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언부언 기도하지 말라고?
중언부언 기도하지 말라고?
  • 강태우 기자
  • 승인 2019.09.09 19:14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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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M=강태우 기자] 김동일 목사(생명찬교회)는 지난 8월 14일 ‘636회 사랑의교회 주일 마당 기도회’에서 마태복음 6장 5-8절을 본문으로 ‘골방 기도와 중언부언(重言復言) 기도’라는 제목으로 설교했다.

사랑의교회 주일마당기도회 김동일 목사(생명찬교회)

한국교회에서 성도들에게 잘못된 기도를 설명하기 위해 자주 인용하는 본문이다. 대체로 “기도는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조용히 하라. 기도할 때 중언부언하지 말라”고 해석한다. 그런데 김 목사는 “이러한 해석과 적용은 잘못되었다”라고 지적하며 설교를 시작했다.

“5절 또 너희는 기도할 때에 외식하는 자와 같이 하지 말라 그들은 사람에게 보이려고 회당과 큰 거리 어귀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들은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6절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7절 또 기도할 때에 이방인과 같이 중언부언하지 말라 그들은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실 줄 생각하느니라 8절 그러므로 그들을 본받지 말라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하나님 너희 아버지께서 아시느니라(마 6:5-8).”

김 목사는 “본문은 5-6절과 7-8절, 둘로 나누어 생각해야 한다. 보통 기도를 하지 않는 분들일수록 오늘 본문을 강력한 무기로 사용한다. 기도하러 교회에 가는 사람에게 ‘기도는 골방에 가서 은밀하게 해야지. 왜 꼭 교회를 가서 해야 하냐?’라고 한다. 그러나 이것은 잘못된 적용이다. 결국 이런 잘못된 해석과 적용은 사람들로 하여금 기도를 하지 않게 하여 기도 생활을 방해한다. 5-6절의 적용에는 전제가 있다. 예수님께서 유대인, 특별히 바리새인들의 잘못된 기도에 대한 태도를 지적하기 위해 하신 말씀이다. 그런 전제 없이 아무렇게나 보편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구절이 아니다”라고 했다.

김 목사는 “예수께서 바리새인들의 외식하는 기도를 꾸짖는 누가복음 18장 9-14절이 마태복음 6장 5-6절과 관련 있다.”라고 했다. ”12절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하고 13절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이르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눅 18:12-13).“ 바리새인들의 이 기도에는 그 마음속에 ‘내가 이만큼 기도하는 사람이야. 내가 율법을 지키는 사람이야. 내가 이만큼 금식하는 사람이야. 내가 이렇게 멋있는 사람이야’라는 자기 의가 있다. “그러므로 마태복음 6장 5-6절은 자신을 드러내며 기도하는 자들에게 그렇게 자랑하며 기도하지 말고 차라리 골방에 가서 기도하라는 말이다. 아무 상황에나 이 말씀을 적용하면 안 된다. 바리새인처럼 이런 자기 의와 교만한 맘이 아닌, 참되고 순전한 맘, 갈급한 맘으로 하나님께 기도하러 기도원에 가고, 철야 기도, 새벽 기도에 가는 성도에게 골방에서 기도하라고 말하는 것은 잘못이다. 5-6절은 유대인들의 잘못된 기도, 혹은 기도 생활을 자랑하는 사람들에게만 적용할 수 있는 본문이다.”라고 했다.

이어서 김 목사는 “그런데 7-8절이 더 심각한 문제다. 중언부언이 무엇인가? 말을 많이 하는 것이다. 우리는 보통 기도하다 보면 자연스레 반복되는 말을 하게 된다. 그때마다 중언부언하지 말라는 성경 말씀이 떠올라 부담을 느낀다. 그런데 성경을 자세히 보면 ‘중언부언하지 말라’ 앞에 ‘이방인처럼’이란 단어가 있다. 결국 중언부언이란 말에 강조점이 있는 것이 아니라 이방인처럼 이란 말이 강조된다. 그냥 중언부언이 아니라 이방인처럼 중언부언하지 말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이방인의 중언부언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성경에 이방인의 중언부언을 잘 드러내는 기도가 있다. 바로 열왕기상 18장에 엘리야 선지자와 850명의 바알 선지자들의 대결이다.”

