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인 있나요?
애인 있나요?
  • 최병인
  • 승인 2019.10.05 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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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든’의 그녀, 양수연.
재즈로 창조적 삶을 발명하기 - 재즈 모임 발족.
Walden Pond
Walden Pond

재즈 비평가 양수연,

그녀의 애인은 ‘월든’이다. 그녀는 불쑥 애인 얘기를 꺼내 들었다. 고독을 상징하는 장소로서의 월든을 언급하며. 19세기 자연주의 작가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가 물욕과 인습을 끊고 칩거의 실험을 했던 그 월든 폰드(Walden Pond) 말이다.

그녀는 세상이 집적거릴 때마다 “애인 있어요.”라고 선수를 친다. 일종의 선언이다. 소로우의 월든처럼 우월한 애인. 이런 커밍아웃은 고독한 자만이 창조의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믿음에서 나오는 선언일테다. 저널리스트, 재즈 비평가, 편집장, 쉐프…….양수연을 지칭하는 여러 명칭이 월든 안에서 하나로 녹았다.

이제 양수연은 그녀의 전문 분야인 재즈를 통해서 자유로워지며 삶을 행복으로 영유하는 법을 사람들과 나누려고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고독해져야 한다. 재즈는 고독해져야 들을 수 있는 음악이기 때문이다. 고독은 외로움이 아니다. 그녀에게 고독은 의미를 비우는 작업이다. 고독은 가볍게 만들기이며 그럼으로써 공백에 닿는 과정이다. 그녀에게 애인의 실체는 ‘고독’인 것이다. 그녀는 제안한다.

“애인 만드세요. 재즈는 어떠세요?”

 

그녀의 이력서 - 다재다능이라는 불치병.

“더 비워내야죠.”

재즈 비평가 양수연씨
재즈 비평가 양수연씨

 

양수연 씨는 여성 재즈 비평가로는 한국에서 거의 유일하다. 1998년, 순수 음악계에 양수연의 등장은 신선한 사건이었다. 철학과를 졸업한 지 얼마 되지 않았던 그녀가 <재즈 힙스터>라는 재즈 잡지를 창간한 것이었다. 서점에서 유료로 판매되는 한국의 첫 재즈 월간지였다.

재즈라는 음악은 왠지 어렵고 난해해서 대중과는 동떨어진 느낌이 있다. 한국에서는 클래식 음악처럼 제도권 학교 교과로 들어오지 못했던 탓에 직접 찾아 듣지 않으면 받아들이기도 쉽지 않은 음악이었다. 재즈 마니아층이 클래식 마니아층과 겹쳤고 재즈의 자유로움보다 보수적인 시각에서 재즈에 접근하는 경향이 짙었던 시기였다. 이러한 분위기에서 20대 중반의 여성이 재즈 잡지를 낸다는 것은 무척 이례적이었다.

그녀는 이미 중학교때부터 1960년대 재즈의 거장 존 콜트레인과 에릭 돌피를 좋아하는 열혈 재즈 마니아였지만 그녀의 진정성은 젊은 여성이라는 이유로 차감되곤 했다. 보수적인 예술계에서 홀로 분투하는 나날이었다.

재즈 잡지와 재즈 클럽, 공연 기획 등 재즈 문화 사업을 하던 그녀가 2004년 이민 와서는 저널리스트가 되었다. 한인들과 2세들을 위한 한영 이중언어 신문인 ‘코리안 어메리칸 프레스’ 편집장으로 활동했다. 그녀는 뉴아메리카미디어(NAM)가 매년 우수한 기사를 발굴해 시상하는 ‘전미(全美)에스닉 미디어 어워드'를 한인으로는 처음으로 수상하기도 했다. 그녀는 이 상을 내리 2년 연속 받았는데 이것은 미국의 3천여 매체 중에서 우수한 기사를 찾아 시상하는 '올해의 기자상'과 같은 것이었다. 뛰어난 감각으로 품격있는 언론매체를 이끌어갔다.

그녀는 요리에도 큰 열정을 보였다. 보스턴에서 프랑스 요리학교(CSCA)를 나와서 컬리너리 분야에서도 활약했다. 한국에서는 정통 궁중요리를 공부했다. 무형문화재 한복려 씨가 이끄는 (사)궁중음식연구원과 무형문화재 정길자 명인의 (사)궁중병과연구원에서 조선왕조 궁중음식을 전수받았다. 보스턴에서 미국인들에게 한국의 궁중음식을 시연하고 강의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녀만의 개성있는 퓨전 요리를 선보이는 “Sue’s Jazz Kitchen”이라는 캐더링 업체를 설립했다.

양수연은 학구적이다. 엄청난 다독가이기도 하다. 자신을 ‘독립 연구가’라고 부른다. 그녀는 재즈를 탐미하듯이 오랜 세월 동안 칸트, 비트겐슈타인, 니체, 스피노자를 심도있게 연구했고 지금은 프랑스 정신분석학자 자크 라깡에 관한 의미 있는 글을 쓰고 있다.
그러나 다재다능하다는 칭찬에 그녀는 단호하다.

