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투 노말(Back to Normal)이 아니라 뉴-노말(New Normal)입니다!
백투 노말(Back to Normal)이 아니라 뉴-노말(New Normal)입니다!
  • Young S. Kwon
  • 승인 2020.10.19 0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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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석 목사 칼럼
권영석 목사 (전 학복협 상임대표)
권영석 목사 (전 학복협 상임대표)

미국 대선 2020 우편투표가 이미 진행 중인 상태인데, 대통령을 포함하여 트럼프 행정부 상당수 직원이 코로나 바이러스에 감염되는 사상 초유의 비상사태가 발생하였습니다. 다행스럽게도 트럼프 대통령은 조기 회복되어 ‘정상인’으로 복귀를 선언하고 선거 유세에 나섰습니다만, 여전히 트럼프 행정부의 코비드 방역에 대한 왜곡된 관점이 선거의 중요 쟁점이 되고 있습니다. 아마도 코비드 방역에 대한 관점을 때늦게 선회한다고 해서 이번 대선의 판세를 뒤집지는 못할 것으로 보입니다만, 생각해 보면 트럼프 대통령 개인이나 백악관이 그동안 유지해 온 관점은 참으로 무지 내지 아집으로 일관해 왔다 하겠습니다.

단적으로 마스크 쓰는 것을 두고 아직도 우왕좌왕하거나 나아가서 갑론을박하려 드는 모습은 참으로 과격하다 못해 야만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사실 지금까지 인류가 발견한 지식으로는, 그리고 인류가 개발한 문명/의학으로는 이번 바이러스 퇴치를 위해서는 사람(감염자, 양성반응자)을 너무 가까이하지 말아야 하며, 생존/공존하기 위해 불가피한 경우에는 그나마 마스크를 쓰고 면대면 업무를 보거나 상호 소통/협력해야 한다는 것이 일종의 과학적인 대원칙(rule of law)이자 경험상의 통념(rule of thumb)이라 하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한 고통과 혼란이 벌써 10개월에 접어들었는데 아직도 마스크 타령이나 하고 있는 정부를 상식과 지각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 누군들 신뢰하겠습니까?

행정부가 공신력을 잃으면 입법부나 사법부라도 나서 줘야 하는데, 작금의 미국 상황을 보면 모든 것을 당리당략이나 정쟁의 관점으로만 접근하려는 후기 민주주의의 레임덕 증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야말로 체크 앤 밸런스 기능조차도 제대로 작동되고 있지 않은 상태라 하겠습니다.

올해 초까지만 해도 트럼프 행정부는 자화자찬할만한 통계치에 도취하여 있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습니다. 사실 이런 도취로 인해 코로나바이러스의 실체를 진작에 공개하지 못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주식 시장이나 고용지수 그리고 국제 교역 현황 어느 면으로 보나 여타 행정부보다 나으면 나았지 못하다고 할 사람이 그리 많지 않았다 하겠습니다. 다만 백인우월주의나 배타적인 이민 정책과 관련된 극단주의 경향을 제외하면 말입니다. 그러나 유세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특히 긴즈버그 대법관의 사망으로 인한 결원을 보충하기 위해 서둘러 애미 배럿을 지명자로 세우고 백악관 로즈 가든에서 마치 무슨 축하 파티라도 하듯이 마스크조차 쓰지 않은 채 지명식을 과시한 것이 대역전의 계기가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사실은 그동안 의심의 눈초리로 지켜보아 왔던 것이 이 한 방으로 확진을 받은 셈이라 하겠습니다.

문제는 확진 판정 이후 트럼프 대통령의 거취는 사뭇 더 큰 의심을 불러일으키면서 여론 조사는 바이든 후보를 더욱 크게 신뢰하는 것으로 그 기류가 바뀌기 시작하였습니다. 더구나 퇴원한 이후 트럼프 대통령이 보인 행보는 과연 상식에도 못 미치는 것이었으니, 바이러스 전파 가능성이 가장 크다고 할 시점에 마스크조차 벗고 백악관 발코니에 서서 무슨 대단한 개선장군이나 되는 것처럼 의기양양해 하던 모습은 존경스럽기보다 차라리 경멸에 가까운 행동이었다 하겠습니다.

