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민이 본 '마스크 배급제'
탈북민이 본 '마스크 배급제'
  • 뉴스M 편집부
  • 승인 2020.03.26 2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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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통일방송] 탈북민의 남한 마스크 배급 체험기 소개, 잔잔한 감동 줘

 

일주일에 마스크 두 개 씩 배급하는 한국, 이를 본 북한 이탈주민의 생각은 어떨까. 국민통일방송은 한 탈북민의 이야기를 전했다. 본지는 국민통일방송 내용을 편집해 게재한다. 뉴스M 편집부

북한주민들이 구호물품을 배급받기 위해 줄을 서 있다 (사진 AP)
북한주민들이 구호물품을 배급받기 위해 줄을 서 있다 (사진 AP)

오늘은 조금 일찍 출근 길에 올랐다. 마스크 사러 약국에 가기 위해서다. 엄밀히 말하면 마스크 배급 타러 간다고 해야 할 것이다. 최근 도는 코로나 비루스(바이러스) 때문에 마스크 가격이 치솟고 사기도 어려워지자,  정부가 한 사람당 일주일에 2개씩만 살 수 있도록 통제에 들어갔다. 마스크 가격도 국가에서 정해 공급을 조정하고 있다.

배급이란 말을 정말 오랜만에 들어본다. 그 놈의 배급 때문에 북한에서 고생하던 기억이 있다. 그동안 까맣게 잊고 지냈는데, 한국에서 배급이란 소리를 들으니 기분이 묘하다. 사람들이 배급타러 긴 줄을 선광경을 보노라면 마치 고향같아서 섬뜩하다.

상가입구에 도착하니 이미 약국 앞에 많은 사람들이 서있다. 나도 줄 마지막에 섰다. 기다리다 보니 북한에서의 옛 기억이 되살아난다. 문을 닫은 배급소에서 가끔 배급이 나오는 날에는 새벽부터 일어나 배급소에 가서 줄을 서야 했다. 어머니는 아직 자는 나를 깨워 등 떠밀었다. 

그러면 나는 눈을 비비며 옷만 챙겨입고 나가야 했다. 여름이면 그나마 덜 하지만, 겨울이면 그야말로 곤역이다. 북방의 겨울은 살을 에는 추위다. 추운것도 견디기 힘들었지만 해가 짧아 새벽에 캄캄한 길을 걸아야 했다.어둠 속은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고, 다치거나 긁히기 일수였다. 

또 남보다 빨리가야 앞줄에 설 수 있었다. 언제 떨어질 지 모르는 배급을 받으려면 무서움과 아픔을 이겨내고 이를 악물고 가야 한다. 그렇게 배급소에 도착해 한 두 시간 뒤면 어머니가 아침을 정리하고 뒤늦게 배낭을 매고 오신다. 그로 부터 또 두 시간을 기다려야 배급소 문이 열린다. 강냉이나 감자 따위를 받고는 이걸로 며칠을 버틸까 계산해본다. 그 뒤에는 항상 근심이 따랐지만 그래도 다행히 몇 끼는 건졌다며 어머니와 기분좋게 돌아왔다.

생각이 이 쯤 되자 불안해진다. 그리고 앞에 몇 명이 대기 중인지 세어본다. 백 명은 넘는다. 점점 불안하다. 마스크도 못사고 출근도 늦으면 너무 억울하다. 줄이 어느정도 줄어든다. 일찍 산사람들이 손에 들고 지나간다. 본능적으로 그들의 얼굴을 훔쳐본다.

기분탓일까 왠지 닮아있다. 몇 십 년 전 배급자루를 들고 얼굴에 시름올이 하나 덜어가던 고향사람들 모습과 흡사하다. 그 모습을 볼수록 자꾸 섬뜩해지는건 기억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오늘은 마스크지만 내일은 쌀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두려움이 앞선다. 그래도 음식이나 생필품을 사재기 하는건 없다. 서방이나 선진국에서도 사재기 하던데, 한국사람들은 비교적 차분하게 대응하고있다. 잘 갖춰진 의료체계와 시민의식 수준이 높아져서 코로나 사태에도 큰 혼란이 발생하지 않고 있다.

마스크 공급도 한때 혼란이 발생했지만 그래도 일주일에 두 세개는 구입할 수 있어 묵묵히 구입하고 있다. 점점 내 차례가 온다. 앞사람을 세 본다. 19명, 18명, 17명.. 열 명을 세는 순간 "땡" 마스크가 다 팔렸다고 한다. 믿지기 않는 상황에 한 동안 발을 뗄 수가 없었다. 얼마전까지 쉽게 살 수 있었던 마스크, 이렇게 귀한 물건이 될 줄 몰랐다. 빨리 코로나 사태가 종식되어 마스크 없이 지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나에게 배급은 쌀이든 마스크든, 북한이든 남한이든 그리 반갑지 않은 기억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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