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년 쌓인 KAL 사건 희생자 고통 품은 성직자
32년 쌓인 KAL 사건 희생자 고통 품은 성직자
  • Michael Oh 기자
  • 승인 2019.07.31 0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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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L 858기 사건 진상규명 대책본부, 8월 1일 신성국 신부 LA 강연회

[뉴스M=마이클 오 기자] 전두환 군부 정권의 말기, 1987년 대선 정국을 뒤흔들었던 KAL기 폭파 사건이 일어난 지 32년이 흘렀다. 하지만 사건의 진실은 여전히 무관심과 의혹 아래 잠겨 있다. 미얀마 안다만의 앞바다 불과 50m 아래 가라앉은 채 오늘도 인양을 기다리고 있는 사고 비행기의 동체처럼 말이다.

가톨릭 신부 신성국은 32년의 세월 동안 변하지 않는 것이 두 가지 있다고 한다. 정부의 무관심과 유족들의 슬픔과 고통이다. 지난 17년 동안 유가족 곁을 떠나지 못하고 진실 규명을 외치며 살아온 이유라고 한다. 이러한 현실을 미주 한인들에게도 알리고 이 여정을 함께 이어가기 위해 엘에이를 찾은 신성국 신부를 만났다.

오는 8월 1일(목) 오후 7시 엘에이 평화 서당에서 그동안의 이야기와 함께 이 사건에 얽힌 의혹과 진실을 나누는 시간을 가진다고 한다. 지난 7월 28일에는 평화의 교회 설교를 통해 지나온 여정을 나누기도 하였다. (관련영상)

신성국 신부 (뉴스M 자료)
신성국 신부 (뉴스M 자료)

 

이 사건의 본질, 진상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단순한 사건이다. 32년 전에 대한민국 국적기가 인도양 상공을 운항하던 중 의문의 사고를 당하여 실종된 것이다. 이러한 사건에 대해 정부는 유가족과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진상 조사와 진실을 규명하면 된다. 문제는 당시 정부의 진상 조사와 발표가 너무나도 많은 오류와 의혹을 품고 있고, 이에 대한 진상 규명의 요구는 철저하게 묵살되고 있다는 것이다.

당시 사고 조사 발표의 오류와 이후의 무책임한 행동들은 정부의 무능력이라기보다는 다분히 의도를 가지고 진행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사고 직후부터 다양하게 제기된 의혹과 사고 조사의 허술함은 정부와 (당시) 안기부의 일방적인 조사 발표와 언론의 보도에 덮여 묵살되어왔으며, 정확한 근거도 없이 북한 테러로 규정된 사건은 대중들의 감정만을 부추겼다.

이로 인해 당시 군부 정권을 청산하고 새로운 민주 사회로 이행할 수 있었던 대한민국은 ‘보통 사람’ 노태우를 대통령으로 당선시킴으로써 다시 한번 역사의 퇴보를 맛보게 된다. 그뿐만 아니라 전두환은 이러한 과정을 통하여 자신에게 향하던 심판의 칼날을 피하고 부조리한 권력을 유지하게 된다.

지난 3월 비밀 해제된 당시 외교부 문건과 안기부 ‘무지개 공작’에 관한 문건은 이러한 정황이 전두환 정부의 공작에 의해 진행되었다는 것을 증명해준다. 이들 문건은 이 사건을 대선에 적극적으로 활용할 것, 이를 위해 대선 전 김현희를 국내로 송환할 것, 사건을 북한 테러로 규정하고 대국민 홍보에 적극적으로 나설 것, 유족을 동원하여 대북 규탄 궐기 대회를 조직할 것, 폭파의 목적을 올림픽 방해를 위한 북한 공작으로 알릴 것 등 구체적인 공작의 목표를 명시하고 있다.

