주 옮김, 인간 사랑, 2002년

호모 사케르, 조르조 아감벤 지음, 박진우 옮김, 새물결, 2008년

냄새란 무엇인가, 피에르 라즐로 지음, 김성희 옮김, 민음인, 200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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