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5남북공동선언 20주년, 남북관계의 위기를 보면서
6.15남북공동선언 20주년, 남북관계의 위기를 보면서
  • 뉴스M 편집부
  • 승인 2020.06.17 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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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엽 교수 칼럼 (워싱턴앤리 대학 정치학 교수)

북한의 말과 행동이 심상치 않다. 

이인엽 교수
이인엽 교수

평창 올림픽 부터 김정은의 대남특사로 온 후, 문재인 대통령과 여러번 만나 대남 관계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했던 김여정 북한 노동당 제1부부장이, 강경한 발언을 쏟아내고 있다. 지난 4일 담화에서 "최악의 사태를 마주하고 싶지 않다면 제 할 일을 똑바로 하라"며 탈북 단체들의 대북 전단 살포와 관련 한국 정부에 경고했고, 지난 9일에는 남북 사이 모든 직통 연락선을 차단했으며, 13일 담화에서는 "확실하게 남조선것들과 결별할 때가 된듯 하다"며, "멀지 않아 쓸모없는 북남공동련락사무소가 형체도 없이 무너지는 비참한 광경을 보게 될것"이고, "다음번 대적행동의 행사권은 우리 군대 총참모부에 넘겨주려고 한다. 우리 군대 역시 인민들의 분노를 다소나마 식혀줄 그 무엇인가를 결심하고 단행할것이라고 믿는다"고 대남 도발까지 예고했다. 이후 3일만인 16일 오후 2시50분 북은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해 버렸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합의한 4·27 판문점선언에 의해 설치된 사무소로, 남북합의의 상징이자 일종의 외교공관을 스스로 부숴버린 것이다. 그리고 북한 조선인민군 총참모부는 17일 “북남 합의에 따라 비무장화된 지대들에 군대가 다시 진출해 전선을 요새화”하겠으며(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 지역을 의미) 접경지역에서의 군사훈련을 재개할 것이라고 했다. 9·19 평양공동선언에서의 남북군사합의 선언 파기를 언급한 것이다. 

문재인 정부하에 진행된 남북협력의 모든 성과를 원점으로 돌리려는 듯한, 이러한 강경한 발언과 행동들이 나온 원인은 무엇이고, 이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이미 많은 논평들이 있었는데, 한가지 동의하기 어려운 주장들은 이런 남북관계 파탄의 책임을 손쉽게 문재인 정부에 돌리는 입장이다. 원래부터 북한은 협상할 상대가 못 된다는 이야기를 반복하며, 현재와 같은 위기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보수층은 물론이고, 일부 진보층에서도 남측이 한미워킹그룹을 통해 남한의 행동에 제동을 거는 미국 눈치보기에 급급해 더 적극적으로 남북교류협력을 추진하지 않았고, 남북합의선언들을 국회비준하지 못했고, 국방예산 증가나 F-35 도입, 사드 신규장비 반입 의혹, 탈북자 단체의 삐라 문제에 더 신속 강경하게 대처하지 못해서, 현재와 같은 남북관계의 위기를 가져오는데 책임이 있다며, 문재인 정부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물론 남북교류협력이 활발하게 진행되었더라면 좋았겠지만, 좀더 직접적이고 거시적인 요인들보다 너무 손쉽게 문재인 정부의 책임을 거론하는 것은 동의하기 어렵다. 당연히 현재의 상황에 가장 큰 요인은 하노이에서의 회담 결렬이고, 그 이후 남측에 대한 북한의 언급은 이미 비판적으로 변해왔다. 제재를 강조하며 속도조절론으로 남한정부의 행동을 제한하는 미국의 압박도 있었고, 북한 측 역시 남측의 제안에 응하지 않은 경우가 많았던 점에서, 남북협력의 여건 자체가 매우 어려웠던 상황도 고려해야 한다. 

