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연말이면 죄를 짓는 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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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진민용 기자
  • 승인 2019.12.27 21: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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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세청, 연말정산 앞두고 가짜 기부금 영수증 발급한 종교단체 명단 공개
국세청은 교회가 가짜기부금 영수증 발행에 취약한 점을 악용하는 사례가 많지만, 적은 액수는 국세청 단속을 피하면서 실제 사례는 더 많을 것으로 보고 있다. (그림 편집부합성)
국세청은 교회가 가짜기부금 영수증 발행에 취약한 점을 악용하는 사례가 많지만, 적은 액수는 국세청 단속을 피하면서 실제 사례는 더 많을 것으로 보고 있다. (그림 편집부합성)

 

지난 3, 한창 국세청 연말정산 간소화 시스템으로 직장인들이 소득공제 혜택 정산을 하던 중, 한 커뮤니티 게시판에 글이 올라왔다. 아이디 ‘ya00****’를 쓰고 자신을 30대 주부라고 밝힌 이는 남편이 교회를 다니기는 하지만 십일조와 헌금은 거의 하지 않는다그런데 연말정산 때문에 교회 기부금 영주증이 필요하다며, 나에게 교회에서 1년 동안 약 400만 원 헌금을 한 것으로 꾸며서 받아오라고 요구한다고 했다.

결론적으로 글쓴이는 그 요구를 들어주지 않았고, 남편은 자기와 친한 지인에게 부탁해 결국 다른 작은교회에서 그 영수증을 받아내고야 말았다는 내용이었고, 교회에서 가짜 기부금 영수증을 받을 수 있다는데 놀랐다는 내용이다.

또 서울 모 교회 목사는 한 언론 기고에서, 얼마 전부터 자신의 교회에 나오기 시작한 한 교인이 상당한 액수의 헌금을 하겠다며 그 액수의 몇배나 되는 기부금 증명서 발급을 요구했다고 말했다. 기부금 증명서가 있으면 세금이 공제된다며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것 아니냐는 설명까지 곁들였다고 한다. 평소 하나님 앞에서 정직해야 한다고 설교해 왔지만 새 신자의 면전에 대고 단칼에 거절하기도 민망해 잠시 머뭇거리는 틈을 그는 놓치지 않았다.

목사님. 다들 그러고 살아요. 예전에 납품했던 한 교회 목사님이 물건값 깎아주면 기부금 증명서 발급해주겠다고 해서 그렇게 윈윈해 왔는걸요. 죄송한 얘기지만 이 교회에서 1년에 이만큼 헌금할 수 있는 사람도 없잖아요.”라고 했다며 연말정산 시기만 되면 양심에 가책을 느끼면서 목회에 대한 자괴감이 든다고 털어놨다

과거 이 같은 관행들이 교회나 사찰 등 종교시설과, 여러 복지기관 등에서 빈번하게 발생했지만 지금은  많이 줄어든 게 사실이다. 교회마다 재정을 투명하게 공개하는 분위기도 있고, 기부금에 대한 인식변화도 한 몫을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많은 종교단체에서는 여전히 이런 관행이 사라지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국세청은 불성실 기부금 수령단체 65개, 조세포탈범 54명, 해외금융계좌 신고의무 위반자 1명의 인적사항 등을 국세청 누리집(www.nts.go.kr)을 통해 공개했다.

국세청은 지난 11월 15일 국세정보공개심의위원회 심의를 거쳐 불성실 기부금 수령단체, 조세포탈범, 해외금융계좌 신고의무 위반자 명단 공개 대상자를 확정하고공개 기준을 불성실 기부금 수령단체 공개 대상은 거짓 기부금 영수증을 발급했거나 기부금 영수증 발급명세서를 작성·보관하지 않은 단체 및 상속증여세법상 의무를 불이행한 단체에 한정한다고 했다.

공개결과는 충격이었다. 국세청이 밝힌 불성실 기부금 수령단체 65개 중, 종교단체가 61개(94%), 의료법인 3개, 문화단체 1개로 종교단체가 절대적이었다. 종교단체 중 사찰 수가 50개로 가장 많았고, 교회가 8개, 성당이 2개 순이었다.  

교회는 8개에 불과했지만 가짜영수증을 발급한 액수는 적지 않아서, 61개 종교단체가 발급해 준 가짜 영수증 총액 134억 원 가운데 교회가 차지한 액수가 17억 여 원이었다. 특히 서울  S 교회는 지난해 40여 명에게 가짜 기부금 영수증 약 10억 원어치를 끊어줬다. 이들 종교단체가 발행한 가짜 기부금 영수증은 모두 571건, 총액은 14억 원이다. 이 중 5500만 원어치는 아예 발급 내역조차 없었다.

국세청이 공개한 명단의 기준은 가짜 기부금 영수증을 5건 또는 5천 만원 이상 발급한 곳이다. 금액이 이에 못 미치지만 가짜 기부금 영수증을 발급해 준 공익법인과 종교단체는 훨씬 더 많을 것으로 보고 있다. 향후 국세청은 이 기준을 강화해서 보다 투명한 세액관리를 하겠다고 밝혔다.

이들 종교단체가 발급한 대부분 사례는 본인이 일부 헌금하고 가족이나 지인이 한 것처럼 끊어달라는 것이거나, 금액을 부풀려 영수한 것처럼 발급해 달라는 것이라고 했다. 정승태 국세청 법인세과 팀장은 실제 기부를 일부는 좀 하고 아들 명의로 조금 더 끊어달라. 이런 사례가 케이스별로는 제일 많은 것 같다고 했다.

[교회와 돈] 저자 황호찬 세종대학교 교수는 대부분의 한국 교회는 정직하고 투명하게 재정을 사용합니다. 하지만 회계나 감사 규정이 없어서 그 장부를 외부에서 보면 문제가 됩니다. 교회회계 시스템을 마련하는 것은 이런 문제를 극복하고 교회가 투명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며 재정을 투명하게 관리하는 것을 주문했다.

국세청은  2020년 1월 15일 부터 연말정산 간소화 시스템을 가동하고 개인이 확인할 수 있도록 한다고 했다. 특히 이번부터 스마트폰 앱을 통해서도 확인이 가능하도록 편의를 더했다고 설명했다. 재정상황이 어려운 교회들일수록 이런 가짜 기부금 영수증 유혹이 빠지기 쉽다. 일부 헌금을 부풀려 달라는 요구를 쉽게 뿌리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부에서는 차라리 연말정산 때 종교단체에 낸 기부금을 소득공제 대상에서 제외하자는 얘기도 나온다. 하나님께 바친 것이니 하나님께 공제혜택을 달라고 하자는, 그게 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물아니냐는 지적이 꽤 설득력 있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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