바이러스가 사라지기는커녕 현저히 감염/전파 추세가 계속 증가하고 있는데, 노말로 돌아가자는(back to the normal) 것은 섶을 지고 불 구덩이에 뛰어드는 것과 매한가지라 할 수밖에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바이러스 감염과 그로 인한 생명의 위협이 사라지지 않는 이상 우리는 코비드 감염병이란 새로운 현상을 늘 염두에 두고 의식하면서 살아야 할 것입니다. 아마도 백신이 개발되어 대다수가 [아마도 해마다 접종함으로] 면역력을 확보하게 되고 혹시 감염된다 해도 확실한 치료책이 마련되기까지는 코비드 19로 시작된 감염병을 결코 가벼이 여길 수는 없는 것이 현실(reality)이자 팩트라 하겠습니다. 마치 중력이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우리가 중력을 그 어떤 것보다 확실히 실재하는 것으로 인식하고 살듯이 말입니다.

아무리 무시하는 말을 하고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허세를 부린다 해도 바이러스가 물러가거나 겁을 집어먹을 리는 만무합니다. 달리 뾰족한 대처법이 없어서 그나마 거리 두기를 하고 불가피한 경우에는 마스크를 쓰고, 손을 자주 씻거나 소독하는 것을 그야말로 맥시멈의 방역 수칙으로 정한 것인데 이런 최소한의 예방 조처마저 무시하면서 요행히도 바이러스가 피해가기를 바란다면 이는 그야말로 신비주의자가 아니면 막장 인생일 것입니다.

개인이야 신비주의를 신봉하든, 막장 인생을 살든 사필귀정이라 하면 그뿐이겠습니다만, 주변의 가족이나 이웃, 직장 동료들의 희생은 본인이 임의로 요구할 수 있는 일은 아닐 것입니다. 더구나 방역을 책임져야 할 국가 기관의 수장이 이런 신비주의나 막무가내 스타일의 리더십을 발휘한다면 이는 결코 용납해서는 안 될 어불성설일 것입니다. 바이러스 감염 관점만 놓고 본다면, 이런 수반(首班)은 차라리 없는 것이 더 낫다 할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코비드 19 감염병을 이제는 뉴-노말(New Normal)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얼마간 서로 격리하고 두문불출하면 바이러스가 소멸할 것이라고 기대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많이 흘렀으며, 확진자 숫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남으로 말미암아 이제는 원점으로 돌아가는 것이 불가능해졌다 하겠습니다. 

비근한 예로 천연두 바이러스는 1800년 백신이 개발된 이후로도 한 세기를 한참이나 넘긴 1979년에 가서야 박멸을 선언 받았다 하지 않습니까?] 따라서 바이러스의 실존 가능성을 인정하는 가운데 더불어 살아가는 삶을 꾸릴 수밖에 없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내 옆 사람도 내게 바이러스를 감염시킬 수가 있으며, 나도 내 옆 사람에게 바이러스를 감염시킬 수 있음을 서로서로 인정/존중하면서 가정생활과 사회생활을 해야 하겠다는 말입니다. 더구나 무증상 확진자로 인한 무증상 감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에 어쩌면 코비드 19의 박멸을 선언할 수 있을 때까지는 이런 새로운 전제(new normal)를 우리 인류의 생존에 당연히 전제되어야 할 필요조건(necessary condition)의 하나로 새로이 받아들여야 할 것입니다.

