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하필 지금? 선거 앞두고 민주당 분열 재점화.
왜 하필 지금? 선거 앞두고 민주당 분열 재점화.
  • 양수연기자
  • 승인 2020.10.17 22: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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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내 좌파, 오바마 때처럼 당할 수 없다.
보수 싱크 탱크인 AEI의 다니엘 플렛카 선임 연구원의 9월 15일자 워싱턴 포스트 기고문은 민주당 내부에도 파장을 일으켰다. (사진: AEI 제공)
보수 싱크 탱크인 AEI의 다니엘 플렛카 선임 연구원의 9월 15일자 워싱턴 포스트 기고문은 민주당 내부에도 파장을 일으켰다. (사진: AEI 제공)

지난달 15일, 미국의 보수 싱크 탱크인 AEI의 선임 연구원 대니엘 플렛카의 워싱턴 포스트 기고문은 그야말로 폭풍을 일으켰다. 플렛카 선임 연구원의 칼럼은 “나는 2016년에 트럼프에게 투표할 생각을 한 적이 없다. 그러나 올해는 트럼프에게 투표해야 할 수도 있다.”는 직접적이고 도발적인 제목을 달고 있다.

플렛카 선임 연구원은 기고문에서 “트럼프는 변덕스럽고 망상적이며 미국 경제를 해친 최악의 정치 타락의 상징이지만, 민주당 내에서 요동치는 사회주의 좌파 세력을 고려할 때 바이든이 아닌 트럼프를 지지할 수밖에 없다.”는 나름 자조적인 목소리를 내놓았다.

뉴욕 타임즈의 대표적인 칼럼니스트이자 바이든 지지자인 데이비드 브룩스는 플렛카 선임 연구원의 기고문을 “사려깊고 좋은 칼럼”이라고 칭찬했는데, 이는 브룩스와 같은 바이든을 지지하는 온건 세력도 최근 민주당 내 좌파의 움직임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는 점에서 플렛카 선임 연구원을 헤아리기 때문으로 보인다.

민주당 내에는 온건파인 중도, 중도 좌파, 좌파를 비롯해 인종/경제계급/종교/성 정체성 등에 따른 유권자 기반의 여러 당파가 복잡하게 혼합하여 있다. 민주당 좌파의 대표주자는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과 다음 선거에서 상원에 도전할 것으로 예상하는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즈 하원의원(AOC 의원으로 표기, 뉴욕), 라시다 트레이드 하원의원(미시간) 등이 있다.

민주당 내 좌파 세력은 2016년과 2020년 월가 점령 사건과 버디 샌더스의 대선 캠페인 이후 세력을 확장했고 최근에는 AOC 의원의 활동이 대단히 눈부시다.

조 바이든이 민주당 대통령 단독 후보로 지명된 이후, 민주당 내 각계 다른 당파들은 바이든이라는 하나의 후보 아래에서 뭉쳤다. 대통령 후보에서 기권한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도 지난 8월 민주당 전당 대회에서 바이든 지지 연설을 통해 좌파가 조 바이든의 당선을 위해 협력할 것을 역설한 바 있다.

그러나 최근 민주당 내부의 협력 기류에 다시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고 지난달 말, 트럼프 대통령이 사망한 긴즈버그 대법관 후임으로 에이미 코니 배럭 제 7 연방 고법 판사를 지명한 직후 본격화됐다.

10월 16일, 민주당 내 좌파로부터 경고 서한을 받은 척 슈머 상원의원(오른쪽). 바이든을 ‘대신하여’ 받은 경고 메시지이지만, 차후 상원의원 직을 계속 유지하려는 그에게 이번 서한은 큰 부담이 되고 있다. 지난 달 20일 AOC 하원의원과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사진 CNN)
10월 16일, 민주당 내 좌파로부터 경고 서한을 받은 척 슈머 상원의원(오른쪽). 바이든을 ‘대신하여’ 받은 경고 메시지이지만, 차후 상원의원 직을 계속 유지하려는 그에게 이번 서한은 큰 부담이 되고 있다. 지난 달 20일 AOC 하원의원과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사진 CNN)

상원의원에게 배달한 강력한 ‘경고 편지’

민주당 분열 신호탄.

