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숙인 ‘선교’라고요? 그냥 친구입니다.
노숙인 ‘선교’라고요? 그냥 친구입니다.
  • Michael Oh
  • 승인 2019.09.20 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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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M=마이클 오 기자] “노숙인 선교요? 그냥 친구 만나는 거예요.” 노숙인 선교에 대한 우문(愚問)을 간단명료하게 정리해 준 현답(賢答)이다.

[뉴스M] 은 얼마 전에 캘리포니아 랭캐스터 지역에서 노숙인의 자립을 위해 커피 사업을 준비하고 있는 [스트릿 컴퍼니 Street Company]와 노숙인 신문 [홈레스 인사이더 Homeless Insider]에 관한 소식을 전하였다. 모두 노숙인이 주도적으로 진행하는 프로젝트다. 하지만 이들이 처음부터 자기 삶과 일에 주인이 되어 스스로 일어선 것은 아니다. 뒤에는 이들이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지난 10여 년간 용기와 희망을 심고 꿈을 함께 가꾸어온 청년들이 있다.

어린 나이에 낯선 땅 미국으로 이민 온 후 다양한 환경과 문화 가운데 한인 1.5세로서 삶의 뿌리를 내려온 청년 이용석과 이원섭이 그 주인공이다. 이름이 지워진 채로 세상 가장 낮은 곳에서 살아가는 노숙인과 한인 이민 1.5세 청년의 만남, 이 독특한 조합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노숙인 친구와 함께 (왼쪽 전면: 이용석, 오른쪽 후면: 이원섭)
노숙인 친구와 함께 (왼쪽 전면: 이용석, 오른쪽 후면: 이원섭)

간단한 소개 부탁한다.

이용석: 31살 이용석입니다. 두 아기의 아빠이자 아름다운 자매의 남편입니다. 목회자이신 아버지를 따라 교회와 신앙 안에서 자랐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음악을 좋아해서 고등학교 졸업 후 싱어송라이터를 꿈꾸며 음악 프로듀싱을 전공했습니다.

우연한 기회를 통해 도시 빈민에 대한 관심이 생겼고, 이후 캘리포니아주립대학교(UCLA)에 진학해서 사회학 및 사회정의를 공부했습니다. 현재는 풀러 신학교에서 목회학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또한 [스트릿 컴퍼니 Street Company]란 비영리 단체를 설립해서 대표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원섭: 26살 이원섭입니다. 기독교 가정에 자랐지만, 성인이 되어서야 좀 더 구체적인 고민과 경험을 하게 되었고 여전히 신앙을 배워가고 있습니다. 13세에 미국 이민을 왔고, 대학교에서 컴퓨터 관련 전공 후 현재 정보 보안 분석가로 일하고 있습니다. 2017년 말부터 [스트릿 컴퍼니 Street Company]에 참여하여 함께 기초를 쌓고 있습니다.

어떻게 노숙인을 돕고 있는가?

이용석: "함께하는 노숙인 친구들과 [스트릿 컴퍼니 Street Company]를 설립해 이들의 일자리를 만드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이코노믹 라운드 테이블 Economic Roundtable]에 따르면 엘에이 카운티 노숙인 중 70%는 정상적인 직장생활이 가능하다고 합니다.

현재 노숙인 일자리 창출을 위한 첫 사업으로 커피숍과 로스팅 사업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노숙인 친구들과 함께 팀이 되어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준비 과정에서 다른 이들과 협력하고 소통하는 방법 또한 배우고 있습니다. 때로 인내가 필요하지만, 조금씩 그들 스스로 일을 준비하고 이뤄내는 것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커피숍과 로스팅 사업을 통해 지역 노숙인들이 안정적인 일자리를 얻게 되면, 상담과 정신질환 및 약물 오남용 치료 등과 같은 서비스도 함께 제공할 계획입니다. 이를 통해 정상적인 사회 경제적 활동을 할 수 있도록 도울 것입니다.

