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으로 낳았냐고요? 가슴을 통째로 줬죠.” 
“가슴으로 낳았냐고요? 가슴을 통째로 줬죠.” 
  • 양수연 기자
  • 승인 2020.06.09 21:1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양수연이 만난 사람] 입양 6년 만에 명문대 보낸 한근주 신순규 씨 부부
한근주 신순규 부부와 아들 데이빗, 딸 예진 (사진=한근주 씨 제공)
한근주 신순규 부부와 아들 데이빗, 딸 예진 (사진=한근주 씨 제공)

[뉴스M=양수연 기자] 우리는 늘 듣는다. 딸 가진 엄마 마음을 아냐고. 도대체 엄마 마음이 뭐길래, 그 특수하고 고귀한 엄마 마음의 영역에 “딸 가진 엄마 마음”이 따로 또 있다는 말인가? 엄마 마음을 헤아리기도 어려운데, 엄마 마음 중에서도 ‘딸 가진’ 엄마 마음은 어떻게 더 알 수 있단 말인가? 그런데도 우리는 그 말을 늘 하고 그 말을 늘 듣는다. 당신이 딸이라면 평생을 들어왔을 것이며, 당신이 엄마라면 딸에게 숱하게 해나갈 말이다.

아무리 듣고 말해도 여전히, 딸 가진 엄마 마음은 알 수가 없다. 딸도 어렵고 엄마도 어려운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딸 가진 엄마는 세상에서 가장 어렵고 복잡하기만 하다. 그래도 많은 여성이 엄마가 되면 딸을 꿈꾸곤 한다. 남존여비 사상이 팽배하던 옛 시절을 생각하면, 이렇게 딸을 꿈꿀 수 있는 시대는 얼마나 다행인가? 남아든 여아든, 자식 키우는 것은 다 어렵고 힘든 일인 터이지만, 엄마 마음을 알아주는 이는 결국 딸이더라는 세상 여인들 말에 엄마는 흔들린다. 그리고 자신을 뒤돌아본다.

나도 엄마가 되니 비로소 정말 엄마를 이해할 수 있지 않더냐? 그래서 ‘딸 가진 엄마 마음’은 순식간에 진리의 위상을 갖는다. 어린 아들에게 왕자님이라고 부르면 오냐오냐 버릇없이 될라 걱정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지만, 딸은 낼모레 시집 보낼 나이가 되어도 공주님이라 부른들 뭐라 할 사람이 없다. 딸의 특권은 엄마가 먼저 보장해준다. 딸은 그렇게 여인이 되고 엄마가 된다.

딸 가진 엄마 준비가 안 된 여인과 평생 공주가 되어본 적이 없는 아이가 만난다면?

한근주 씨(53, 뉴저지 거주)의 이야기다.

한 씨는 10년 넘게 ‘야냐 미니스트리 https://www.yanaministry.org’에서 이사장으로 봉사하는 동갑내기 남편 신순규 씨와 함께 빈곤층 어린이와 고아를 물심양면 도와왔다. 매년 여름 한국에서 서머 미션 프로그램을 운영하던 차에 한 씨 부부는 보육원에서 아이를 데려오기로 결심했다. 열 세 살 소녀 예진이를 그렇게 만났다. 3~4년씩 걸리는 오랜 입양 기간을 가늠할 때 입양은 법적으로 불가했으므로 당장 함께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 유학생 신분으로 어렵게 데려왔다. 2014년 4월, 예진이는 낯선 미국 땅을 밟았다. 입양한 어린아이를 ‘가슴으로 낳았다’고들 말 한다지만, 사춘기가 무르익어 가족이 된 예진이는 그렇게 표현하면 안될 것만 같았다.

“가슴으로 낳았냐고요? 가슴을 통째로 줬죠.” 

“예진이는 보육원에서 규율도 잘 지키고 모범생으로 꼽히는 아이였어요. 그래서 가정에서도 순탄할 줄 알았죠. 그러나 낯선 가정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것은 보육원 생활과는 다른 차원이라는 걸 본인도 몰랐고, 우리도 몰랐죠.”