그리고 이 공작의 목표에 따라 마치 연극이라도 하듯, 김현희는 대선 투표 바로 전날 송환 비행기에서 내리고, 방송 매체들은 일제히 이를 생생하게 보도하였다. 조사를 받은 얼마 후 방송에 나타난 김현희는 무지개 공작의 목표에 명시된 대로 정확하게 ‘폭파의 목적이 올림픽을 방해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이야기하였다. 그뿐만 아니라 정부는 사고 조사가 제대로 이뤄지지도 않은 상황에서 사고의 원인이 북한의 공작에 의한 것이었다고 발표하였고, 국내 주요 언론사들은 이를 그대로 보도하였다.

이러한 정황과 당시의 상황을 종합해보면, 이 사고는 진실과는 상관없이 당시의 군사정권이 정권 재창출을 위해 철저하게 공작하고 이용하였던 대상이었다. 이로 인하여 진실은 왜곡되고 은폐되었으며, 유가족들의 슬픔과 고통은 오늘까지 이어지고 있다.

김현희 국내 압송 소식과 13대 대선을 나란히 보도하는 국내 언론 (뉴스타파 자료)
김현희 국내 압송 소식과 13대 대선을 나란히 보도하는 국내 언론 (뉴스타파 자료)

 

어떻게 이 사건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게 되었나?

처음에는 이 사건에 대한 관심이 있었지만, 직접적인 활동을 하지는 않았다. 이미 2001년부터 천주교 인권위와 정의구현사제단에서 이원적으로 이 사안을 다루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시 다양한 이슈와 과중한 업무로 인해 이들의 활동이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유족들이 갈수록 고립되어가고 이에 따라 그들의 고통과 슬픔이 더욱 커지는 것을 지켜보게 되었다.

그래서 2003년쯤에 유족회에 연락하여 만났다. 그때 직감적으로 느낀 것은 이분들이 너무 억울하다는 것과 이 사건에 의혹이 너무 많아 보인다는 것이었다. 결국 진상 규명을 위해 이 일에 뛰어들 결심을 했다.

 

그동안 진상 규명에 진척상황은 어떤 것이 있나?

처음 이 일에 뛰어들었을 때는 거의 백지상태와 같았다. 우선 자료를 확보하는 일에 힘을 쏟았다. 정부 및 안기부와 국정원 자료뿐만 아니라, 미국 국무부와 CIA 자료, 유엔 자료 등을 확보하였다. 이후 KAL 858기 진상규명 시민대책위(이하 대책위)의 헌신적인 노력을 통해 분석을 완료한 상황이다.

자료 분석 결과 당시의 정부 발표는 거짓임을 밝혀냈고, 더불어 김현희에 관련된 모든 기록도 허위라는 것을 확인하였다. 이를 바탕으로 지속적으로 정부를 향해 오류를 밝혀내고 진상을 규명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거듭된 진상 조사 요구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사고 조사 및 동체 인양에 대한 어떠한 협조나 시도도 하고 있지 않은 상황이다. 과거의 정권에 비해 각종 방해와 협박이 많이 줄어든 상황이긴 하지만, 현 정부도 미온적인 태도는 여전하다. 정부 관계자들이 진상 규명에 대한 판단 자체에 부담감을 느끼고 있는 거 같다. 이 사안이 다시 수면 위로 떠 오르는 상황에 대한 부담감도 함께 있는 것 같다.

어쩔 수 없이 민간 차원에서 항공기 동체 확보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 사건의 핵심 증거물이다. 민간 수색조사단을 조직하였고, 실질적인 수색을 위해 모금 활동도 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의 어떠한 협조도 없이 민간 차원에서 이 일을 하는 데 수많은 난관이 있다. 재정이나 기술적인 문제뿐만 아니라 현지 정부의 인허가와 협조 요청 등 예상 못 한 한계에 부딪힐 때가 너무 많다.

사건 당시 사고조사 외교부 문서, 사고 해역을 5012KM의 넓은 영역으로 지정, 사실상 의미없는 사고조사 내용 (뉴스M 자료)
사건 당시 사고조사 외교부 문서, 사고 해역을 5012KM의 넓은 영역으로 지정, 사실상 의미없는 사고조사 내용 (뉴스M 자료)

 

유가족들의 현재 상황은 어떤가?

