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후 커플 유감
태후 커플 유감
  • 권영석
  • 승인 2019.06.30 0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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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의 후예"로 맺어진 송-송 부부의 '충격적' 결별 소식

세기의 로맨틱 커플로 여겨지던 송-송 커플의 이혼 이야기가 고국 뿐 아니라 '태후 신드롬'을 선망하던 지구촌 구석구석의 팬들에게 실망감을 안겨주었단 뉴스가 인터넷을 장식하고 있습니다. 태백의 주민들은 드라마 세트장에 투자한 것을 후회할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되었다 하구요.

드라마처럼 이상적인 결합으로 비쳐지던 두 부부가 맞닥뜨려야 했던 현실은 드라마와는 많이 달랐던 모양입니다. 허긴 보통 사람들과 매한가지로 '가인의 후예들'인데 그들이라고 별 수 있었겠습니까마는 그래도 드라마와 같은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가 계속 되었으면 하는 팬들의 투사적인 바램이 컸던지라 충격적인 소식으로 다가온 것은 충분히 이해할만하다 하겠습니다.

'태양의 후예'의 한 장면
'태양의 후예'의 한 장면

한편 생각하면, 역시 현실은 드라마보다 훨씬 드라마틱하여 그 애환의 깊이와 넓이를 측량하는 것이 실은 불가능하다 하겠습니다. 드라마는 어쩔 수 없이 단편적이고, 가설적이고, 환상적이어야 드라마다운 효과를 거둘 수 있기에 '각색'(dramatize)이 불가피하다 하겠습니다만, 현실 세계는 너무나 복잡한 변수들이 서로 작용하여 드라마 속에 다 담아내기란 불가능할 정도로 신비스러우면서도 동시에 꼬질꼬질하고 잡다한 미세 고리로 얽혀있다 하겠습니다.

다른 한편, 현실이 너무나 팍팍하기에 사람들은 일상의 디테일에 치여서 메말라가는 정서를 단순 도식화된 가상 세계에 투사하여 위로도 받고 채움도 받고 싶어 하는 게 또한 현실일 것입니다. 파리의 연인이나 프라하의 연인에 이어서 태후의 연인으로 '발전'시켜 보지만 사랑 이야기는 지칠 줄 모르고 끊임없이 소비/요구될 수밖에 없는 까닭이 아니겠습니까? 결혼이나 섹스에 관한 출판물과 영상물은 결코 손해 보는 일이 있을 수 없다고 하던데 역시 매한가지 이유에서일 것입니다.

해서 송-송 부부의 결혼 소식이 놀라웠던 것에 비하면 송-송 부부의 이혼 소식은 그렇게까지 놀랄 일은 아닌지도 모르겠습니다. 다만 두 사람이 받았던 기대치가 워낙 컸던 만큼 세간에 미칠 충격의 여파는 당분간 지속될 것 같으며, 또 일면 두 사람의 프라이버시가 함부로 침해되어선 안 되겠지만, 드라마와 달랐던 결혼 생활의 현실에서 이 부부가 겪어야 했던 어려움과 과제는 교훈 형식으로라도 공개될 수 있다면 팬들[의 기대]에 대한 부응도 되고 또 결혼을 꿈꾸고 소망하는 팬들에게 제공하는 실질적인 유익이 되지 않을까 하는 [주제넘은] 생각을 해 봅니다. 웬만한 결혼 텍스트나 세미나보다도 드라마 한편이 끼쳤던 영향력이 그만큼 지대했기에 품게 되는 소회(素懷)라 하겠습니다.

모름지기 결혼은 서로에 대한 환상이 다 깨어지고 났을 때 최종 결심을 하는 것이 바람직한 법입니다. 반대로 환상이 극에 달했을 때, 곧 서로에게 완전히 빠져 있을 때 결혼을 약속하는 것은 사실 그 만큼 위험부담이 크다 하겠습니다. 왜냐하면 결혼은 다른 약속들/관계들과는 사뭇 다르게 조건이 없는 사랑과 무조건적인 충성을 전제로 하는 관계이기 때문입니다. 서로에 대한 환상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를 기준으로 서로를 받아들이기란 사실 쉬운 법입니다. 그런 사랑은 그리 큰 힘 들이지 않아도 할 수 있는 사랑입니다. 힘들고 어려울 때, 곧 가난하거나 병들거나 위기를 겪을 때에도 여전히 사랑할 수 있는 사랑은 힘겨운 수고가 들어가야 가능한 사랑입니다. 힘든 경우나 상황을 아직 겪어보지 않은 상태에서 생각이나 이상만으로 쉽게 약속하게 되면 그만큼 약속을 지키기가 더 어려운 것은 당연합니다.