예진이는 두 살부터 열 세 살 까지 11년을 보육원에서 지냈다. 부모의 정, 가족의 기쁨이 무엇인지 모르는 예진이었다. 여태껏 공주가 되어 보지 못했던 예진은 “미국에 오면 파티만 하면서 살 줄 알았다”고 푸념부터 늘어놓곤 했다. 예진이에게는 낯설고 신기한 세 단어, 부모, 미국, 파티. 꿈꾸던 이 세 단어가 예진이에게 갑자기 들어오면서 소화불량에 걸린 듯 삐걱댔다. 미국도, 부모도 녹록치 않은 것이었고 소녀가 꿈꿨던 신데렐라 파티는 없었다. 영어도 몰랐고 부모도 몰랐고 파티도 몰랐기에 예진이 앞에 놓인 것은 꿈꾸기 전에 ‘배움’이 먼저였다. 

“예진이는 한국에서 올 때부터 소아 당뇨를 앓고 있어서 식탐을 관리해야 했고 학교에 입학하려면 영어 실력도 크게 늘려놓아야 했어요.”

알파벳을 아는 정도에 불과한 예진이의 미흡한 영어 실력도 문제였지만 예진이의 과체중과 당뇨도 큰 고민이었다. 당뇨 고치려면 이거 먹어라, 이거 공부해라….. 엄마다운 잔소리, 납득할 잔소리에도 사춘기 소녀의 반항으로 터져 나왔다. 

한 씨는 “부모이기 때문에 너를 위해 이만큼 침투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만큼 너를 책임지는 것”이라고 설득하고 또 설득했다. 

엄마와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예진 씨 (사진=한근주 씨 제공)
엄마와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예진 씨 (사진=한근주 씨 제공)

한근주 씨 부부에게는 예진이와 네 살 터울인 아홉 살 아들 데이빗이 있었다. 데이빗은 한 씨가 일곱 번 임신한 끝에 어렵게 낳은 아이였다. 데이빗은 예진이를 마치 처음부터 누나였던 것처럼 누나를 부르며 예진이를 졸졸 따라다녔다. 한 씨는 예진이를 가족으로 받아들리기 위해 각오하고 준비가 필요했는데 데이빗은 예진이가 처음부터 가족이었다. 항상 누나 걱정을 하고 누나에게 먼저 말을 걸고 다가가는 아이였다. 그런 데이빗인데 예진이의 반응이 특히 데이빗을 향한 질투심으로 돌아올 땐 한 씨는 가슴이 미어졌다. 데이빗에게 해줄 수 있는 것들을 반으로 줄여가며 예진이 것을 챙기고 사주고 헌신하는 터였다. 한 씨는 차마 가슴으로 낳았다고 말을 못 해서 그냥 가슴을 통째로 내준 엄마였다. 그 빈 가슴에 휭휭 바람이 불었다. 빈 가슴으로 몸은 축났고 한 씨는 공황장애에 시달렸다. 

4년만 엄마 되라, 기도의 응답.

한근주 씨의 남편 신순규 씨는 하버드, MIT, 프린스턴 대학에 동시 합격했고 ’시각장애인으로는 세계 최초의 공인 재무 분석사’로 알려진 입지전적 인물이다. 월가에서 바쁘게 일하는 신 씨가 아내의 울음 범벅 속내를 들었을 때 내뱉은 말은 한 씨에게 충격이었다.

“내가 미안합니다. 그럼 예진이를 다른 집으로 보내는 쪽으로 생각해봅시다.”

그런 경우가 있었다. 한 씨처럼 법적으로 입양을 못 해 후원으로 한국에서 데려온 아이를 건강 문제, 적응 문제 등 이런저런 어려운 사정이 생겨 부득이하게 다른 집으로 다시 보내야 하는 가정도 있었다. 야나 미니스트를 이끌면서 그런 가정의 처지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던 한 씨 부부였다. 그러나 그런 상황이 우리에게 올 수도 있단 말인가? 한 씨는 어안이 벙벙했다. 내가 무슨 소리를 남편에게 늘어놓았던 것이지?

남편은 현명했다.  ‘예진이가 한국에서 마침내 비자를 받았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당신이 얼마나 기뻐했소? 당신이 데이빗 대하듯 예진이를 대하면 문제없을 것이라고 말하지 않았소? 우리의 다짐을 왜 기억 못한다는 말이요? 이 정도도 못 하면서 무슨 사역을 한다는 것이요?’ 남편의 대답이 이랬다면, 한 씨는 어렵다고 책임을 저버린 나쁜 엄마, 나쁜 아내의 오명을 뒤집어쓴 채 홀로 감내하기 어려운 자락으로 떨어졌을 것이다. 한 씨는 하나님께 엎드려 기도했다. 그리고 한 씨는 응답을 받았다.

