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바니에 '라르쉬 공동체' 창립자, 생전 성추문 드러나
장 바니에 '라르쉬 공동체' 창립자, 생전 성추문 드러나
  • Michael Oh 기자
  • 승인 2020.03.04 13: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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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간에 걸쳐 6명의 여성 희생, 신비주의 영성가 멘토에게 영향받아

 

장 바니에가 생전에 자신의 공동체에서 여성들을 성추행 한 사실이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다 (프리팅커 방송화면)

장 바니에가 생전에 자신의 공동체에서 여성들을 성추행 한 사실이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다 (프리팅커 방송화면)

[뉴스M=마이클 오 기자] 지적 장애인과 함께 삶을 나누는 라르쉬(L'arche) 공동체의 창립자이자 정신적 리더였던 장 바니에(Jean Vanier)의 성추문이 밝혀져 충격을 주고 있다. 지난 2월 22일 국제 라르쉬 공동체(L’arche International)가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장 바니에는 라르쉬 창립 직후인 1970년대부터 2005년까지 30여 년에 걸쳐 6명의 여성에게 성추행을 저질렀다고 한다.

이번 성추문은 지난해 5월 장 바니에 사망 직전 한 여인의 증언으로부터 밝혀지기 시작했다. 증언을 접수하여 검토한 라르쉬 공동체는 즉시 사안의 중대성을 감지하고, 외부 독립 기관 GCPS Consulting에 조사를 의뢰했다. GCPS Consulting은 영국 소재의 성적 학대와 착취 방지를 전문으로 하는 자문 그룹이다. 한편 라르쉬 공동체는 이와 별도로 독립 감독 위원회(Independent Oversight Committee)를 구성하여 조사 과정의 공정성과 신뢰성을 감시하는 등 철저한 진상규명을 위해 노력했다.

8개월간 진행된 조사에서는 장 바니에의 성추행 사실과 함께 그의 멘토인 토마스 펠리페 신부와의 관계도 밝혀졌다.

영적 권위와 신비주의를 이용한 성추행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증언을 제공한 6명의 여성은 출신이나 연령 및 결혼 여부뿐만 아니라 피해 시기도 달랐지만, 증언 내용에서는 상당한 공통점을 보여주었다고 한다.

피해 여성들은 공통으로 장 바니에와의 관계에 있어 영적인 권위를 통한 ‘심리적인 통제’ 아래 있었으며, 성추행은 언제나 ‘신비주의적이고 영적인’ 말들로 합리화되었다고 밝혔다. 이런 상황에서 피해 여성들은 심각한 힘의 불균형을 느끼고, 자신의 의사나 감정과 상관없이 성적인 행위를 강요당했다고 한다.

특히 이들 중 다수의 여성은 자신이 연약한 상황 가운데 있을 때, 장 바니가 이를 알고 접근했으며, ‘영적 동행’을 주장하면서 성추행을 일삼았다고 했다.

다음은 피해자들의 증언 일부이다.

“… 나는 그때 개인사적인 문제로 화나 있었고 또한 연약한 상황이었다…. 그는 내게 영적 인도를 위해 밤늦게 자신을 찾아오라고 했다. 우리는 함께 기도했고, 그는 OOO에 초대했다. 그곳에서 그는 성교를 제외한 모든 것을 했다.”

“나는 마치 얼어붙어 버린 것 같았다. 난 장 바니에가 수많은 사람에게 살아있는 성인으로 칭송받고 있다는 것과 그가 자신이 성적 학대를 받는 사람들을 많이 도왔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생각이 났다. 그건 위장된 것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난 어떠한 말도 할 수 없었다.

“… 영적 동행이 어느새 성적인 접촉으로 변해있었다. 난 그에게 연인이 있다고 이야기했지만, 그는 아가서를 인용하면서 분별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했다. 3~4년 정도 이런 관계가 지속하였다. 매 순간 난 얼어버렸고, 난 무엇이 맞고 틀린 지 분간할 수 없었다. 그는 이것은 ‘(영적) 동행’의 일부라고 했다.”

신비주의 영성가 멘토 토마스 펠리페로부터의 영향

한편 조사 보고서는 이러한 장 바니에의 성추행이 토마스 펠리페 신부와 연관이 있다는 것에 주목했다.  토마스 펠리페 신부는 1946년 ‘뢰 비브(l'Eau Vive)’라는 영성 수련원을 열었던 인물이다. 그는 이곳에서 자신만의 독특한 신비주의와 영성을 가르쳤으며, 장 바니에는 이에 깊은 감명을 받고 함께 생활했을 뿐만 아니라, 훗날 자신의 멘토가 성추행으로 자진해서 사퇴했을 때 후계자로 지목되기도 한다.

토마스 펠리페 신부의 성추행 및 영적 가르침은 장 바니에의 성추행과 상당한 유사점을 지닌다. 그의 성추행을 폭로한 희생자의 증언에 따르면 그는 자신의 우월한 영적 권위를 동원하여 복종과 성적인 행위를 강요했으며, 신비주의 이론을 동원하여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시켰다고 한다.

