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기치 못한 루이스를 만나다”
“예기치 못한 루이스를 만나다”
  • 뉴스M 편집부
  • 승인 2020.09.18 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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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김진혁, 순전한 그리스도인, IVP, 2020

[뉴스M=장민혁 크리에이터] 고등학교에 막 입학했을 무렵, 담임 선생님의 소개로 C.S.루이스를 처음 접했다. 신앙의 열정이 남다르던 선생님은 교회 다니는 반 학생들에게 신앙서적을 추천해주시곤 했는데, 신앙의 색채가 뜨거운 사람은 A.W.토저를, 차가운 사람은 C.S.루이스를 읽어야 한다는 것이 그분의 지론이었다. 여기서 차갑다는 건 ‘이성적이고 논리적’이라는 의미로, 당시 국내에 소개된 ‘기독교 변증가’로서의 루이스의 이미지가 어떠했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김진혁 교수가 쓴 [순전한 그리스도인] 표지(사진=IVP 제공)
김진혁 교수가 쓴 [순전한 그리스도인] 표지(사진=IVP 제공)

 

[순전한 기독교], [스크루테이프의 편지], [고통의 문제] 등을 줄줄이 읽어가며 필자도 ‘변증가’ 루이스에게 빠져들었다. 루이스의 자연법 논증을 무기 삼아 같은 학급의 무신론자 친구와 토론을 벌이기도 했다. 기독교 신앙을 탄탄한 논리로 수호해낸 인물로 그를 추앙해 온 것인데, 신학 공부를 시작한 이후에는 루이스를 향한 마음이 시들 해졌다. 루이스가 기대고 있던 철학적 방법론이 고리타분하게 느껴졌고, 변증만으로는 기독교를 향한 시대적 요청에 제대로 응답할 수 없다고 직감했기 때문이다.

필자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변증가 루이스에게 ‘입덕’했다가, 결국 ‘탈덕’했다는 글을 SNS에서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다시 루이스를 읽고 있다는 회심 간증문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루이스 부흥 운동’(?)의 중심에는 이 책, [순전한 그리스도인] (ivp) 이 있었다.

영국 옥스퍼드의 ‘C.S.루이스 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활동했음은 물론, 루이스의 생가에서 살아봤을 만큼 그와 특별한 인연을 지니고 있는 김진혁 교수는 “C.S.루이스를 통해 본 상상력, 이성, 신앙”이라는 부제를 달고 이 책을 출간했다. 성실한 학자답게 루이스의 문헌들을 꼼꼼히 살펴가며 그의 생애를 조명하는 한편, ‘상상력, 이성, 신앙’ 이라는 키워드를 가지고 루이스의 신학적 기획과 그 현대적 가능성을 살펴본다. 작은 판형에 200페이지 남짓한 짧은 글이지만, 에스프레소처럼 농밀하고 압축적인 사유가 진하게 묻어나는 책이다(특히 17편의 ‘더 읽을거리’는 루이스만큼 흥미로운 ‘신학자 김진혁’의 단상이 담겨있다).

이 책은 일반적인 평전 혹은 전기가 아니다. 단순히 루이스가 어떤 인물인지를 보여주는데 주목하지 않고, 루이스의 ‘펜 끝이 가리키는 곳’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국내에는 루이스가 이성적인 그리스도인의 대표격 정도로 소개되었지만, 사실 루이스가 의도한 바는 그 너머에 있다. 그가 몸담고 있던 20세기 기독교는 “지나친 신앙주의나 합리주의에 함몰된 외골수”(100)가 되어 버리기에 십상인 양자택일의 문제를 마주하고 있었다. 한쪽에서는 급변하는 현대 문화와 사상들 앞에 문을 굳게 걸어 잠그고 합리성을 외면하는 근본주의(신앙주의)를 택했다면, 다른 한 쪽에서는 계몽주의의 세례를 받아 합리성의 잣대로 신비를 도려내는 ‘개신교 자유주의’를 택했다.

루이스는 신앙주의와 합리주의 혹은 경험과 이성의 간극을 봉합하고 넘어서는 열쇠로 ‘상상력’과 ‘신화’를 제시한다. 루이스에게 상상력은 “변환 현상을 통해 높은 차원의 세계와 낮은 차원의 세계, 초자연의 영역과 자연 영역이 공존함을 지각하는 놀라운 힘”(112)이며, 이 상상력이 가장 여실히 드러나는 장이 ‘신화’이다. 루이스는 ‘신화적 상상력’을 되찾음을 통해 복음서가 머금은 진리의 풍성함을 발견하는 한편, 본인 역시 신화의 양식을 빌려 기독교적 담론을 발전시켰다. [나니아 연대기], [우리가 얼굴을 찾을 때까지] 등이 대표적인 작품이다.

‘아마추어 변증가’ 루이스가 아닌, “익숙한 것을 낯설게 보게 해 주는”(23) 작가 루이스 본연의 모습을 소개받아 기쁘다. ‘상상력’과 ‘이성’과 ‘신앙’의 조화를 추구하는 그의 구상은 근대성을 극복하는 유의미한 신학적 담론을 제공할 뿐 아니라, ‘순전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길 고민하는 모든 순례자에게 흥미진진한 안내서가 될 것이다. 덧붙여서, 이 책 곳곳에 묻어나는 ‘루이스 패러디’ 문장들은 피식 웃음을 짓게 하는데(책 제목부터 그렇다), 저자가 루이스 마니아들을 위해 인심 좋게 챙겨주는 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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