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희송 청어람ARMC 대표의 슬픈 소식
양희송 청어람ARMC 대표의 슬픈 소식
  • 최태선 목사
  • 승인 2019.09.10 23:06
  • 댓글 1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청어람ARMC 이사회는 9일 인터넷 홈페이지 게시판을 통해 양희송 대표의 면직, 이사직 해촉을 알려왔다. 이사회는 “사건 당사자들과의 기본적인 소통과 확인을 거쳐 (양희송 대표가) 청어람ARMC 구성원으로서, 그리스도인으로서 품위를 유지하지 못했다고 판단하고 (대표 면직과 이사직 해촉을) 본인에게 통보했다”

양희송 본인도 같은 날 사과문을 통해 “저는 수년간 아내 모르게 다른 여성과 관계를 맺어 왔다. 제 불륜은 온 가족에게 너무나 큰 고통을 주었고, 저에게 기대와 신뢰를 보여 주신 분들에게도 매우 큰 충격과 실망을 끼치게 됐다”고 스스로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고 “신앙인으로서 또한 설교자로서 저의 삶이 제 말을 정직하게 담아내지 못한 결과”라고 고백하면서 모든 공적 활동에서 물러나 참회의 시간을 가지겠다고 전했다.

2014년 저서 <가나안 성도 교회 밖 신앙>을 통해 한국교회가 직면한 100만 성도 이탈 현상에 대해 냉철하게 분석하고, 다음세대 사역을 위한 대안을 끊임없이 연구해왔다. 그가 한국교회에 던진 묵직한 화두는 적지 않은 파장을 일으키기도 했다.

서울대학교 전자공학과를 졸업하고, 영국 브리스톨의 트리니티 칼리지(BA)와 런던 신학교(MA)에서 신학을 공부했다. 월간 『복음과상황』 편집장 및 편집위원장을 지냈고, 한동대학교에서 7년간 ‘기독교 세계관’을 가르쳤다. 다양한 기독교 및 일반 매체에 글을 기고하고 있으며, 랍 벨(Rob Bell)에서 존 스토트(John Stott)까지, 톰 라이트(Tom Wright)에서 유진 피터슨(Eugene H. Peterson)까지 ‘복음주의 운동’의 다양한 스펙트럼을 소개하는 일에 관심이 많다. 2005년부터 한국 교회와 사회의 다음 세대를 위한 인재발전소 ‘청어람 ARMC’의 대표기획자로 있으면서 인문학, 정치사회, 문화예술 등의 분야에서 500여 회가 넘는 대중강좌를 기획·운영해 오고 있다. 좌우명은 “노는 게 젤 조아.”이다. 자신의 좌우명에 발목을 잡힌 것일까 그는 놀다 걸렸다.

그를 아는 많은 사람들이 의외라는 반응과 함께 실망감을 표시하는 것을 보았다. 그의 일탈을 같은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떻게 받아들이고 판단해야 하는가.

나는 먼저 솔제니친의 말을 인용하고 싶다.

“악을 행한 사람을 우리와 분리시키는 일이 정말로 필요하다면…. 각 사람의 마음에 존재하는 선과 악 사이에 선을 명확하게 그어야 할 것이다.”

나는 솔제니친의 말에서 선악과를 따먹은 아담의 후예들의 숙명을 본다. 선악과를 먹은 인간은 끝없이 선과 악을 가리는 존재로 살아가게 된다. 그러나 인간은 하나님처럼 全知全能하지 못하다. 개인차가 있지만 모두에게는 지하고 능한 부분이 있기는 있다. 그것으로 선과 악 사이에 선을 명확하게 그을 수 있는가. 솔제니친은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우리에게 상기시키며 악을 행한 사람을 자신과 분리시키는 일에 신중할 것을 제안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한 그의 견해에 대해 나 역시 동의할 수밖에 없다. 우리가 양희송이 저지른 불륜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문제 삼지 말자는 것이 아니다. 본인의 말대로 그는 심각한 과오를 범했다. 모든 공적 활동에서 물러나 자숙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하지만 불륜이라는 과오를 범한 그에게 악인이라는 낙인을 찍어 영원히 분리하는 일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도 아니고 해서도 안 되는 일이다.

아브라함이 생각난다. 아브라함이 모리아산의 ‘아케다(결박) 사건’을 통해 믿음의 조상이 되기까지 그의 인생은 실패의 점철이었다. 신학자 송봉모는 그가 모리아산에 이르기 전 열 번의 실패를 경험해야 했다고 말한다. 하갈의 경우가 있긴 했지만 그건 불륜이라고 하기 어렵다. 오히려 그 사건은 사람의 힘으로 하나님의 일을 이루려한 실패로 정의하는 것이 옳다. 그러나 아브라함에게는 불륜보다 더 심각한 불륜을 조장하고 강요한 잘못이 있었다.

“그러니까 당신은 나의 누이라고 하시오. 그렇게 하여야, 내가 당신 덕분에 대접을 잘 받고, 또 당신 덕분에 이 목숨도 부지할 수 있을 거요.”

