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춤출 때까지"
"다시 춤출 때까지"
  • Michael Oh 기자
  • 승인 2020.04.12 21: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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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코로나19 시대, 월터 크루그만이 던지는 희망의 메시지

[뉴스M=마이클 오 기자] 연일 암울한 전망과 죽음의 소식이 전해지는 오늘날, 이 시대의 가장 영향력 있는 구약 학자 월터 브루그만이 예레미야의 목소리를 통해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했다. 

미네소타 소재 세인트 앤드루 루터교회의 공식 블로그 CHURCH ANEW에 특별 기고한 칼럼 “Until the Dancing Begins Again: How do Jeremiah’s powerful messages correlate with God’s people in our COVID-19 world?”를 번역 소개한다. 

"다시 춤출 때 까지”

월터 브루그만 (뉴스M)
월터 브루그만 (뉴스M)

졸업식이 취소되고 결혼식이 미뤄지는 것을 지켜봤습니다. 코로나 사태(COVID-19)가 갈수록 심각해지는 지금, 분명 함께 모여 축하하기에 적합한 시간은 아닐 것입니다. 고대 예루살렘의 재난 기간 예레미야 선지자도 이와 비슷한 상황을 지켜봐야 했습니다. 그는 결혼식이 세 번이나 취소되는 것을 목격했습니다. 기쁨을 나누고 미래에 대한 꿈을 꿀 수 있는 시간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마주한 현실을 예레미야도 바라보고 있었던 것입니다. 

예레미야 7:33~34에서 선지자는 결혼식이 끝나버렸다고 선언합니다. 사망자 수가 감당할 수 없이 늘어나고 사랑하는 이들의 주검이 쌓여간다고 이야기합니다. 예레미야 16:7~9에서는 결혼식 피로연은 커녕 죽은 자의 장례도 치를 수 없는 상황이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예레미야 25:11에서 선지자는 땅이 황폐하고 버려질 것을 예견하고 있습니다.

이런 고통스러운 순간 가운데 예레미야는 구약 인물 중 그 누구보다 이스라엘 백성의 아픔을 깊고 정직하게 느끼고 있습니다. 도시 전체가 인생의 중요한 통과 의례를 함께 모여 축하할수 없다는 것은, 분명 사회적 삶이 상상하기 힘들만큼 어려워졌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만약 요즘 상황에서 누군가 '예수님이 바이러스로부터 지켜 주실 거니까 함께 모이자!'고 외치는 이가 있다면, 그는 어리석은 사람이 될 것입니다. 예레미야는 그런 우둔한 판단을 할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사회적 삶의 모든 가능성이 단절되어버린 상황이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선지자는 재난 가운데 잿더미와 폐허가 된 바로 그곳에서, 축제의 나팔소리가 다시 울릴 것이라는 소망을 품습니다. 삶은 풍성한 사회적 지층 위에 다시 꽃 필 것이라고 합니다. 기쁨의 함성 가운데 회복과 부흥의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의 노래가 흘러넘치리라고 합니다.

“만군의 여호와께 감사하라, 

여호와는 선하시니,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다!” (예레미야 33:11)

하나님은 회복과 치유와 부흥의 능력이 있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포로들을 고향으로 돌려보내시는 분입니다. 이분은 잔혹한 금요일과 고통스러운 토요일을 지나 부활을 일으키시는 하나님입니다. 탕자의 비유 가운데 큰아들이 “풍악과 춤추는 소리”(누가복음 15:25)를 들은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풍악과 춤은 바로 "이 네 동생은 죽었다가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얻었기로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기”(누가복음 15:32) 때문입니다.

이런 종류의 회복은 오직, 교회가 가장 신뢰해왔던 도구인, 노래와 비유로만 그려질 수 있습니다.

예레미야가 품은 감사의 노래가 저 위대한 독일 찬송의 한 구절 “다 감사드리세”를 떠올리게 합니다. 이 찬송은 삼십년 전쟁(1618-1648) 중 마틴 린카르트가 그의 가족을 위해 식탁 기도 찬양으로 만든 것입니다.

"마틴 린카르트는 그의 출생지 삭소니 지역 아일렌부르그의 목사였습니다. 요새 도시였던 이곳은 전쟁과 전염병을 피해 온 이들의 피난처였습니다. 마을의 유일한 목회자로 남겨진 그는, 하루에 40~50명의 시신을 매장하는 경우가 다반사였습니다. 그는 끝내 살아남긴 했지만, 그의 아내는 전염병으로 떠나보내야 했습니다." (A New Century Hymnal Companion: Ag Guide to the Hymns ed. by Kristen L. Forman [Cleveland: Pilgrim Press, 1998] 421.)