“다재다능은 저에게 불치병이죠. 더 고독해져야함을 말해주는 부끄러운 불치병.”

 
새로운 감각과 삶을 발명하기 위한 재즈 모임을 창안.

양수연의 메세지는 매혹적이다. 그녀는 재즈를 삶으로 끌고나와 재즈의 매력을 외재화시킨다. 재즈의 탐미적인 요소를 도출하여 삶 속에서 재즈를 살아 움직이게 만든다. 재즈를 접하는 청취자에게 예술적인 삶을 살아갈 것을 요청하는 것이다. 그녀에게 예술적인 삶이란 고급 예술품을 갖추어놓거나 많은 음반들을 소유하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자신의 욕망을 긍정하고 향유하며 창조의 삶을 사는 것을 말한다. 이때의 욕망이란 세계가 이미 제시한 것으로써의 물신의 욕망, 소비의 욕망이 아닌 것이다. 이런 욕망은 팔루스의 세계가 제시한 대타자의 것이지 나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인간은 타자의 욕망을 반복하면서 살아가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좋은 집, 좋은 차, 좋은 가전제품….대상만 바뀔 뿐 인간은 끊임없이 물신을 욕망하며 환유의 삶을 살아가는 존재이다. 결코 충족될 수 없기에 욕망이라 부르는 것이며 이러한 욕망은 환상의 도식을 통해서 지속한다.

그렇다면 진정한 욕망이라는 것이 있을까? 양수연은 라깡의 정신분석학적 사유를 적극 음악에 도입한다. 욕망은 실재(The Real)를 향하는 것이다. 재즈는 그 실재의 욕망과 밀접하다고 그녀는 주장한다. 재즈를 통해 공백으로 나아가는 작업. 그럼으로써 ‘주이상스’(고통을 불사하는 쾌락, 너머의 쾌락)를 경험해볼 것을 제시한다.
그녀는 그래서 특별한 재즈 모임을 창안했다. 예술의 힘으로 새롭게 삶을 발명해 나가는 모임. 감각을 개방하고 새로운 귀를 개발할 수 있는 모임. 삶을 창조적으로 바꿀 수 있는 미래지향의 아티스틱한 모임 말이다.
 

 

이하 양수연 씨와 뉴스M(이하 M)과 일문일답

M: 월든의 헨리 소로우가 당신에게 어떤 영감을 주었나요?

양수연: 핑크 플로이드는 그들의 명곡 “Time”에서 헨리 소로우가 처음 사용했던 “조용한 절망(Quiet Desperation)”이란 단어를 사용합니다. 소로우는 <월든>에서 “대부분의 사람은 조용한 절망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이른바 체념은 확인된 절망에 지나지 않는다.”고 썼지요. 이 문장은 저에게 어떤 울림을 줬어요. 인간이 왜 조용한 절망의 삶을 살아갈까요. 소비와 물신은 거짓 욕망을 조장합니다. 타인의 인정에 집착하면서 타인의 욕망을 내 욕망으로 믿고 살아갑니다. 욕망의 본질을 제대로 바라보지 않으면 인간은 소외될 수밖에 없습니다. 소로우는 이것을 극복하기 위해서 월든으로 간 것이지요.
흥미로운 것은 이어지는 문장에서 소로우는 ‘무의식’이라는 단어를 썼습니다. 물론 ‘무의식’이란 말은 18세기 독일 철학자 프리드리히 셸링이 언급했지만 소로우는 지그문트 프로이트가 태어나기 이전에 이 말을 자연스럽게 썼던 거예요. 소로우는 무의식적 절망(unconscious despair)을 말하면서 인간의 유희 속에는 진정한 놀이는 없다고 말합니다. 제가 하고 싶은 말도 바로 이것이거든요. 욕망의 본질을 이해하고 진정한 놀이를 찾자는 것 말입니다.

M: 진정한 놀이, 당신에게는 재즈인가요? 얼마 전에 ‘재즈 주이상스’라는 유튜브 채널도 만드셨지요?

양수연: 네. 주이상스는 쾌락 너머의 쾌락을 지시합니다. 즉흥연주를 골자로 하는 재즈 음악은 그러한 쾌락에 닿게 하는 키가 되는 음악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시 말해서 공백을 향하는 여정인 것이죠. 그 공백이란 상징계 질서 너머에서 등장하는 실재계의 영역에 있는 것이에요. 아무것도 없는 빈 것으로서의 공백이 아닌, 균열을 통해서 드러나는 이해될 수 없는 것으로서의 공백인 것이죠. 월든은 자신의 욕망을 돌아보고 긍정하게 합니다. 재즈는 고독해야 들리는 음악이에요. 월든은 고독을 가르치고 침묵과 공백을 드러내는 세계이죠.

M: 상당한 다독가로 들었습니다. 요즘엔 어떤 책을 읽고 어떤 글을 쓰시나요?

