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둘 다 할 수는 없는가
[기고] 둘 다 할 수는 없는가
  • 뉴스M 편집부
  • 승인 2020.07.11 16:58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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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우종학 교수, 박원순 서울시장 사망 접하며 "고소인과 조문객 둘 다 비난 받는 상황 우려"

박원순 서울시장의 사망 소식이 한국 사회를 충격에 빠트리고 있다. 서울시는 온라인 추모공간을 마련하고 고인을 기리고 있지만, 일부에서는 박 시장을 고소했다는 전직 비서가 성추행 관련 언급을 했다는 점을 들어 서울시장(葬)이 부적절하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우종학 서울대 물리천문학 교수는 이와 관련해 자신의 SNS에 장문의 글을 올려 많은 호응을 얻고 있다. 본지는 우 교수에게 허락을 구하고 전문을 게재한다 (편집자 주) 

 

우종학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교수 (사진=사이언스  라이프)
우종학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교수 (사진=사이언스 라이프)

둘다 할 수는 없는가?

1. 위계에 의한 성폭력은 가장 악질적인 범죄입니다. 영적 지도자로 자신을 따르는 청년들을 성추행한 전병욱 목사와 같은 경우를 생각해 보면, 성폭력을 당하고도 문제를 인지하지 못하게 하거나 주변에 알리거나 신고할 수 없게 만든다는 점에서 그리고 2차 피해의 범위가 매우 크다는 점에서 그 심각성과 악랄함을 볼 수 있습니다.

2. 성폭력을 포함한 폭력도 심각한 문제지만 위계에 의한 성폭력은 그 차원이 다릅니다. 권력관계 구조 안에 있는 피해자는 성폭력을 넘어서 전반적인 피해를 겪기 때문입니다. 일반적인 성폭력 피해자가 겪는 2차 피해에 비해 더 큰 2차 피해를 겪기 쉽습니다. 권력이란 생각보다 만만치 않습니다.

3. 위계에 의한 성폭력은 개신교와 천주교도 비켜가지 않고 진보세력, 수구세력, 시민단체도 비켜가지 않습니다. 특히 지자체의 거대한 권력을 가진 사람들의 위계에 의한 성폭력 사건들은 구조적 문제로 인식하고 보다 근본적인 접근과 대책이 필요합니다.

4. 박원순 시장이 스스로 목숨을 버렸습니다. 그리고 그 전날 성추행으로 고소되었습니다. 알려진 두가지 사실이 어떻게 연관되어 있는지 아직 밝혀진 것이 많지 않습니다. 뭔가 판단을 할 만큼 충분한 사실관계를 알지 못합니다. 판단의 유보가 아니라 판단이 불가능해 보입니다.

5. 고소인의 목소리를 충분히 들어야 합니다. 고소인에게 박시장을 살려내라고 비난하거나 누군지 찾아내려 하거나 2차 피해를 가하는 것은 불법이고 옳지 않습니다. 박시장을 죽음으로 몰기 위해 고소했다는 식의 주장이나 해석은 지나칩니다. 고소인의 인권을 보호해야 합니다. 고소의 내용이 사실이든 아니든 어떤 의도로 고소를 했든 간에 보호해야 합니다.

6. 마찬가지로 박원순 시장의 인권도 존중해야 합니다. 고소를 당했다는 사실만을 가지고 그를 가해자로 모는 것은 지나칩니다. 고소인의 고소는 무시하고 박시장의 인권만 생각하자는게 아닙니다. 고소를 당한 사람의 인권도 존중받아야 한다는 겁니다. 박시장이 성추행 가해자라면 마땅히 비난을 받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4번의 현재 상황에서 그를 가해자라고 확증하는 것은 지나칩니다.

7. 박시장의 죽음은 고소인에게 큰 압박과 부담이 될 것입니다. 그런면에서 고소인의 처지를 이해하고 연대하는 분들에게 반대할 수 없습니다. 동시에 박시장의 죽음은 그의 가족과 지인들에게도 큰 상실입니다. 박시장의 죽음으로 슬픔에 빠져있는 유가족과 평생의 동지로 그와 함께 했던 사람들의 고통을 이해하고 박시장의 죽음을 슬퍼하는 사람들을 반대할 수 없습니다.

8. 고소인을 찾아내려는 광기에 우려를 표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대권주자를 죽음으로 몰아냈다는 정치적 해석과 그에 따른 반인권적 행동은 멈춰야 합니다.

9. 조문을 하지 않겠다는 정의당 의원들에게 우려를 표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고소되었다는 사실 만으로 죽은자를 가해자로 확증하고 취한 행동으로 보입니다. 약자, 특히 위계에 의한 성폭력과 같은 사안에서 약자를 보호하고 연대하는 일은 중요하고 정의당이 반드시 해야 하는 일입니다.