필요조건이란 마치 밥을 먹어야 살고, 화장실을 가야 살듯이 삶의 존속을 위해서는 당연히 충족되어야 하는 조건을 말합니다. 매한가지로 다른 어떤 조건보다도 일단 바이러스에 걸리지 않아야 인간의 삶은 존속 가능하다 하겠습니다. 두렵기도 하고, 또 거북스럽기도 하겠지만, 그리고 솔직히 “고작” 마스크 쓰는 것 말고는 현재로서는 달리 피할 방법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 자괴스럽기도 하고 은근 화나기도 하겠지만, 이것이 우리가 2020년에 들어서면서 당면한 삶의 새로운 조건이자 새로운 현실이라 하겠습니다. 지구를 탈출할 수 없다면, 이 기본적인 방역수칙을 엄수해서라도 이 지구에서 살아갈 수밖에 다른 방도가 없지 않겠습니까?

더 이상 백투 노말을 꿈꾸며 경거망동하는 것은 객기에 지나지 않으며 시간 낭비일 뿐이라 하겠습니다. 나아가서 결과적으로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삶을 파괴하면서까지 과학/팩트를 함부로 무시하는 처사는 그저 무지나 야만 정도가 아니라 사악하다고 할 수밖에 없으며, 종내에는 솎아 내어야 할 대상이 되고 말 것입니다. 불행하게도 우리 미국은 지금 대통령 자신이 바로 이런 경거망동의 우를 범하고 있으니 참으로 대략난감입니다. 

코비드 19의 뉴-노말한 상황에서 치러지는 2020 대선은 그저 또 한 명의 대통령을 세우기 위한 여느 절차 중의 하나가 아니라, 뉴-노말의 대통령을 세우고 뉴-노말의 사회를 재편하기 위한 최고 리더십을 임명하는 중차대한 사건이 될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를 중심으로 하여 이 뉴-노말 상황에서도 정치, 사회, 경제, 문화, 교육, 언론, 종교 등등 제반 영역에서 한편으로는 바이러스에 대한 효과적인 방역을 해 나가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인간의 인간됨을 계속 고양하고 삶의 질을 제고(提高)하기 위한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시스템을 구축하고 실천적인 방안을 창의적으로 모색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아직도 백투 노말의 허황한 기대를 부여잡고 있다면, 이는 오히려 시간만 더욱 허비하는 것이 되고 말 것입니다. 이제는 뉴-노말의 현실(New Reality)을 인정하고 존중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그런 관점으로 사람과 사물을 바라보고 대하며 또 그런 가운데 함께 공생/상생할 수 있는 길을 점차적으로나마 또박또박 모색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이는 결단코 자기 과신에서 나오는 객기나 맹용으로 “백투 노말”을 외친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이 새로운 상황에 부단히 적응해 나가기 위한 노력의 결과로 우리 개인의 삶이나 사회적 시스템 안에 이 뉴-노말을 내재화(internalize)해 나갈 때라야 비로소 가능하게 될 것입니다. 이질적이고 생소한 뉴-노말이 주는 불편함을 당분간은 더 감수해야겠습니다만, 이런 뉴-노말에 점차 익숙해져서 마치 언제 그렇게 불편했던가 하는 옛말하며 지낼 날이 속히 오기를 고대해 봅니다.

이를 위한 일차적인 관문은 두말할 필요 없이 코비드 19의 현실을 적어도 있는 그대로 인식하고 직시하는 일일 것이며, 그리하도록 홍보하고 교육하는 일이 될 것입니다. 요행에 의존하는 신비주의로 바이러스를 퇴치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아직도 상당수인 미합중국의 민주주의가 바야흐로 역사의 심판대 위에 올랐다고 할 수 있을 터인즉, 과연 어떤 리더십을 뽑아 세우게 될 것인지 이번 선거의 귀추가 주목된다고 하겠습니다. 코비드 19로 인해 우리 민주 시민의 의식과 민도가 뒷걸음질 쳐서는 아니 될 것입니다. 그것이야말로 우리 인류가 코로나바이러스에게 말리어 패배를 자인하는 지름길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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