멍든 얼굴로 망치질하는 할아버지 대통령
멍든 얼굴로 망치질하는 할아버지 대통령
  • 신기성
  • 승인 2019.10.22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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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유투브 동영상 캡처
사진 출처: 유투브 동영상 캡처

[뉴스M=신기성 기자] 지난 8일 지미 카터(James Earl Carter, Jr.) 전 미국 대통령이 얼굴에 14발을 꿰맨 부상을 입고도 해비타트 자원봉사에 나왔다는 뉴스가 보도됐다. 그는 만 95세로 전직 대통령 중 가장 장수한 기록을 보유한 사람이기도 하다. 카터는 조지아주 플레인스에 있는 자택에서 주일 아침 교회에 갈 준비를 하다가 넘어져 부상을 당했다. 그날 밤, 얼굴과 눈 주위가 붓고 시커먼 멍이 든 상태로, 상처부위에 큰 반창고를 붙인 채 테네시주 네쉬빌에서 열린 집짓기 봉사활동에 참여했다.

공사 시작 전 행사에서 부인 로잘린 카터와 함께 연단에 선 카터는 애틀란타 브레이브스 야구 모자를 쓴 채 그 날의 야구경기 얘기를 언급하며 밝은 얼굴로 인사했다. 아침의 중한 부상에도 불구하고 테네시주까지 온 이유는 집짓기 봉사활동에 참여하는 것이 가장 큰 우선순위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2015년에 4차례의 항암 치료를 받을 정도의 중기 암으로부터 기적적으로 완치되었고 금년 5월에는 고관절 수술을 받기도 했다. 그 후유증으로 걸음이 불편해 지팡이를 짚고 다니지만 집짓기 봉사활동은 빼 놓지 않고 참석하고 있으며, 주일이면 플레인스에 돌아가 주일학교 교사로 봉사하고 있다. 이번 프로젝트는 12채의 집과 26채의 타운홈을 짓는 공사이며 2021년 완공이 목표다.

카터 부부는 지난 35년간 해비타트를 통한 무주택자 집짓기 봉사활동을 해 왔다. 해비타트는 1976년에 공식적으로 시작 돼, 한국, 인도, 필리핀 등 14개 나라에서 10만 명이 넘는 자원봉사자들이 함께 하고 있다. 가난한 사람들의 집을 짓고 있는 모습에 감동한 카터는 1984년부터 해비타트 자원봉사에 합류했다. 그 이후로 자원봉사단장을 맡아 대규모 단기 건축 공사를 이끌고 있다. 카터가 부상에도 불구하고 참가한 이번 프로젝트는 36번째 공사이다. 카터 부부는 해비타트를 위한 모금활동과 홍보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그는 대통령 재임 중 그다지 인기를 끌지 못했다. 가장 중요하게 지적 받는 부분이 경제와 외교의 실패였다. 카터의 임기 후 제2차 오일쇼크와 함께 심각한 경제 불황이 닥쳤다. 인플레이션이 심화됐고, 실업률이 급등하면서 스태그플레이션을 겪었다. 이상주의 혹은 도덕주의 외교정책 때문에 소련이 아프카니스탄을 침공하는 빌미를 제공했다는 비판도 받았다. 미국의 우방들과의 관계에 균열을 가져왔다는 평가도 받았고, 결국 강한 미국을 주창한 로널드 레이건에 패해 재선에 실패한다. 이란 주재 미국 대사관 인질 사태를 해결하지 못한 것이 재선 실패에 결정적 빌미를 제공했다. 비록 정권교체를 이룩한 후 재선에 실패한 유일한 대통령이라는 오명을 받기는 했지만, 퇴임 후 오히려 존경받는 전직 대통령으로서의 삶을 살고 있다.

카터는 신실한 신앙인으로 유명하다. 3살 때부터 침례교회 주일학교에서 성경구절을 암송했으며, 커서는 주일학교 교사로 가르쳤다. 퇴임 후 세계 어느 곳에 있든지 주일이면 가능한 한 조지아주 플레인스에 있는 마라나타침례교회로 돌아와 주일학교 교사로 섬기곤 했다. 대통령 선거 유세기간 중에도 주일은 교회로 돌아와 성경을 가르쳤다. 심지어 선거 바로 하루 전날도 모든 유세 일정을 취소하고 교사로서의 책무를 다했다. 2015년, 90세의 고령에 뇌와 간에 암세포가 발견돼 투병 중이었을 때도 말씀 전하기를 멈추지 않았다.

