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민주주의는 어디로 향해가는가?
미국 민주주의는 어디로 향해가는가?
  • Young S. Kwon
  • 승인 2020.02.07 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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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석 목사 칼럼] "트럼프 대통령 탄핵 소추안 기각 결정을 지켜보면서"
권영석 목사(전 학원복음화협회 상임 대표)
권영석 목사(전 학원복음화협회 상임 대표)

실용주의를 표방하는 다인종 사회인 미국에서 뭐 그리 대단한 관심을 불러일으키리라 기대를 했던 것은 아니지만, 미국 역사상 4번째의 대통령 탄핵소추안은 공화당의 당리당략의 논리 이상도 이하도 아닌 뻔한 결론으로 싱겁게 끝나고 말았습니다. 고작 이러려고 지난 수개월 동안 워싱턴 정가를 그렇게도 떠들썩하게 했었나 싶어서 좀 허탈하다 못해 실망스럽지 않을 수 없다 하겠습니다.

"그 나물에 그 밥"이라 했던가요? 트럼프 대통령에 트럼피한(Trumpy) 공화당이라는 평가가 딱 어울릴 것입니다. 여론 조사에 의하면 탄핵 소추안의 공정한 심의를 위해 적어도 유력한 증인들 몇몇은 증언대에 세워서 사실 여부를 좀 더 확실히 하고 나서 인용(Conviction)이든 기각(Acquittal)이든 결론을 내도록 해야 한다는 의견이 미국 국민 75%를 차지 했습니다. 하지만 공화당은 이조차도 아랑곳하지 않고 결국 다수석을 차지하고 있다는 힘의 논리로 민의를 간단히 묵살하고 말았습니다.

어떤 재판이든 공정한 재판이 되려면, 증인이나 증거 문서 등 팩트 확인을 위한 당연한 절차가 선행되어야 하는 법입니다. 하지만 증인과 증거가 제시되지 못하도록 원천적인 차단을 하고 표결에 부친 것은 그야말로 '눈 가리고 아옹하는' 요식행위였다 하겠습니다. 그러나 무늬만 절차를 거친다고 해서 이미 저질러진 팩트가 없던 것이 되거나, 없던 팩트를 새로 만들어낼 수는 없는 법입니다. 인류 역사상 가장 발전한 정치 체제라고 하는 민주주의의 핵심인 삼권분립이 허울뿐인 무기력한 제도적 절차로 시궁창에 처박히고 마는 현장을 전 세계가 목도하였다 하겠습니다. 

한편에서 생각하면 미국이 이 정도인데 다른 후진국들은 오죽하랴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아무리 정교한 제도와 합리적인 절차를 구비하고 있다 해도 역시 그 제도를 운용하는 사람의 선한 의지가 선행되지 않으면 도리어 불의와 거짓을 정당화해 주는 악한 도구로 오용될 뿐, 절차의 합리성이 도리어 쓸데없이 번거롭고 거추장스럽기만 한 것은 아닌지 회의를 해보게 되었다 하겠습니다. 어차피 결론이 바뀌지 않을 것이면 굳이 모양새만 갖추느라 요란스레 위선을 떨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대통령 직책 자체의 권위를 손상하지 않도록 해야 하는 것과 현직 대통령 개인의 잘못된 행위와 역할 수행을 견제하는 것은 전혀 별개의 문제입니다. 만일 대통령 개인의 불의와 거짓이 있다면 이를 명명백백히 밝히고 정당한 절차를 통해 용인하지 않는것이 오히려 대통령의 직책이 지니는 권위를 더욱 굳게 세우게 될 것입니다. 그럼에도 공화당 의원들과 백악관의 변호인단은 한결같이 대통령 직책이 지니는 면책권이란 형식 논리만 반복할 뿐, 직책의 권한을 남용하여 사익을 추구하려 했던 대통령의 빤한 의도와 거짓말을 덮어 가리느라 급급한 모양새를 보여 주었다 하겠습니다. 뭔가 오해를 받고 있거나 모함을 받고 있다면(hoax), 정정당당하게 증인을 세워 사실 여부를 가리게 하거나 심지어 트럼프 대통령 자신이 증언대에 서서 떳떳함을 밝히면 될 일인데, 팩트에 대한 것은 숨기고 있으면서 탄핵 소추안 자체가 모함을 위한 날조라는 비난만 늘어놓고 있으니, 참으로 후안무치(厚顔無恥)의 표본이 백악관을 장악하고 있는 셈이라 하겠습니다.

