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클 잭슨이 부러운 목사
마이클 잭슨이 부러운 목사
  • 박성철 목사
  • 승인 2020.10.15 04: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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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나라를 바라보는 눈]

저스틴 팀버레이크가 듀엣곡으로 녹음한 마이클 잭슨의 <Love never felt so good>을 들을 때마다 나는 마이클 잭슨이 참 부럽다.

​예술가든 학자든 과거 그 분야의 위대한 업적을 남긴 사람의 영향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

저스틴 팀버레이크가 한참 인기를 얻을 때 '백인판 마이클 잭슨'이라는 소리가 종종 들렸다.

사실 저스틴 팀버레이크의 음악과 동작 하나를 보면 마이클 잭슨이 떠오르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저스틴 팀버레이크가 '백인판 마이클 잭슨'이 아니라 저스틴 팀버레이크로 남을 수 있었던 것은 자신만의 스타일로 현대적으로 변형했기 때문이다.

이젠 저스틴 팀버레이크가 출연하는 뮤직 비디오처럼 마이클 잭슨과 듀엣곡으로 녹음을 하면서 노골적으로 오마쥬를 해도 아무도 그의 음악성에 문제를 제기하지 않을 정도가 되었다.

​신학자도 마찬가지다.

과거 위대한 신학적 업적을 남긴 사람의 영향을 받아 그 기반 위에서 이론을 전개하는 것을 나쁘거나 잘못되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현대 모든 신학자들은 어떤 형태로든 과거의 영향을 받고 있으니 말이다.

종교개혁자들의 글은 더욱 그러하다.

​하지만 21세기에 16세기의 글을 아무런 해석의 과정도 없이 문자적으로 인용하여 참됨을 주장하는 것은 나쁘거나 잘못된 것이다.

왜냐하면 여전히 중세적 영향이 남아 있는 그들의 주장 중 현대인들이 수용할 수 없거나 낡은 악습으로 여겨질 수 있는 가르침이 분명 존재하기 때문이다.

엄밀히 말해 그것은 그들이 존경하는 신학자들을 올바르게 기억하거나 기념하는 방식이 아니다.

​마이클 잭슨의 춤과 노래를 지금 그대로 따라 하는 이들이 커버가수일 수는 있지만 일상적인 의미의 가수라 불리거나 1980년대와 같은 열광적 지지를 얻어낼 수 없다.

신학은 다를까?

​루터든 깔뱅이든 시대적 한계가 분명 있는데 이를 무시한 상태에 앵무새처럼 그대로 반복한다고 해서 신학자라 불릴 수 있을까?

신학에 흥미를 느낀 덕후일 수는 있을 지언정 신학자라 불릴 수는 없을 것이다.

​진정 존경하는 신학자의 학문을 연구하는 학자라면 그 가르침의 현대적 의미를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한국교회의 비극은 신학자라 불리기보다는 덕후라고 불리워야 하는 이들이 신학자 행세를 하며 담론이랍시고 궤변을 늘어놓고 있다는 것이다.

​성서도 해석하고 적용하고 재해석하는 시대에 왜 특정 신학자는 해석하고 적용하고 재해석해서는 안 되는가?

​그들의 가르침이 우리의 신앙의 대상인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라 불린 그 분보다 진정 위대한 것인가?

​그렇다면 예수를 믿어 구원을 받는다고 가르치지 말고 그 신학자가 메시야라고 가르치는 것이 더 정직한 표현이 아닐까?


[출처] 옹켈팍OnkelPark 블러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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