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이 진실을 압도하는 시대에 요구되는 덕목
거짓이 진실을 압도하는 시대에 요구되는 덕목
  • 권영석
  • 승인 2019.11.26 1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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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석 목사 기고

‘가족 인질극인가?, 아니면 ‘가족 사기단인가?’ 조국 일가에 대한 수사가 아직도 마무리되지 않고 있는 가운데 이런 상극의 두 프레임은 여전히 샅바 싸움을 하고 있습니다. 만일 검찰이 포착한 혐의들이 팩트에 근거한 것이라면 조국 일가는 온 가족이 다 그야말로 사기꾼들인 셈이며, 그렇지 않고 만일 조국 가족이 주장하듯이 법무부 장관 후보에서 낙마시키기 위한 정치적인 이유로 온 가족을 먼지 털듯이 하여 범죄 혐의를 덧씌운 것이라면 조국 전 장관 가족은 무고하고 불쌍하게도 정치적 희생물이자 '검찰 공화국'의 인질이 된 셈이라 하겠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희대의 사기꾼인가?’, 아니면 ‘국익을 위한 뛰어난 장사꾼인가?’ 미국의 경우, ‘트럼프 대통령의 탄핵 아젠다는 민주당의 당리당략을 위한 정치적 꼼수인가?’ 아니면 ‘탄핵을 해도 벌써 했어야만 했던 대통령의 중대한 범죄인가?’ 하는 논쟁이 국내외에 흥미진진한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만일 전자라면 하원의 다수 의석을 차지하고 있는 민주당이 탄핵권을 이용하여 차기 대선 국면을 유리하게 이끌기 위해 무고한 트럼프 대통령을 흔들려는 수작 내지 조작 사건이 되겠지만, 만일 후자라면 제왕적 대통령이 자신의 재집권을 위해 무소불위의 권력을 방자하게 휘두르다가 결국 중대 범죄를 저지른 것으로서 민주공화국에서는 결코 용납되어서는 안 될 일일 것입니다.

2+2=4의 논리는 초등학생에게나 대학원생에게나 매한가지인 불변의 원칙이라 하겠습니다. 어떤 진술이든 동일한 사건에 대한 진술이 진실에 입각한 팩트이면서 또 동시에 팩트에 근거하지 않은 거짓말일 수는 없으며, 둘 중의 하나일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어떤 사건이나 팩트에 대한 평가나 해석의 차이는 있겠지만, 어떤 진술 자체가 진실도 되고 동시에 거짓도 될 수는 없으며, 어떤 팩트가 실제로 일어났을 수도 있고 또 일어나지 않았을 수도 있다는 것은 논리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오늘날 '정치적인 진실' 내지 '정치적인 사건'이라는 미명 하에, 진실이 거짓이 되고 반대로 거짓이 진실이 되는 이상한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지나간 사건의 팩트 자체를 밝히는 데에는 생각보다 긴 시간이 과 인내가 필요할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인내는 ‘빨리빨리’의 실존을 살아내야 하는 현대인에게 참을 수 없는 미덕으로, 결국 성급함과 예단으로 치닫거나 섣부른 편견을 형성하는 안타깝고 씁쓸한 현실을 만들어 냅니다. 나아가 혼란과 갈등이 더욱 증폭되어 한 사회나 국가 전체를 돌이킬 수 없는 파국으로 몰고 가는 엄청난 파괴력을 행사하는 심각한 지경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사실 조국 정국으로 인한 에너지 낭비는 계산이 불가능할 정도로 어마어마하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서초동과 광화문에 모인 사람들이 '허비한' 아까운 시간만 따져 봐도 그렇습니다. 나아가 정치권과 언론은 물론 온 국민 전체가 수개월 째 조국 사태에 매달려 있었으니, 이를 사회적 비용으로 환산해 본다면 아마도 상상을 초월하는 손실이었다 하겠습니다. 미국도 매한가지로 뮬러 보고서를 둘러싼 공방만 해도 이미 한계를 넘어선 셈인데, 우크라이나 사태 후로 급진전한 탄핵 국면은 향후 수개월이나 내년 대선 끝날 때까지 일 년 넘게 미국 전체를 혼란과 갈등의 소용돌이로 밀어 넣을 것입니다.

첨단 문명을 발전시키고 가장 발전된 정치 제도를 갖추었다는 민주 사회에서 살아가는 현대인이 도리어 어떻게 이렇게 어리석어진 걸까요? 무엇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요? 그리고 이 지경이 벌어진 데에 대한 책임은 과연 누가 져야 할까요?

하긴 고국의 경우, 생각해 보면 좁은 한반도 그것도 반 토막 난 이 땅에서 무슨 건수가 있을 때마다 정치권은 물론 온 국민이 양극화되어서 심각한 대결 양상을 보여 왔던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었습니다. 걸핏하면 한쪽에서는 전가의 보도라도 되는 양 '빨갱이' 또는 "좌빨"이란 딱지를 꺼내 들고, 다른 쪽에서는 또 수구꼴통이라는 방패를 잽싸게 들어올려야 했던 것이 분단 한국의 현대사였다 할 것입니다.

