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성교회 세습 반대에 머물지 않는다
명성교회 세습 반대에 머물지 않는다
  • 강태우 기자
  • 승인 2019.11.22 10: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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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장통합, 한국교회 갱신과 회복을 위한 신앙고백 모임 출발

[뉴스 M=강태우 기자] 11월 26일 저녁 7시 장신대 세계교회협력센터 국제회의장에서 ‘제104회 총회 결의에 대한 신학적·목회적 성찰’ 세미나가 열린다. 2017년 명성교회의 김삼환·김하나 목사의 부자 세습 이후로 세습을 반대하는 집회는 많았지만, 세습 문제를 신학적·목회적으로 성찰하는 시간이라 눈길을 끈다.

11월 26일 저녁 7시 장신대 세계교회협력센터 국제회의장에서 ‘한국교회 갱신과 회복을 위한 신앙고백’ 모임이 주최하는 ‘제104회 총회 결의에 대한 신학적, 목회적 성찰’ 세미나가 열린다.
11월 26일 저녁 7시 장신대 세계교회협력센터 국제회의장에서 ‘한국교회 갱신과 회복을 위한 신앙고백’ 모임이 주최하는 ‘제104회 총회 결의에 대한 신학적, 목회적 성찰’ 세미나가 열린다.

임희국 교수(장신대 교회사)가 ‘총회 결의의 신학적 의미와 과제’, 고형진 목사(강남동산교회)가 ‘총회 결의의 목회적 의미와 과제’, 정재훈 변호사(CLF 기독법률가회)가 ‘총회 결의의 법률적 문제 진단과 과제’, 박은호 목사(정릉교회)가 ‘명성교회 세습 철회를 위한 향후 대응의 방향과 과제’라는 주제로 발표한다.

세미나 준비위원장 박은호 목사는 “104회 총회는 잘못된 결의를 했다. 악인의 꾀가 난무하고, 배후에 악한 세력들이 작동한 결과이다. 제104회 총회를 기점으로 명성을 지지하는 세력이 주류가 되고 명성을 반대하는 세력이 비주류가 되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결국 예장통합도 명성 맘모니즘이 주류가 되었다.

본질적으로 명성교회 문제로 투쟁하려고 하는 모임이나 세미나가 아니다. 다만 명성교회 문제가 통합 교단의 많은 문제의 상징적인 표상이고 이 문제를 우리가 벗어날 수 없다. 그러므로 세습 문제를 다루지 않을 수 없다.

예수 그리스도가 교회의 주인이신데, 세습은 공교회를 무너뜨리며 교회의 머리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짓밟는 행위다. 이런 상황에서 교회의 본질을 회복하려는 뜻있는 목사들이 가만히 있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여 자연스럽게 뜻이 모였다”라고 했다.

이날 행사는 ‘한국교회 갱신과 회복을 위한 신앙고백’ 모임이 주최한다. 이번 세미나를 공개적인 출발점 삼아 뭔가 새로운 운동을 일으키려는 것이다.

20여 명의 목회자들이 교회 갱신과 회복을 주제로 몇 차례 모임을 가졌다. 이번 세미나 이후에는 12월 9일 오후 7시에 안동교회(황영태)에서 ‘참회 기도회’를 열 계획이다. 서울, 수도권의 담임목사 200명을 초대할 계획이다. 목사뿐만 아니라 신학생, 성도들에게도 개방되어 있다.
 

‘한국교회 갱신과 회복을 위한 신앙고백’ 모임의 준비위원장이신 박은호 목사(정릉교회 담임)
‘한국교회 갱신과 회복을 위한 신앙고백’ 모임의 준비위원장이신 박은호 목사(정릉교회 담임)

박 목사는 “근원적으로 개혁교회의 정체성과 본질을 회복하려는 운동이다. 명성교회 문제는 단지 우리 모임이 넘어설 하나의 과정이다. 종교개혁 역사에서 1517년 11월 1일은 알브레히트의 면죄부 판매원인 도미니크회의 수도사인 테첼이 설교하는 것으로 예정되어 있었다. 하루 전날 10월 31일 루터가 95개조 반박문을 비텐베르크 성교회에 게시했다. 이것은 로마교회의 잘못에 대한 지적이기도 하지만 교회 개혁의 의미를 내포한다. 나치 시대에 기독교인들과 교회가 ‘Hi 히틀러’라며 그를 예배했다. 히틀러에 반대하여 디트리히 본회퍼 목사나 칼 바르트가 독일 고백교회 운동을 시작했다.

그런 맥락에서 이제 한국교회를 위한 전통의 교회 운동을 하고자 한다. 정치하는 사람들이 교회 문제를 이야기할 것이 아니라 교회 운동, 교회 신앙고백 운동을 하자는 의미로 시작했다. 어떤 점에서 주님 오실 때까지 끝없이 우리가 준비하는 신앙고백 운동과 같은 모임을 해나가야 한다”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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