“하나님께서 저에게 예진이를 평생 딸로 생각하지 말고 딱 기간을 정해서 딸로 생각하라고 하셨어요.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딱 4년만 엄마 하라고요. 하나님께선 나는 너를 50년을 기다려줬는데, 너는 왜 4년을 못 기다리느냐, 그러셨어요.”

한 씨는 다시 마음을 독하게 잡고 4년을 버티기로 했다. 4년만 엄마 하자. 그 대신 이번에는 “무조건”이란 단어를 붙여달기로 했다. 무조건 안아주기. 무조건 사랑하기. 무조건 표현하기. 4년 기한으로 ‘무조건’을 실천하니 예진이도 달라지고 한 씨도 달라졌다.

“엄마 닮아서 내가 이런 거 몰라? 어느 날 예진이가 그런 말을 하더군요.”

마치 한 씨 배 속에서 나온 딸인 양. 사랑은 그런 말실수에서부터 드러나는 법이다. 처음부터 가족인 것처럼. 처음부터 딸인 것처럼. 그렇게 한씨는 예진이의 기한 없는 엄마가 됐다. 한 씨 부부에게 생긴 최초의 딸. 그렇게 능청스럽게 얽히고 볶여서 얻어낸, 일곱 번 임신해 어렵게 나은 아들처럼 힘겹게 얻어낸 최초의 딸. 

독한 마음으로 홈스쿨링, 명문대에 진학으로 이어져 

2014년 4월, 예진이가 한 씨 부부에게 왔을 때 예진이의 학교생활이 만만치 않을 것은 이미 예견된 일이었다. 한국에서 중학교에 다녔지만, 영어 알파벳을 아는 정도에 불과했기 때문에 미국 교과 과정을 따라잡을 수 있을 지 한 씨 부부는 걱정이 태산이었다. 한 씨는 입학 전까지 예진이를 집에서 직접 가르치기로 했다. 매일 아침 9시부터 오후 3시까지 빡빡한 공부 일정을 만들었다. 책 읽고 단어 매일 외우고 문장 만들고 수학을 가르쳤고 금요일에는 아이들을 데리고 미술관에 다니면서 예술과 문화를 가르쳤다. 남편 신 씨는 주말 시간을 온전히 예진에게 내 주었다. 예진에게 에세이를 가르치고 미래의 꿈과 비전을 심어주었다. 

“예진이는 단어를 10개 외우기 숙제를 주기 시작해서 하루에 20개, 30개씩 늘려갔어요. 제가 주는 대로 열심히 따라오는 예진이고 고맙고 기특했지요.”

그렇게 2014년 여름 3개월 동안 예진이를 위한 특별 홈스쿨링이 강도 높게 진행했다. 예진이가 8학년으로 입학한 뒤에도 한 씨 부부의 방과 후 홈스쿨링은 계속됐다. 이듬해 고등학교에 진학하려면 어느 정도 학교 과정을 따라잡아야 했다. 버거운 학교 숙제, 학교생활 적응, 언어 문제 등 예진이와 관련된 모든 것들을 하나하나 섬세하게 보듬어야 했다. 역시 ‘아이비리그’ 출신 아빠의 토요일 과외는 특별했다.

아빠와 광범위한 주제로 영어로 이야기하고 글을 쓰기 시작하더니 예진이의 실력은 눈에 띄게 향상했다. 반에서 금새 치고 나가더니 고등학교를 전교 2등, 에세이는 1등으로 졸업했다. 미국에 온 지 얼마 안 된 아이가 이렇게 잘 할 수 있는가? 선생님이 혀를 둘렀다고 한다. 그러나 대학 입학은 또 다른 숙제였다. 아이비리그에 진학해도 될 법했지만 짧은 시간에 언어와 아카데미 교육에 집중하다 보니 예진이는 다른 또래 미국 학생들 보다 액티비티가 부족했다. 또, 예진이가 유학생 신분이라 고가의 아이비리그 등록금도 걱정거리였다. 결국, 예진이는 올 9월부터 명문사립대인 오하이오주 클리블랜드에 소재 ‘케이스웨스턴리저브대학’에서 장학금을 받고 입학하게 된다. 