양수연: 매일 사로잡힐 한 개의 문장 내지는 한 개의 단어가 없다면 슬퍼서 견딜 수가 없을 정도입니다. 지난주에는 제가 다니는 교회의 목사님이 설교 중에 ‘밀도’라는 단어를 말씀하셨는데, 그날은 종일 ‘밀도’를 음미했지요. 이런 식입니다. 밀도라는 단어의 의미에 집착하기보다는 밀도, density라는 기표 그 자체를 탐미하는 것이죠. 밀도와 함께 mass(질량)를 연상할 수 있었는데 자연스럽게 또 월든으로 연결이 되더군요. 앞서 말씀드렸던 소로우의 ‘조용한 절망’이 나오는 구절, “The mass of men lead lives of quiet desperation”에서 mass는 ‘대중’이라는 뜻으로 쓰였으니까요. 이렇게 혼자 연어 유희를 즐깁니다. 요즘엔 자크 라캉을 소재로한 책을 쓰고 있어서 라캉의 정신분석 세미나를 많이 읽습니다. 한글로 된 책은 한국라캉칼리지 백상현 교수의 <고독의 매뉴얼>이란 책을 좋아합니다.
참, 영시는 매일 한 편씩 꼭 소리 내어 읽곤 합니다. 저의 은밀한 취미랍니다.

M: 시작하시려는 재즈 모임에서는 어떤 것을 나누게 되나요?

양수연: 새로운 음악을, 오픈 마인드 하면서 듣게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 자아를 뺄셈해야 합니다. 고독의 음악 경험을 공유하고 연결하는 것이지요. 재즈와 인문학이 함께 있는 시간이 될 것입니다.

M: 월든과 같은 자연이 재즈 음악과 어떤 연결고리가 있나요? 재즈는 자연을 닮은 것인가요?

양수연: 저는 자연을 감상적이고 낭만적으로 바라보는 것을 경계합니다. 월든은 삶의 복잡성을 목도하게는 명증의 장치인 것이구요. 월든의 물 위에 떠오르는 삶의 부유물을 관찰할 뿐입니다. 먼저 의미를 떼어내고 가벼워져야 그렇게 부유함으로 띄워볼 수 있겠지요. 그 부유하는 것이란 삶의 숱한 에피소드들, 기쁨과 슬픔과 같은 다양한 감정, 자기 것인 줄 알고 살았던 욕망 같은 것들이죠. 이 부유물 중에서 건질만한 참된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됩니다. 친목의 모임들의 상당수는 그러한 삶의 많은 부유물들을 나누는 것인데, 뒤죽박죽 과잉이 되기에 십상입니다. 그래서 그런 모임은 저에게 맞지 않는 것 같습니다. 저는 그런 모임을 지양합니다.
이번에 기획하는 재즈 모임은 이를테면 월든이라는 물 위에 떠 오르는 참된 것들을 자신의 삶에서 예술화시키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재즈는 그 코어에 있습니다.

M: 재즈에 관한 지식이 있어야 하나요? 초보자들이 참여할 수 있나요?

양수연: 재즈에 대한 지식은 필요없습니다. 아니, 겉도는 지식은 재즈 감상에 오히려 방해될 수 있습니다. 음악 자체에 다가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정보는 부수적인 것입니다.

M: 재즈는 어떤 것을 들어야 하나요? 초보자에게 추천하고 싶은 음악은요?

양수연: 가장 쉬운 방법은 명반 위주로 나온 재즈 가이드를 참고하는 것이지요. 그러나 이것 역시 방대하다 보니 명반 100장, 명반 10장 이런 식으로 추려서 나온 것들을 많이 들으시더군요. 저는 초보자를 위한 음악이 따로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재즈가 초보자용, 매니아용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거든요. 음악 듣기는 자기의 무의식과의 화학적 결합입니다. 다양한 음악을 깊이 있게 경험하여야 어떻게 내 안에서 작동하는지 느낄 수 있습니다. 제일 중요한 것은 어떤 음악을 듣던지 뺄셈을 해랍니다. 에고를 빼세요. 오픈 마인드 하시는 것이지요. 그냥 귀를 기울이고 연주자의 소리를 경험하는 것입니다. 그 소리를 위해 침묵을 내어 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걸 발판 삼아 자신의 삶으로 예술을 끌어오는 것입니다. 자신의 삶에 창조적인 에너지로 삼을 수 있는 그런 음악을 면밀히 찾아 들어야 합니다. 그것은 재즈 가이드 북을 넘어서는 것이고 초보자용, 마니아용이라는 경계 또한 넘어서는 것입니다.
제 유튜브 채널 ‘재즈 주이상스’에 초보자들에게 하고 싶은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앞으로의 모임에서도 주로 논의가 되겠지요.

 

**뉴스M은 재즈비평가 양수연 씨와 함께 삶을 창조적으로 발명할 수 있는 재즈 듣기 모임을 기획합니다. 비공개로 진행될 예정입니다.

모임 문의: 최병인 choi@newsnjoy.us / 전화: 917-648-1199
유튜브 채널: 양수연의 재즈 주이상스: www.youtube.com/c/jazzlad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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