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압된 것은 귀환한다.”
“억압된 것은 귀환한다.”
  • 양수연 기자
  • 승인 2020.06.13 1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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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폭력의 틈, 슬픈 선택의 주체에게 필요한 것은?

 “돈이냐, 목숨이냐?”

양수연 정신분석클리닉 대표
양수연 LPI 정신분석클리닉 대표

[뉴스M=양수연 기자] 강도가 침입해 이렇게 묻는다면, 목숨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돈을 선택한다면 그는 목숨도 잃을 것이기 때문이다. 대타자의 개입으로 상징계에 진입한 주체는 이렇듯 강요된 선택을 통과해야 한다고 프랑스 정신분석학자 자끄 라깡은 말했다.

19세기 초 석탄 산업을 이끌었던 웨일스 지역의 광부들은 안전 헬맷을 거부해야 했다. 헬멧은 탄광의 피해를 줄여줄 터이지만 광부들은 헬맷을 선택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 비용은 월급에서 공제됐기 때문이다. ‘돈이나 목숨이냐’는 결코 자유로운 선택이 아니다. 돈에 맞서 목숨을 선택하면 둘 다 잃을 수도 있다.

이것은 팬더믹 상황에서 돈을 벌기 위해 직장에 돌아갈 수밖에 없는 노동자들에게 주어진 선택이기도 하다.이 질문은 “자유냐, 목숨이냐?”는 질문으로 변용할 수 있다. 미국이라는 ‘낙원’에서 우리는 서로 의존적이기 때문에 원래 선택한 것을 잃어버릴 수밖에 없는, 결코 자유로운 선택이 아닌 선택을 해야 한다. 목숨을 소비하는 자유는 자유가 아니라는 생각에서 혁명이 시작한다. 그것은 소외된 주체의 몸부림이다.

조지 플로이드는 트럼프에 맞선 상징적 이미지가 되었다. 소외된 주체의 몸부림은 권력의 ‘청각 장애’에 기인한다. 타자가 귀를 닫았을 때 주체는 말로서 메시지를 전달할 수 없어 행동으로 표현하도록 내몰리게 된다. 정신분석학에서 말하는 ‘액팅-아웃(Acting-Out)’이 이것이다. 그것은 때론 폭력으로 분출되기도 한다. 인류의 역사를 돌아볼 때 평화적인 시위 속에서 폭력은 액팅-아웃의 형태로 튀어나왔다. 자연재해의 극심한 현장에서도 그런 일은 일어났다. 1,836년의 목숨을 앗아간 2005년 허리케인 카트리나의 재앙 속에서도 폭력, 약탈, 강간이 발생했다.

지난주 폭스 뉴스는 CNN보다 6배 넘게 ‘폭동’을 언급했다. 그런데도 로이터 통신의 최근 조사에 따르면 미국인의 64%가 시위대에 동정을 표하고 경찰의 잔인한 행동을 중단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55%는 트럼프의 반응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평화 시위를 장려해야 하는 것은 명백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폭력, 약탈의 돌발 행위들은 현실을 ‘찢어내는’ 드문 순간임도 알아야 한다.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선택의 틈에서 진실을 읽어내야 한다.

"폭동은 경청 되지 못한 자들의 언어이다” -마틴 루터

트럼프는 플로이드의 죽음 후 “오직 착한 민주당원은 죽은 민주당원(The only good Democrat is a dead Democrat)”이라는 영상을 리트윗했다. 이 말은 오직 "착한 빨갱이는 죽은 빨갱이(The only good communist is a dead one.)”라고 했던 소련의 니키타 흐루쇼프를 연상케 한다.

다문화 관용을 읊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그것은 인종편견을 암암리에 유지하는 방식으로 작동되어 왔다. 그것은 플로이드의 죽음의 몸짓조차 ‘폭력’이라는 하나의 브러쉬로 색깔을 씌우는 것과 비슷하게 외설적이다.

슬픈 선택을 한 소외된 주체에게 필요한 것은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는 그들만의 ‘말’, 그들만의 언어이다. 그리고 그 언어를 경청해야 한다. 그렇지 않는다면, ‘죽은 빨갱이’는 되돌아올 뿐이다. 억압된 것은 다시 돌아온다. 그것이 실재(The Real)의 원리이다.

양수연 기자는 월간 <뉴스엠>편집장이며 정신분석가(lacanpi.com) 로 활동하면서 LPI 정신분석 클리닉 홈페이지 https://www.lacanpi.com 를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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