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교와 이슬람의 뒤엉킨 관계사
그리스도교와 이슬람의 뒤엉킨 관계사
  • 황재혁 기자
  • 승인 2020.08.31 14: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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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리처드 플레처, 십자가와 초승달, 천년의 공존, 21세기북스, 2020

[뉴스M=황재혁 기자] 그리스도인에게 자명한 사실처럼 보이는 사건도 때때로 역사학자의 눈으로 그 사건을 볼 때 기존과는 조금 다른 시선으로 그 사건을 바라볼 수 있다. 지난 2017년에 한국교회와 세계교회는 종교개혁 500주년을 기념하여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을 재조명하는데 많은 역량을 기울였다. 그 당시 국내출판시장에도 마르틴 루터와 관련된 무수히 많은 책들이 출간되었는데, 그 책들 중에서 필자는 서울대학교 서양사학과 박흥식 교수가 쓴 [미완의 개혁가, 마르틴 루터]가 상당히 신선하게 다가왔다. [미완의 개혁가, 마르틴 루터]가 필자에게 신선하게 다가왔던 이유는 이 책의 저자가 신학계에서 종교개혁의 도화선이 되었다고 말하는 루터의 ‘95개조 반박문’을 실제로 비텐베르크성 교회 대문에 붙이지 않았다고 주장했기 때문이었다. 박 교수는 루터가 직접 ‘95개조 반박문’을 집필해서 편지로 보내긴 했지만, 그것을 공적으로 공개하여 이 문제를 심각하게 만들 의도가 없었다고 평가했다. 그렇기에 박 교수는 루터가 ‘95개조 반박문’을 비텐베르크성 교회 대문에 붙였다는 이야기는 역사적 사실이라기보다는 후대의 지어진 이야기였다고 결론 내렸다. 필자는 그 당시 박 교수의 이런 대담한 주장에 신선한 충격을 받았고, 박 교수와 같은 역사학자의 눈으로 기독교 역사를 다시 검토하는 과정이 상당히 중요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박흥식 교수가 번역한 리처드 플레처의 [십자가와 초승달, 천년의 공존] 책표지(사진=21세기북스 제공)
박흥식 교수가 번역한 리처드 플레처의 [십자가와 초승달, 천년의 공존] 책표지(사진=21세기북스 제공)

 

박 교수는 최근에 [십자가와 초승달, 천년의 공존]이란 책을 [미완의 개혁가 마르틴 루터]를 출판한 [21세기북스]에서 번역 출간했다. [십자가와 초승달, 천년의 공존]의 저자는 영국 요크대에서 중세사를 연구한 리처드 플레쳐(Richard Fletcher)인데, 그는 2002년에 이 책을 집필하고 2020년에 생을 마감했다. 어찌 보면 이번에 [21세기북스]에서 출간된 [십자가와 초승달, 천년의 공존]은 다소 늦게 한글로 번역된 감이 있지만, 워낙 그리스도교와 이슬람의 관계를 다룬 책이 국내에 거의 없기에 지금이라도 이 책이 번역된 것이 참으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십자가와 초승달]은 그리스도인과 무슬림 사이 7세기에서 15세기까지 약 천년에 걸친 복잡한 역사를 일목요연하게 풀어내고 있다. 이 책은 총 5부로 나누어져 있고, 저자는 초창기부터 그리스도인과 이슬람이 서로 완전히 섞이지는 않았지만,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으며, 세계사를 주도하는 주류종교로서 성장했다고 평가했다.

 

이 책에서 많은 지면을 할애하는 부분은 지금까지도 세계사와 교회사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십자군 전쟁’이다. ‘십자군 전쟁’을 후대의 그리스도인은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대다수 그리스도인은 ‘십자군 전쟁’을 신앙의 이름으로 자신의 탐욕을 채운 부정적이고 부끄러운 사건으로 많이 기억하고 있지 않을까? 물론 중세의 ‘십자군 전쟁’에는 더럽고, 참혹한 역사가 분명히 있었다. 그러나 이 책에서 저자는 ‘십자군 전쟁’에서 그동안 크게 주목하지 않았던 그리스도인과 무슬림의 상호교류에 집중한다.

 

“장기적으로 볼 때 십자군 시대에 그리스도인과 무슬림 사이의 상호작용은 지적 분야에서 가장 풍성한 열매를 맺었다. 2부에서 살펴보았듯이 압바스 왕조 초기 이슬람 학자 공동체는 고대 세계의 기록 유산을 아랍어로 번역함으로써 그 속에 담긴 과학 및 철학적 지식을 획득하는 중요한 문화적 발전을 이뤘다. 이후 서방 학자들도 이웃 무슬림들로부터 배울 것이 많다는 점을 점차 이해하기 시작했다. 12-13세기에는 이 아랍어 저작들이 아랍어에서 서방 그리스도교 세계의 학문 언어인 라틴어로 번역되어 학자들에게 소개되는데, 이러한 과정이 세계 지성사에서 차지하는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195쪽)

 

리처드 플레처 교수는 ‘십자군 전쟁’을 통해 서방 그리스도교 세계에서 이슬람 세계의 지적 우월성을 인식하게 되고, 이슬람 세계의 지적 유산을 이어 받아 신학, 의학, 인구학이 서방에서 발전하게 되었다고 평가한다. ‘십자군 전쟁’ 즈음에 지적 헤게모니는 서방 그리스도교 세계가 아닌 이슬람에 있었고, 그리스도교는 이슬람을 지적 스승으로 삼아 아랍어로 된 많은 책들을 번역하며 지식을 습득했다. 그렇다면 이러한 지적 헤게모니는 언제 역전된 것일까? 저자는 이슬람이 서방 그리스도교 세계를 무시하며 그들에게서 배울 것이 없다라고 생각할 때부터 그들의 쇠퇴가 시작되었다고 평가한다.

 

“유럽의 헤게모니는 근대 초에 아무 기반 없이 생겨난 것이 아니다. 그것의 힘줄과 근육은 중세가 진척되던 중에 눈에 띄지 않는 서구 그리스도교 세계의 주변부에서 오랜 기간에 걸쳐 발전했다. 이 중세의 형성기 동아 s서양 그리스도교 세계는 기반을 보강하고 후대의 모든 변화를 촉진하는 방향으로 스스로 변화하고 발전할 역량을 보여주었다. 12-13세기 유럽에서 벌어진 지적 진보들은 많은 부분 이슬람 세계가 제공한 것을 획득함으로써 성취했다. 그리스도교 세계에 대한 무슬림의 냉담은 당대에 진행되던 변화에 대한 감각을 상실하는 결과를 낳았다. 이슬람의 서양에 대한 경멸이 그와 같이 변화하는 상황을 간과하도록 했던 것이다.” (263쪽)

 

그리스도교의 역사와 이슬람의 역사는 서로 단절되어 있다기보다는 서로에게 끊임없이 영향을 주고받으며 공존했던 역사라 할 수 있다. 필자는 이 책이 주는 역사적 교훈이 지금까지도 우리에게 유효하다고 여겨진다. 지금도 이슬람과 무슬림에게 그리스도인이 배울 수 있는 지적 유산은 전혀 없을까? 우리는 그저 중동의 이슬람 국가에서 원유만 수입할 뿐 그들로부터 수입할만한 지적 문화 유산은 전혀 없을까? 이슬람에 대한 왜곡된 고정관념이 아니라 있는 모습 그대로의 이슬람을 알아가고자 하는 지적 노력이 그리스도인의 신앙성숙에 어느 정도 기여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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