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분석으로 본 반일 감정
정신분석으로 본 반일 감정
  • 지성수 목사
  • 승인 2019.08.25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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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이트가 정신분석이라는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면서 인간의 행동의 밑바탕에는 성적 배경이 있다는 해석을 내놓았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뭔 소리여?”라고 생각했었다.

19세기는 인간의 성 문제가 밖으로 드러나는 것이 철저히 감추어져 있던 시대이었다. 이러한 시기에 프로이트가 정신과 의사로서 여성들의 히스테리를 치료하면서 인간의 행동에 성적 억압의 요소를 발견한 것은 당시로서는 최신 이론이었고 가히 충격적이었던 것이다.

해마다 8월이면 우리 민족이 강하든 약하든 식민지 노이로제를 겪는 것은 식민 경험을 가지고 있는 우리로서는 당연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금년에는 밖으로는 아베와 안으로는 나베 때문에 우리가 겪어왔던 노이로제가 히스테리성으로 발전되었다.

물론 정신건강상 이런 증세는 좋은 일이 아니다. 그러나 반일 감정을 부정하거나 회피하려는 것은 위선이 아니면 허위의식에 빠져 있는 것이다. 아니면 이해관계가 걸려 있든지.

불행한 일이지만 우리가 앓는 식민 경험의 트라우마에서 오는 일본 노이로제는 지극히 정상적인 증세이고 이 증세를 치료하는 방법은 쉽지 않다. 고양이 앞에 있는 쥐는 살기에 급급한 법이다. 만일에 고양이에게 한 번 잡혀서 죽을 뻔하다가 겨우 살아났던 쥐가 또 다시 위기를 맞이해서 “어떻게 하면 고양이 마음을 돌릴 수 있을까?”를 생각한다면 그 쥐는 분명히 이미 쥐약을 먹은 쥐일 것이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요즘에 이와 같은 신경증의 증세가 없어 보이는 사람이 오히려 이상하게 보인다. 도대체 어떻게 아베의 몸을 입고 나타난 ‘일본 군국주의 귀신’의 현신을 보고 두려움을 느끼지 않을 수 있는지 그들의 무신경에 놀라지 않을 수가 없다.

융에 의하면 인간의 마음 속에는 개인적 무의식뿐만 아니라 집단적 무의식 작용이 있다. 즉 우리의 원형은 집단적 무의식이라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마치 처녀가 강간을 당한 것 같은 식민 경험의 상처가 무의식 속에 남아 있지 않다고 하면 정신적으로 정상적인 한국 사람이라고 보기 어렵지 않은가? 물론 그것은 불행하지만 아직은 가끔 가다가 이기는 축구 외에는 일본에 대하여 여러모로 약한 한국인의 콤플렉스일 수 있다.

몇 가지로 이유와 명분은 내세울 수 있겠으나 일본에 대한 ‘식민 콤플렉스’를 전혀 느끼지 않는 것처럼 말하거나 행동하는 사람들을 이해하기 정말 어렵다.

아마도 그들은 이미 정신적으로 ‘內鮮一體(일본 군국주의자들이 강행하던, 조선과 일본이 하나라는 정책)’를 완전히 이룬 상태가 아닌가 싶은 것이다.

정신분석학에서 분석적 정신 치료의 목적은 환자의 무의식 속에 숨어 있는 고통의 진정한 의미를 환자에게 깨닫게 해주는 데 있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아베는 우리 민족이 현대사에서 왜 고통을 당하고 있는지를 깨닫게 해주는 반면교사일 수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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