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독 1세대의 흔적, 그리스도의 흔적
파독 1세대의 흔적, 그리스도의 흔적
  • 황재혁 기자
  • 승인 2020.09.26 08: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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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박경란, 흔적, 피플앤북스, 2020년

[뉴스M=황재혁 기자] 일반적으로 역사 연구에는 ‘거시사’와 ‘미시사’라는 서로 다른 연구방법이 있다고 한다. ‘거시사’가 폭 넓은 연구와 서술을 지향한다면, ‘미시사’는 거시적 차원이 아닌 인간 개인이나 소집단의 삶을 탐색하는 연구를 주로 수행한다고 알려졌다. 과거 대한민국이 극도로 가난한 1960년대에 독일로 건너간 파독 1세대에 관한 ‘거시사’ 연구는 그동안 많이 진행되었을 것 같다. 그러나 ‘거시사’ 연구에서 파독 광부와 파독 간호사와 관련된 통계를 아무리 들여다봐도 그들의 실제 삶이 과연 어떠했을지 실감하기란 쉽지 않다. 그저 후대의 우리는 그 당시 파독 광부로 약 8천 명이 출국하고, 파독 간호사로 약 2만 명이 출국해, 고국에 1억 달러의 외화를 송금했다는 통계를 보며 그들이 대한민국의 경제발전에 적지 않은 도움을 주었다는 사실만 기억할 따름이다.

 

파독 1세대의 삶을 다룬 [흔적](사진=피플앤북스 제공)
파독 1세대의 삶을 다룬 [흔적](사진=피플앤북스 제공)

 

 

한국의 월간지 기자 출신의 박경란 작가가 집필한 [흔적]은 전문적인 역사책은 아니지만, 파독 1세대에 속하는 파독 광부와 파독 간호사의 개인적인 역사를 담고 있다. 이 책의 저자는 스무 명이 넘는 파독 1세대를 직접 인터뷰하여 그들의 생애와 신앙을 담담하게 글로 풀어냈다. 이 책의 제목이 [흔적]인 이유는 이 책이 파독 1세대의 흔적을 기록하면서 동시에 그들의 삶을 통해서 드러난 그리스도의 흔적을 기록하기 위함이다. 이 책을 읽다보면, 가난하다는 이유로 정든 고향을 떠나 이역만리 독일로 건너갔던 파독 1세대의 애환과 슬픔이 느껴진다. 독일어를 한 마디 할 줄 모르지만 독일에 도착하여 땅 속 깊은 곳에서 석탄을 캐거나, 병원에서 자신보다 덩치가 큰 독일인의 병수발을 했던 파독 1세대의 어려움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흔적]에 소개된 파독 1세대는 그 어려움의 시기를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믿음과 소망과 사랑으로 이겨낼 수 있었다. 이 책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내용은 라이프치히교회를 섬긴 최정송 권사의 이야기였는데, 최 권사가 1989년에 라이프치히교회를 섬기며 독일의 통일을 위해 적극적으로 기도했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이 기도가 하늘로 상달되어 라이프치히가 독일 통일의 중심지로 우뚝 서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겨자씨 같은 작은 기도회가 동서독 통일의 초석을 이뤄냈다. 믿어지지 않은 기도회의 열매는 독일 라이프치히에서 일어났다. 오직 기도로 피 흘림 없이 철의 장벽을 허물어내고 평화로운 통일을 만들었다. 그 무렵 매주 월요일에 성 니콜라이 교회에서는 크리스타안 퓌러 목사의 인도로 평화 기도회가 열렸다. 이곳에는 동양에서 온 파독 간호사 최정송 권사도 두 손을 모았다. 1989년 당시, 독일 라이프치히에 살고 있던 그는 매주 월요일이면 니콜라이 교회로 향했다. 결국 평화 기도회의 호흡은 시민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그들의 소박한 염원은 거리로 쏟아져 나와 거대한 파도를 이루었다.” (48쪽)

파독 1세대는 독일로 건너가 그저 고국에 외화만 송금하는 역할만 한 것이 아니라, 지난 50년의 시간 동안 한국과 독일의 민간 외교관으로서의 역할과 독일에서 복음전파자로서의 역할을 성실하게 수행했다. 이 책에 따르면 파독 1세대가 모두 독일에 지금까지 남아있지는 않고, 일부는 대한민국으로 돌아오고, 일부는 독일이 아닌 외국으로 건너가기도 했다고 한다. 그들이 지금 어디에 살고 있든, 대한민국이 경제적으로 가장 가난한 시절에 나라를 위해 혹은 가정을 위해 자신의 귀한 젊음을 바친 그들의 희생을 우리는 기억할 책임이 있다.

파독 1세대의 삶을 신실하게 인도하신 하나님의 손길을 느껴보고 싶은 독자에게 이 책의 일독을 권한다. 그들의 삶을 신실하게 인도하신 하나님이 코로나19로 인해 방황하는 우리의 인생 역시 신실하게 인도하시지 않을까? 먼 훗날, 많은 세월이 지나 우리 역시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는 지금 이 순간을 회상하며 우리의 삶에 아로새겨진 그리스도의 흔적에 감사의 고백을 하게 될는지 누가 알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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