그러나 고소인을 피해자로 판단하기 위해 충분한 검토를 거쳤고 설득력 있는 판단근거가 있는지 묻고 싶습니다. 법을 만드는 국회의원으로서 신뢰를 받을 만한 행동입니까? 고소인을 피해자로 보는 시각에만 집중한 나머지, (재판이 진행되지 않았으니) 무고할 수도 있는 사람을 가해자로 보는 우를 범한 것은 아닙니까? 인권을 중시한다면서 한쪽 인권에 편향된 것은 아닙니까? 편향되지 않았다고 국민을 설득할 만큼 사실관계를 기초로한 근거가 있습니까?

서울시는 박원순 시장 사망 소식을 알리며 온라인 추모공간을 마련했다  (사진=서울시 홈페이지)
서울시는 박원순 시장 사망 소식을 알리며 온라인 추모공간을 마련했다 (사진=서울시 홈페이지)

10. 위계에 의한 성폭력이기 때문에 특별한 상황일 수도 있습니다. 더군다나 서울시장의 권력을 생각하면 기계적 공평보다는 약자의 말에 더 귀를 귀울여야 한다는 의견에도 동의합니다. 그러나 죽음이 확인된 지 하루도 안된 시점에서 박시장을 가해자로 보기에 충분한 사실관계가 파악되었다고 주장하는 건지 상당히 의심스럽습니다.

11. 장례식도 치르지 않았습니다. 위계에 의한 성폭력 고소 내용은 조금 기다려도 늦지 않습니다. 박시장 대 고소인으로 만 볼 일이 아닙니다. 박시장은 다른 많은 사람들과도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애도하고 추모하는 사람들을 박시장-고소인의 관계라는 시각에서만 판단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박시장을 가해자로 판단하고 있을지 몰라도 또 많은 사람들이 박시장이 가해자인지 아닌지 판단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추모의 물결을 비난하고 고소인이 받을 압박만 주목하는 것은 공평하지 않습니다.

12. 공소권 없음으로 사건이 종결되었으니 고소인의 억울함은 풀 데가 없다고 이야기하는 분들도 일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죽음 자체가 2차 가해라는 주장은 지나칩니다. 1차가해도 확증되지 않은 상황입니다. 더군다나 고소인을 곤경에 빠트리려는 의도로 죽음을 택했다고 주장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그까짓 성추행 좀 했다고 죽기까지 해야하나? 이런 얘기를 하는게 아닙니다.

13. 장례식이 끝나고 고소 관련 내용을 조사할 방법도 있을 겁니다. 검찰의 공소권은 없지만 시민단체나 정의당이 사실관계 파악을 위해 나설 수도 있겠지요. 고소내용을 검증하거나 나중에 유가족이 오히려 망자 명예훼손으로 거는 상황이 올수도 있겠지요. 이 모든 것을 당장 오늘 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14. 만일 검찰의 수사가 아니더라도 위계에 의한 성폭력의 사실관계가 충분히 드러난다면 지자체 권력의 구조적 문제를 보다 체계적으로 접근하고 풀어가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설득력 있는 근거없이 여론전으로만 접근해서는 이 문제의 본질에서 오히려 멀어질 수 밖에 없습니다.

15. 긴 세월을 박시장과 함께 한 사람들의 애도와 추모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들은 고소인을 압박하기 위해 혹은 위계의 의한 성폭력 구조를 더 곤고히 하기 위해 박시장을 애도하는 게 아닙니다.

긴세월 함께 투쟁하고 성희롱이라는 개념을 처음 한국사회에 도입하여 성인지도와 성감수성을 높이고 여러 시민단체들을 세워 우리 사회가 보다 좋은 사회가 되기 위해 함께 했던 박시장의 동지들이 어떻게 그의 죽음을 애도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런 선한 의도까지 나쁜 의도로 몰아붙이거나 구조적 문제라고 비난하는 건 아무래도 설득력이 없습니다.

대통령이 장례식장에 화한을 보내면 어찌 개인적으로 보낼 수 있겠습니까? 화환에 대통령이라는 이름을 안 쓰면 개인적으로 보내는게 되겠습니까? 도대체 개인적으로 추모하라는 말이 무슨 말인지 모르겠습니다. 박시장과 인생을 함께 했던 사람들은 그의 죽음을 애도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그 자체를 비난하면 오히려 프레임 싸움이 될 뿐입니다.

흑백논리로 접근해서 죽음을 애도하는 사람들을 고소인의 2차가해자로 몰아부치는 것은 지나칩니다. 왜 양자택일을 해야 할까요? 죽음은 애도하고 고소인의 2차피해는 막는 두가지를 다 선택하는 것이 왜 불가능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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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2020-07-18 23:10:48
나름 진보적이라 말하는 인물들의 내로남불이 정말 역겹다. 우종학 교수가 이야기한것 처럼 전병욱에 대해서는 득달같이 달려들어서 물어뜯더니, 박원순에게는 판단을 유보해달라? 상식적으로 아무런 잘못없는데, 스스로 목숨을 끊었겠는가? 변호사였던 그가 법을 모르는 것도 아닐테고, 모든 것 다 덮어버리려고 죽음을 택한것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