유가족들이 많이 남아 있지 않다. 현재 30여 분 정도 된다. 희생자 중에는 미혼자나 초혼자들이 많이 있었다. 좀 더 나은 삶을 위해 이국땅에서 열심히 땀 흘리던 젊은 노동자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32년이 지난 지금 희생자의 부모님 중 세상을 떠나신 분들도 많고, 초혼의 배우자였던 분들은 재가하여 활동하지 못하는 분들도 꽤 있다.

하지만 이들이 겪는 트라우마와 실망감은 여전히 그대로 남아 있다. 사랑하던 이들의 죽음 그 자체만 해도 받아들이기 힘든 고통인데, 정부는 이들의 죽음에 대해 어떠한 진실도 밝히지 않고 억지 마무리를 지어버렸다. ‘북한이 저지른 일인데 어떤 설명이 더 필요하냐’는 것이다. 동체 인양 등 기본적인 조사와 노력도 하지 않은 채 믿으라는 이야기만 반복하고 있다. 심지어 유가족들의 진실을 향한 외침에 대해 ‘국익을 해친다’고 비난하며 침묵을 강요하기까지 한다. 이들에게 묻고 싶다. 당신들의 국익은 누구를 위한 것이냐고? 진실 앞에 국민을 억압하고 은폐와 왜곡만을 일삼는 나라는 어떤 나라냐고?

 

가톨릭 사제로서, 또 오랜 세월 이 짐을 함께 진 사람으로서 소감을 부탁한다.

처음에 유가족들을 향한 안타까운 마음으로 나도 진상 규명에 동참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약속이란 것에는 책임을 진다는 뜻이 담겨 있다. 그 책임을 지기 위해 17년이란 세월 동안 함께해왔다. 그 약속이 이렇게 버겁고 무겁고 또 힘들 줄은 생각하지 못했다. 되돌아보면 말 못 할 고통도 많았지만 어려운 순간마다 수많은 분의 도움과 격려를 디딤돌 삼아 이곳까지 왔다.

그 약속이 지켜지기를 바란다. 이 사건은 무엇보다도 생명의 문제이다. 무고한 국민들이 이유도 모른 채 희생을 당하였는데 그 진실은 아직 어둠 속에 갇혀 있다. 더욱 어처구니없는 것은 이 억울한 죽음이 분단과 이념의 이데올로기에 이용당하고 억압당하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것은 생명과 인권의 문제를 넘어서 분단 현실에 대한 문제이기도 하며, 나아가 진실과 정의에 대한 문제이다. 한 사람의 사제로서도 이 문제를 절대로 좌시할 수 없는 일이다. 반드시 진실이 밝혀져 정의가 바로 서고 유가족들의 아픔이 치유되는 날이 오기를 고대한다.

 

목요일 강연회에서는 어떤 이야기를 할 예정인가?

현재까지 밝혀낸 KAL기 폭파 사건의 진상과 정부 조사의 의혹과 오류 등 이 사안과 관련된 다양한 이야기를 나눌 계획이다. 진실을 재조명할 기회가 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기회를 통해 유가족과 진상조사단의 진실을 향한 노력에 힘을 얻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신성국 신부 강연회 포스터 (평화서당)
신성국 신부 강연회 포스터 (평화서당)

 

미주 교포들에게 나누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2019년과 2020년은 한반도 분단 상황의 갈림길이 될 것이다. 분단 체제의 해체가 올 수도 있고 반대로 위기와 파국으로 갈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KAL기 사건 동체 수색의 성공 여부는 한반도 분단 해체에 결정적인 역할을 할 수도 있다. 시기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문제라는 것이다.

많은 관심과 도움이 필요하다. 이 사건의 진실이 밝혀질 수 있도록 많은 도움과 응원을 부탁한다.

(후원처: KAL858기 수색 조사단 후원회. 신성국 (예금주) 신한은행 110-286-344046)

 

강연회:

- 2019년 8월 1일 (목) 오후 7시 평화의 교회 (1640 Cordova st, Los Angeles, CA, 90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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