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의 역사는 다르지 않다!
거짓의 역사는 다르지 않다!
  • J. Brandon Lee
  • 승인 2020.09.20 0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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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위기속 믿음 공동체의 새로운 시작을 위한 제언 2.

UCLA에서 가르치는 옥성득 교수는 그의 책 “첫 사건으로 본 초대 한국교회사”에서 중국과 한국의 기독교 선교 초기 황당했던 사건들을 소개한다. 아편전쟁과 태평천국의 난 이후 본격화 된 중국내 반 기독교 정서는 1868년 양주폭동, 1870년 천진대학살에 이르며 많은 외국인이 살해되기 까지 한다. 프랑스 신부가 운영하는 고아원에선 아이들이 죽거나 사라졌고, 선교사들은 아이들을 잡아먹으며, 부녀자를 성폭행 한다는 유언비어가 나돌았고, 1862년 “벽사기실”이란 책에는 예수가 하늘에서 내려온 돼지라는 조롱까지 등장했다.

조선에서도 비슷한 일이 생겨나는데, 1886년 언더우드가 서울 정동에 고아원을 개설하자 사람들이 수군거렸다. 아이들을 미국에 노예로 보낼 것이다, 살을 찌워 잡아 먹을 것이다, 아이들에게 마술을 걸고, 의료 선교사들이 일하는 제중원에서는 아이의 혀와 눈을 빼어 약을 만든다는 흉문까지 퍼진다. 급기야, 일부 선교사들은 그 사는 집에 방화의 위협과 살해 협박에 까지 시달리게 되는데…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이런 일들의 배후에는 새로운 질서에 대한 반감을 지닌 기존 정치권력과 사회 기득권 세력이 자리한다. 외세를 싫어한 양반 세력에 의해 평범한 민중들은 쉽게 호도되었고, 악의에 찬 마음은 유언비어를 넘어 물리적 테러를 자행하기도 했다. 선교지 현장의 사회와 문화, 종교에 대한 이해가 그만큼 중요하다는 교훈도 주었지만, 상대적으로 상식과 윤리에 기반한 기독교 입장에선 괜한 거짓과 오해로 인해 많은 고초를 겪어야 했던 것이다.

        정치적 입지와 권력을 유지하려는 이들이 빚어내온 거짓말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최근 코로나 바이러스 관련 미국내 언론의 헤드라인을 장식했던 백악관내 상황만 봐도 그렇다. NBC를 비롯 주요 매체는 마이크 펜스 부통령을 도와 코로나 테스크 포스팀의 일원이었던 올리비아 트로이 (Olivia Troye)의 인터뷰를 방영했고, 그녀는 말하길, 트럼프 대통령은 이미 지난 2월 코로나 바이러스가 세계적 대유행이 될 것을 알았고, 미국역시 위험한 상황에 놓일 처지였지만 그리 신경쓰지 않았다고 한다. 그의 관심은 온통 다가오는 대선 승리와 대통령 재선에 있었고, 그때문에 코로나 관련 정확한 정보를 국민들에게 공유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미 드러난 사실만 봐도,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은 코로나 관련 브리핑에 충실하지 않았고, 잘못된 통계를 인용하거나, 동맹국 한국이 이뤄낸 K방역의 성과를 평가절하 하기도 했다.

        어디 그뿐인가? 말라리아 치료제인 하이드록시클로로퀸(Hydroxychloroquine)이 코로나 치료에 도움이 된다는 주장, 소독 용품을 마시거나 몸속에 주사하면 효과가 있지 않을까하는 괴담수준의 망언…, 전문가적 소견에 의지하지 않은 대통령의 한마디에 그 약들을 먹고 마셨던 사람들 다수가 병원신세를 지거나 사망하기도 했다. 그의 무겁지 않은 말은 결코 순수하지 않았고, 의도된 멘트는 악의적이기 까지 하다. 그는 자신의 정치적 성공에 걸림돌이 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막을 태세이고, 연방정부내 전문가 집단인 미 질병통제센터(CDC) 역시 그 예외가 아니라는것은 미국내 거주하는 사람들에게 우려가 아닐수 없다.

        한편, 코로나 관련 거짓 정보와 그로인한 사회적 위협을 언급함에 있어 필자의 관심은 한국교회를 향하게 된다. 야외집회는 감염위험이 없다, 한국정부가 코로나 관련 수치를 이용 교회를 박해하고 있으며, 코로나 19검사결과는 조작되었고 정은경 질병관리청장은 그 우두머리이다… 지난 815 광화문 집회이후 가속화 되고 있는 거짓의 역사는 이제 교회밖이 아닌, 교회안을 통해 유통되고 있고, 심지어 앞으로 사람들이 접종하게 될 바이러스 백신 속에는 짐승의 표를 뜻하는 하이드로겔 바이오센서가 삽입 될거라는 묵시적 메세지는 짧은 탄식마저 자아내게 한다. 거짓의 역사에 희생자였던 선교초기 한국교회와 달리, 이제 우리는 그 역사의 가해자가 될지모를 위기에 처해진 것이기에 더욱 마음이 무거워진다.

거짓의 역사는 다르지 않다. 앞서 말한바와 같이 시대를 통해 요구되어지는 의식과 구조의 전환, 그 역사적 소명앞에서 교회는 이제 선택의 기로에 놓인 것이다. 기존의 뒤틀린 형태를 유지하고자 거짓의 역사에 동참할 것인지, 아니면 아프더라도, 부끄럽더라도 있는 그대로의 현재를 인정하고, 진실과 진리에 근거한 거듭남을 향해 다시 나아갈 것인지…

코로나는 리트머스와 같다. 감당해야할 무게, 극복해야 할 과제가 어렵긴 하지만, 이 난관속에 교회공동체는 정말 우리가 누구이며 무엇을 해야 하는가 확인하는 기회를 얻고 있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그 기회를 살리고자 할 때, 우리의 선택은 분명 넓고 편한길이 아닌 좁고 험한 길이어야 한다. 교회의 좁고 험한길은 열광적 기도와 황홀경에 이르는 예언행위에 있지 않다. Nachdenken! 개혁자 루터의 말처럼, 우리의 회복, 즉 교회의 회복은 깊이 생각하고 성찰하고 행동하는 데서 다시 시작된다. 어린아이의 것을 버리지 못하는 종교적 열광은 또 한 줄 거짓의 역사를 이어갈 뿐이기에…

맥락은 다르지만, 18세기 천체과학자 아이작 뉴튼을 인용하며 맺을까 한다. “천체의 움직임은 계산할 수 있지만, 인간의 광기는 계산할 수 없다.” (I can calculate the motion of heavenly bodies, but not the madness of people.) 예로부터 다르지 않은 거짓의 역사를 깨뜨리는 일, 코로나 시대를 이겨내 가는 교회, 참된 믿음 공동체가 간직한 종말론적 부르심이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우리는 분명 그렇게 거짓의 역사를 거스르게 될 것이다.

NBC Nightly News 유튜브 캡쳐 (올리비아 트로이)
NBC Nightly News 유튜브 캡쳐 (올리비아 트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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