지금은 이 목표를 위해 모금 활동과 함께 지내는 노숙인에게 바리스타 및 전문 로스터 교육을 하고 있습니다.

노숙인의 신문 [홈레스 인사이더 Homeless Insider]도 만들었습니다. 노숙인이 직접 자신과 주변의 이야기를 전하는 신문입니다. 자신의 시각과 입장을 적극적으로 알리고 또 표현하면서 자신감도 얻고 더 나은 삶에 대한 의지도 다지고 있습니다. 더불어 다른 노숙인에게도 유용한 정보도 제공하고, 함께 이 상황을 극복하기 위한 동기 부여도 하고 있습니다.

[스트릿 컴퍼니]
[스트릿 컴퍼니]

어떻게 노숙인과 만나게 되었나? 왜 이들과 함께하는가?

이용석: 2009년쯤입니다. 싱어송라이터로 활동하던 때였는데, 랭캐스터에 있는 한인 교회에서 노숙인을 위한 아침 식사 자리에 노래해달라는 요청이 있었습니다. 이 만남이 계기가 되어 매주 노래하는 봉사를 했었습니다. 이후 노래뿐만 아니라 함께 밥도 먹고, 영화도 보고, 때로 사막에서 노숙도 하며 가까운 친구가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연민과 신앙심으로 만났고, 또 오랜 기간 이런 마음으로 봉사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만남은 이들에 대한 막연한 동정심보다는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낸 인생의 동료, 친구에 대한 우정 때문입니다.

도시 빈민과 사회정의를 공부하기로 마음먹은 것도 이때쯤이었습니다. 그저 이름 없는 불쌍한 사람 돕기 위한 것이 아니라, 서로의 이름을 부르며 삶을 섞어온 소중한 친구의 문제를 함께 해결해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현실이 자신뿐만 아니라 내게도 문제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원섭: [스트릿 컴퍼니]를 함께 하는 용석 형과 교회 활동을 같이하며 오래 알고 지낸 사이입니다. 그동안은 가끔 용석 형의 랭캐스터 일을 도왔습니다. 그러다가 재작년 [스트릿 컴퍼니]가 정식 출범할 때 합류하였고, 더불어 노숙인 친구들과 개인적인 관계가 시작됐습니다.

처음 이들과 함께 지내기 시작한 때를 돌아보면, ‘예수님은 낮은 곳에 계신다’라는 종교적 신념과 교회 밖 소외된 이웃에 대한 관심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몸보다는 머리와 의지가 앞서 있었죠.

하지만 지금은 그저 친구를 만나고 있습니다. 친구 만날 때 어떤 정리된 생각이나 신념을 가지고 만나지 않잖아요. 그저 궁금하고 재미있고 기대되고 또 때로는 걱정과 염려로 만나는 친구처럼, 그런 사귐이고 만남이 된 거 같습니다.

자신이 생각하는 노숙인은 어떤 사람인가?

이용석: 그들 또한 나름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노숙’은 환경입니다. 그것은 결코 그들의 정체성이 될 수 없습니다. 그리고 환경은 언제나 변하기 마련입니다.

누구나 삶을 살면서 사회적 경제적 어려움에 부닥치고, 신체적 정신적 스트레스 속에서 살아갑니다. 누구라도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다른 이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자신이 소망하는 것을 아무런 외부의 도움 없이 저 스스로 이뤄내는 사람은 없습니다.

단지 ‘나’는 도움을 받을 누군가가 있었을 뿐이고, ‘그들’은 저만큼 운이 좋지 않았던 것뿐이죠. 그 환경의 차이를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이고 살아가는 것은 불공평하다고 생각합니다. 그 차이는 책임이며 빚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노숙인은 저에게 윤리적인 채권자로 다가옵니다.

