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평화, 그리고 하나님 나라
정의, 평화, 그리고 하나님 나라
  • 최태선 목사
  • 승인 2020.07.02 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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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선 목사 칼럼

아나뱁티스트 신학은 명료합니다. 제자도, 공동체, 평화가 그들의 구체적인 지향점입니다. 그것은 하나님 나라 신학의 관점과도 정확히 일치합니다. 마지막 평화가 정의와 순서를 다툴 수 있지만 결국 정의가 평화이고 평화가 정의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나라 관점을 가지게 된 저는 브루더호프 공동체와 마찬가지로 그들과 신학적 일치를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대로 공동체를 이루고 나면 저도 브루더호프 공동체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그들과의 형제 관계를 선포할 수밖에 없을 겁니다.

제자도의 경우는 그래도 기존의 한국교회에 울림을 주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시작은 제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자훈련이라는 것이 지금까지도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제자훈련이라는 것은 실제로 제자가 되는 과정이 되기보다는 교회 성장이나 부흥의 한 수단이 되었다는 것이 그 정확한 진단일 것입니다. 그것은 제자훈련의 본산이었던 사랑의교회를 보면 더 분명해집니다. 그들이 진정 제자가 되었다면 오늘날의 사랑의교회와 그 웅장한 건물은 없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머리 둘 곳이 없으셨던 주님을 도무지 따르고 있지 않습니다. 어쨌든 제자도에 관한 아나뱁티스트의 책들은 그래도 비교적 큰 저항 없이 한국교회에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공동체에 이르면 그것은 ‘넘사벽’이 됩니다. 말 그대로 넘을 수 없는 다른 차원이 존재합니다. 그래서 공동체를 말하면 대부분의 한국 교인들은 이단을 떠올립니다. 그것은 그동안의 한국의 이단들이 남겨놓은 유산이기도 합니다. 대표적인 예가 신앙촌일 것입니다. 최근의 김옥주가 피지에 세웠던 공동체 역시 한국 교인들로 하여금 공동체라는 말만 들으면 경기를 일으키게 하는 동력이 되었습니다. 여기에 두레공동체 역시 빼놓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빈민운동이 아닙니다. 그들 역시 공동체 이해의 걸림돌일 뿐입니다.

그러나 한국 교인들이 공동체를 경원시하게 된 보다 더 근본적인 이유는 자신들의 현재 교회를 공동체로 인식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오늘날의 교회를 공동체가 아니라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공동체란 말의 의미와 그 스펙트럼의 파장이 매우 길기 때문입니다. 두 사람 이상이 꾸준히 관계를 유지하기만 해도 그것을 공동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나뱁티스트가 말하는 공동체는 그런 느슨한 공동체도 세상적인 공동체도 아닌 하나님 나라 공동체를 의미합니다.

현재의 자신들 교회를 공동체로 인식하는 한국 교인들이 하나님 나라 공동체를 이단으로 인식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아나뱁티스트가 말하는 공동체는 복음의 당연한 결과물임에도 이단들의 것으로 완전히 자리매김하였습니다. 슬픈 일입니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부터 복음과 교회의 결별이 시작되었습니다.

복음이란 애초에 공동체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공동체가 없으면 복음도 없습니다. 공동체의 이해와 지원 없이 복음대로 사는 것은 자살행위로 인식될 수밖에 없습니다. 실제로도 그렇습니다. 그리고 오늘 우리는 그러한 현실을 보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의 특징인 모든 부패와 타락은 바로 이러한 하나님 나라 공동체의 부재에서 일어나는 자연스러운 열매입니다.

이러한 공동체에 대한 이해 부족은 하나님 나라의 평화를 죽음 이후의 피안 세계로 몰아냈습니다. “너희는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하여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여 주실 것이다.”라는 말씀에는 제자들이 하나님 나라와 하나님의 정의를 위해 살기를 바라시는 예수님의 염원이 담겨 있습니다. 제자들의 일 순위는 하나님 나라와 하나님의 정의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한국 교인들은 이러한 예수님의 염원과는 반대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개인 구원’과 부자가 되는 것을 하나님의 사랑으로 인식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정말 이보다 더 큰 비극은 없습니다. 특히 부자가 되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의 증거가 아니라 하나님의 정의에 반하는 반역입니다. 공동체가 한국 교인들에게 ‘넘사벽’이었다면 하나님의 정의와 평화에 관한 이러한 몰이해는 ‘분노의 불쏘시개’입니다.