그의 신앙은 ‘평화와 인권’을 위한 평생의 노력으로 증명됐다고 평할 수 있다. 95세 생일을 지났지만 여전히 집짓기 봉사활동에 빠지지 않는다. 카터 센터를 통해서는 전 세계를 대상으로 인권과 건강 증진을 위한 프로그램을 펼치고 있다.

건강 증진 프로그램으로는 아프리카 등지에서 6개의 질병을 퇴치하기 위한 노력이 대표적이다. 6대 질병은 종양을 일으키는 기니 벌레, 강에 사는 일부 파리의 기생충을 통해 감염되는 열대 피부병인 사상충증, 눈 질환인 트라코마, 그리고 말라리아 등이다. 센터 예산의 4분의 3 정도를 질병퇴치를 위해서 사용한다고 한다.

인권이 보장되지 않은 나라의 시민운동가 등을 카터 센터로 초청해 포럼을 열어 세계에 알리고, 여성 차별과 탄압에 반대하며, 유엔 인권위원회의 활동에 긴밀히 협력하고 있다. 국제사법재판위원회와 함께 고문 근절과 인권 탄압에 맞서고 있다. 여성 인권 증진을 위한 온라인 포럼을 운영하고 있기도 하다. 인권 보장을 위해서는 민주적 선거에 따른 지도자 선출이 중요하다는 인식 아래, 세계 39개국에서 실시되는 109개 선거를 감사하며, 선거가 공정하게 치러지도록 돕고 있다.

2002년 이런 공로를 인정받아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다. 노벨위원회는 카터를 “기아와 빈곤 퇴치, 평화와 인권·민주주의 수호를 위해 노력해 온 인물”로 평했다.

대통령이 되기까지

부친 사망 후 가계를 이어받기 위해 해군을 전역하고 고향에 돌아와 교육위원과 주 상원을 지내며 공직생활을 시작한다. 1966년에 주지사 선거에 나섰지만 고배를 마시고 낙담한 그는 위로를 찾아 교회에 나간다.

이즈음 “만약 당신이 그리스도인이라는 이유로 체포 된다면, 당신에게 기소될 만한 충분한 증거가 있습니까?”라는 제목의 설교를 듣고 도전을 받는다. 그 이후로 그리스도와 다른 사람들을 섬기는 것을 삶의 우선순위에 두고 살기로 한다. 성경을 새로운 관점을 가지고 읽기 시작했다.

두 번째 도전 만에 1970년 주지사 선거에서 당선된다. 주지사 취임식에서 당시로서는 거의 혁명적인 연설을 한 것으로 유명하다: “이제 인종 차별을 끝낼 때가 되었습니다.” 당시까지만 해도 조지아주는 인종 분리정책이 여전히 남아있어 학교 통학 버스도 구분되어 있었고 흑인 학생들이 타는 버스는 앞에 검정 표시를 해 두어야 했다. 그는 주정부에 흑인과 여성을 기용함으로써 전국적인 주목을 받게 되고, ‘새로운 남부’와 ‘훌륭한 정부의 상징’으로써 타임 매거진 표지를 장식했다.

1974년 주지사 임기가 끝나기 직전 그는 또 한 번 주변을 놀라게 한다.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나서겠다고 발표했기 때문이다. 대통령 선거에 필요한 조직이나 지명도도 전혀 없이 선거에 나가겠다고 선언했다. 누가 봐도 불가능한 일에 도전하기로 결심한 것이다.

워터게이트 충격이 아직 가시지 않았던 당시에, 무명의 카터는 다음 발언으로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시작했다: “나는 결코 거짓말을 하지 않겠습니다. 나는 결코 국민들을 호도하는 성명을 발표하지 않겠습니다. 나는 여러분이 저에 대해 갖고 있는 믿음을 결코 배신하지 않을 것입니다.” 1976년 선거 유세에서 “내가 만약 대통령에 당선된다면, 미국의 미래에 영향을 미칠 모든 결정에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구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선거 구호는 카터의 평생 좌우명 “왜 최선을 다하지 않았는가?”였다. 한 사람의 신앙인으로서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데에도 ‘최선을 다하겠다’는 다짐이다. 선거 구호로 이 문구를 내세운 이유는 미국과 미국인의 잃어버린 도덕적 가치를 회복시키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는 뜻이 있었기 때문이다.