그들은 단지 조금 다른 환경과 이유로 음식이나 집 그리고 옷가지와 같은 물질적인 도움이 필요한 것입니다. 희망과 꿈을 쫓을 수 있도록 누군가 돕는다면, 그들도 역시 아름답고 가치 있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노숙인’으로 명명하여 ‘그들’과 ‘나’를 구분하고 아주 특별한 종류의 사람인 것처럼 취급하는 것이 현실이지만, 사실 여전히 거북하고 민망할 때가 있습니다. ‘다른 소통의 방법이 없을까?’ 고민을 많이 합니다.

이원섭: 제가 경험한 노숙인은 우리와 같은 가치를 지닌 존엄한 인간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존심도 있고 감사하는 마음도 있으며, 사랑하고 싶어 하고 또 사랑받고 싶어 하는 사람입니다. 여전히 자신의 삶을 스스로 책임지고 그것에서 삶의 기쁨을 누리기를 원하는, 우리와 전혀 다르지 않은 아름다운 인생입니다.

[스트릿 컴퍼니] 주축을 이루는 노숙인 친구들
[스트릿 컴퍼니] 주축을 이루는 노숙인 친구들

기억나는 이야기가 있다면?

이용석: 2014년 노숙인 친구와 함께 ‘Serving the Server’라는 행사를 했습니다. 노숙인이 자신을 도왔던 지역 봉사자를 초청해 오찬과 함께 감사함을 전하는 행사였습니다. 노숙인 친구에게 처음 이 행사의 아이디어를 전달했을 때가 기억에 남습니다.

여느 때와 같이 화요일 9시 아침 식사를 위해 모인 노숙인 앞에서 노래를 부른 뒤 그들에게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랭캐스터 지역에 많은 교회와 기관들이 여러분들을 위해 음식을 제공해왔습니다. 덕분에 여러분들은 경제적 어려움 속에서도 하루를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이 오랜 기간 섬김을 받아왔는데, 이번에 여러분이 그들을 섬겨보는 것은 어떻습니까? 여러분이 이번엔 그들에게 근사한 음식을 대접해보는 것이 어떻습니까?’ 이렇게 제안을 하고 구체적인 계획도 이야기했습니다.

자리에 앉아 있던 노숙인이 흥분하기 시작했습니다. 이곳저곳에서 ‘그래, 그러자!’ 사람들이 외쳤습니다. 한 사람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그래, 이제 우리가 이 지역사회를 섬길 차례야! 우리 같이 이 일을 해보자’ 말하며 다른 노숙인을 부추겼습니다. 조용히 자리에 앉아 감격의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도 보였습니다.

노숙인의 영혼을 피폐하게 만든 것은 어쩌면 집이나 옷이나 먹거리의 결핍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들의 진정한 불행은 누군가를 섬기고 축복할 기회로부터 철저하게 분리된 상황이라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었습니다. 노숙인이라는 이유로 그들의 환경 뒤에 감춰진 위대함과 무한한 가능성을 보지 못하고, 그들을 단지 내가 선한 사람이 되기 위한 수단 따위로 전락시키지 않았는지 깊게 반성하는 순간이었습니다.

이원섭: [스트릿 컴퍼니 Street Company]에서 처음으로 동네 장터에 나가 지역 주민들에게 커피를 판 일이 생각납니다. 처음 우리의 모습을 선보이는 것이라 긴장하고 기대도 많았던 날이었습니다. 다행히 커피도 잘 만들어 팔고 지역 주민에게 우리의 비전도 나누면서 좋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장터가 끝나고 그날 번 돈을 다 모아 모두에게 공평하게 나누었습니다. 몇몇 친구들이 눈물을 흘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조심스레 물어보니, 비록 많은 돈은 아니지만, 자신이 직접 흘린 땀으로 번 돈이 감격스러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의 눈물을 보면서 이 일이 단지 생존을 위한 직업 제공 이상의 의미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한 인격체가 조금이나마 자신의 가치를 되찾고 회복하는 장면을 목격했던 것입니다. [스트릿 컴퍼니 Street Company]가 하려는 일의 의미를 느낄 수 있었고, 더욱 힘을 내게 된 순간이었습니다.