하노이로 돌아가보자. 
김정은은 66시간 동안 기차를 타고 중국을 거쳐 베트남에 도착했다. 민수경제에 직접적인 타격을 주는 5개의 제재를 해제하는 조건으로 영변핵시설의 완전한 폐기를 제안했다. 그런데 트럼프 정부는 볼턴을 내세워 북한의 모든 핵시설의 비핵화 뿐 아니라, 생물학, 화학무기, 탄도미사일과 발사대, 확인되지 않은 핵시설들, 핵개발 관련자들의 비군사분야로의 전환까지 북한이 먼저 행동할 것을 요구했다. 즉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 소위 CVID를 최종 목표가 아닌 선결조건으로 내세우는, 항복요구에 가까운 리비아 모델을 요구한 것으로, 이는 협상을 하자는게 아니라 깨자는 것이었다. 당연히 북한이 요구한 제재 해제도 거부했다. 여기에는 트럼프가 하노이 회담기간 자신의 측근이었던 마이클 코헨의 의회 증언으로 비판에 직면하고 있었고, Vox뉴스를 통해 공개된 하노이 잠정합의문에 대한 국내 반응이 비판적인 것으로 인해, 하노이 합의가 국내정치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한 트럼프의 결정이 작용했다. 그래서 원래 북한과의 협상에 회의적이었던 네오콘인 볼튼으로 하여금 판을 깨게 만든 것이다. 또한 이런 결정 뒤에는, 북한이 제제해제를 요구한 것을 보니, 2016~2017년간 부과된 강력한 유엔제재가(소위 crippling sanctions) 효과를 발휘한 것이며, 그렇기에 이렇게 효과적인 제재를 쉽게 해제해서는 안되고, 제재로 북한을 굴복시켜 CVID를 이룰 수 있다는 제재 만능론자들의 주장도 작용했을 것이다. 

하지만 하노이 회담 결렬 후 진행된 리용호 외무상의 기자회견 발언을 들어보면, 제제해제 요구에 대해서는 "우리가 비핵화 조치를 취해나가는 데서 보다 중요한 문제는 안전담보 문제이지만 미국이 아직은 군사 분야 조치 취하는 것이 부담스러울 것이라 보고 부분적 제재 해제를 상응 조치로 제안한 것"이라 밝혔고, 북한은 향후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실험을 하지 않겠다는 서면약속을 줄 의향도 있었다고 했다. 북핵전문가인 지크프리드 해커 박사에 의하면 영변 핵시설은 북한 핵능력의 70~80%를 차지한다. 그런 영변을 통째로 포기하겠다고 나섰던 것이다. 
결국 북한은 하노이에 상당한 기대를 하고, 정권의 명운을 걸고 협상에 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제재로 고통스러운 면도 분명 있었겠지만, 미국의 제재 해지는 딱히 돈이 들지 않는 조치라는 차원에서, 영변 전체를 포기하는 것에 대한 대가로 미국이 부담없이 받을 수 있고, 그렇게 되면 장기적인 북미협력의 중요한 디딤돌로 하노이 협상이 체결될 거라 기대했다고 분석할 수 있다. 제재로 목을 조여서 북한이 협상에 나왔다는 제재 만능론자들의 분석과 달리, 북한은 핵무력 완성으로 인한 협상력에 대한 자신감, 그리고 남측의 중재외교의 결과로 협상에 임했을 수 있다는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과의 대화에서 받은 조언, 그리고 싱가포르 정상회담 등으로 만들어진 트럼프와의 관계등의 요인으로 협상타결 가능성이 높다고 계산한 것이다. 추측해보자면, 도보다리 회담을 비롯해서 김정은의 주된 질문은, 북이 비핵화를 했을 때, 트럼프가 과연 북한을 협상상대로 인정하고 상응조치를 해 줄 것이냐는 내용이었을 것이고, 문재인 대통령은 긍정적인 답변, 그리고 가능한 협상안 등을 제시하지 않았을까 싶다. 역시 추측이지만, 문정인 교수도 한 강연에서 이런 언급을 했는데, 문재인 대통령이 그런 대답을 주는데 있어서, 미국과의 조율과 의사타진 없이 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 그리고 김정은이 그 조언을 따라 영변이라는 북한 핵능력의 핵심을 협상물로 던졌는데도, 트럼프가 면전에서 거절하자, 북은 미국 뿐 아니라 중재자 역할을 한 남측에 대해서도 실망과 분노를 느낀 것이 아닌가 추측해 볼 수 있다. "중매를 잘 서면 술이 석잔, 잘못서면 뺨이 석대"라는 한국 속담처럼, 불똥이 남한 측으로 튄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트럼프 정부에 대한 문재인 정부의 영향력의 한계를 논할 수도 있겠지만, 트럼프라는 예측불가하고 정치적 이득에 모든 것을 종속시키는 인물의 특성, 그리고 미국 국내정치 상황이라는 문재인정부가 통제할 수 없는 변수들이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Vox뉴스에 보도된 잠정 합의안을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그것이 신빙성이 있다면, 미국의 국내 상황이 좋았더라면 하노이에서 부분적 제재해제와 영변비핵화를 교환하는 합의가 도출될 가능성이 있었다. 

