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일교회의 야성(野性)을 기대한다
삼일교회의 야성(野性)을 기대한다
  • 김종희
  • 승인 2010.12.22 19: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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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M 아카이브>는 나누고 싶은 과거 기사 ‘다시보기’ 코너입니다.

진실의 힘으로 공동체적 자정 능력 발휘해야

저는 지금 뉴질랜드에 있습니다. 약 10시간 후에는 비행기를 타고 솔로몬 군도로 들어갑니다. 오지 깊숙이 들어가므로 내년 1월초까지는 연락이 완전히 두절됩니다. 일주일 전에 이미 전병욱 목사 성추행 사건에 대한 글 하나를 써 놓았습니다. 당회와 노회의 움직임을 지켜보면서 어떤 결론이 나올지 기다렸습니다. 연락이 단절되기 전에 최종 상황을 알고 그에 맞게 글을 써야 하기 때문에 조바심이 났습니다. 참 묘한 기분입니다. 선교지로 들어가기 직전인데, 한국의 추잡한 사건의 결과를 기다리느라 조바심을 내다니. 언론의 숙명일 것입니다. 

제가 써 놓은 글의 결론은 '올해를 넘기지 말고 전병욱 목사와 당회가 결자해지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고 새해를 맞이한다면 전 목사와 삼일교회뿐 아니라 한국교회의 내년도 변함없이 암울할 것이고 불행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몇 시간 전 한국으로부터 연락이 왔습니다. 삼일교회 당회가 전병욱 목사의 사표를 수리하기로 했답니다. 전 목사 성추행 사건은 올해 안에 1차 매듭이 지어지나 봅니다. 당연한 결론인데, 제법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래서 저도 글을 새로 씁니다. 

당회의 결정은 크게 보면 다행스러운 결과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아쉬운 점이 없지 않습니다. 시점을 생각할 때 더욱 그러합니다. 왜 여태 질질 끌었나 하는 것입니다. 전병욱 목사의 성추행 사건을 당회가 이제야 확인했다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당회는 전 목사 없는 삼일교회는 상상도 할 수 없다는 현실 논리로 진실과 정의를 외면해 왔습니다. 그러다가 무엇인가에 밀려 부득이 사표 수리로 매듭지은 것으로 보입니다. 당회가 사표를 수리하기로 뒤늦게 결정한 시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전병욱 목사의 성추행 수위는 일반인들이 상상할 수 있는 성범죄의 정도를 한참 넘어선 것이었습니다. 우리의 상상을 훌쩍 뛰어넘었습니다. 안마나 마사지 정도는 애교로 봐줄 수 있을 정도였습니다. 전 목사는 11월 1일 올린 사과문에서 지난 가을 무렵 단 한 차례 죄를 범한 것처럼 썼습니다. 그러나 올해 여름에도 집무실에서 다른 여성도를 상대로 음란한 짓을 했습니다. 11월 사과문은 하나님 앞에 범한 죄를 회개한 것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들통 난 죄만 시인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교회 내 일부 청년들이 사건 내용을 알게 되었습니다. 작년 가을 일어난 성추행 사건 내막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상처를 안은 채 누구에게 말도 못 하고 끙끙 앓던 피해자들의 사례가 하나둘 수면 위로 떠올랐습니다. 진실을 알고자 하는 이들은 대책 모임을 꾸렸습니다. 이들의 움직임을 삼일교회 부목사, 간사 들은 알았습니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고 해서 가려질 상황을 넘어선 것입니다. 아주 최근의 일입니다. 아무리 희미하고 보잘것없어 보이더라도 진실의 빛은 견고한 거짓의 어둠을 뚫고 나올 수 있는 힘을 지니고 있는 법입니다. 

<뉴스앤조이>도 다른 성범죄 사실을 약 2개월 전 확인했습니다. 하지만 가능하면 가해자의 반론도 들어야 하고, 추가 피해 사례의 증거를 확보할 필요가 있어서 기다렸습니다. 무엇보다 삼일교회 안에서 자정 움직임이 일어나기를 바랐습니다. 공동체의 문제는 공동체 내부의 힘으로 자정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기 때문입니다. 바깥에서 아무리 떠들어 대도 내부에서 각성하지 않으면 바람직한 결과가 나오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전 목사의 절대적인 영향력 아래 있는 청년들에게 과연 자정 능력이 있을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그러한 염려와 달리 삼일교회 안에서 청년들 중심으로 진실을 규명하려는 모임이 생긴 것입니다. 

아마 장로들도 더 이상 막을 길이 없다고 판단했을 것입니다. 지금이라도 과거와 단절하지 않으면 어떤 피해 사례가 또 터져 나올지 알 수 없다고 보았을 것입니다. 이번 사건을 진실과 정의의 편에서 신속하고 올바르게 다루지 않고 때를 놓친 것은 안타깝지만, 반면 교회 안에 건강한 의식을 가진 청년들이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으니 감사한 일입니다. 일부 부목사들과 간사들이 가해자의 편에 서서 애먼 교인들에게 상처 주었던 행위를 당장 멈추고 사과해야 합니다. 그들이 교인들에게 저지른 행위는 다른 기회에 밝히겠습니다. 

지금부터라도 삼일교회가 공동체적 자정 능력을 발휘해 나가길 바랍니다. 전 목사가 그토록 부르짖던 야성(野性)을 타인에게 발휘할 것이 아니라 자신의 폐부를 향하기 바랍니다. 삼일교회 청년들을 통해서 한국교회의 희망을 볼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삼일교회가 희망의 저수지 교회로 거듭나기를 기도합니다. 자정 노력 과정에서 혹여 내부 이기주의 논리에 빠져들지 않도록 주의하십시오. 여러분을 도울 바깥 친구들에게 도움을 청하십시오. 지금까지 인내하며 지켜보아 온 친구들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새해에는 그들과 함께 손잡고 한국교회에 희망을 만들어 가면 좋겠습니다. 

김종희 / 한국 <뉴스앤조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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