신앙으로 수행한 대통령직

제 39대 대통령 취임식에서 평화와 정의의 추구, 핵무기 감축, 환경 문제, 인권 신장 등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여기고 중점적으로 다루겠다고 선언했다. 이 연설에서 미가서 6:8 말씀 중 “오직 공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란 부분을 인용했다.

대통령직을 수행할 때, 워싱턴 DC.에 있는 제일침례교회나 국내외 다른 교회에서 예배를 드렸으며 정치적인 주요 사안들에 관해 하나님의 인도를 바라는 기도에 의지해 왔다고 말했다. 그가 기도할 때면 다음의 세 가지 질문을 했다고 한다: “나의 목적이 올바른가?”;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나의 도덕적 기준에, 나의 기독교인으로서의 신앙에, 그리고 나의 현재 위치에 비추어 올바른 것인가?”; “내가 가진 여러 대안들을 고려할 때, 나는 최선을 다했는가?”

성경은 가난, 고통, 착취, 차별을 없애고 평화와 인권 증진을 촉구한다고 믿었다. 따라서 정치적 결정을 내릴 때에도 성경의 가르침이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국내 정책의 기본 방향을 국제관계에도 동일하게 적용했는데, 그는 미국이 “기독교의 윤리 기준”에 충실했을 때 국제 관계는 약해진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강해졌다고 주장했다. 심지어 미국은 다른 나라 시민들의 최선을 위해서 일해야 한다고 선언했다.

카터는 국제 관계에 있어서 필수적인 ‘다섯 가지 근본적인 원리’를 발표했다: 인권 증진, 민주 국가들 사이의 연대 강화, 전략적 무기 개발 중지, 중동에서의 장기적이고 포괄적인 평화 추구, 그리고 핵무기와 재래식 무기 확산 방지이다.

그에게 있어서 평화는 단지 전쟁이 그친 상태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국제적인 테러를 끝내고 인권을 증진하기 위한 전 세계적인 노력을 멈추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성서는 인간의 존엄성을 긍정하고, 개인의 양심과 인내를 존중하며, 억압받는 자를 돕고, 각 나라가 서로 다른 이데올로기에도 불구하고 평화롭게 공존하기를 권장한다고 확신했다.

카터의 신앙과 그 신앙에 기초한 윤리는 그의 외교 정책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파나마 운하를 파나마인들에게 돌려준 사건과 이집트와 이스라엘의 평화 협정을 맺도록 한 일을 예로 들 수 있겠다. 그는 대다수 정적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파나마 운하를 그들에게 돌려주는 것이 라틴 아메리카에서 반미감정을 줄이고 긴장을 완화해 미국의 무역과 외교 정책에 유리할 것이라고 판단했다. 동시에 초강대국 미국이 주변 약소국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보여주기 원했다. 주변 나라들과의 “상호 존중과 파트너십”을 중요한 외교정책의 기조로 삼았다. 라틴 아메리카를 대하는 카터의 정책은 과거의 실수를 인정하고 바로 잡는 회개와 개혁의 철학에 기초해 있다. 또한 누가복음 12:48(“무릇 많이 받은 자에게는 많이 찾을 것이요 많이 맡은 자에게는 많이 달라 할 것이니라”)을 인용해 미국의 풍부한 천연자원과 자연환경을 세계를 돕는데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1994년에는 북한을 방문하여 한반도를 전쟁위기에서 구하는 데에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재임 중 아틀랜타 시장 출신인 흑인 앤드류 영을 유엔 미국 대사로 임명하는 등 여성과 소수계를 등용했던 대통령으로 기억되고 있다.

평양을 방문해 김일성 주석과의 회담을 통해 한반도를 전쟁 위기에서 구했다(사진 출처: The Carter Center).
평양을 방문해 김일성 주석과의 회담을 통해 한반도를 전쟁 위기에서 구했다(사진 출처: The Carter Center).

불의에 대한 저항은 신앙인의 의무

모태신앙으로서 어려서부터 남침례교회 주일학교에 꾸준히 출석하며 11살 때 신앙고백을 하고 세례를 받았다. 1958년에는 교단 총회에서 평신도 설교가로 임명을 받기도 했다.

그의 신앙은 기본적으로 남부 복음주의자들의 영향을 받았지만 지적인 영향은 이들을 뛰어 넘는다. 자신이 라인홀드 니버, 디트리히 본회퍼, 칼 바르트, 죄렌 키에르케고르, 마틴 부버, 그리고 한스 큉 등으로부터 중요한 영감을 받았다고 했다.

