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테, 지옥 같은 삶에서 천상을 향해 나아간 순례자
단테, 지옥 같은 삶에서 천상을 향해 나아간 순례자
  • 황재혁 기자
  • 승인 2020.07.18 20: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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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단테, 박상진, 아르테, 2020
단테의 일생을 담담하게 담아낸 책 (사진=단테 표지)
단테의 일생을 담담하게 담아낸 책 (사진=단테 표지)

[뉴스M=황재혁 기자] 출판사 [아르테]에서 기획한 ‘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에서는 ‘내 인생의 거장을 만나는 특별한 여행’이란 슬로건을 내걸고, 역사 속 유명인의 생애를 한국인의 시선으로 되짚어보는 책들을 꾸준히 출간하고 있다. 그래서 ‘클래식 클라우드’에서는 장차 100명의 위인을 다룰 예정이고, 여태껏 이 시리즈에서 모차르트, 아리스토텔레스, 베토벤, 코넌 도일과 같은 인물들의 생애가 다루어졌다. 지난 4월에 [아르테]에서 출간된 [단테]는 ‘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의 열아홉 번째 책이었고, 국내최고의 단테 전문가인 부산외대의 박상진 교수가 집필했다.

[단테]는 책의 제목 그대로 [신곡]의 저자인 단테 알리기에리의 발자취를 박 교수가 직접 이탈리아에 찾아가서 눈으로 확인하고 쓴 책이다. 따라서 그 어느 책보다 이 책에서 독자는 이탈리아에 지금까지 남아있는 단테의 흔적을 선명하게 만날 수 있다. 내년 2021년은 단테가 세상을 떠난 지 700주년이 되는 해다. 단테가 세상을 떠난 지 이미 오래되었지만, 세월이 가도 단테의 이름은 이탈리아를 넘어 전 세계에 여전히 기억되고 있다.

저자는 이 책에서 단테가 실제로 머물렀던 이탈리아의 피렌체, 캄팔디노, 몬테리조니, 카센티노, 루니자나, 베로나, 베네치아, 라벤나를 직접 방문했다. 단테의 생애에서 가장 중요한 도시는 아무래도 그가 태어나고 자란 피렌체였고, 그다음으로 중요한 도시는 아마도 카센티노였을 것이다. 카센티노는 피렌체에서 추방당한 단테가 20년간에 걸친 유랑 생활을 처음 시작한 곳이고, 장차 단테가 집필하는 [신곡]의 배경이 되는 곳이었다.

단테가 오랜 세월에 걸쳐 집필한 [신곡]은 전체 백편으로 구성되었고, 지옥편, 연옥편, 천국편으로 각각 나누어졌다. [신곡]은 정치적 이유로 피렌체에서 추방당한 단테가 삼위일체 하나님이 거하시는 엠피레오(empireo)를 향해 지옥에서부터 한 걸음씩 걸어가는 단테의 영적순례기이다. 그래서 [신곡]의 집필동기에서 단테가 피렌체서 추방당한 역사적 사실은 상당히 중요하다. 만약 단테가 피렌체에서 정치적으로 순항하고, 인생에서 아무런 핍박과 고난을 받지 않았다면, 그는 아마도 [신곡]을 집필하지 않았을 것이다. 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인생의 성공기에 단테는 [신곡]을 집필할 시간이 전혀 없었을 것이다. 어찌 보면 단테는 피렌체에서 추방당하고 인생의 소망이 없을 때 비로소 [신곡]을 구상하고, 집필에 몰두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 책에서 박 교수는 피렌체에서 추방당한 단테에게 피렌체로 다시 돌아갈 수 있는 기회가 분명히 있었다고 말한다. 단테가 자신이 저지르지도 않은 범죄의 혐의를 인정하고 굴욕적인 의식을 거행한다면, 그는 자신의 고향으로 복귀할 수 있었다. 하지만 단테는 그러한 굴종과 굴욕을 선택하지 않았다. 단테는 자신을 노예로 만드는 피렌체에서 벗어나 더 넓은 세상으로 발을 내딛기 원했다.

“그는 단순히 돌아가서 소속되는 것이 해결이라는 생각을 버리고 피렌체보다 훨씬 더 넓은 세상으로 눈을 돌렸다. 외롭고 고달픈 나날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지만, 그만큼 내면을 들여다보고 세상을 관찰하기에 적절한 환경이기도 했다. 단테는 [신곡]을 비롯하여 [새로운 삶] 등 모든 저작을 유랑 길에서 썼다. 목소리는 깊어졌고 모습은 달라졌다. 복귀의 다짐은 그의 책들이 활발하게 유통되면서 더 넓은 세계로 확장되었다. 피렌체를 위한 공직자의 실천은 인간 전체를 위한 작가의 실천으로 승화되었다.” (141쪽)

단테는 피렌체에서 추방당해 20년간 아무런 삶의 보장 없이 떠돌이로 살았다. 그 시간은 단테에게 인생의 쓰디쓴 맛을 맛보는 지옥의 시간과도 같았다. 그러나 단테는 그 지옥 같은 방랑의 시간을 저 천상을 향해 걸어가는 순례의 시간으로 승화시켰고, 마침내 [신곡]을 집필하며, 저 천국만이 모든 인간이 궁극적으로 다시 돌아가야 할 안식처임을 일깨워주었다. 단테의 일대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이탈리아에서 눈으로 살펴본 박 교수는 독자에게 이러한 권고를 남기고 책을 마무리한다.

“나는 이 책이 단테가 걸었던 길을 함께 걷는 우리 모두의 유랑을 기록한 것으로 읽히기를 바란다. 삶은 원래부터 유랑이 아니던가. 단테는 자신이 창조한 내세 유랑에 겸손한 환대의 몸짓으로 우리를 초대한다. 유랑은 우리가 초대에 응할 때 비로소 시작된다. 인간은 어디로 가는가. 단테를 생각하면 늘 떠오르는 화두다. 그는 이 물음을 깊이 간직했던 것 같다. 그의 삶은 그 물음에 대한 답을 찾는 길로 채워졌고, 그렇게 길을 걷는 한에서 유지되었다. 이제 우리도 길로 나선다. 그의 비장하고 우울하면서도 따스한 연민의 목소리를 마음에 들이며.” (241쪽)

단테의 생애는 끝났지만, 그가 걸었던 순례의 여정은 여전히 우리에게 남아있다. 우리도 단테처럼 천상의 순례자로 살아갈 수 있을까? 단테의 생애는 우리에게 진정한 자유가 안락하고 편안한 장소가 아니라 모든 것이 부족한 순례길에 있음을 분명하게 알려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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