민주주의의 요체는 국민이 최종 권위를 지니도록 한다는 데에 있습니다. 아무도 국민 위에 군림하거나 초법적인 권한을 행사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국민이 주인으로서 주체적으로 결정하고 그에 따르는 책임도 지도록 하는 제도입니다. 그래야만 만인이 다 동등한 나라의 주인으로서 주체성과 책임성을 동시에 지니는 자유 시민이 될 수 있고 평등한 이상 사회를 만들어 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헌법에 명시한 범위 내에서, 즉 국민이 위임한 행정적인 권한만을 행사함으로써 국민의 뜻을 받들고 심부름을 하는 것이 대통령과 공무원을 포함한 행정부의 권위입니다. 국회의 권위 역시도 국민이 투표를 통해 권한을 위임했다는 점에서 매한가지 성격이라 하겠습니다.

그렇지 않고 만일 국민 위에 대통령이 군림하는 식이 된다면, 이는 국민이 위임해 준 권한을 휘둘러 도리어 국민을 함부로 지배하게 되는 우스꽝스러운 자가당착에 빠지게 마련입니다. 이런 사회에서 국민이 주인 의식과 책임 의식을 지니기란 힘들 것입니다. 주체성과 책임성이 결여된 사람은 가진 자와 힘 있는 자에게 예속되거나 착취당하게 되어서, 인간은 예전의 약육강식의 정글과 같은 계급사회의 부속물로 전락하기 십상일 것입니다. 다행히 임기가 정해져 있어서 임기 말에 국민의 심판을 받게 되어 있지만, 작금에 급기야 탄핵정국으로 치달은 미국의 경우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의 재선에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기 위해 민주당의 선두 대선주자를 흠집 내려고 대통령의 고유 권한을 악용하려 했다는 점에서 민주주의 시스템의 근간을 흔들어 놓으려 했다는 데에 그 심각성이 있다 하겠습니다. 이 점에서 닉슨 대통령 때의 탄핵 사례와 아주 닮은 꼴이면서도 이번에는 외세를 끌어들여서 그런 '음모'를 꾸미려 했다는 점에서 더욱 사악하고 위험한 도모였다 하겠습니다.

모든 국민이 나라의 주인으로서 남다른 애국심과 건전한 양식에 기초한 분별력을 너나 할 것 없이 다 지니고 있다면, 사실 누가 대통령의 역할을 감당하든 또 상·하원 의원의 역할을 누가 맡든 크게 문제 될 것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마다 판단력과 실행력에 개인차가 있게 마련입니다. 그래서 국민을 대신하여 그 역할을 가장 잘 감당할 적임자를 뽑아 세우겠다고 출범한 제도가 바로 대의 민주주의라 하겠습니다. 그런데도 도리어 이렇게 전문가로 뽑혀서 세움을 받은 사람들이 일반 국민의 상식과 도덕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는 결정을 내리고 또 실행한다면, 이는 참으로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게 됩니다.

작금의 미국 대통령 탄핵 소추는 바로 이 난감한 상황이 벌어진 대표적인 사례로 보면 되겠습니다. 보통 국민보다 더욱더 심성이나 동기가 선하지도 못하고, 분별력이나 실행력이 뛰어나지도 못한 사람이 대통령으로 세워졌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보통 국민보다 더 거짓말을 많이 하고, 사익을 공익보다 앞세우는 이기적인 사람이 대통령의 역할을 감당하고 있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민주주의의 장점이 과연 무엇이겠습니까? 국민이 잘 못 판단하여 선출한 것이었다면, 국민이 다시 사태를 바꿀 권한 또한 행사해야 할 것입니다. 헌법이 보장하는 바로는 이것이 바로 국회의 역할인 셈입니다.