그는 기나긴 전쟁 기간뿐만 아니라 치명적인 전염병으로 인해 생겨난 수많은 죽음과 마주해야 했던 재임 기간 가운데 찬송을 섰습니다. 우리도 역시 전염병이 돌고 있는 현재 상황 가운데 이 단순한 식탁 감사 찬양을 깊이 품지 않을 수 없습니다.

"다 감사드리세 온 맘을 주께 바쳐 그 섭리 놀라와 온 세상 기뻐하네 예부터 주신 복 한없는 그 사랑 선물로 주시네 이제와 영원히 사랑의 하나님 언제나 함께 계셔 기쁨과 평화의 복 내려주옵소서

몸과 맘 병 들 때 은혜로 지키사 이 세상 악에서 구하여 주소서 감사와 찬송을 다 주께 드리어라 저 높은 곳에서 다스리시는 주님 영원한 하나님 다 경배할지라 전에도 이제도 장래도 영원히"

그가 찬양을 섰던 상황은 현재 고통스러운 코로나 사태처럼 끊임없는 죽음의 시기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린카르트는 감사의 찬양을 쓰고 불렀습니다! 이 찬양은 가능한 모든 미래의 질병으로부터 해방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붙들기를 청하고 있습니다.

이 독일의 기도 찬양에서 울려 퍼지는 것처럼, 예레미야의 목소리에도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단서가 있습니다. 아마도 우리는 그의 목소리 가운데 두 가지 강조점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첫째, 단호하고도 타협 없는 소망을 품는 것입니다. 이것은 정부 관료가 막연히 이야기하는 “우리는 이겨낼 거에요.”라는 식의 확언 이상의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당신의 선한 목표에 이르기 전까지는 결코 쉬지 않으신다는 신념에 관한 것입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과 협력하여, 그 밑바닥부터 그 한계 너머에까지 걸친 목표가 있습니다. 이 거룩한 목표는 집요하고 변치 않을 뿐만 아니라 쉼이 없어서, 결국 우리와 하나님의 모든 피조물이 온전한 상태에 이르게 하는 것입니다. 교회가 맡은 임무는 바로 이 온전하고 신실한 하나님의 해결책에 소망을 두게 하는 것입니다.

둘째, 이러한 소망을 품는 동시에 현재 팬데믹 상황 가운데 하나님의 헤세드(저는‘신실한 사랑’이라는 이 히브리어 단어를 “끈끈한 연대”라고도 번역합니다.)에 대한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폐허 가운데에서도 하나님은 버리지 않으셨다는 예레미야의 증거와 같은 것입니다. 에레미야의 비유, ‘은혜로 채워진 황량한 광야’(31:2)처럼 말입니다.

이 증거는 말(우리가 매우 익숙한)과 함께 행동으로 실천되었습니다. 그 행동은 두려움의 시기에 친절의 몸짓과 ‘나’에게 온통 관심이 집중되는 시기에 타자를 향한 인애와 환대의 몸짓, 그리고 야만적인 욕심이 지배하는 사회 가운데 이웃을 향한 정책을 통해 실천됩니다. 교회의 임무는 이런 정책을 요구하고 힘을 실을 뿐만 아니라 이것들이 우리 가운데 나타날 때 기뻐하고 축하하는 것입니다. 이런 정책은 비상 상황 가운데 예외적이고 특수한 조치나 현상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이것은 ‘새로운 당연함’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임무는 바이러스를 조연으로 여기는 것입니다. 그 가공할만한 위력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선하심에 의해 압도당하는 대상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죽음이 문 앞에 기다리고 있는 상황에서도 린카르트 목사가 찬양과 기도를 통해 증거하고 있는 바입니다. 믿음은 진정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입니다. (히브리서 11:1)

이런 종류의 믿음은 결코 죽음 앞에 무릎 꿇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선하심이 죽음의 위협 앞에 멈춰 서는 법이 없다는 것을 폐부 깊숙이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믿음이 우리와 같은 연약한 존재에게 맡겨졌다는 사실은 놀라운 일입니다. 예레미야는 노래와 춤으로 가득 채워진 결혼 잔치가 다시 열릴 것이라는 소망을 품었습니다. 어쩌면 가까운 미래에 말입니다. 그리고 그는 이 기다림을 진실과 정직함과 용기로 채웠습니다. 

(기사의 저작권은 세인트 앤드루 루터교회에 있으며, 본지는 교회 허락하에 번역 게재한다. Used with permission from Church Anew, a ministry of St. Andrew Lutheran Church in Eden Prairie, MN, USA.)

*원문: https://churchanew.org/blog/2020/04/06/brueggema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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