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강의실, 생명 살리는 일에 이념은 없다"
"북한의 강의실, 생명 살리는 일에 이념은 없다"
  • Michael Oh 기자
  • 승인 2020.02.11 22: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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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평양 과기대 의학부 이흥우 외래 교수, 북한에서 가르쳤던 학생들과 맺은 끈끈한 인연 이야기

[뉴스M=마이클 오 기자] “때로 우리 눈앞에 생생하게 펼쳐진 이미지와 이야기가 진실을 가릴 때가 있다. 지금 북한을 둘러싼 상황을 보면 이런 우려가 생긴다. 인간이 지닌 환원 불가능한 가치가 복잡다단한 국제 관계와 상황이라는 거시적인 이야기와 이미지에 가리고 디지털 신호와 함께 증발해버릴 위험, 그것이 지금 우리의 현실이 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두렵다.”

평양 과학기술 대학교 의학부 이흥우 외래 교수 (뉴스M)
평양 과학기술 대학교 의학부 이흥우 외래 교수 (뉴스M)

평양 과학기술대학교(이하 평양 과기대) 의학부 이흥우 외래 교수가 북한을 바라보며 털어놓은 걱정이다. 한때는 한국 유명 의과대학의 존경받는 교수이자 의사의 삶을 살았다. 풍요와 안락함 그리고 뭇사람의 부러움에 둘러싸인 자리였다. 하지만 한켠에 언제나 자리 잡고 있던 북한 사람들에 대한 마음 때문에, 조용히 그 자리를 떠나온 지 15년이 되었다. 

세상 대부분의 사람이 풍요와 안락한 삶을 찾아 더 높은 고지로 오르려 할 때, 정반대 방향을 선택한 이흥우 교수를 만났다. 그의 마음과 시선이 머무는 곳은 어떤 곳인지, 왜 그런 선택했는지 들어보았다.

Q 지금은 어떤 일을 하고 있나

A 평양 과학기술대학교 의학부 외래 교수로서 북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3년 전까지는 북한 현지에서 가르쳤는데, 북한 내부 사정과 국제 관계 악화로 인해서 더는 평양 과기대에서 수업을 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현재는 몽골과 중국 등지에서 북한 학생들을 만나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현재 북한을 둘러싼 주변 상황이 힘들지만, 북한 내부의 의료 상황과 필요는 더욱 급박하다. 사람의 생명과 고통과 관련된 일이다. 어렵더라도 꾸준히 의료 인력 양성과 의료 환경 개선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평양 과기대 의학부 수업 (이흥우 교수 제공)
평양 과기대 의학부 수업 (이흥우 교수 제공)

Q 평양 과기대 의학부, 어떤 곳인가 

A 평양 과기대는 2009년 9월에 개교했다. 현재 전자/컴퓨터 엔지니어링, 국제 금융/경영, 농생명과학, 의학, 건축학(신설 예정) 등의 전공으로 학부생 500여 명과 대학원생 80여 명이 공부하고 있으며, 외부 교수 및 교직원 120여 명이 이들을 가르치고 돕고 있다. 

이 중 의학부는 2013년 시작한 비교적 신생 학부다. 보건, 치과, 의과, 약학, 간호 대학으로 나누어져 있으며, 부설 병원으로 평양 구강병원과 김만유 병원이 있다. 교수진 대부분을 외부에서 영입해야 하고, 필요한 물자와 설비 또한 자체적으로 조달이 불가능한 상황이기 때문에 운영에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다행히 미국과 유럽 등지에서 헌신한 수많은 의료계 종사자들의 도움으로 운영을 하고 있지만, 더욱더 많은 지원자와 도움이 필요한 상황이다.

Q 최근 유엔제재가 국제사회와 북한의 교류를 어렵게 할텐데

A 현재는 국제 관계 악화로 인해 북한 출입조차 불가능한 상황이 되었다. 북한 내부의 의료 상황에는 치명적인 변화다. 기존 의료진의 물자 부족과 서비스에 급제동이 걸렸을 뿐만 아니라, 의료진 수급 자체가 중단될 위기에 처했다. 특히 미국의 여행 금지 명령과 경제 제재로 인해 외부 교수진들의 접근이 허용되지 않고 의료 물자 공급 또한 제한되었기 때문이다.

이런 변화는 직접적으로 북한 사람들의 건강과 생명에 직결되는 문제다. 국제 관계 악화와 경제제재 이전에도 원활하지 않았던 의료 시스템으로 고통받던 사람들이 이제는 더욱 심각한 위기에 내몰린 것이다. 한국이나 미국에서는 간단히 치료할 수 있는 병도 북한에서는 생명을 위협받는 지경이 되었다.

북한의 의료 교육을 중단할 수 없는 이유다. 비록 평양 과기대에서 수업을 할 수 없다 하더라도 어떻게든 의료 교육은 계속되어야 한다는 것이 교수진이나 학교 당국자들 공통의 인식이었다. 결국 북한이 아닌 제 삼국에서 학생들을 파견하고 외부 교수진이 방문하여 수업을 진행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현재까지 몽골과 중국 등지를 돌며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상황은 더욱 어려워졌지만, 수업에 대한 열의는 학생이나 교수 모두 더욱 높아졌다."

이 일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A 우연한 기회에 북한의 열악한 상황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아무래도 의학 전공자다 보니 의료 환경과 상황에 대해 더욱더 안타까운 마음을 가지게 되었고, 언젠가는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해 작은 보탬이라도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품게 되었다.

