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야, 노래하는 홈리스"
"나는야, 노래하는 홈리스"
  • 강태우 기자
  • 승인 2019.09.11 21:42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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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M=강태우 기자] 장영희 교수는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이란 책에서 “내가 살아보니 내가 주는 친절과 사랑은 밑지는 적이 없다. 내가 남의 말만 듣고 월급 모아 주식이나 부동산에 투자한 것은 몽땅 다 망했지만, 무심히 또는 의도적으로 한 작은 선행은 절대로 없어지지 않고 누군가의 마음에 고마움으로 남게 된다. 남의 마음속에 좋은 기억으로 남는 것만큼 보장된 투자는 없다”고 했다.

삭막한 도시에서 분주한 걸음을 멈추고 조용히 다가와 가만히 베푼 어느 행인의 작은 친절과 사랑을 마음 깊이 고마움으로 새겨 힘을 얻는 사람들이 있다. 지하철역에서 빨간 모자를 쓰고 빨간 조끼를 입고 [빅이슈]라는 잡지를 파는 홈리스들이다. 서울, 경기, 대전, 부산의 주요 지하철역과 거리에서 60명의 빅이슈 판매원(빅판)들이 일한다.

강남역 10번 출구 부근에서 가수의 꿈을 향해 노래를 부르며 [빅이슈]를  파는 빅판 서명진 님
강남역 10번 출구 부근에서 가수의 꿈을 향해 노래를 부르며 [빅이슈]를 파는 빅판 서명진 님

기자는 8월 22일부터 2주 동안 서울 강남역 주변에서 빅판들을 만나 그들의 삶의 이야기를 들었다. 가난을 벗어날 수 있다는 희망을 품고 성실히 땀 흘리는 빅판의 사연 많은 삶의 이야기를 들으며 함께 웃고 함께 울었다.

강남역 1번 출구에서 만난 빅판 하**씨는 79세의 고령이었다. 그는 빅판으로 일한 지 3년 되었고 고령에도 불구하고 가족들을 위해서 거리로 나섰다. 그러나 건강이 안 좋고 귀도 잘 들리지 않아 일하는 데 어려움이 많다. 그는 “생활이 너무 쪼들려서 힘들다. 가족들과 맘 편히 쉴 수 있는 임대 아파트에 들어갈 수 있으면 좋겠다”고 했다. 대화를 마치고 돌아서는데 “너무 생활이 쪼들려서 힘들다. 도와 달라”는 79세 고령 빅판의 희미한 목소리가 마음을 무겁게 한다.

강남역 5번 출구에서 또 다른 빅판, 이**씨(49세)를 만났다. 그는 “10년 전 빚으로 신용불량자가 되며 집을 나와 고시원을 떠돌며 살게 되었다. 빅판으로 5년 정도 일했는데, 추운 겨울이나 비가 많이 오는 날은 잡지가 잘 안 팔려 힘들다. 가족, 친구들과 단절되어 혼자 살아가는 것이 외롭고 힘들다”고 했다. 그는 “가장 좋을 때는 잡지가 많이 팔릴 때다. 지금은 일하고 잠자는 단순한 삶이 좋다. 장래 희망은 편하게 잠잘 수 있는 임대 아파트에 들어가는 것”이라고 했다. “특별히 이번 추석에는 10년 동안 소식을 끊었던 부모님께 인사드리러 가고 싶다”고 했다.

강남역 10번 출구에서 100미터 떨어진 곳에서 세 번째 빅판, 서명진 씨(48세)를 만났다. 그는 보기에 좀 특별했다. 길에서 노래를 부르며 [빅이슈]를 팔고 있었다. 얼굴 표정은 밝고 활기가 넘쳤고 마지못해 일하는 것이 아니라 신나게 웃으면서 일하고 있었다. 가진 것이 없지만 부족함이 없어 보이는, 위로가 필요할 텐데 도리어 위로하고 싶다는, 힘들 텐데 즐겁게 일하는 노래하는 빅판 서명진 씨의 지나온 삶의 이야기를 들었다.

- 어떻게 빅판이 되었는지 궁금하다.

“2009년 38살 때 부모님과 다투고 고향을 떠나 서울에 왔다. 아버지께서 지방에서 서점을 경영했고 그 일을 도왔는데 일 때문에 갈등이 생겼다. 집에서 가지고 온 돈이 다 떨어지고 고속버스터미널에서 노숙했다. 밥은 가락동 무료 급식소에서 해결했다. 그러다 홈리스 지원 단체인 ‘달팽이소원’의 윤건 대표가 [빅이슈코리아]를 소개해주셔서 빅판으로 일하게 되었다.”