대개 첫 눈에 반하여 결혼한 사람들의 이혼율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더 높게 나타나며, 또 중매결혼보다 연애결혼의 이혼율이 더 높다고 하는 통계치는 결혼에 대한 이런 상식적인 원리를 그대로 반영해 준다 하겠습니다. 이런 각도에서 보자면 드라마도 뜨고, 드라마 주인공들의 실제 결혼 생활도 동시에 뜨는 것을 기대하기란 결코 쉽지 않았다 하겠으며, 그 쉽지 않은 선택을 했던 두 사람이 보통 사람들보다 더 큰 어려움을 견뎌내어야 했던 것은, 원론에 비추어보자면, 이미 예견되었던 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어쩌면 드라마 "태후"가 떴던 만큼 두 사람의 결혼은 환상적이리란 기대 역시도 커졌던 것이며, 현실 속에서 두 사람이 직면한 현실은 반대로 결코 환상적이 아닌 일상들로 가득 채워져 있었기에(특별히 더 비환상적이거나 반환상적인 것은 아니었다 해도) 보통 사람들과는 달리 두 사람은 드라마틱한 기대치와 드라마틱하지 않은 현실 사이의 격차를 받아들이기가 그만큼 어려웠던 것이 아니었을까요?!

실망한 지금이야말로 결혼의 문을

과감히 두드리는 용기를 내어야 할 때

어떤 주례자는 주례 부탁을 받으면, 두 사람이 삼세번까지 심각한 갈등과 실망을 겪고 나서도 여전히 결혼할 마음이 있으면 그 때 다시 오라고 조언한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이상과 현실, 낭만과 일상 사이의 격차를 좁힐대로 좁혀 놓은 연후에 두 사람이 이 새로운 차원의 관계 곧 조건 없는 사랑의 세계로 들어가야 행복을 지속시켜 나갈 수 있는 것이 바로 결혼 관계라 하겠습니다. 행복은 무엇보다도 진정하고 영원한 사랑, 곧 "끝까지"(everlasting) 사랑을 주고받는 데서 얻어질 수 있는 것이며, 이런 무조건적인 사랑은 조건이 많고 환상이 클수록 실행에 옮기기가 그만큼 어려워지기 때문입니다.

돈 많고 인물 있고 학벌 좋은 유력한 사람을 좋아하고 사랑하는 것은 그 진정성을 인정받고 신뢰를 얻기가 그 만큼 더 어려운 법이며, 또 그 외형적인 조건들에 비해 속 사람의 됨됨이가 그만 못한 것이 드러나게 되면 결국 그 사람과 결혼한 것을 후회하고 실망하여 돌아/갈라서든가 아니면 어쩔 수 없이 그 외형적인 조건들이나마 붙들 수 있게 된 것을 위로 삼아 체념과 좌절 속에서 우울한 결혼을 유지하든가 하는 양극의 그러나 여전히 비극적인 결말을 맞게 될 것입니다. 백마 탄 왕자나 백설 공주가 예기치 않게 나타나 주리란 환상에 사로잡히기가 쉽지만 사실 왕자/공주라고 해서 속 사람도 이야기 속의 그들처럼 다 좋으리란 보장까지 확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며 현실 세계 속에서는 그 반대인 경우가 더 흔한 것이 사실이 아니겠습니까?

만시지탄이나 드라마는 드라마로 남겨두었더라면 차라리 더 낫지 않았을까 하는 [당사자들에게는 더더욱] 생뚱맞은 소회를 적어 봅니다만, 송-송 부부의 안타까운 사연이 실은 특별하다기보다 이 시대의 결혼 세태가 너무나도 결혼의 아름다움과 본질적인 신비를 담아내지 못하고 잔잔한 미풍조차 견뎌내지 못하는 갈대처럼 취약한 사랑을 가지고 결혼이라고 하는 엄청난 약속의 무게를 감당하겠다고 감히 나섰다가 가을비에 떨어진 낙엽처럼 내동댕이쳐지는 그렇고 그런 풍경화로 귀결되고 마는 것이 너무도 안타깝기에 넋두리해 보게 된 것입니다.

바라기는 송-송 커플의 이 가슴 아픈 사연이 드라마 "태후"보다도 결코 적다고 할 수 없는 적어도 그에 버금가는 현실적이고 실제적인 교훈을 남긴 내러티브로 [살아] 남을 수 있으면 하는 기대를 걸어 봅니다. 말하자면 드라마 "태후"의 환상을 현실 "태후"가 보완한다고나 할까, 아니면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드라마 "태후"의 망상과 취기를 현실 "태후"가 해독한다고나 할까, 아무튼 진정성 있고 힘 있는 사랑은 환상의 세계에서만 가능한 사랑이 아니라 현실의 벽을 너끈히 함께 넘어서고 그 어떤 장애물도 함께 헤쳐나가는 사랑이어야 할 것입니다. 무조건적인 사랑, 아무런 조건 없는 용서가 실제로 어떤 의미인지 알고 그리고 그 놀라운 파워를 실제로 구사하는 사람들만이 지속가능한 행복한 결혼 생활의 복을 누릴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마나 한 얘기가 되겠지만, 현실은 드라마와 달리 언제나 훨씬 더 팍팍하며 그래서 어려움과 아픔을 수반하겠지만, 동시에 그 팍팍한 만큼 현실을 마주하여 살아내고 이겨내는 이런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들은 언제나 훨씬 더 큰 보람과 행복을 직접 맛볼 수 있다는 것이 우리의 실존적 기대이자 위안이 아니겠습니까? 실망한 '태후' 팬들에게 [실망한] 지금이야말로 결혼의 문을 과감히 두드리는 용기를 내어야 할 때라고 말해 주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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