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즐겁게 기도하리라!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즐겁게 기도하리라!
  • 황재혁
  • 승인 2020.06.27 07: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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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마이클 리브스, 기도하는 즐거움, 이레서원, 2020년
"기도하는 즐거움" 마이클 리브스
"기도하는 즐거움" 마이클 리브스
유튜브 [오늘의신학공부]를 운영하고 있는 장민혁 크리에이터의 서평입니다.

<기도하는 즐거움>이라는 제목을 보자마자, 이 책은 꼭 읽어야지 싶었다. 요즘 기도하는 게 통 재미가 없었기 때문이다. 처음 신앙생활을 시작했을 때는 알라딘 램프라도 되는 양, 수첩에 소원을 빼곡히 적어가며 기도했다. “성적이 오르게 해주세요” 이런 기도제목들이 나름의 응답(?)을 받으면, 한 줄씩 지우는 맛이 있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내 신앙생활이 어딘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느꼈고, 더이상 기도 수첩은 적지 않았다.

그 이후에는 “내 자아는 죽고 예수님만 드러나게 해달라” 라는 식으로 기도했다. 단 한 순간도 필자의 헛된 정욕에 휘둘려 살고 싶지 않았다. 24시간 예수님만 바라보고 싶었다. 늘 그렇게 기도했고, 셀 모임에서 기도제목을 나눌 때에도 똑같이 기도를 부탁했다. 재수 없다는 반응도 있었고, 기특하다는 반응도 있었다. 그 당시에는 이런 반응을 은연중에 즐겼던 것 같다. 또 이렇게 기도했기 때문에, 필자가 내리는 모든 선택은 “나의 뜻”이 아닌, “하나님의 뜻”이라고 확신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신학을 공부해보니, 이런 기도에는 맹점이 많았다. “나의 뜻과 하나님의 뜻이 무 자르듯 분리될 수 있는가”라는 의구심이 들었는데, 곧 인식론적 측면에서 내 뜻과 하나님의 계시의 경계가 모호하게 느껴졌다. 또 한편으로는, 개인 영성에 지나치게 치우쳐 계신 일부 어른들이 사회 정의나 구조적 문제에 무관심한 모습들을 보면서 괜스레 회의감을 느끼기도 했다. 본회퍼의 말마따나 교회는 세상 한복판에 있는데, 여전히 수도원에 사는 듯한 신앙의 행태가 이질적으로 느껴졌다.

그래서 기도에 시큰둥해졌던 것인데, 여전히 기도와 친해지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다. 사람들이 필자를 “전도사님”이라고 부를 때마다 기도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들기도 했고, 또 지난날 은혜로 마음이 촉촉했던(?) 시절이 그립기도 했다. 지나치게 이성적이고 건조한 신앙을 갖게 된 건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들었다. 과거에 대한 향수였을 수도 있고, 마음 한가운데 “하나님 모양의 공백”이 있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렇게 기도에 대한 고민과 갈급함에 허덕이다가 이 책을 만나게 되었다.

85페이지 밖에 안되는 착한 분량 덕분에 앉은 자리에서 책의 ‘엔딩’을 볼 수 있었다. 조직신학을 전공한 저자답게, 기독론과 성령론을 중심으로 기도의 의미에 대해 풀어 가는데, 짧은 분량과 쉬운 언어 그리고 핵심만 간략히 전달하는 구성 덕분에 지루하지 않았다. 다만 특별한 내용이나 통찰을 기대했다면 실망할 수도 있다. 기도에 대한 새로운 패러다임을 소개하는 책이 아니라, 기도의 본질을 돌아보며 기본기에 충실한 책이기 때문이다.

어떻게 하면 기도가 즐거워질 수 있을까? 저자에 따르면, 특별한 비결은 없다. 기도는 노력하지 않아도 “원래 즐거운 것”이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는 죄의 담을 허물고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를 회복시키기 위해 이 땅에 오셨고, 십자가를 지셨다. 기도는 “예수님이 지금까지 늘 누려 오신 하나님과의 교제를 우리도 함께 누리는 법을 알아가는 일이다.”(p.37)

이 책의 핵심 논지는 기도가 선물이라는 것이다. 선물의 정체를 파악하기 위해 현미경으로 분석해보는 것도 나름의 의미가 있겠지만, 선물은 모름지기 포장부터 뜯고 봐야 한다. 그리고 선물한 사람의 마음을 만끽해야 한다. 누릴 때, 선물은 비로소 선물이 되기 때문이다. 이 책을 두고두고 꺼내 읽고 싶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특별한 내용도, 예리한 통찰도 없지만 한 장 한 장 읽을 때마다 “맞아 기도는 선물이지”라는 생각에 슬며시 기도하고 싶은 마음이 벅차오른다.

기도는 원래 즐겁다. 그 이유는 기도의 속성 때문이 아니라, 기도의 대상이 아버지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그 누구도 차별 없이 맞이해 주시는 예수님이시기 때문이다. 그 어떤 가식도 없이, 있는 모습 그대로 대화할 수 있는 자리가 있다면 즐거울 수 밖에 없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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