“26절 그들이 받은 송아지를 가져다가 잡고 아침부터 낮까지 바알의 이름을 불러 이르되 바알이여 우리에게 응답하소서 하나 아무 소리도 없고 아무 응답하는 자도 없으므로 그들이 그 쌓은 제단 주위에서 뛰놀더라 27절 정오에 이르러는 엘리야가 그들을 조롱하여 이르되 큰 소리로 부르라 그는 신인즉 묵상하고 있는지 혹은 그가 잠깐 나갔는지 혹은 그가 길을 행하는지 혹은 그가 잠이 들어서 깨워야 할 것인지 하매 28절 이에 그들이 큰 소리로 부르고 그들의 규례를 따라 피가 흐르기까지 칼과 창으로 그들의 몸을 상하게 하더라(왕상 18:26-28).”

“바알 선지자들의 기도 모습이 26절에 나온다. 그들은 몇 시간을 불을 내려 달라고 기도한다. 그리고 28절에서 그들은 규례를 따라 피가 흐르기까지 기도한다. 여기서 규례란 매뉴얼을 의미한다. 즉, 이방인들의 기도에는 매뉴얼이 있다. 이방 종교, 이방 기도의 특징은 두 가지이다. 이 땅에서 얼마나 잘 살 것인가? 그리고 이 땅에서 자녀들이 많아지고 잘 되는 것이 목적이다. 이방 종교, 이방 기도는 바로 그 두 가지를 구한다. 한국교회가 샤머니즘에 사로잡혔다. 한국교회 많은 성도들의 교회 다니는 목적이 이 땅에서 잘되고 자녀들이 잘 되는 것을 기도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샤머니즘과 다를 게 없다.”

김 목사는 이방 종교의 중언부언 기도를 설명했다. “하등 종교인 이방 종교는 샤머니즘으로 자신들의 신들과의 기도는 기본적으로 주고받는 것이다. 그래서 기도의 첫 단계는 간청이다. 그런데 간청이 응답이 없으면 다음 단계는 신을 협박한다. 이것이 이방인의 중언부언 기도의 특징이다. 우선 신들에게 제물을 바치며 간청하고, 안되면 신을 협박하는 기도를 매뉴얼에 따라 한다. 바알 선지자들이 26절에서 간청의 단계로 끊임없이 반복적으로 중얼거리는 기도를 하고 28절에서는 다음 단계로 자해를 한다. 이런 이방 종교에는 자신들의 신과 인격적인 관계가 없다. 이렇게 인격적인 관계 없이 천 번, 만 번 반복하는 기도가 바로 이방인의 중언부언하는 기도다.”

“이에 비해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우리의 아빠로 우리의 필요를 아는 분이다. 아빠 되신 하나님과 자녀 된 우리 사이에는 인격적인 관계가 있다. 그러므로 우리의 기도는 하나님과 인격적인 관계 안에서 한다. ‘부도나면 당신도 끝이야!’라는 기도에는 인격적인 관계가 없다. 인격적인 관계 속에서 아빠 되신 그분께 우리의 필요를 반복해서 구하는 것은 중언부언이 아니다. 우리가 우리의 아빠 되신 하나님께 한 번만 기도하고 마치는 것이 아니라 천 번이고 만 번이고 반복해서 기도하는 것은 당연하다.”

