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폐 아동의 놀이터가 된 설교 단상
자폐 아동의 놀이터가 된 설교 단상
  • Michael Oh
  • 승인 2019.09.03 03: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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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M=마이클 오 기자] 설교 중에 아이가 단상에 뛰어들어 소동을 일으킨다면? 이런 행동을 가만히 놔둘 목사가 있을까?

최근 가톨릭교회 프란시스 교황은 이런 일을 직접 경험했다. 그는 이 소동을 통해 아이를 향한 따뜻한 사랑과 함께 종교 지도자의 권위가 과연 무엇인지 정확하게 보여주었다.

(로이터 영상 갈무리)
(로이터 영상 갈무리)

단상에 뛰어든 소녀

8월 21일 자 [뉴욕포스트]는 프란시스 교황이 바티칸 성베드로 성당에서 전한 강론 중에 일어난 일을 소개하였다. 엄숙하게 진행되던 강론 가운데 자폐증을 앓는 소녀가 단상에 올라와 손뼉을 치며 뛰어다녔다. 이 천진난만한 소녀는 심지어 강론을 하는 교황 앞을 가로막고 신기한 듯 계속 쳐다보기도 했다.

교황은 보안 요원에게 이 소녀를 제지하지 말 것을 당부한 뒤에 끝까지 강론을 진행하였다. 또한 교황은 강론 마지막에 이 소녀에 대한 자기 생각을 전하였다.

“우리는 모두 이 아름다운 소녀를 보았습니다... 이 소녀는 질병을 앓고 있으며, 자신이 무엇을 하는지 알지 못합니다. 나는 모두에게 한 가지 묻고 싶습니다. 마음속으로 대답해주시기 바랍니다. ‘이 소녀를 보았을 때 나는 하나님께 기도했는가? 나는 주님께서 이 소녀를 치유하고 보호해주시라고 기도하였는가?’ 우리는 누군가 고통을 당하고 있는 이를 볼 때 기도해야 합니다. 이런 상황을 맞이할 때 우리는 이런 질문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나는 분명 고통을 당하고 있는 이를 볼 때 이 사람을 위해 기도하였는가?’”

시선과 권위

교황이 기도를 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이 상황’은 어찌 보면 무척 불편할 수 있는 상황이다. 지도자의 권위와 위계가 철저한 가톨릭교회에서, 교황이 강론하는 시간과 무대가 방해받은 상황이기 때문이다. 교황 개인적으로도 자신의 권위가 도전받은 사건으로 여길 수도 있었을 것이다. 따라서 교황이 언급한 이 상황은 분명 그의 눈동자를 흔들어 놓을 만큼 불편한 것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 상황’을 바라보는 프란시스 교황의 시선은 전혀 불편함을 느낄 수 없었다. 교황의 시선은 자신과 교회의 권위가 아닌 ‘고통’당하는 소녀를 향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권력을 떠받치는 권위 따위에는 전혀 방해받지 않는 투명한 시선이었다.

자신의 권위를 신경 쓰지 않는 프란시스 교황의 시선은 오히려 그의 권위를 높이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 장면을 지켜본 청중은 환호와 박수를 보냈고, 이를 담은 유튜브 영상과 기사의 댓글에도 교황을 향한 찬사가 줄을 이었다.

교황과 아이

프란시스 교황이 어린 아이와 함께 보여준 탈권위적인 모습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2018년 11월 28일에도 6세 지체 장애 아동이 교황의 강론 중 단상에 뛰어들었다. 당황한 부모가 아이를 데려가려고 하자, 교황은 그냥 놔두라고 당부한 뒤 이 아이를 칭찬하였다.

“이 아이는 말할 수 없지만, 오히려 우리에게 이야기합니다…. 제 맘대로긴 하지만 (청중 폭소), 이 아이는 자유롭습니다…. 우리도 이 아이처럼 하나님 앞에서 자유로운지 물어봐야 합니다... 이 아이는 (이렇게) 우리에게 설교한 것입니다.”

프란시스 교황의 이런 행보는 무엇보다도 지도자의 참된 권위란 무엇인지 가르쳐주고 있다. 그것은 타자 위에 군림하고 권력을 행사하기 위한 힘이 아니다. 프란시스 교황의 권위는 자신을 낮추고 포기함으로써 타자를 드러내고 살리는 힘이며, 이로 인해 생기는 사람들의 자발적인 존경과 순종의 다른 이름이다.

