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교회와 마당기도회 합의 기사를 보고 든 생각
사랑의교회와 마당기도회 합의 기사를 보고 든 생각
  • 최태선
  • 승인 2019.12.23 16:29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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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나라 관점으로 바라보는 복음과 세상

“지난 2013년 당시 오정현 사랑의교회 목사에 대한 논문표절, 학력위조 등 언론의 각종 의혹이 불거지자, 교회 내 오 목사에게 사실을 요구했던 일부 교인들과 오정현 목사 측이 대립한 지 7년이 지나, 지난 22일 양측은 오 목사의 공개 사과와 상대방을 겨냥한 법적 소송을 취하한다는 내용의 합의문 초안을 발표했다.”

사랑의교회와 마당기도회 간의 합의가 있었다는 보도가 있었다. 기사내용을 살펴보았다. 역시 실망이다. 아니 절망이다. 나만 이런 생각이 든 것은 아닌 모양이다. 합의가 있었다는 보도를 보고 한 분은 “그것은 타협이 아니라 야합이다.”라고 말했다.

그런데 이런 일이 타협에 의해서 해결될 문제인가. 타협이란 어떤 일을 양보하여 협의하는 것이다. 글쎄다. 교회의 문제가 양보의 문제가 되어서는 안 된다. 교회의 문제는 근본적으로 신뢰의 문제이며 사랑에 관한 문제가 아닌가. 신뢰와 사랑이 회복되기 위해서는 회개가 전제가 되어야 하고 조건 없는 용서가 이루어져야 한다. 그 일은 하나님 앞에 함께 무릎을 꿇는 것이다. 하나님 앞에서 누구의 잘잘못을 따지겠는가 아니면 배상문제를 계산하겠는가. 그럴 수 없다.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는다는 것은 양측이 모두 완연한 허물이 있음을 인정하고 아무런 조건 없이 다시 하나가 되겠다고 선언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기사를 보면 무슨 정당들이 합의하는 것과 같은 행태를 보이고 있다. 그것도 대표성도 없는 사람들의 성급한 결론이라는 생각이 든다. 교회의 문제는 대표들 간의 담합으로 해결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 방식은 이미 자신들이 교회가 아님을 천명하는 것과 같다. 참된 교회의 문제 해결은 대표들 간의 합의가 아니라 지체 전체의 만장일치여야 한다. 만장일치가 안 이루어지는 경우는 그 문제를 놓고 기도해야 한다. 그런 후에 다시 모여 의견을 수렴하고 그때에도 만장일치가 안 이루어지면 다시 기도에 들어가야 한다. 그리고 그런 일을 아무리 반목해도 일치가 안 이루어질 경우는 그 문제를 포기해야 한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의 의사결정 방식이며 하나님 나라의 방식이다. 하나님 나라에서는 아무도 제외되거나 무시되는 경우가 있어서는 안 된다. 모두가 자발적으로 동의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사랑의교회건 마당기도회건 참된 교회라면 하나님 나라의 방식을 따라야 한다.

나는 이 타협에 대한 기사를 보면서 야곱과 에서가 생각났다. 야곱은 많은 대비를 했다. 가축도 두 떼로 나누었고 많은 선물도 준비했고 자식들 역시 나누어 가장 사랑하는 라헬과 요셉은 가장 뒤에 두었다. 에서가 자신을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를 예상한 것이다. 그러나 야곱의 그러한 우려는 기우였다.

“그러자 에서가 달려와서, 그를 끌어안았다. 에서는 두 팔을 벌려, 야곱의 목을 끌어안고서, 입을 맞추고, 둘은 함께 울었다.”

이것이 형제들의 만남이며 화해다. 사랑의교회와 마당기도회의 만남 역시 이러해야 한다. 둘이 함께 끌어안고 우는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지 않는다면 그 어떤 완벽한 타협이나 해결책은 무용지물이 될 것이다. 또 다시 그 합의문을 근거로 소모적인 송사가 이어질 것이다.

더구나 문제의 핵심인 오정현은 이러한 합의문에 아무런 언급도 없었다. 거짓의 대명사인 오정현 목사께서 순수하게 합의문에 기록된 대로 “개인적 부도덕한 행위 및 교회 대표자로서 행한 대사회적 폐단을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이를 사람들이 알도록 언론에 공개 사과”를 하실까. 이제까지의 그의 행보로 보아 그런 일을 상상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는 우병우가 ‘법꾸라지’였듯이 ‘하꾸라지’이다. 모든 걸 하나님께서 떠넘길 것이라는 말이다.

무엇보다 이 일의 중재자로 소강석 목사를 지적했다는 사실이 웃기는 일이다. 오정현 목사가 소강석 목사를 인정하겠는가. 그렇지 않다. 오목사의 눈에 소목사는 그야말로 소에 지나지 않는다. 어디 감히 시골 교회 목사가 강남 한복판에서 목회하는 사람을 지도할 수 있는가. 세계를 주름잡는 사람이 할 일이 아니다. 그는 다만 부총회장이라는 직위를 잠시 이용할 뿐이다.