김 목사는 “오늘날 한국교회는 성경의 잘못된 해석으로 오히려 기도를 막는 경우가 많다. 기도에 관한 성경의 올바른 해석으로 더욱 바르고 열심히 기도해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끝없이 반복적으로 기도하라고 하셨다. ‘골방에서 기도하라!’ 잘못된 해석이다. 자기 의를 드러내는 유대인에게 하신 말씀이다. ‘중언부언하지 마라!’ 잘못된 해석이다. 이방인처럼 중언부언하지 말라는 뜻이다”라고 설교했다.

설교자 김동일 목사를 만나 이번 사랑의교회 마당기도회 기도 세미나에 관해 이야기를 들었다.

- 이번에 8월 초부터 한 달 동안 7번 ‘기도’라는 주제로 설교를 했다. 기도라는 단일 주제로 하게 된 특별한 이유가 있나?

“안타깝게도 한국교회에 기도가 죽어가고 있다. 원인은 한국교회 자체에 있다. 과거에는 구하는 기도, 간청하는 기도가 전부인 줄 알았다. 그런데 이것에 대해 문제를 인식하며 반작용과 반성이 일어났다. 그 후 묵상기도(默想祈禱), 관상기도(觀想祈禱) 등이 대두(擡頭)되었지만, 결과적으로 한국의 뜨겁고 열정적인 기도가 사라졌다. 마치 ”목욕물을 버리다 그 안에 아기까지 버리는 우를 범한 형국“이다. 전통적인 한국교회의 뜨거운 기도의 불씨를 살리고 잘못된 기도의 질곡(桎梏)에서 벗어나길 바라는 마음으로 기도 세미나를 준비했다.”

- 이번에 기도 세미나에서 설교한 7가지 주제가 궁금하다.

“기도 1 : ‘주기도문-모든 기도의 근본(눅 11:1-4)’, 기도 2 : ‘골방 기도와 중언부언 기도(마 6:5-8)’, 기도 3 : ‘고아처럼 버려두지 않으리라(요 14:1-20)’, 기도 4 : ‘나의 목소리로 기도하라(시 3:1-8)’, 기도 5 : ‘통성 기도는 지금도 필요한가?(히 5:7-8)’, 기도 6 : ‘균형 잡힌 기도란?(마 6:33)’, 기도 7 :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라(시 34:1-11)’이다.”

- 기도 세미나에 대한 성도들의 반응이 궁금하다.

“한국교회의 기도 회복의 가능성을 보았다. 많은 성도들이 여전히 기도에 대해 갈급해하고 있다. 이번 기도 세미나에는 평소 수요 기도회보다 3배 이상의 성도들이 참여하였다고 들었다. 한국교회의 성경에 나오는 기도에 대해 잘못 해석된 오해를 알려 준 것이 큰 의미이다. 성경적인 기도의 올바른 이해를 통해 바르게 기도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성도들이 다시 겸손히 기도의 자리로 나가는 계기와 동기부여가 되었기를 바란다.”

- 평생 미국에서 목회하다가 한국에 몇 년 전에 오셨다. 앞으로 특별한 계획이 있는지 궁금하다.

“벌써 한국에 온 지 2년 되었다. 한국교회는 성숙에 기로에 서 있다. 한국 개신교의 130여 년의 역사는 세계 기독교 역사에서 너무 짧다. 한국교회가 앞으로 어느 길로 갈 것인가? 한국교회가 건강한 길을 찾지 않으면 희망이 없다. 다행히 미국에서 걱정했던 것보다 귀국하여 많은 좋은 목회자들을 만났고 희망을 찾았다. 특별히 젊은 목회자들에 대한 기대가 크다. 앞으로 한국교회가 건강하고 바른 방향으로 나가도록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며 공적인 삶을 살고 싶다.”

[관련 자료]

636회 사랑의교회 주일마당기도회 설교영상

https://youtu.be/G5cg7IHY-K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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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직 2019-09-09 21:22:43
잘 읽었습니다
골방기도와 중언부언기도는 이방인처럼이라는 단서가 붙었고 우린 우리아버지하나님께 반복기도해도된다는 것.

정말 그 성구가 오히려 기도문을 막기도했었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