한국에서 의대 교수로서의 삶도 의미가 있었지만, 북한을 향한 마음이 점점 더 커졌다. 마침 미국에서 공부할 기회가 생겨서 하던 일을 정리하고 한국을 떠나게 되었고, 공부를 병행하면서 틈틈이 북한 의료 봉사를 위한 준비를 하고 기회를 엿보았다. 공부를 마치고 얼마 후 평양 과기대 의학부 설립 소식과 의대 교수를 찾는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오랜 기다림과 준비에 대한 응답이라 여기고 지원하여 지금까지 외래 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Q 북한 내부 의료 상황은 어떤가?

A 북한의 의료 현실은 열악하다. 의료 시스템이 1970년대 정도에 멈춰 있다. 각 지역에 병원이 있기는 하지만 시설이 낙후되어 있고 물자가 항상 부족하다. 전력 공급도 일정하지 않아, 응급실이나 수술실 등 안정적인 환경이 필요한 곳에서도 어려움을 겪을 때가 많다.

의료 인력 또한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평양 과기대 등과 같은 곳에서 인력 양성에 힘쓰고 있지만, 만성적인 인력 부족을 극복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의사뿐만 아니라 간호사, 약사, 물리 치료사 등 의료 현장에서뿐만 아니라 보건과 같은 예방 및 공공 분야 등 의료 시스템 전체에서 인력난을 겪고 있다.  의과 대학의 시설과 교육 또한 열악한 상황이다. 심지어 학생을 가르치기 위해 초청된 외부 교수진이 직접 필요한 교재와 장비 의약품을 조달해야 할 만큼 모든 것이 부족하다.

이런 상황에서 외부로부터의 지원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북한 내부의 의료 시설과 인력의 질적 향상과 당장에 필요한 의료 서비스 모두 자체적인 역량으로는 역부족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계속 외부의 도움으로만 한 나라의 의료 시스템을 운영할 수는 없다. 궁극적으로 북한 자체 내에서 의료 시스템 향상 및 자체 인력 충원을 위해 역량을 키우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강의하면서 학생들에게 항상 강조하는 것도, ‘너희들은 단순히 의사가 되는 것에 만족하지 말고, 다른 의사를 가르치는 의사가 되어야 한다’와 같은 말이다. 다행인 것은 의대 학생들이 배움에 대한 열정과 능력이 매우 뛰어나다는 점이다. 학업 습득 능력은 한국이나 어느 나라의 학생과 비교해도 결코 뒤처지지 않는다. 그뿐만 아니라 자신의 나라가 겪고 있는 어려움을 잘 인식하고 있어, 제대로 된 교육을 한다면 현재의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좋은 자원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평양 과기대 전경 (이흥우 교수 제공)
평양 과기대 전경 (이흥우 교수 제공)

Q 북한 학생들을 경험해 본 이야기가 궁금하다  

A 학생들이 처음 입학하여 만났던 때가 생각난다. 마치 화가 난 사람처럼 아무런 표정도 없이 긴장한 모습이 역력했다. 다른 체제와 문화에서 온 외부인에 대한 경계와 불신이 가득해 보였다.

하지만 이들도 한국이나 미국에서 자란 아이들과 다를 바 없는 순수한 마음을 가진 청년들이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교수를 향한 경계심은 수줍은 호기심으로 바뀌었고, 서로에 대한 신뢰와 애정이 더욱 커졌다. 그동안 양쪽을 갈라놓은 체제의 차이와 오해는 건널 수 없게 깊이 패인 골짜기가 아니라는 것을 확인 할 수 있었다. 양쪽의 차이보다 더욱더 깊게 놓여있는 인간 본연의 순수한 아름다움과 사랑의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경험했다.

한 학기가 끝나고 다음 학기가 시작되기 전까지는 집으로 돌아와 휴식을 하게 된다. 하지만 오랜만에 만끽하는 집의 안락함도 잠시뿐, 곧 머릿속에 맴도는 것은 아이들의 순수하고 깊은 눈망울과 배움의 열기로 가득 채워진 강의실이다.

강의를 진행하고 있는 이흥우 교수 (이흥우 교수 제공)
강의를 진행하고 있는 이흥우 교수 (이흥우 교수 제공)

Q 마지막으로 첨언 할 것이 있다면?

A 정치적이고 국제 관계적인 이해관계를 떠나서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필요에 관심을 둘 필요가 있다. 이 모든 것들은 결국 인간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생명 없이는 정의도 화해도 평화도 없다. 그 주체가 생명을 지닌 인간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생명을 무시하거나 경시하는 어떠한 명분도 정당화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이런 관점에서 북한의 상황을 마주하면 사람들의 고통과 상실이 보인다. 당장 고통을 당하고 생명을 잃어가는 이들을 살리고 돕는 것이 먼저라고 생각한다. 

현실 앞에서 한없이 부족한 능력과 자원을 보면 무릎에 힘이 빠질 때가 너무 많다. 하지만 옆에서 함께 이 현실을 무게를 짊어지는 이들을 의지하며 한 발짝 더 내디딘다. 명예는커녕 이름도 없이, 오직 북한 사람들의 고통과 그들의 존귀함만을 바라보며 헌신하는 이들이다. 이런 분들이 더욱더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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