10월 16일 금요일, 척 슈머 상원의원(민주당)과 매코널 상원의원(공화당) 사무실 각각에 민주당 내 좌파 세력이 보낸 한 통의 경고 서한이 도착했다. 이 서한에는 새로 출범할 행정부가 대기업 임원들을 임명한다면 상원에서 인준해서는 안 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어찌 보면 통상적으로 보일 수도 있는 서한이지만, 대선을 불과 2주 남짓 남은 상황에서 이 서한이 심상치 않은 이유가 있다.

먼저 이 경고 서한은 하원 내 좌파 의원들 AOC, 케이티 포터, 아야나 프레슬리, 라올 그리잘바 등을 비롯한 미 하원 내 여러 좌파 의원들과 39개의 좌파 단체들이 주도하고 서명했다. 이 39개의 좌파 단체들은 미국 내 영향력이 매우 큰 단체들로 이것이 보통 서한이 아님을 증명한다. 들여다보면 통신, 정보기술, 방송, 의료 서비스 70만 명의 노동자를 대표하는 커뮤니케이션 워커 어브 어메리카(CWA),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을 적극 지지했던 미국의 대표 좌파 단체 ‘우리의 혁명(Our Revolution)’, 민주주의 재건을 목표로 결성한 대표적 좌파 풀뿌리 조직인 ‘인디비저블(Indivisible)’, 엘리자베쓰 워런 상원의원을 대통령 후보로 밀었던 진보 변혁 단체인 PCCC등을 포함하고 있다.

서한 내용을 자세히 들여다보자. 서한에는 구체적으로 ‘C-수위트(C-Suite)’ 임원들과 로비스트들을 차후 행정부가 임용해서는 안되며 대기업과 집권 세력과의 연결고리를 끊어야 한다고 강하게 촉구하고 있다. C-수위트(C-suite)란 최고 경영자(CEO), 최고 재무 책임자(CFO), 최고 운영 책임자 (COO),최고 정보 책임자(CIO) 등 문자 C로 시작하는 최고 고위 경영진을 일컫는 명칭이다. 이 경고 서한은 척 슈머, 미치 매코널 상원의원에게 전달했지만, 서한 발송 주체들은 조 바이든에게 경고 메시지를 보내는 의도였음을 분명히 했다.

서한의 초안을 작성한 아리잘바 아리조나 의원은 “바이든에게 전달한 것은 아니지만, 바이든이 대통령이 될 것이라는 이해를 바탕으로 작성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바이든이 대통령이 되면 임기 초기부터 재무부를 비롯해 여러 고위 관료의 지명을 둘러싼 당내 갈등이 시작할 것임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왜 하필 선거를 앞둔 지금 시점에 경고 서한을 보냈냐는 점이다.

‘배신의 상처’, 더 이상은 안돼.

민주당 내 좌파 세력은 2008년 오바마 행정부가 출범한 직후의 트라우마가 있다. 당시 오바마 대통령은 범진보 세력의 지지를 얻고 당선 됐지만, 당선 직후 대통령 인수위원회는 오바마를 지지했던 좌파 단체들을 의도적으로 배제했다. 또한 2016년 위키리스크는 충격적인 내용을 공개하는데 오바마 당선이 점쳐지기 시작했을 때 시티 그룹의 경영진이 오바마에게 미래의 내각에 포함하면 좋은 인물 명단을 넘겨줬고, 오바마 출범 후 실제 내각 지명자들과 일치했다고 위키리스크는 폭로했다. 궁극적으로 오바마는 당선 후 친 월 스트리트 정책을 펼쳤고 은행 위기를 관리한다는 명목을 빌미로 공화당원을 임명하기까지 했다. 퇴임 이후에도 오바마는 2017년 월 스트리트 회사가 주최한 의료 컨퍼런스에서 연설을 하면서 시간 당 40만 달러를 받아 챙기지 않았는가? (좌파 세력이 오바마에 대한 배신감은 CNN 칼럼리스트이자 전 캘리포니아 민주당 의장인 빌 프레스가 쓰고 버니 샌더스가 추천사를 쓴 <구매자의 후회: 오바마가 진보를 어떻게 실망시켰나(Buyer's Remorse: How Obama Let Progressives Down), 2016>에도 자세히 소개되어 있다.)