동네 장터에서 첫 선을 보이는 [스트릿 컴퍼니]
동네 장터에서 첫 선을 보이는 [스트릿 컴퍼니]

노숙인과 함께 하는 일이 자신의 신앙에 어떤 영향을 끼쳤나?

이용석: 노숙인들을 돕기 시작한 처음 2년간은 신앙이 주된 동기였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이다’란 생각이 나를 이끌었습니다. 그래서 하고 싶지 않아도 계속해서 해나갔습니다. ‘가난한 이들과 함께 있는 것이 예수의 길이다’란 생각에 다른 길을 선택할 수 있는 상황에서도 노숙인과 함께하는 길을 선택했습니다. 돌아보면 신앙이 앞에 서고 노숙인은 뒤를 따라온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반대입니다. 그들이 그저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더 큽니다. 직장을 얻고 노숙에서 벗어나서, 가정도 꾸리고 아이도 낳고 다른 이들도 도우며 살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가끔 그런 바람 가운데 신앙을 다시금 깨달을 때가 있습니다. ‘어쩌면 이것이 예수가 애써 말하던 사랑 아닐까?’ 하고 말입니다. 그런 의미로 어쩌면 저는 신앙을 다시 배우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원섭: 현재는 노숙인과 함께하는 삶을 최대한 개인 신앙과 연관시키려 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함께하는 노숙인 친구를 조금이라도 저의 신앙과 공명심을 위한 수단으로 삼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단지 노숙인의 삶을 조금 더 이해하고 이들과 같이 일하면서 어렴풋이 깨닫게 되는 것은 있습니다. 가령 왜 예수님의 시선이 가난하고 소외된 자들에게 있었는지, 그리고 그들 가운데 있었던 예수님은 어떤 분이었는지에 대한 것들 말입니다.

노숙인과 함께 생활하면서 변화된 점이 있다면?

이원섭: 노숙인은 세상과 삶의 진실을 보는 법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들을 통해서 숨겨져 있는 진실을 보게 된 거죠. 단지 세상의 어두운 모습과 삶의 절망적인 현실만 발견했다는 것은 아닙니다. 비록 비참하고 절망적인 현실이지만, 그 가운데 여전히 열려 있는 가능성과 희망이 있다는 것도 함께 발견했습니다.

물론 그런 가능성과 희망은 그 자체로 아무런 의미가 없을 것입니다. 스스로 이루어지는 가능성과 희망은 없으니까요. 하지만 누군가가 그것을 발견하고 또 실현하기 위해 노력한다면 그만큼 어둠은 걷히고 절망은 희망으로 바뀔 거라고 생각합니다.

더불어 저도 그런 가능성 앞에 서 있는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순전히 저와 함께해준 노숙인 친구들을 통해 발견한 숨겨져 있던 ‘나’인 것이죠.

사실 노숙인 친구들과 가깝게 지내기 전에는 저와 비슷한 사회 경제적 여건에 있는 사람들에 둘러싸여 살아왔습니다. 그게 인생의 전부인 줄 알고 살았습니다. 마치 섬에 갇혀 살아가는 사람처럼 말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세상을 좀 더 넓게 보고 더 많은 가능성을 좇아 살아갑니다. 물론 그런 세상을 본다는 것이 마냥 희망찬 것이 아니라, 사실은 대부분 절망스럽고 고통스러운 경험이라는 것을 압니다. 하지만 그 어두움 가운데 작지만 꺼지지 않는 촛불 같은 것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빛을 향해 포기하지 않고 조금씩 조금씩 또 함께 손잡고 걷는 것이 삶이고 신앙이라고 생각합니다.

[스트릿 컴퍼니]
[스트릿 컴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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