김정은은 다시 66시간 동안 기차를 타고 돌아가면서 분을 삭히기 힘들었을 것이다. 또한 영변을 협상카드로 던지기 까지 했는데, 모욕적인 대우를 받고 빈손으로 돌아간 상황이라, 국내정치적으로 위기를 맞이했을 수 있다. 한 소식통에 의하면, 북미협상으로 경제가 나아질 것에 대한 북한 내부의 기대가 상당했다고 하는데, 그런 점에서 협상파도 실망했을 것이고, 반대로 군 중심의 강경파는 핵포기에 가까운 저자세를 보이고도 미국에서 무시당하고 돌아온 김정은에 대한 비판적인 여론이 있었을 것이다. 

9.19 평양 남북정상회담에서 김정은은 북한 통치의 핵심계층인 15만 평양시민들이 들어찬 능라도 경기장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연설을 하게 했고, 장성택 숙청 등 자신이 중대결단을 할 때마다 올랐던 민족의 영산 백두산에 문재인 대통령과 함께 올라갔다. 이는 북한 인민들 앞에서도 남북협력을 공식화하고, 이를 기반으로 북미협상을 추진하겠다는 것을 공언한 파격적인 조치였다. 하지만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남북의 모든 노력에도 하노이를 결정지은 것은, 마이클 코헨이라는 우연적인 요소와 트럼프의 국내정치적 이해관계라는 점에서 우리의 운명이 우리 손에 있지 않은 현실을 슬퍼하게 된다. 

결국 김정은으로서는 다년간의 핵실험을 통해 쌓은 관심과 협상력, 그리고 긴밀한 남북협력에 기반해, 영변이라는 협상카드를 내밀었는데 미국에 완전 무시를 당한 상황이었다. 핵을 들고 있는데도 이렇게 무시를 당하면, 북한이 핵을 포기한다 한들 미국이 상응조치를 할 것인가, 그리고 미국과의 협상이 가능하겠는가에 대한 회의감이 커졌을 것이다. 결국 완전히 판을 뒤집는 무언가를 고민하지 않았을까 추측해 볼 수 있다. 
그렇게 보면 남북협력을 무효로 돌리는 현재의 조치는, 단지 남한의 구체적인 몇가지 행동 혹은 행동의 부족에 대한 실망으로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김정은이 자신의 실책을 인정할 수는 없고, 이에 대해 책임을 돌릴 필요가 있었을 것이고, 중대한 정책전환을 위한 명분도 필요했을 가능성이 크다. 
이것이 단기적으로 김정은의 정책 실패에 대한 남측으로의 책임전가일지, 아니면 앞으로의 대남, 대미 전략을 전면 수정하는 전환점의 시작단계일지 아직 결론내리기는 어렵지만, 앞으로 북한이 미국에 대해 어떤 대응을 할지를 보면 알게되지 않을까 싶다. 