오바마에 대한 나쁜 기억을 가지고 있는 민주당 좌파의 입장에서는 이번 선거만큼은 선거 이전에 자신들의 파이를 분명히 해둘 필요성을 느꼈다고 본다. 그렇게 함으로써 얼마든지 선거 판세에 영향을 줄 수도 있음을 바이든에게 내비치려는 의도이다. 이 상징적인 ‘경고 서한’을 받아든 민주당 척 슈머 상원의원의 입장도 난감하긴 마찬가지일 것이다. 2022년 선거에 이번 경고 서한을 주도한 AOC 하원의원이 척 슈머 상원의원에 대항하여 나올 것으로 예상하는 가운데 척 슈머가 당내 온건-좌파 갈등에 어떤 입장을 취하는 지가 그에게 중요한 문제가 될 수 있다.

이 경고 서한은 서한 주체가 의도한대로 민주당 내부에서 부글거리며 끓고 있는 분열의 본격적인 신호탄이 되고 있다. 민주당 온건파는 이번 서한을 두고 “왜 하필 지금 공개적”으로 바이든에게 부담을 주는 것이냐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AOC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즈) 민주당 하원의원은 버디 샌더스 의원과 함께 민주당 내 좌파를 대표하는 강력한 핵으로 떠오르고 있다. (CNN 캡쳐)
AOC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즈) 민주당 하원의원은 버디 샌더스 의원과 함께 민주당 내 좌파를 대표하는 강력한 핵으로 떠오르고 있다. (CNN 캡쳐)

민주당 온건파가 받아들일 수 없는 좌파 정책들.

'그린 뉴 딜'은 그린 드림일 뿐.

다시 AEI의 대니엘 플렛카 선임 연구원의 워싱턴 포스트 기고문으로 돌아가보자. 앞서 지적한 대로 이 기고문은 민주당 온건파에게도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 플렛카가 지적한 좌파 세력의 주장은 민주당 온건파가 우려하는 바와 거의 일치하기 때문이다.

플렛카 선임 연구원은 “조 바이든은 민주당 내 좌파 세력에 휘둘려 지도력을 발휘하지 못할 것이다. 바이든이 당선되면 상원의 필리버스터를 폐지하고, 진보 확장을 위해 대법관 수를 늘리고, 그린 뉴 딜 정책(Green New Deal)을 통과하며, 의료보험 국유화, 미국 국경 해체 등 사회주의에서 영감을 받은 조치들을 도입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상원의 필리버스터는 민주당 내 당파를 떠나 폐지를 주장하고 있는 부분이기는 하다. 오바마도 지난 존 루이스 상원의원 장례식에서 필리버스터는 짐 크로우의 낡은 유물이라며 폐지의 필요성을 역설한 바 있다. 그러나 그린 뉴 딜정책은 현재 민주당 온건파가 받아들이기 어려운 대표적인 좌파 정책이다.