그러나 내가 소강석 목사를 언급한 것은 이 일의 증인이 하나님이 되셔야 하기 때문이다. 사도 바울은 자신의 증인이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어디서든 강조한다. 그것은 하나님만이 사도 바울의 증인이시고 하나님만이 증인되실 수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것이다. 따라서 사랑의교회와 마당기도회의 증인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 되셔야 한다. 사랑의교회와 마당기도회의 만남은 에서와 야곱처럼 형제들의 만남이 되어야 한다.

에서는 야곱을 만나면 죽일 생각으로 살아왔다. 야곱은 그런 에서를 두려워하며 살았다. 두 쌍둥이 형제의 문제가 사랑의교회와 마당기도회의 문제보다 현실적으로 더 큰 문제가 아니었을까. 그러나 그 둘이 만났을 때 형제애가 그들을 감쌌고 그것은 틀림없이 성령의 역사였을 것이다. 에서와 야곱에게 일어났던 일이 이제 사랑의교회와 마당기도회에도 일어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합의 기사를 보면 생각난 또 다른 것은 대속죄일이 포함되어 있는 유대인들의 나팔절이다.

그들은 새해를 나팔절이라는 절기로 맞이한다. 나팔절은 새 해의 첫 열흘간 이어진다. 그 마지막 날이 대속죄일(욤키프르)이다. 나팔절에는 안식일을 제외하고 매일 세 번 나팔이 울린다. 나팔소리를 듣고 회개해야 할 일들을 생각하고 생각난 것은 그것이 무엇이든 회개를 해야 한다.

그들은 날마다 회개의 기도문을 읽으며 회개를 한다. 자신이 잘못한 일에 대해서는 하나님께 회개한 후에 반드시 잘못한 사람을 찾아가 용서를 구한다. 나팔절 기간 내에 그 일을 해야 한다. 금전적으로 배상할 일이 있으면 율법에 따라 세 배를 배상해야 한다. 그런 배상이 이루어져야 회개한 것으로 간주한다. 그러니까 그들에게 말로만 하는 회개란 없다.

나팔절 기간 동안 회개하지 못한 일은 생명책에 기록되어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다. 물론 회개한 일은 기록되지 않는다. 그들은 자신들의 죄가 영원히 용서받지 못하는 일이 발생되지 않도록 원수 같은 사람도 찾아가 배상을 하고 용서를 구한 후 그런 일이 전혀 없었던 것처럼 새로운 만남과 시간을 가지게 된다. 과거에 있었던 일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지막 날 자정이 지나면 모두 회당으로 모여 예배를 드린다. 용서한 사람들이 모여 함께 예배를 드리는 것으로 자신들의 죄를 완전히 잊는 것이다. 예배가 끝나면 '할라'라고 부르는 빵을 '샤나 토바'(good year)라고 부르는 단지에 담긴 꿀이나 사과잼을 찍어 먹으면서 새해가 그렇게 달콤하기를 기원한다. '할라'빵의 모양은 사다리 모양, 새 모양, 왕관 모양과 같이 특별한 모양으로 만들어졌는데. 사다리는 하늘에 상달되기를 바라는 그들의 마음을 상징하고, 새 모양은 새와 같은 미물들에게도 공급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하기 위함이고, 왕관 모양은 하나님의 영원한 왕 되심을 인정함을 나타낸다.

나는 사랑의교회와 마당기도회의 화해가 유대인들의 나팔절과 같이 진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회개의 과정이 끝난 후에 함께 모여 예배를 드리는 것으로 그들의 새로운 관계가 시작되어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특히 유대인들이 왕관 모양의 빵을 먹는 것처럼 그들도 예배가 끝난 후 성찬식을 거행함으로써 그리스도로 하나되어 하나님의 영원한 왕 되심을 찬양하는 것으로 그들의 화해를 이루어내야 한다고 믿는다.

나팔절의 의미는 용서를 경험한 후 첫 날을 하나님 앞에서 새로운 날로 받아들임으로써 그 날들을 결코 낭비하지 않을 것임을 다짐하는 헌신의 절기이다. 나는 사랑의교회와 마당기도회 분들이 새 해를 유대인의 나팔절과 같이 지내게 되기를 바란다. 그래서 두 곳의 모든 성도들이 모든 삶을 하나님께 드리는 새로운 날들이 되기를 바란다.

이런 회개와 용서가 아니라 미주알고주알 따지는 합의는 하나님 나라의 방식이 아니다. 그런 방식은 스스로 자신들이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의 지체임을 부인하는 행위일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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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기로 2019-12-28 01:16:43
첫째, 글을 올릴만한 정도로 논리적이거나 명증적인 글이 아니고, 둘째, 글의 내용도 화해케 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에서 쓴 것이 아니며, 셋째, 글의 논조도 본인은 대단한 영적, 도덕적 우월감을 가지고 남을 정죄하고 판단하듯이 하고, 넷째, 무엇보다 영의 세계에 대해 완전히 모르는 듯 하다. 이런 글을 올리느니 목사같으면 설교준비 더하고, 글쓰는 사람같으면 공부 좀 더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