보고서는 또한 장 바니에가 보관했던 편지를 통해 그도 ‘뢰 비브’에서 그의 스승과 같은 성추행을 저지른 정황을 포함하고 있다. 이 편지에 따르면 장 바니에는 복수의 여성과 성적인 행위를 했으며, 그 내용은 신비주의 이론과 육체적 접촉을 결합한 토마스 필리페의 성추행과 매우 유사한 형태를 보인다.

라르쉬 공동체, 사과와 재발 방지를 약속

이번 성추행 사건으로 인한 가장 큰 희생자는 지난 수십 년 동안 고통과 인내의 시간을 견뎌야 했던 피해 여성일 것이다. 국제 라르쉬 공동체는 성명서를 통해 이 여성들의 용기와 희생에 깊은 경의를 표하는 한편 용서를 구했다.

“우리는 이 여성들과 혹시 드러나지 않은 이들의 용기와 고통을 똑똑히 보았습니다. 우리는 또한 몇 년 전 토마스 필리페 신부에 대해 증언을 함으로써, 수많은 사람으로 하여금 그들이 질 필요가 없었던 고통과 수치의 짐을 내려놓게 해준 여성들에게 깊은 감사를 전합니다. 이 모든 분들에게, 라르쉬 공동체의 창립자가 저질렀던 모든 일에 대해서 사죄하며 용서를 구합니다.”

라르쉬 공동체는 또한 “전 세계에 퍼져있는 154개의 지역 공동체의 모든 회원 - 장애인과 비장애인 모두 - 의 안전과 성장을 위해 노력할 것을” 약속했다. 이를 위해 라르쉬 공동체는 “외부 기관을 통해 현재 시행되고 있는 모든 안전 수칙과 절차를 점검할 뿐만 아니라, 모든 회원의 내부 고발이 안전하게 전달될 수 있도록 일원화된 절차를 수립했다”고 전했다.

주변 반응, 배신감과 허탈함, 하지만 거짓 영성에 주의를 기울여야

이번 사건을 대하는 교계와 사회의 반응은 충격과 실망감이 대부분이다. 노트르담 대학교는 라르쉬 공동체 조사 발표 바로 다음 날 (23일), 과거 장 바니에에게 수여했던 노트르담 상(1994년)과 국제 개발 및 연대상(2004년)을 취소했다. 한편 존 젠킨스 노트르담 대학 총장은 “라르쉬의 보고서는 매우 꼼꼼하고 엄격했을 뿐만 아니라 공정한 것이었다”는 평을 남기기도 했다.

온라인 매체 [페이디오스Patheos]는 지난달 28일 기사를 통해 장 바니에의 발언 ‘당신 육신의 현실을 받아들이라’을 인용하면서, 그의 위선을 간접적으로 꼬집었다. 기사는 더불어 장 바니에의 절친한 친구였던 신학자 스탠리 하우워스의 반응도 소개했다.

“충격을 금할 수가 없다… 바니에는 달라야 했다, 그가 실제로 많은 측면에서 그랬던 것처럼… 하지만 이 다름은 이제 더욱 충격적으로 다가온다. 그는 이것을 더욱 깊이 알고 있어야 했다… 만천하에 밝혀진 그의 끔찍한 범죄로 인해 가슴이 찢어진다. 그런 식으로 권력을 남용했다는 것은 더욱 비난받아 마땅하다.”

그는 또한 이 일로 인해 피해를 본 모든 이들과 라르쉬 공동체를 위해 기도를 요청하기도 했다. 

“우리는 그가 배신했던 여인들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 우리는 라르쉬의 운동을 위해 노력하는 이들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 우리는 또한 하나님께서 우리가 라르쉬의 사명을 이어갈 수 있도록 우리 자신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 왜냐하면 이 사명 그 자체는 그것의 창립자 행동들과 다른 것이기 때문이다.”

신학자 N. T. 라이트는 거짓 영성과 리더쉽의 위험성에 대해 지적했다.

“성추행을 합리화하기 위해 이런 행위가 마치 다른 차원의 신비나 영성인 것처럼 이야기하는 것은 정말 기괴하고도 역겨운 것이다.”

“대중에게 노출된 모든 리더나 사역자들은 특히 자신의 내면적인 연약함을 잘 알고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대중 앞에 서 있을 때, 이런 연약한 지점들이 바로 자신을 공격하고 무너뜨리는 지점이 되기 때문이다.

… 예수님을 제외하고 어떠한 인간도 모두가 닮아야 할 절대적인 모델이 될 수 없다. 모든 사람은 연약하며 약점이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우리가 미투 운동 등을 통해서 끔찍하게 깨닫게 되는 교훈 중에 하나다.

… 장 바니에가 우리에게 보여주었던 희생과 헌신이 어쩌면 그를 정서적으로 삼켜버렸고 결국 그를 건강하지 못한 쪽으로 몰아가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이 역시 결국 누구도 완벽할 수 없다는 같은 이야기를 전해준다. 우리 모두가 책임과 권위에 있어 감시와 견제를 할 수 있는 구조가 필요한 이유다. 특별히 독립적인 교회 운동을 하는 이들에게는 그 필요가 더욱 절실하다. 이들은 너무나도 많은 경우에 무소불위의 권위를 가지게 되고 누구도 통제할 수 없는 위험한 상황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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