어떤 사람의 행동의 어떠함은 결국은 그 사람의 됨됨이에서 흘러나오는 법입니다. 그 사람의 동기나 성품의 어떠함을 가지고 처벌할 수는 없지만, 동일한 사건이나 의심스러운 동기에서 나온 것으로 보이는 행동이 반복된다면 이는 그 사람의 인품이나 심성에 문제가 있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선거의 공정성을 교란하여 자신의 재선에 유리한 국면을 만들고자 한 것은 그야말로 민주주의의 근간을 위태롭게 하는 일이며 헌법 정신을 정면으로 반하는 행위입니다. 이런 행동은 단 한 번이라 해도 결코 용인되어서는 안 될 중대한 '범법'이자 죄악이라 해야 할 것입니다. 개인적인 이익을 챙기기 위해 한 개인에게 손해를 입힌 경우와는 다르겠지만, 국민을 대표하여 도리어 국익을 먼저 앞세워야 할 대통령의 신분으로서 국기를 문란하게 하고 헌법에 명시한 대로 대의 민주주의 제도 전체를 무의미하게 만들려고 했다면, 이는 개인에게 손해를 입힌 것보다 몇백 배 몇천 배 더 심대한 죄악을 범한 것이라 해야 할 것입니다. 이 점에서 행정상의 과오(maladministration)도 그 사안에 따라서는 더욱 중대한 범죄(high crime)가 될 수 있다고 봅니다.

그런데도 공화당이 다수 의석을 차지하고 있는 상원의 탄핵 재판은 그야말로 졸속으로 무혐의 처리를 내리고 만 셈입니다. 이후로 트럼프 대통령 개인으로 인해 입게 될 폐해도 문제이겠지만 그동안 전수되어온 미국 건국 정신이 크게 훼손되어 장차 미국민의 정기와 민주 시민 의식이 후퇴하게 된다면 이는 돌이킬 수 없는 패착이 되고 말 것입니다. 당리당략에 이끌려 증인 한 사람 세우지도 못하게 하고, 백악관의 증거 자료 한 장도 없이 서둘러서 탄핵 소추안을 기각시켜 버린 공화당 의원들은 모름지기 향후 미국 역사에서 진리와 정의의 빛을 덮어 가린 장본인들로 길이 남게 될 것입니다.

그나마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피선거권자들은 차치하고라도 선거권자인 국민들이 나서서 '이건 너무 했다'라고 하는 자각을 하는 계기가 마련된다면 불행 중 다행이라 하겠습니다. 하지만 만일 정치에 대한 실망감만 더 커지고 나아가서 '정치란 것도 다 그렇고 그런 힘의 논리이자, 위선 쇼에 불과하다'고 하는 잘못된 관념(new normal)만 더욱 강화된다면, 이는 당장의 당리당략을 위해 소탐대실(小貪大失)한 정치사적 오류의 표본으로 기록되고 말 것입니다. 

팩트(True fact)가 먼저이고 평가(Value judgement)는 나중입니다. 먼저 평가를 내려놓고 거기에 있지도 않은 팩트를 짜맞출 수는 없는 법입니다. 팩트보다 더 오래 살아남는 것은 없기에 "팩트보다 더 무서운 것은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대의 민주주의에서 민주시민의 권한을 위임받은 대표/대의원들이 갖추어야 할 가장 우선적인 덕목을 꼽으라면 바로 이 순서를 뒤집지 않고 어떻게든 제대로 지키려고 하는 자세일 것입니다. 팩트가 확보되지 않은 상태에서 평가를 위한 논쟁으로 끌고 가거나, 또는 평가의 절차를 문제 삼는 것은 논점을 돌리려는 궤변일 뿐이며, 도리어 팩트를 덮어 가리려는 불순한 의도가 다분한 사람들의 대표적인 악덕이 바로 이 궤변이라 하겠습니다. 

어두움이 빛을 이기고 궤변이 팩트를 억압하는 사회에서는 민주주의는 그저 허울일 뿐이며, 민주시민이란 그 허울을 위해 막대한 세금과 정치자금을 대는 물주에 불과할 것입니다. 참으로 참담한 세상을 우리는 아직도 살고 있다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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