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 법무부 장관 검증 과정에서 드러난 우리 사회의 해묵은 과제
조국 법무부 장관 검증 과정에서 드러난 우리 사회의 해묵은 과제
  • 권영석 목사
  • 승인 2019.09.24 08:45
  • 댓글 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아직도 진행형이긴 하지만, 조국 법무부 장관은 위장 전입이나 병역비리 내지 학력 위조 등의 식상한 단골 메뉴를 선보이던 기존의 다른 장관 후보들과 비교해 보자면 특별히 문제 삼을 것도 없어 보입니다. 하지만 언론은 ‘아니면 말고’ 식의, 상식을 뛰어 넘는 여론몰이용 기사를 쏟아 내었습니다. 그에 따른 국민들의 반응 역시 그 어느 때보다 더 극심한 혼란을 보이고 있습니다.

한 달 어간에 걸친 야당의 공세와 언론의 무분별하고 무책임한 부채질은 장관 임명이 끝나고 난 현재도 그 불씨가 가시지 않고 있습니다. 어찌 보면 우리 사회가 아직은 합리적인 사고와 그에 기반을 둔 절차에 따라 여론을 형성하고, 또 그 민의를 수렴하여 입법하고 그에 기반을 두어 정책을 입안 수행해 나가는 성숙한 시민사회이기보다는 뭔가 여과되지 않은 반목과 갈등의 앙금에 여전히 발이 묶여 있는 듯한 불안정하고 취약한 사회라 해야 할 것입니다.

사태가 그 팩트나 본질과 무관하게 이처럼 걷잡을 수 없는 혼란에 빠지게 된 데는 일차적으로 기존의 제도적 장치와 법적 절차의 테두리를 무시하면서까지 과도한 정치공세를 편 야당의 책임이 크다 하겠습니다. 권한과 책임을 위임받은 개인이나 권위기구가 그 책임을 방기하게 되면, 사태를 수습하기란 그만큼 더 어려워지게 마련입니다. 왜냐하면 권한도 없고 책임질 의무도 없는 언론이나 일반 국민들이 저마다 나서서 수사관이 되고 재판관이 되어서 자신의 선호나 편견에 따라 확인되지도 않은 소문을 퍼 나르거나 심지어 증폭시키기 시작하면 혼란은 극도에 달하게 되어 수습이 불가능하게 됩니다. 더욱 심각한 것은 아무도 그 수습의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된다]는 점입니다.

이번 사태 역시 청문회가 무산되면서 '기자 간담회'란 형식의 후보자 소명 과정이 급조되었고, 급기야 마련된 청문회는 마감 시한에 쫓긴 채 기자 간담회 수준을 넘지 못했으며 국회의원들의 검증/조사 질의란 것도 상당부분 인터넷 소식통에 근거하여 짜 맞추기식 정도였으니 이미 수습할 능력도 의지도 없어 보였습니다. 결국 임명권자인 대통령의 입만 쳐다볼 수밖에 없게 되었지만, 임명을 한 이후 지금까지도 여전히 의심의 불씨는 만연해 있는 형국이니 어찌 보면 뻔히 예상되는 혼란이었다 하겠습니다. 아무리 악한 정부라도 뭔가 권위 기구가 있는 것이 [극도의 혼란을 수습하기 위해서는] 무정부주의보다는 그래도 나은 대안이라 해야 할 것입니다.

게다가 인터넷과 SNS 덕분에 너나 할 것 없이 개개인이 독립 언론인처럼 기능할 수 있게 된 사이버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문명]인들의 귀와 입을 통제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해야 할 것입니다. 그것도 누가 시발점이며 무엇이 오리지널인지를 [아직은] 쉽게 분별할 수 없는 [불완전한] 단계에 있기 때문에 팩트조차 제대로 확증이 되지 않은 상태로 난무하는 편벽된 가치 판단이나 심지어 결론을 미리 내려놓고 그 선입견에 짜 맞춰서 정보 자체를 교란시키기까지 하는 날조된 가짜뉴스들이 판을 치고 있습니다. 그러니 현대 사회는 자칫하면 이전의 아날로그 시대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혼란 사회'이자 '가짜 사회'로 퇴보할 확률이 그만큼 더 높아졌다 하겠습니다. 정보란 언제나 팩트(FACT)와 가치를 동시에 담고 있을 텐데, 팩트에 기반하지 않은 정보나 잘못된 팩트 내지 만들어진 픽트(FICT)에 기반한 정보는 독선 내지 편견만 강화하게 마련이며, 권력자의 손에서 마녀사냥의 도구로 둔갑하기 일쑤입니다. 제한된 시간 안에 정보의 진위를 미처 밝힐 여유가 없을 정도로 엄청난 양의 정보가 쏟아져 나오기 때문에 '아니면 말고' 식의 조악한 정보들이 조회 수와 지면의 크기를 선점하려 드는 현상을 차단하기란 그만큼 더 어려운 법입니다. 따라서 그 진위를 밝혀낸다 해도 사후약방문처럼 되기가 십상입니다.