- 빅판으로서 가장 기쁠 때와 가장 힘들 때는 언제인가.

“가장 기쁠 때는 나를 한 사람으로 인정해 줄 때다. 그리고 잡지가 많이 팔릴 때 기쁘다. 힘들 때는 별로 없다. 몇 년 동안 같은 장소에서 일하다 보니 고정 고객들이 생겨서 오며 가며 인사도 하고 간식도 주신다. 일이 즐겁고 보람 있다. 다만 오래 서 있다 보니 몸이 좀 힘들 때가 있다.”

- [빅이슈] 잡지를 팔면서 길에서 노래를 부르는 특별한 이유가 있나.

“처음 시작할 때 꿈은 임대주택을 얻는 것이었다. 열심히 일하고 저축해서 지금 임대주택에 살고 있다. 그리고 가수가 되는 두 번째 꿈을 갖게 되었다. 노래를 불러 지치고 힘든 세상 사람들을 위로하고 희망을 전하고 싶다. 그래서 길에서 매일 노래를 부르며 [빅이슈]를 판다. 실제로 음악 밴드 활동도 한다. ‘봄날’이란 밴드에서 베이스로 활동하며 지금까지 100회 이상, 크고 작은 공연을 했고, ‘꽃 피다’, ‘활보’라는 자작곡도 있다.”

- 노숙인에서 밴드 활동을 하게 된 과정이 궁금하다.

“2009년부터 2011년까지 고속버스터미널에서 노숙을 하였다. 일요일에는 일산에 있는 순복음경향교회를 다녔다. 담임목사님과 장로님께서 음악을 할 수 있도록 악기를 사주셨다. 그리고 포기하지 않고 계속 노래 연습하도록 많은 격려와 사랑을 주셨다. 그리고 ‘달팽이소원’의 윤건 대표는 밴드 ‘봄날’을 결성해주시고 지금까지 많은 지원과 도움을 주셨다.”

- 밴드 활동에 대해서 더 자세히 말해주면 좋겠다.

“봄날이라는 밴드에서 베이스를 맡고 있다. 봄날은 홈리스 지원 단체인 ‘달팽이소원’에 속해 있다. 봄날 밴드는 홈리스였지만 자립을 꿈꾸는 사람들이 시작했다. 봄날 밴드의 목적은 어두웠던 지난 삶을 음악을 통해 스스로 위로받고 용기를 얻어서 듣는 이들에게 유쾌한 이야기를 전하는 것이다. 봄날 밴드의 꿈은 연주하면서 자신의 마음을 위로하고, 노래하면서 사람들과 소통하는 것이다. 그리고 음악이 필요한 곳이라면 어디든지 찾아가서 봄날의 따스함을 나누는 것이다. 지난해 12월 4일에는 (재)화우 공익재단의 지원으로 홈리스의 자립을 응원하는 ‘제1회 달팽이 음악제’를 광림 아트센터에서 열었다.”

- 앞으로의 계획이나 바람은.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전하고 싶다. 사람들에게 힘들어도 포기하지 말라고 말하고 싶다. 또 공연을 하고 음반을 내서 판매 수익으로 사람들을 돕는 일을 하고 싶다. 마지막으로 한 인간으로 그리고 가수로서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고 싶다.”

“사람의 생명이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않다(눅 12:15)”는 말씀처럼 많은 것을 소유하고도 불행하게 그림자처럼 사는 사람들이 많다. 반면에 가진 것은 없지만 자족하며 내일의 꿈을 향해 열심히 땀방울을 흘리는 사람들이 있다. 지하철역에서 빅판은 가난을 벗어나고자 열심히 내일의 희망을 판다. “사람으로 인정받을 때 가장 기쁘다. 노래를 통해 지치고 절망한 사람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고 싶다”는 빅판 서명진 씨의 이야기가 마음을 따뜻하게 한다. 그는 오늘도 변함없이 강남역 10번 출구 앞에 서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향해 희망의 노래를 부르며 또 다른 꿈을 향해 항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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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의마음 2019-09-12 18:00:30
힘이되는 좋은 기사 감사합니다!!

미소 2019-09-11 23:54:45
앞으로..사랑과응원 보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