아브람의 아내 사래는 아리따운 여인이었다. 누군가에 의해 거추장스런 남편을 제거하고 사래를 차지하려는 시도가 예견되는 상황이었다. 아브람은 자신의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아내에게 아내라고 하지 말고 누이라고 하라는 부탁을 한다. 그러니까 아내인 사래가 다른 남자들과 동침하게 하고 목숨을 부지하고 대접을 잘 받겠다는 것이다. 남편으로서 얼마나 비겁한 행위인가. 거짓을 아내에게 강요하는 것이 아닌가. 불륜을 저지르라는 것이 아닌가.

믿음의 조상이 된 아브라함은 바로 이런 사람이었다. 그때 하나님이 그런 그에게 죄를 추궁하며 너 같은 사람이 어떻게 믿음의 조상이 될 수 있겠느냐고 판단하셨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없었을 것이다. 우리 역시 하나님처럼 생각하고 판단하는 것이 옳지 않을까.

나는 지금까지 양희송이 항상 귀족 같다는 생각을 하였다. 그 역시 높은 뜻을 품어서인지 항상 너무 옳고 너무 단호했다. 나는 그의 그런 태도가 언젠가는 문제를 일으킬 것이라고 생각했고 그것이 불륜이라는 문제로 드러났다. 고상한 그는 여인들의 관심을 받기에 충분했고, 그의 욕망은 그것을 거절할 수 없었다. 나는 여자가 먼저 그를 유혹했을 것이라는 짐작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는 너무 고매했다. 다시 말해 그는 너무 큰 자였다. 가만히 있어도 다른 사람들을 초라하게 만드는 스펙과 지성을 소유하고 있었다. 바울을 생각해 보라. 하나님의 일을 위해서 그것들은 배설물이 되어야 한다.

나는 그가 이제 미디안 광야, 아둘람 동굴, 혹은 아라비아 사막으로 가라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것이라 생각하고 싶다. 거기서 그는 작아지고 무력해져야 한다. 한국교회를 향한, 가나안 교인들을 향한 그의 열정이 하나님의 일이 되려면 그는 반드시 그 과정을 겪어야 한다. 아브라함은 열 번의 실패를 경험해야 했다. 나는 이걸 하나님의 학교라고 부른다. 하나님의 일을 하려면 반드시 하나님의 학교를 나와야 한다. 그 학교를 나오면 개인의 능력과 앎과 모든 스펙이 배설물이 된다. 해서 모든 믿음의 사람들은 반드시 이 과정을 지나야 함을 성서는 증언한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는 낮은 곳을 향해야 한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는 그리스도를 좇아야 하고 그 길에서 그리스도를 만나야 한다. 그리스도는 푸코의 말대로 가장 낮은 곳에 계시다. 그래서 우리는 그리스도 때문에 가장 낮은 곳으로 내려갈 수 없다는 사실을 발견해야 한다. 그동안 양희송 대표는 높이 올라가있는 사람들을 상대하느라 자신도 모르게 높은 곳을 향하고 있지 않았을까. 나는 양희송이 가장 낮은 곳에 계신 주님을 만나 아버지의 하시는 일을 보고 아버지의 일을 하는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직접적인 상처를 받은 아내와 자녀들에게는 물론 함께 불륜의 늪에 빠진 여인에게도 좋은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실망한 많은 사람들에게도 빚진 자의 의식을 가지고 더 큰 희생과 진정한 섬김으로 그리스도를 보여주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스도인에게 실패는 예정된 것이다. 그러나 그 실패는 개인의 일탈이 아니라 데리다가 말한 ‘불가능성에의 열정’을 통해 드러나야 할 것이다. 자기부족을 깨달아 아는 은혜가 그에게 임하기를 바란다. 인생과 신앙의 후배인 그에게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희송씨 힘내요. 이제부터 진짜 시작입니다. 하나님의 학교를 잘 마친 후의 기쁜 소식을 기다리겠습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1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회개하라 2020-10-07 23:42:51
지금이라도 깊은 회개를 하시기 바랍니다
이혼제도는 그냥 있는게 아닙니다

박준형 2020-03-27 16:16:14
좌파종특 내로남불은 기독교에도 스며들었구나. 좌파는 암튼 다 똑같네.

후2하푸하 2020-01-21 13:09:41
요약: 양대표에개 돌던지지는 말라.
누구나 실패하고 누구나 죄짓는다 무려 아브람이 그랬던것처럼.


글 수정좀 하셔요. 그간 양희송씨가 열씨히 씹어댔던 사람들도 다시 재평가 및 위로좀 해주세요.

진영논리를 벗어나는 인간이 없는건 목회계에도 마찬가지구나

노을 2020-01-15 22:15:29
어떻게 이런 기사를 쓸수가 있나요.. 심히 충격적이네요

이경식 2019-09-15 12:57:39
"내 너 그럴 줄 알았다."
"고생 좀 하고 즐거운 얼굴로 만나~"

욥의 친구들 만큼 경박한 지적질에 위선에 절은 글이다. 오히려 읽는 이로 하여금 글쓴이에게 더 화가 나게 하는 글이다.

이런 목사님이 예수님의 고매함을 보고는 뭐라 해왔을까 궁금하다.

내 너 십자가에 달릴 줄 알았다, 라고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