임시 정부를 차치한다 해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지도 이제는 어언 70년이 넘었으니 절대 짧지 않은 세월을 흘려보냈다 하겠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이런 상극적인 정서에 기반한 양극의 프레임이 마치 무슨 대단한 사관(史觀)이라도 되는 것처럼 양립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우리 역사는 통합된 가치도 일관성 있는 방향도 없이 상호 비방과 반목을 반복하면서 질곡의 세월을 그저 살아남기 위해 표류해 온 역사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경제적으로는 먹고 살 만한 나라, 짧은 시간에 절대 빈곤을 벗어난 나라, 한강의 기적을 이룬 나라로 일면 세계인의 호기심과 부러움을 자극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에 비해 우리 사회의 품격이나 국민 개개인의 의식 수준은 여전히 이런 상극적 정서 프레임에 갇힌 채, 더 발전도 진전도 할 수 없는 고착 상태가 된 게 아닐까 싶습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어떻게 한쪽에서는 가족 전체가 사기꾼으로 구성된 것처럼 검찰 발 뉴스들을 퍼 나르는 데에 온 에너지를 집중시키고 있고, 다른 한쪽에서는 검찰이 정치적인 목적으로 '가족 인질극'을 벌이고 있다고 하는 시각을 고수한 채로 적대적인 대결 구도를 몇 달째 그대로 견지할 수가 있겠습니까? 광화문과 서초동 모두 다 우리 땅이며, 그곳에 모인 사람들 역시 다 한 겨레일 텐데, 대체 어디에서 무엇이 엇나가게 된 것일까요?!

미국의 경우는 더더욱 이해할 수 있는 여지가 없는 이상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해야 할 것입니다. 속설에 트럼프 대통령 자신도 당선 소식을 의심했다 하니 선출 자체부터 기현상이 벌어진 셈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그의 신뢰도는 콘크리트 지지층을 빼고 나면, 그야말로 콩으로 메주를 쑨다 해도 믿을 수 없는 지경까지 바닥을 치고 있다 하겠습니다. 인제 와서 더욱 확연해진 사실이긴 합니다만, 어떻게 이런 희대의 거짓말쟁이자 사이코패스로 보이는 인물이 세계인이 부러워하는 미합중국의 대통령으로 선출될 수 있었던 것인지 첨단 민주주의 시스템을 자부하는 미국인의 망신이자 국가 전체의 수치가 아닐 수 없을 것입니다.

밀어붙이기식 '모르쇠'와 버티기로 일관하여 온 트럼프 군단은 뮬러 청문회까지는 간신히 넘겼습니다. 하지만 결국 우크라이나 사태로 덜미를 잡히면서 트럼프 행정부는 닉슨 대통령보다 더욱 심각한 정치적 꼼수를 시도했던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는 것이 작금의 워싱턴 정가의 진풍경이라 하겠습니다. 우크라이나의 절박한 군사적인 원조를, 그것도 국민이 낸 예산으로 하도록 이미 국회에서 승인까지 떨어진 것을, 해주는 대가(Quid pro Quo)로 차기 대선의 유력한 주자인 조 바이든에게 치명상을 입힐 기회로 공개적인 수사 언급을 은밀히 주문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대통령이 자신의 권력과 지위를 남용하여 뇌물과 협박 효과를 극대화한 것이 아니면 무엇이겠냐 하는 것입니다. 이런 것이 아니라면 대체 뭐가 탄핵의 대상이겠냐 하는 목소리들이 나오는 것을 보면 아마도 이번에는 그냥 덮고 넘어가지는 못할 것 같습니다. 탄핵 인용까지는 성공을 거둘 수 없다 하여도, 아마도 내년 대선에서 정권교체는 불가피해 보입니다.

하긴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현재 당면한 과정에서 떳떳하게 반응하지 않는다면 결국 나중에 돌이켜 보면 후회하게 될 것입니다. 또 현재 용기 있게 반응한 결과가 결국 의미 있는 변화를 야기하게 될 것이기에, 민주당으로서는 소위 당리당략에 집착한다고 하는 비난을 감수하더라도 탄핵 발의 말고는 달리 대안이 없어 보입니다. 이는 아마도 조국 일가가 혼신을 다해 묵비권을 행사해 가면서 묵묵히 버티고 있는 상황과도 유사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단기적으로는 어떨지 몰라도 시간이 지날수록 결국 관건은 사람의 마음에 달려있다 할 것입니다. 진실이란 결국에 가서는 말이나 논리의 문제가 아니라 사람의 됨됨이에 따라 판가름 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청문회에 증인으로 나온 사람들이 트럼프 대통령이나 그 예하의 예스맨들보다 더욱 믿음이 가는 것은, 말의 수사력이나 논리력 때문이 아니라 그들의 성실한 정치 및 관료 경력이 뒷받침하듯이 신실한 애국심이 그들의 증언에 베어져 나오기 때문일 것입니다.