권위, 그 낮아짐의 역설

프란시스 교황이 보여주는 낮아짐의 권위는 지난 4월 11일 수단 지도자와의 만남에서도 극명하게 드러났다. 2013년 약 40만 명의 사망자를 만든 수단 내전의 장본인 살바 키르(Salva Kiir)와 리엨 마칼(Riek Machar)이 프란시스 교황을 방문했다. 82세의 교황은 이 자리에서 불편한 몸을 엎드려 두 지도자의 발에 입을 맞추었다. 이들이 어렵게 맺은 평화 협정을 잘 지켜 수단에 평화가 깃들게 해달라는 당부를 위한 것이었다.

자신의 위치와 권위를 신경 쓰지 않고 더욱 낮아지는 프란시스 교황의 행보를 지켜본 이들의 반응은 놀라움과 존경으로 나타났다.

[워싱턴 포스트]는 이 장면을 가리켜 “충격적”이라고 표현하면서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힘을 가진 종교 지도자가 38만 3천 명의 사상자를 낸 전쟁의 장본인 앞에 무릎을 꿇었다.” 이를 지켜본 페이튼 크노프(Payton Knopf) 전 유엔 수단 담당관도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놀라운 순간이었다”고 전했다.

[바티칸뉴스]도 이 장면을 설명하면서 “예수님께서 수난당하기 전, 그의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며 보여준 사랑과 희생의 길”을 떠올리게 했다고 평하였다.

(바티칸 뉴스)
(바티칸 뉴스)

한국 및 한인 교회의 지도자들

프란시스 교황의 행보를 보고 있으면 한국 및 한인 교회 목회자가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그 모습이 닮아서가 아니라, 너무나도 극명한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많은 이들이 자신의 권위를 높이기 위해 단상에서 갖은 협박과 막말을 쏟아낸다.

빤스 목사로 명성을 얻고 있는 전광훈 목사가 전형적인 예다. 다음은 전광훈 목사 발언의 일부다.

“목사 앞에 평신도가 자기 뜻, 신학 이론, 생각을 가지고 나오는 것은 사형장에서 이슬로 사라질 일이다. 그런데 한국교회의 90%가 이런 길로 나가고 있다.”

 

“우리 교회 성도들은 목사인 나를 위해 죽으려는 자가 70% 이상이다. 내가 손가락 1개 펴고 5개라 하면 다 5개라 한다. 자기 견해 없이 목사를 위해 열려 있는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 목사는 교인들에게 '교주'가 되어야 한다.”

 

“이 성도가 내 성도 됐는지 알아보려면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옛날에 쓰던 방법 중 하나는 젊은 여집사에게 빤스(팬티) 내려라, 한번 자고 싶다 해보고 그대로 하면 내 성도요, 거절하면 똥이다. 또 하나는 인감증명을 끊어 오라고 해서 아무 말 없이 가져오면 내 성도요, 어디 쓰려는지 물어보면 아니다.”

한국 및 한인 교회의 평균적인 목회자의 모습은 분명히 아닐 것이다. 하지만 목회자의 절대적인 권위는 신성불가침의 영역이며, 이러한 권위에 대한 도전은 불신앙의 증거라는 도식은 흔한 것이다. 얼마 전 엘에이 지역 한 한인 교회에서는 당회가 담임 목사의 목회 평가를 요구하자, 대신 목사의 사표를 전해 받았다고 한다. 목회자에 대한 평가를 권위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였다는 것이다.

한국 및 미주 한인 교회의 리더는 프란시스 교황이 보여준 권위를 기억할 필요가 있다. 사도의 권위를 믿는 전통 위에 서 있는 가톨릭교회의 교황은 오히려 자신에게 수여된 권위를 스스로 지키거나 강요하려 하지 않았다. 반대로 자신의 권위를 끊임없이 지우고 낮춰가는 모습을 통해, 억눌린 타자를 드러내고, 그 가운데 동행하시는 참된 권위의 주인을 가리켰다.

관련자료:
https://nypost.com/2019/08/21/pope-lets-sick-girl-clap-dance-on-stage-during-speech/

https://www.vaticannews.va/en/pope/news/2019-04/pope-francis-kisses-feet-leader-south-sudan-retreat-vatican.html

https://www.foxnews.com/world/pope-praises-unruly-deaf-child-after-he-climbed-on-stage-to-play-this-child-preaches-to-all-of-us

https://www.washingtonpost.com/world/2019/04/12/bid-peace-pope-francis-hosts-south-sudans-warring-leaders-spiritual-summit-kisses-their-feet/

http://www.logosian.com/breakingnews/1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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