그러나 예수의 제자라면 예수님의 이 말씀에 담긴 염원을 반드시 명심하고 그것이 삶의 제 일 원리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의 제자들이 그렇게 살아갈 때 하나님께서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여 주실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님이 모든 것을 더하여 주시는 것이 바로 하나님 나라의 평화인 샬롬입니다. 예수의 제자들이 하나님 나라와 하나님의 정의를 먼저 구하는 삶을 살아갈 때 하나님의 평화인 샬롬이 그들 가운데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결국 평화란 정의의 결과물입니다. 그러므로 예수의 제자들은 하나님의 정의를 알고 그것을 현실 속에서 구현하는 것이 일상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와 반대로 부자가 되려고 하나님의 정의를 외면하거나 오히려 하나님의 정의를 불의한 것으로 공격하기에 이른 것입니다.

하나님의 정의는 어렵지 않습니다. 모든 사람이 평등하게 사는 것입니다. 초기 교회에 핍절한 사람이 하나도 없었던 것은 바로 하나님 나라의 평등의 구현이었습니다. 부자들이 자발적으로 자신의 소유인 집과 밭을 팔아서 사도들의 발아래 두었던 것은 하나님의 정의의 구현 이외의 다른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것은 결코 자선이 아니었고 희생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예수의 제자로서 당연히 추구해야 하는 하나님 정의의 실현이었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평화를 추구하고 그것이 일상이 되어야 할 그리스도인들이 평화맹平和盲들이 되었습니다. 이보다 더 슬픈 일은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정의를 위해 일하고 살지 않는 사람들은 예수의 제자가 아닙니다. 예수의 제자가 아니라면 하나님과 아무런 상관도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구원’이라는 단어를 입에 달고 사는 것처럼 웃기는 일도 없을 것입니다.

며칠 전 대검찰청 수사심의위원회의 이재용 부회장 불기소 권고 결정을 내렸습니다. 정말 불의한 일입니다. 하지만 이에 대해 저항하는 개신교 그리스도인들의 행동이나 글을 저는 아직까지 보지 못했습니다.

이재용은 이건희로부터 물려받은 돈 60억 원을 20년 만에 9조 원으로 불렸습니다. 그는 세계적 부호의 반열에 올랐습니다. 이재용을 하나님이 많이 사랑하시나 봅니다. 정말 그런가요. 이런 게 바로 불의한 일입니다. 그리고 그런 불의에 더해 그를 그룹총수로 만들기 위해 에버랜드 전환사채, 삼성SDS 신주인수권부사채 등과 같은 부정한 일을 그룹 차원에서 치밀하게 저질렀습니다. 이것이 얼마나 큰 범죄이며 불의한 일인가를 세상이 모두 다 압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정의를 위해 살아야 하는 그리스도인들이 이러한 불의에 침묵하고 무관심으로 대응한다는 것도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런데 불의나 침묵은커녕 이렇게 불의한 이재용과 삼성을 재판에 회부한 정부를 공산당으로 몰아붙이는 한국 교인들이 많다는 것은 정말로 억장이 무너지는 일입니다.

주가조작에 회계사기도 모자라서 대통령을 관리하고 요직에 있는 거의 모든 국가공무원을 자신들의 해바라기로 만들어 부패 공화국이 되게 한 이 불의한 집단과 그 총수가 온 국민의 대대손손 울타리가 되어야 할 국민연금에까지 손을 뻗친 이 불의와 부정에 대해 분노하지 않는 한국 교인들에게 복음이란 무엇인지 정말 모르겠습니다. 더구나 코로나 정국과 국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운운하는 한국 교인들에게 하나님이란 정말 어떤 분이신지를 되묻고 싶습니다.

복음의 열매는 하나님 나라의 평화입니다. 그 평화는 하나님의 나라와 정의를 먼저 구하는 예수의 제자들로 인해 땅에서도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복음의 핵심에는 구원이 아니라 평화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된 것으로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합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사람을 유능하게 하고, 그에게 온갖 선한 일을 할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성경을 통해 하나님의 정의를 깨달아 알고 하나님의 정의를 이 땅에서 구현하는 온갖 선한 일을 하는 예수의 제자들을 주님은 얼마나 보고 싶어 하실까요. 내리는 장맛비가 주님의 눈물이 되어 제 마음에 흘러내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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