남북연락사무소 폭파 (연합뉴스 유투브 갈무리)
남북연락사무소 폭파 (연합뉴스 유투브 갈무리)

문제는 이러한 상황의 최종적인 책임은, 자신의 국내정치적 이해를 위해 하노이 협상을 파탄낸 트럼프에 있는데, 그 불똥은 일차적으로 만만한 문재인 정부에게 튀고 있다는 것이다. 굴욕을 당한 김정은의 분노는 이해가 가지만, 동시에 도의적으로 생각해보면, 전쟁직전까지 가던 북미대립 관계에 평창올림픽을 통해 대화국면으로 바꿔나가고, 남북 대화, 북미중재를 통해 싱가포르와 하노이까지 끌어간 것은 당연히 문재인 정부의 공이다. 당시 세계여론도 문대통령의 외교적 수완에 감탄해 "Master deal maker"와 "The Great Negotiator"로 칭찬 했었다. 그런데 판이 깨졌다고 남한에게 북이 이렇게 까지 나오는 것은, 그간 이뤄온 남북합의의 정신과 민족공조에 부합한지 질문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보수든 진보든, 이 상황에서 문재인 정부 탓하기에 바쁜 것이 적절한지 의구심이 드는 것이다. 

물론 남북협력을 바라는 입장에서, 미국의 반대에도 남측이 치고 나가서 민족공조를 할 수 있는 환경이라면 더할나위 없이 좋았겠으나, 하노이에서의 태도를 보면 트럼프 정부의 기조가 북한의 선CVID 요구, 그리고 그때까지 강력한 제재유지를 통한 압박으로 굳어진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런 점에서 남한 정부가 개성공단, 금강산 관광을 재개하고, 남북협력을 추진하는 것을 미국이 호락호락 받아줄 가능성이 얼마나 있었을까? 한 인터뷰에 따르면 현재 트럼프 정부내에 '단계적 접근'을 지지하는 사람이 없는 것 같다는 미국 정부내 고위 공직자의 언급도 있었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미국의 정책 결정자들은 물론이고, 주로 경제학적 접근을 하는 인사들 중에 거의 제재만능론자에 가까운 입장을 보이는 이들이 있는데, 이들의 입김이 상당히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무역 의존도가 높지 않고 외부 압박속에 버티는데 이미 익숙하며, 압박할 수록 강경하게 나오는 북한의 특성, 북한의 붕괴를 내버려 두지 않을 북중관계의 특수성과 이미 2018년 부터 북중관계가 복원되고 있는 상황 같은 정치적 요인들을 무시하고 있다는 것이고, 그런 면에서 제재를 통한 북한 굴복이라는 불가능한 목표를 기다리다가, 유일한 해결책인 단계적, 동시적, 상호적 행동에 의한 비핵화의 기회를 놓치게 되었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었을 때, 북핵문제는 풀기어렵겠다고 생각했었다. 클린턴 2기, 부시2기, 오바마2기를 거치면서 이런저런 시도에도 풀지 못한 문제를, 트럼프 같은 성격의 대통령과 풀어내기란 어렵다는 생각이었다. 그럼에도 기대를 가졌던 원인은, 문재인 대통령의 탁월한 중재외교 때문이었고, 일단 정상회담이 성사된 이상, 김정은과 트럼프의 정치적 이해관계가 북미협상과 연동이 되어서 쉽게 깨기는 어려울 거라는 희망적 요소 때문이었다. 섣불리 북미협상의 완전한 실패를 선언하기는 어렵겠지만, 하노이를 보면서 트럼프는 북한문제에 대해 이해가 심각하게 부족한 인물이라는 것을 새삼 느꼈다. 북한 전문가인 지크프리드 해커 박사에 의하면 북한의 비핵화는 그 규모를 생각할 때, 잘 풀려도 10~15년이 걸린다고 예측했다. 그런데 최종적 목표가 되어야 하고 아직 그 정의도 명확치 않은 CVID를 당장 내놓으라고 요구하는 것, 하나 하나의 협상을 자신의 이익을 놓고 언제든 걸어나올 수 있는 일종의 비즈니스 딜 처럼 취급하는 모습을 보면, 트럼프 정부하에서는 협상의 미래가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다. 11월의 대선 결과에 따라 어떤 상황이 열릴지도 중요한 주제인데, 지면의 한계상 여기서는 다루지 않겠다. 