카터는 자신의 신앙이 그의 모든 생각과 행동에 영향을 미쳤으며 대통령직을 수행하는 것조차 신앙과 분리해서 생각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또한 기독교인이라면 정치를 포함한 모든 공적인 삶에 자신의 신앙을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치권력의 심장부를 향해 하나님의 심판을 부르짖었던 이사야와 예레미야를 예로 들어, 개인의 종교적 삶은 정치에 대한 관심과 참여까지 포함해야 한다는 소신을 밝히기도 했다. 니버의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의 영향을 받아, 각 개인은 ‘온전한 아가페 사랑’을 실천하도록 요구되는 반면 국가는 ‘마땅한 정의를 추구’할 의무를 가진다고 이해했다. 개인의 정치 참여와 사랑이 국가 차원의 정의로 순환되어야 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카터는 정치 이해에 관해서 니버를 “정치의 바이블”이라고 불렀다.

카터는 약자, 가난한 사람들, 그리고 소수자들의 인권보호를 위해 평생을 바쳐왔다. 그가 60여 년 동안 몸담았던 남침례교를 떠난 것도 교단의 여성차별 정책에 반대했기 때문이다. 2009년 고통스럽고 힘든 결정이라고 말하며 남침례교를 떠나는 이유를 발표한 적이 있다. 그는 이 글에서 남침례교의 성차별을 견딜 수 없었다고 분명하게 선언했다.

남침례교는 원죄의 책임이 이브에게 있으며, 여성은 교회나 교계 단체의 지도자가 될 수도 없고, 남편에게 복종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그는 그 가르침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했다. 기독교뿐만 아니라 다른 여러 종교에서도 여성이 남성보다 열등하다고 가르친다고 비판했다.

카터는 성차별은 단순히 남성에 의한 여성의 억압과 차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노예 제도, 여성을 향한 폭력, 매춘, 강간 등을 용인하고 정당화 한다고 지적했다. 여성을 차별하는 것은 인류의 절반을 차별하는 자멸의 길이라는 소신을 갖고 있다. 여성들에게 보다 나은 교육 기회와 의료 서비스가 제공된다면, 인류 전체의 공존에 큰 공헌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초대교회에서는 여성들이 집사, 감독, 사도, 교사, 선지자 등의 역할을 했고, 교회 리더십이 남성들만의 전유물이 된 것은 4세기 이후라고 주장했다.

구원론에 관해서는 배타적인 독선을 거부한다. 인간은 어느 누구도 타인의 구원에 관해서 말할 권한이 없고 개인의 구원여부는 오직 하나님만이 아시는 영역이라고 여긴다. 2017년 부활주일 이후 뉴욕 타임즈와 가진 인터뷰에서 ‘간디’와 같은 비기독교인의 구원문제에 관해 질문을 받자 “나는 (그를) 심판할 자격이 없다. 다만, 그가 지옥에 있을 것 같지는 않다고 생각한다”고 대답했다.

예수의 동정녀 마리아 탄생과 육체적 부활은 믿지만 젊은 지구론과 6일 동안의 우주 창조론은 믿지 않는다고 언급했다. 자신과 신앙관이 다른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판단’하지 말라고 하는 것이 예수의 가르침이며, 자신은 평생 그 가르침을 따라 살려고 노력했다고 말했다. 로버트 제프리스 목사같은 보수 기독교인은, 간디는 지옥에 있으며 카터가 사람들을 지옥으로 이끌고 있다는 비난을 하기도 했다.

카터는 민족주의도 경계한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미국이 인권을 만든 것이 아니다. 사실 그 반대다. 인권이 미국을 만들어 냈다. 우리 자신에게 진실하기 위해서, 우리는 타인들에게 진실해야만 한다.” 인류의 보편적 가치와 인권보다 국익을 우선시하는 현 정치 지도자들이 귀담아 들어야 할 문구이다.

지난 해 11월에 열린 연합감리교회 세계선교부가 주최한 “한반도 평화를 위한 원탁회담”에서 연설을 통해 한반도 평화 문제에 깊은 관심을 표명했다. 그는 한반도 평화 문제는 정치권에만 의존할 것이 아니라 교회의 중요한 사명으로 여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전 세계의 많은 감리교회와 세계교회협의회가 한반도 평화와 북미간 평화를 위해 일하는 것보다 더 가치 있는 일은 없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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