황새와 사는 뱁새 기분. 흠잡을 곳 없는 흠을 가진 남편 신순규 씨

한근주 씨는 94년에 ‘뉴욕밀알선교단’에서 남편 신순규 씨를 처음 만났다. 당시 신 씨는 JP모건에 입사한 촉망받는 재무 전문가였고 한 씨는 음악학도였다. 오후 시간을 자폐 아동을 돕는 봉사를 하면서 두 사람은 가까워졌다. 

“안내견을 항상 데리고 다니는 시각 장애자였지만, 남편이 장애자라고 느껴본 적이 없어요. 밀알 선교단에서 봉사 계획을 짜는 것부터 하나하나가 빈틈없고 일 진행이 빠르고 리더십이 대단하더라고요. 신앙관, 가치관도 특별했고 배울 점이 너무나 많았지요. 장애는 있지만 내 인생을 걸어볼 수 있겠노라 했었죠.”

한 씨가 신 씨를 라이드 해주면서 친구가 됐고 어느새 결혼 이야기가 오가는 사이가 됐다. 그러나 한 씨 아버지에게 시각장애자 사위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문제였다. 또한 자기 딸이 과연 시각장애인을 평생 남편으로 두고 잘 살아갈 수 있을까 염려되었다.

“아버지께선 너에게 3년의 시간을 주겠다. 그동안 마음 안 변하면 인정해주겠다고 하셨죠.” 

‘3년이 아니라 30년도 안 변할 아이’라고 한 씨의 편을 드는 어머니의 등에 떠밀려 아버지는 신 씨를 직접 찾아가 보기로 했다. 멋지게 테이블 세팅을 하고 음식을 차려놓고 집에서 예비 장인을 기다린 청년 신순규 씨. 아버지는 그날 신 씨의 성품에 반해 딸에게 미안하다 항복 선언을 했고 마침내 그들은 함께 봉사했던 뉴욕밀알선교단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그러나 신체장애가 장애로 느껴지지 않았던 연애 시절과는 달리 결혼 생활은 한 씨에게 녹록지 않은 부분이 많았다. 10년 노력 끝에 아들을 얻었지만, 아이를 돌볼 때 남편의 시각장애는 현실적인 서러움으로 다가왔다. 천방지축 에너지 넘치는 아들을 몸을 써 놀아주고 돌아다녀야 할 때 한 씨는 이미 체력의 한계를 느껴 어느 날인가는 기도하며 대성통곡을 했다. 남편에게 볼멘소리를 늘어놓으면서 남편 탓을 하고는 싶은데 남편은 ‘흠잡을 곳 없는’ 흠을 가진 남편이었으므로, 하나님 앞에서 울음으로 씻을 수밖에 없었다.

“너무 바른 사람이라서 무슨 꼬투리를 잡을 것이 없었어요”

한 씨는 황새와 사는 뱁새 기분이었노라 했다. 하나님께 철저히 순종하는 삶을 실천하는 황새 남편, 시각 장애라는 어려움을 신앙의 뜨거움으로 녹였던 큰 걸음의 황새 남편에게 비장애인 한 씨는 헉헉대며 짧은 다리로 따라가는 애처로운 뱁새였다. 그러나 황새의 큰 걸음 사이를 메우는 촘촘함의 영역에 한 씨의 긍정성이 있었다. 가랑이 찢어지지 않고 둘은 신앙의 힘으로 그 폭을 좁혀 나갔다.
한근주, 신순규 부부는 이제 조금 발을 뻗는다. 최초로 말씀을 주신 하나님이 최초로 주신 딸과 함께 어려운 팬더믹 시간을 보내는 와중이건만 더 친밀하고 더 가깝게 서로를 보살피며 긍정하며 살아간다. 
예진이가 9월에 대학에 입학하면, 이제 어떻게 그 허전함을 견딜 것인가? 가슴을 통째로 내준 엄마는 그렇게 내 준 가슴을 예진이가 온전히 간직하고 떠나기를 기도한다. 말씀으로 빛이 생겼듯 그 빛을 간직하고 예진이가 살아가길 기도한다. 예진이가 꿈꾸던 파티는 그런 빛의 파티여야 한다. 그리고 이제 파티는 시작됐다. 

*’양수연 기자가 만난 사람’은 월간 <뉴스M> 양수연 편집장이 영적인 삶을 실천하는 보통 사람들의 삶을 ZOOM IN 합니다. 여러분 곁에서 특별한 삶의 향기를 뿜어내는 분들을 제보해 주시기 바랍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