그러나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이번 사태의 더욱 근본적인 요인으로 생각해 보고 다 함께 성찰해 보아야 할 바는 우리 사회의 숨겨놓았던 민낯이 고스란히 노출된 계기가 된 게 아닌가 하는 점입니다. 어째서 기왕의 전형적인 비리나 편법에 기대어서 살아온 인물도 아닌 것 같은데 유난히 조국 장관을 향해서 그토록 집요하게 그리고 가족사까지 잔인하게 파헤치면서 굳이 장관 역할을 맡겨선 안 되겠다고 하는 민심이 확산된 것일까요? 이것이 단지 그냥 장관이 아니라, 공정한 법치사회의 기강을 잡아나가야 하는 법무부 장관이었기 때문이었던 걸까요? 개혁을 부르짖어 온 주장과 사상에 비해 그의 삶은 그만큼 철저하게 개혁적이지 못했고 일관되지 않았기 때문이었을까요?

혹시, 이런 저런 논리적인 분석만으론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수준의 어떤 반감 내지 정서적인 반작용이 이번 인사 청문회를 통해 혹 오비이락처럼 터져 나온 것은 아닐까요? 논리적으로 하나하나 따져 보면, 실제로 확실한 증거가 발견된 것은 별로 없어 보이며, 또 설사 증거가 드러난다 할지라도 법무부 장관으로서 결정적인 결격사유가 될 만한 사안이라고 할 만한 (그야말로 축에도 못낄만큼) 무슨 대단한 비리나 부도덕한 악덕목에 해당하는 것은 없어 보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심지어 제대로 된 증거가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은 시점임에도 지레 거부감을 표출하고 우후죽순 나서서 반대 시위를 하게 되었던 그 밑바닥에 대체 어떤 동인이 작용한 것일까 하는 것이 무엇보다 궁금합니다. 개혁을 달갑게 여기지 않는 야당 정치인들이나 기득권자들의 반발은 그렇다 치더라도, 일반 국민들 사이에서 이런 불합리해 보이는 [무조건] 반대 내지 혐오의 정서가 공유되고 있는 현실 저변에 깔려 있는 메시지는 과연 무엇일까요?

증거가 나오면 나오는 대로 법에 따라 처리하면 될 것입니다만, 논리적인 증거의 유무나 합리적인 의심 수준을 뛰어넘어서 [막무가내로] 격앙되는 이런 원초적인 정서 중의 하나가 바로 심각한 트라우마에서 비롯된 피해의식과 그에 대한 보상심리 내지 방어기제로 작동하게 되는 미움 혹은 혐오감일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미움과 혐오감은 조국 장관 개인을 향한 것이라기보다는 태생적 내지 구조적인 불평등 또는 불공정에서 오는 뿌리 깊은 위화감과 좌절감에 기인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말하자면 구조적인 불평등 내지 불공정에서 나온 억울함과 그에 따른 분노가 논리로는 다 설명될 수 없는 반감을 불러일으킨 것이 아닐까 합니다. 설사 팩트가 아니라 해도 심지어 누군가를 [부당하게] 희생양으로 삼아서라도 좀 분출해 보고 또 전달하고 호소해 보고 싶은 뿌리 깊은 아픔이자 원초적 슬픔의 정서가 오랜 세월 기울어진 위계구조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며 감내해야 했던 우리 [보통] 국민들 마음 한켠에 여전히 울분으로 쌓여 있는 게 아닐까요?!

말하자면, 만일 근거 없는 분노와 혐오의 정서를 조국 장관과 그의 가족에게 쏟아 놓는다면 개인으로서 조국 가족에게는 미안하고 부당하기 짝이 없는 일로 여겨지겠지만, 공인으로서 태생적으로 특권층에 속한다 할 수 있는 법무장관 후보자를 향해서는 일단 반대를 위한 반대라도 [시원하게 한 번] 해 보고 싶은 것이 한 달 넘게 이어지고 있는 조국 정국의 [정서적인] 본질이 아니었을까요?! 한 마디로, 더 이상 "개천에서 용이 날 수 없는" 위계 구조의 벽으로 인한 좌절과 상대적인 박탈감을 내재화한 채로 묵묵히 버틸 수밖에 없었던 태반의 한국인 '평민'들이 언뜻 불합리하게 보이는 반감 내지 혐오감 나아가서 적대감의 정서를 "강남"과 "일류"로 대변되는 특권층을 향해 표출해 볼 수 있는 계기가 [오비이락으로] 조국 청문회를 통해 마련된 것이 아닌가 합니다.

