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으로 보는 두 무덤 이야기
믿음으로 보는 두 무덤 이야기
  • 이재근
  • 승인 2019.08.08 14: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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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근 목사 영상 칼럼

비석마을…, 부산에 있는 아미동의 또 다른 이름입니다. 이곳은 본디 1909년 이래 부산에 거주하는 일본 사람들의 공동묘지였는데요. 한국전쟁이 일어나고 400만 피난민들이 부산에 몰리면서 일부 피난민들의 살아갈 거처로 탈바꿈하게 됩니다. 그 모양이 평평하고 반듯한 일본인들의 묘지, 집을 세우기에 수월했던 이 비석마을에 우리의 선조들은 살 곳을 마련하며, 누군가 죽어 누운 곳에 누군가는 살기 위해 누울 곳을 만들게 됩니다. 아미동 비석마을은 그렇게 역사란 누군가의 죽음 위에 세워지며, 어떻게 살 것인가는 곧 어떻게 죽을 것인가와 연결되어 짐을 생생히 말해주고 있습니다.    

뜻하지 않은 일본의 경제 침략에 당혹스러운 요즘입니다. 경제적 손해를 감내하더라도 이번만은 굴할 수 없다, 100년 전 조선과 오늘의 한국이 얼마나 다른지 보여주는 우리의 오늘이 자랑스럽기도 하지만, 아베 신조를 비롯한 일본 내 지도층의 미개한 역사 인식, 차마 문명국이라 말하기 부끄러운 그들의 모습 속에서 최근 소개된, 오래 전 무덤 이야기를 떠올리게 됩니다.

감신대에서 은퇴하신 박충구 교수님은 “정직할 수 없는 일본인”이란 칼럼을 통해 세계에 전례 없는 무덤을 소개합니다. 바로 교토 히가시야마구에 있는 코 무덤인데요. 16, 7세기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당시 우리나라를 침범했던 일본군은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명을 따라 학살한 조선인들의 코를 베어냅니다. 그렇게 모은 코가 무려 18만6천여 개에 달했고, 이를 자랑 삼아 일본으로 가져가기 위해 소금에 절이기까지 했다는데요. 그 오래된 코 무덤 이야기는 2차대전을 일으킨 당사자이면서 마치 평화를 사랑하는 양, 원폭의 피해자인 양하는 일본의 그 어둡고 습한 이면을 드러내며, 지금은 한국에 대한 경제침략으로 건재함을 과시하고 있습니다.  

한편, 우리에겐 일본의 코 무덤과 대비되는 곳이 있습니다. 마포구 합정동 144번지…, 양화진 외국인 선교사 묘원입니다. 고종황제 이후 100년간 조성된 이곳에 대한 매일신보를 창간한 어니스트 베델, 연세대학 설립자 호레이스 언더우드, 이화여대 설립에 공헌한 헨리 아펜젤러 등 구한말 한국 땅에 자신의 몸과 마음을 드린 외국인 인사 500여 명이 묻혀있는데요. 오래 전 누군가의 주검이 놓인 땅이지만, 땅에 심기운 한 알의 밀이 어떻게 생명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는지, 그 증거의 땅이 됩니다.

그래서일까요? 양화진의 관리 책임을 맡은 100주년기념교회에서 작년 말 퇴직한 이재철 목사님은 마지막 설교를 통해 그 교회의 사명을 재차 확인하는데요. 그것은 ‘묘지기와 길닦이’입니다.

묘지기와 길닦이… 사실 이 사명은 한 교회의 것만이 아닙니다. 우리는 모두 믿음을 지키다 앞서간 이들의 죽음을 기억하는 묘지기이며, 동시에 그들이 추구한 영원의 가치를 살아내려는 하나님나라의 길닦이겠지요.

코 무덤, 그리고 양화진… 이 죽음의 땅들은 공통으로 우리에게 말합니다. 앞서간 이들의 삶의 끝이 승리와 영광이든, 실패와 고난이든, 슬픔과 치욕이든, 오늘의 나와 직접 상관이 있든 없든, 역사란 앞서 땅에 누운 사람들의 이야기로부터 배우며 살아간다는 것을요. 하지만, 오늘의 우리가 선택하고 또다시 만들어가야 할 스토리의 시작은 코 무덤이 아닌 양화진에 있음을 기억해야겠습니다. 특히나 그리스도인의 공동체라면 더더욱 말이죠.

최근 남가주 수정교회가 가톨릭 성당으로 변모한 것이 화제가 되었습니다. 그 이름처럼 크리스털로 반짝이던 건물은 그 짧은 쇠락의 역사를 벗어나 천오백억이 넘는 새로운 투자와 함께 그 위용을 다시 뽐내게 되었고요. 이에 뒤질세라 서울에는 3천억으로 치장한  예배당이 여전히 세간의 관심을 끌고 있습니다.

수백억 비자금과 세습 문제로 시끄러운 세계 최대 장로교회와 그 속한 교단은 아직도 가야 할 바를 알지 못해 헤매고 있고요. 교회와 성직을 사고팔고, 교회 건물의 크기가 마치 믿음의 분량인 듯 여기는 것이 일상이 되는 요즘…

우린 과연 코 무덤과 양화진, 그 두 무덤 길 사이 어디에 머무는 것일까요? 신앙의 겉치레에 이 회칠한 무덤 같으니라는 예수님의 벼락 같은 책망을 기억한다면, 과연 우리는 두 무덤길 가운데서 어디를 선택해야 할까요? 고난과 박해의 시기를 살아간 1세기 그리스도인들의 승리는 과연 하늘 높이 우뚝 선 첨탑 끝자락에 놓였을까요? 아니면, 땅속 깊은 카타콤, 그 침묵의 어둠 속에 자리하는 것일까요? 코무덤과 양화진, 두 무덤 이야기와 함께 한 오늘의 오픈 마인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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