아마도 검찰과 조국 가족의 대결 국면 역시도, 비록 검찰이 갑에 해당하는 모든 힘과 지위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수사가 이리도 지지부진한 채 소모전을 벌이게 된 데는, 그 숨은 동기와 진정성 면에서 조국 전 장관의 동기와 진정성을 능가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추측해 봅니다.

참으로 아이러니라 할 수밖에 없는 것이 있습니다. 뒤가 구린 사람들이 자신의 잘못을 바로 인정하게 되면 그 사건에 대한 만큼만 치르면 되지만, 그 구린 것을 은폐하느라고 고생 고생하다가 결국에 가서는 위선과 위증의 '구린내'까지 얹어서 그 수치를 감당해야 하는 어리석음을 자초한다는 사실입니다. 물론 위선과 위증에 어느 정도 자신이 있다고 스스로 과대평가하거나 구조적이고 위계적으로 막강한 권한을 지니고 있다는 오만함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겠지만, 결국에 가서는 발가벗겨지는 수치와 몰락으로 귀결되는 것이 어쩌면 악의 본색이며 불의와 거짓이 떨쳐버리지 못하는 속성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다만 이런 결말과 종말이 오기까지 시차를 견뎌내기 위해서는 인내가 필요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인내를 힘들게 하는 요인으로 두 가지 대표적인 장애물을 생각해 볼 수 있겠습니다. 하나는 현대인들의 조급증입니다. 모두가 고성능 컴퓨터를 호주머니나 핸드백에 넣고 다니는 SNS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조금만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언제 어디서든 실시간 검색과 소통이 가능하다 보니, 소위 가짜뉴스들과 노이지 뉴스가 뒤범벅된 상황에서 분별력을 키우기란 도리어 더욱더 쉽지 않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분별이 쉽지 않은 상황에서는 다수가 손쉽게 편견을 형성하거나 진영논리를 좇는 경향으로, 여론을 교란하기가 그만큼 쉬워지게 됩니다.

서초동과 광화문으로 양분된 집회의 모습이 그 단적인 실례라 하겠습니다. 탄핵 찬반을 놓고 민주당 지지자와 공화당 지지자로 완전히 양분된 여론 지형을 형성하고 있는 것 역시 매한가지라 하겠습니다. 편견과 진영 이데올로기를 더 강화하지 않기 위해서는 때로 유보하는 인내와 침묵이 요구된다고 하겠습니다.

다른 하나는 무관심입니다. 개인의 권리와 자유를 중시하는 개인주의 사회는 무관심이라고 하는 무서운 병원균을 배태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습니다. 2+2가 3이면 어떻고 또 5면 어떻냐 하는 태도입니다. 그것이 내 이익과 직결되지 않는 이상 이래도 그만 저래도 그만이라는 것입니다. 정치란 정치 그 자체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결국 너와 나 그리고 우리가 모여서 더 좋은 공동체 더 행복한 사회를 만들어 가기 위해 생겨난 필요일 텐데,  그 중요한 구성원인 너와 내가 빠진다면 정치가 무슨 의미가 있으며 또 어떻게 그 정치가 제 기능을 발휘할 수 있겠습니까?

사실은 이런 무관심을 밑거름으로 하여 부패와 위선 그리고 위장과 과장의 프로파간다와 요식(Show off) 정치가 싹트게 된 것이라 하겠습니다. 광화문 대로에서 '문재인을 죽여야 나라가 바로 선다'라는 망발을 늘어놓아도, 조국 일가에 대한 짜맞추기식 수사가 몇 달째 계속되어도 그야말로 '개는 짖어도 기차는 간다'라는 유아독존 식의 무관심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대치라면 이런 사회나 국가는 오래 갈 수 없습니다. 결국은 이기적 개인주의와 자기 욕심에 사로잡힌 좀비들만 우글대는 폐허로 변하고 말 것입니다.

작금의 지구촌은 분별력 있는 인내, 즉 최소한 분별을 위해 진중하게 인내하는 자세가 그 어느 때보다 요구되는 시대라 하겠습니다. 계급적 왕정 구조를 탈피하는 것까지는 환영할만한 일이었다 하겠으나, 우리는 아직 민주 구조를 제도적 대안으로 정착시키지는 못한 단계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우리 자신이 사회와 국가의 주인이라고 하는 자각이 그다지 철저하지 못한 상태에서 민주주의란 제도적 절차적인 장치를 도입하는 것만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될 수는 없습니다.

피선거권은 더더욱 이거니와 개개인의 선거권을 책임 있게 행사하는 주체성 있는 시민, 분별력과 더불어 진정성 있는 인격이 함양된 시민 사회로 성숙해 갈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트럼프 탄핵 사태와 조국 정국으로 야기한 혼란과 갈등이 진리와 정의에 기반한 미래의 자유 사회를 위한 전화위복의 계기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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