물론 조국 장관이 거듭 고개를 숙이며 미안한 마음을 전하고자 했듯이 그와 그의 가족이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소위 가진 자 계층에 속해 있었기에 상대적으로 가지지 못한 자들이 언감생심 누릴 수 없었던 특권들을 누렸던 것이 사실입니다. 아마도 조 장관의 거듭된 사과는 그런 특권들을 [특별한] 비판 의식 없이 당연한 것처럼 누려온 것에 대한 것이었으리라 짐작됩니다. 이는 결코 [현행법상으로] 불법이거나 부도덕한 것은 아니라 해도, 우리 사회가 이미 구조적으로 가진 자들을 더 우월하거나 특별한 사람으로 대우하도록 짜여져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던 만큼 [상대적으로], 1) 개인적으로는 가지지 못한 자들에 대한 미안한 마음을, 그리고 2) 구조적으로는 뭔가 개선의 절박성을 절감하고 있[었]어야만 만인에게 공정한 법질서를 세우고 법적 권위 기구의 개혁을 수행해야 하는 지도자로서 최소한의 자격을 갖추었다 할 수 있지 않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여느 총선이나 대선 과정과도 비교할 수 없는 지대한 관심의 초점이 되고 편파적인 뉴스와 가십이 난무하게 된 것은 바로 이런 계층 간의 반감 내지 위화감에 의해 촉발된 것이 아닌가 합니다.

해서, 비록 표적이 된 조국 법무부 장관(과 가족)으로서는 상대적으로 억울한 측면이 많겠지만, 그동안 정치-경제적인 포지션과 힘을 가지고 도리어 자신들의 기득권과 특권을 더욱 강화하는 쪽으로 악용해 오던 여타의 인물들이 국민들에게 안겨 주었던 실망감과 배신감이 얼마나 절절하였던가를 헤아려 볼 수 있는 도전의 호기로 이해해 줄 것을 당부하고 싶습니다. 그리하여 우리 헌정사의 이 시점에서 법무부 장관의 직임이 그만큼 더 막중한 시대적 과업을 감당해야할 자리임을 여실히 자각하는 계기가 되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그리만 된다면 불필요한 논쟁을 하느라 아까운 시간을 낭비하고 말았다는 일방적인 평가와 우리나라 민주주의가 가야할 길이 아직도 멀었으며, 검찰과 언론 그리고 야당 정치판은 물론 우리 국민들의 의식 수준이 아직은 후진성을 면치 못하고 있다고 하는 허탈감에서 조금은 더 자유로울 수 있지 않겠습니까?

물론 SNS시대의 인사 검증 절차의 합리성과 공정성, 그리고 언론의 역할과 기사/정보 처리 기준, 국민들의 의견을 표현하는 방식, 민의를 수렴하는 합리적인 과정 등등에 대한 과제는 과제대로 시간을 두고 업그레이드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후보자 가족이 입게 될 불가피한 상처나 프라이버시 침해를 최소화하는 방식 또한 강구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완벽한 제도적인 장치를 고안하더라도 개인과 구조 사이의 긴장이 완전히 없어질 수는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생존 자체가 삶의 목표요 삶의 자리가 전쟁터일 수밖에 없는 절대 빈곤의 마지노선을 벗어난 이상 서로 서로 헤아려 주고 포용해 주고자 하는 동정심과 자비심으로 서로 덮어주고 감싸줄 수만 있다면 개인차로 인한 위화감은 긴장과 갈등으로 번지기보다 축하까지는 아니더라도 서로 서로 포용해 주고 격려해 주는 동인으로 작용하여 오히려 우리 사회를 훈훈하게 하는 불쏘시개로 활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

조국 장관은 자신이 누렸던 특권과 특혜로 인해 미안해하고, 그런 특권과 특혜를 원천적으로 누릴 수 없었던 일반 대중은 그 미안해함을 [그나마] 다행으로 여겨 이후로 그의 국정 수행력과 헌신을 신뢰해 주고 응원해 줄 수만 있다면 이후로 우리는 성숙한 사회를 향해 더욱 빠르고 큰 걸음을 내 디딜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갈등이 없는 사회가 이상-사회이겠습니다만, 갈등이 있어도 괜찮은 사회 정도는 되어야 사람[사는]-사회, 곧 정의와 자비가 공존하는 성숙한 사회라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여호와께서 원하시는 것은, 오직 공의를 실천하고 자비를 베푸는 가운데 겸손히 그분과 동행하는 것이 아니더냐?"(미 6:8)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1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박응원 2019-09-29 11:04:17
목사가 세상 정치에 기웃거리고 ..
참 할일 없는 목사일세..
우선 자기 자신들이 하나님나라에 얼마나 해로운자들인지 파악이나하고 세상에 떠들던지...
목사란 자격이 성경을 위조해서 써 넣어 만든 자걱 거짓 선지자들임,,,
우선 거짓을 자식들아 세상의 화가 너희에게 있을지어다가 너희에게 해당되는것을 알지어다..
너희들을 향해 글을 쓰려면은 너희의 죄악이 너무나 방대하여 쓸수 없을 정도다...
너희죄를 먼저 회개하라...
부족한자들아...
장님이 눈 뜬자들에게 떠드는 식이며...
똥 묻은자가 겨묻은자에게 떠듬이 합당하냐...
가치없는 자가 떠듬은 가치 없는 글 쓰래기와 같도다...
이에 동조하는 자들도 동일한 죄를 지니는 것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