어쨌든 이런 상황에서 문재인 정부가 어디까지 혼자 치고 나갈 수 있었을까 묻고 싶다.솔직히 싱가폴과 하노이까지 간 것도, 문재인 정부가 예측불가능한 트럼프 정부를 어르고 달래서 거기까지 온 것인데, 하노이 이후 판이 깨진 상황에서 미국의 반대와 북한의 냉대를 무릅쓰고 우리 정부가 어디까지 행동할 수 있었을지 현실적인 한계를 인식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다같이 군축과 평화의 길로 갈수 있다면 더할나위 없이 좋겠지만, 한반도 대립이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남한이 군비축소를 하지 않는 것 만을 비난하기도 쉽지는 않다. 북한이 핵실험 미사일 실험할때 남한에게 허락받고 한적이 없듯이 말이다. 이런 점에서 일부 분석가들이 현재 북이 남에 대해 가하는 비판을, 말 그대로 받아서 우리 정부를 비판하는 것은 공정하지 못하다는 생각이다. 

물론 반대로 우리 정부가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주장은 아니다. 탈북단체들의 삐라문제에 대한 대응이 필요하고, 늦은감이 있지만 남북합의들의 국회 비준을 추진하는 것도 의미있는 일이다. 다만 현재의 상황은 하노이 회담의 붕괴라는 거시적인 차원에서 이어진 흐름인데, 문재인 정부 탓만 해서 문제가 풀릴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현재 미국 국내정치는, 트럼프가 코로나 확산과, 인종차별 문제에 형편없이 대응함으로서 대혼란을 겪고 있고 11월 대선의 결과를 예측하기 힘들다. 또한 무역분쟁과 홍콩 문제 등 미중간의 갈등도 악화일로인 상황이다. 결국 장기적으로 문재인 대통령의 중재외교, 남북협력 외교가 필요한 것은 자명하지만, 현재 모든 상황이 호의적이지 않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조치들과 대화 노력을 이어나가되, 우리 정부가 컨트롤 할 수 없는 요소들을 매우 신중하게 지켜보면서, 섣불리 행동하기 보다, 적절한 타이밍을 기다릴 필요가 있다고 본다. 

하노이 실패와 그에 대한 북한의 반작용이라는 거시적 요인과 함께, 북한의 행동에 대한 다른 하나의 가설은, 이러한 강력한 조치가 요구되는 북한 내부 상황이 있을 수 있다는 가능성이다. 물론 '늑대가 나타났다'를 반복하는 보수주의자들처럼 쉽게 급변사태를 논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앞에서 언급한대로, 하노이의 실패는 국내적으로 김정은의 리더쉽에 타격을 주었을 것이다. 또한 2016~2017년에 부과된 경제재재도 북한의 무역과 외화벌이에 몇년간 영향을 주고 있으며, 정보는 없지만 두달 가까이 개학을 연기한 것을 보면 코로나 사태로 인한 피해상황도 있을 것이며, 코로나로 인해 북중 국경도 봉쇄되는 등, 여러 요인들이 부정적으로 작용하고 있을 것이다. 한 인터뷰에서 정세현 전 장관은 현재 김여정이 적극적으로 발언을 하며 군에 지령을 내리는 듯한 모습까지 보이는 것을 보면, 당장 위기가 아니더라도, 향후를 대비해, 김여정을 2인자로 내세우는 작업이 진행중일 가능성이 있다고 언급했다. 조심스러운 이야기지만, 북한은 리더쉽 전환기에는 외부협상을 중단하고 강경한 태도를 보였던 경향이 있다. 이 가설은 좀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 

어쨌든 6.15 20주년을 맞는 뜻깊은 시점에, 북측이 지난 몇년간의 남북협력의 업적을 무로 되돌리는 조치들을 밀어 부치고 있는 것은 너무나도 괴롭고 안타까운 일이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트럼프라는 예측불허, 통제불가의 인사를 한편에 두고, 다른 한편으로는 김정은 정권을 설득해야 하며, 시진핑, 푸틴, 아베같은 이웃들에 둘러싸인 채, 북핵협상을 진행해야 하는 문재인 정부의 상황이, 엄청난 고난이도의 외교적 상황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우리 정부에 힘을 실어주고, 냉정하게 한반도와 동북아의 상황을 지켜보고 장기적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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