그린 뉴 딜은 지난해 ACO 하원의원과 에드워드 J. 마키 상원의원이 발의한 법안으로 지구 온난화 예방, 소득 불평등, 일자리 문제 해결 등 세 가지 토끼를 한꺼번에 해결하겠다는 좌파의 야심 찬 경제 성장 환경 정책이다. 2035년까지 재생 에너지로100% 전환할 것을 목표로 한다. 그러나 기후 위기가 사실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공화당이 반대하고 있고 민주당 내에서도 반발하고 있다. 예를 들어 다이언 페인스타인 상원의원(캘리포니아)는 그린 뉴 딜에 들어갈 막대한 예산을 우려했으며 일리사 스로트킨 의원도 “10년 안에 탄소 배출량을 완전히 없앤다는 것은 비현실적”이라고 반대했다. 낸시 펠로시 하원 의장도 그린 뉴 딜을 ‘그린 드림’일 뿐이라고 부르면서 그린 뉴 딜과 거리를 뒀다.

플렛카 선임 연구원은 국제 문제에 대한 바이든의 시각이 좌파에 흔들릴 경우도 상정했다. 좌파에 영향을 받은 바이든은 트럼프처럼 중동과 아시아에서 미군을 철수시킬 것이며 국방비를 삭감하고 이란의 독재자들과도 오바마처럼 좋은 관계를 유지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한 이스라엘에 대한 민주당의 적개심에 대해서 깊이 우려했다. 바이든은 이스라엘을 지지한다고 표방했지만, 대통령이 된 이후에도 과연 그럴 수 있을까 믿지 못하겠다는 것이다.

플렛카 연구원은 또 문화 교육 분야에서의 좌파적 시각을 우려했다. “맨해튼-샌프란시스코의 좌파적 관점이 지방 정부와 교육 커리큘럼에 스며드는 것은 두려운 일.”이라며 그 예로 학생들이 백인을 악하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것, 미국의 건국에 대한 비판적 관점, 문화 전반에 대한 좌파적 자기 검열을 언급했다. 문화에 대한 좌파적 자기 검열을 최근 백인 팝 가수 아델이 흑인 전통 머리를 한 것으로 크게 곤욕을 치른 것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조 바이든 민주당 대통령 후보와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샌더스 의원은 민주당 집권 세력의 좌파 외면의 배신감을 지속적으로 토로해오고 있다. (사진 AP)
조 바이든 민주당 대통령 후보와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샌더스 의원은 민주당 집권 세력의 좌파 외면의 배신감을 지속적으로 토로해오고 있다. (사진 AP)

바이든은 문화전쟁을 하지 않은 사람

좌파 이미지 벗기 위한 마지막 안간힘.

플렛카 선임 연구원은 워싱턴 포스트 기고문을 통해 우여곡절 끝에 ‘하나로 결집한’ 민주당을 역이용하여 선거에 임박하여 바이든을 공격하는데 사용했다. 이에 민주당에서는 103명의 하원의원이 속해있는 온건파의 신민주연합(New Democrat Coalition)을 대중에 홍보하는 한편, 민주당-좌파 프레임 전략을 가진 트럼프의 전략에 다시 말리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민주당은 ACO, 스쿼드(The Squard, ACO를 포함한 하원 내 네 명의 여성 의원을 뜻함), 버디 샌더스, 엘리자베스 워런이 민주당을 대표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반복해서 강조하고 있다.

뉴욕 타임스 데이비드 브룩스는 “민주당은 왼쪽으로 가지 않았다. 이념적으로 다양해졌을 뿐이며 정치적 주류를 유지할 수 있는 크고 강력한 중심(온건파)가 있다.”고 주장했다.

브룩스 칼럼니스트는 다른 관점의 보수 평론가인 브루킹스 연구소의 조나단 라우크의 말을 인용하며 “공화당은 정상적인 표준 정당이 아니라 트럼프에 충성을 요구하는 반정치적 폭동 세력”이며 “민주당은 문화적 좌파와 정치적 좌파를 분리하여 정치를 정상적인 크기로 줄일 것이며 종말론적으로 변해온 이 국가를 진정시킬 것”임을 역설했다.

좌파와 다시 거리두기를 하는 조 바이든, 그러나 무시할 수 없는 좌파의 거센 요구 사항 사이에서 바이든이 어떻게 행동할 것인지 대선이 임박한 시점에서 중요한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양수연기자 / <월간 뉴스M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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