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는 변질됩니다"
"교회는 변질됩니다"
  • 최태선 목사
  • 승인 2020.11.04 0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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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는 변질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변질되지 않은 교회를 끊임없이 이어가게 하십니다. 그래서 교회는 영원히 개혁의 과정에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저는 영원히 개혁의 과정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영원히 새롭게 다시 시작하는 교회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게 개혁이 아니고 뭐냐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다릅니다. 다시 시작하는 것과 다시 새롭게 시작하는 것은 재건축과 리모델링의 차이가 아니라 터전 자체가 달라지는 것입니다.

"선교사 무어 목사는 여러 조선인들을 일요일마다 교회에 모이게 했는데, 박성춘도 이 모임에 들어갔다. 물론 이들은 갓도 쓰지 않은 사람들이 끼어드는 것을 보고 눈을 흘겼으며, 백정의 친구들이 집회에 많이 나오기 시작하여 이 모임이 흔히 백정교회라 불리게 되자 몹시 당황하게 되었다. 무어는 양반들과 협의하고 교인인 백정을 교회 밖으로 몰아낼 수 없다고 했으며, 결국 양반들이 교회에서 나오기로 결정하여 교회가 번성하게 되었다." (O. R. 에비슨, <구한말 비록>, 대구대학교출판부, 1984, 193-196.)

한국의 초기교회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참으로 의미심장한 일이었습니다. 양반과 백정은 결코 같은 자리에 모일 수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양반들이 교회를 떠났습니다. 교회가 백정과 백정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사람들의 교회가 되었습니다. 이 모습이 바로 교회의 모습이어야 합니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복음이 전파되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가난이 단순히 돈만의 문제가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왜 예수님이 세리와 죄인들의 친구이셨는가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교회는 출발 당시와 달리 반대가 되었습니다. 유명한 목사님이 설교에서 말한 것처럼 교회가 커지자 가난한 사람들이 떠나는 곳이 되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이 떠난 교회가 아무리 크고 화려한 예배당을 짓고 더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어도 그곳은 더 이상 교회일 수 없습니다. 저는 그 유명한 목사님이 가난한 사람들이 더 이상 머물 수 없는 곳이 된 교회를 떠나야 했다고 생각합니다. 떠나야 할 사람들은 가난한 사람들이 아니라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머물 수 없는 부자들이어야 했습니다. 부자들이 떠나지 않는다면, 부자들이 없으면 안 되는 교회가 되었다면 그 교회는 더 이상 교회일 수 없다는 사실을 발견해야 했습니다.

혹자는 제가 이 사실을 매우 집요하게 지적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맞는 말입니다. 그러나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교회는 지극히 보잘 것 없는 사람들을 주님으로 섬겨야 하는 곳입니다. 주님 현존의 신비는 어떤 특별한 현상에 있는 것이 아니라 지극히 평범한 일상 가운데 있습니다. 지극히 보잘 것 없는 사람을 주님과 동일시하는 바로 그 사실이 일상이 되는 곳이 바로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세리와 죄인들과 어울리는 것은 지극히 비상식적인 일이었으며 매우 어리석은 일이었습니다. 그것은 단순히 주님의 평판만을 나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하시려는 일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것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주님이 하시려는 일은 바로 그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세리와 죄인들조차 차별받지 않는 세상, 그것이 바로 주님의 선포하신 복음의 핵심인 하나님 나라와 하나님의 정의였기 때문입니다.

복음의 핵심은 구원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와 하나님의 정의입니다.

구원은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한 과정 내지는 수단일 뿐입니다. 구원의 목적은 하나님 나라의 건설입니다. 구원 받은 사람은 하나님 나라 백성이 되어 하나님 나라를 구성하는 일원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예수님께서 당신의 백성들을 구원하시는 이유입니다. 만일 구원 받은 사람들이 주님의 백성이 되지 않는다면 그 구원은 단순히 헛것이 아니라 안티크리스천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우리는 안티크리스천이 된 바로 그 사람들을 교회에서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 나라를 흐리게 하는 정도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토대를 허무는 사람들입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 바로 그 안티가 되었기 때문에 교회가 커지자 가난한 사람들이 더 이상 머물 수 없는 곳이 되는 것입니다. 부자들이 나가는 것이 아니라 가난한 사람들이 나가는 곳이 된 것입니다. 목사가 가난한 사람들을 교회 밖으로 몰아낼 수 없다고 말하지 못하고 떠나는 가난한 사람들을 보고 눈물을 흘리는 곳이 된 것입니다. 부자들이 나오기로 결정하는 곳이 되지 못한 것입니다.

우리는 한국 초기교회에서 마름이 주인양반을 누르고 장로로 피택되었던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백정의 아들이 한국 최초의 의사가 되었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교회는 더 이상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없는 곳이 되었습니다. 자기 교회 교인들끼리 혼맥婚脈을 이어나가고 사업을 같이 하는 곳이 되었지만 더 이상 평등해지는 곳이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의 평등을 말하면 그것을 불의한 일이라고 말하는 곳이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자유를 시장의 자유와 사유재산의 자유로 인식하는 곳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이게 교회냐고 반문하는 이들이 없습니다.

1세기 말 전까지, 상류층 사람이 그리스도인 공동체에 합류하는 일은 드물었습니다. 괄목할만한 수적 성장은 2세기 이후에나 일어났으면 그 전까지 기독교 전파는 주로 노동자 계급에 국한되어 일어났습니다.

한국의 초기교회가 백정교회라 불리게 된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복음이 가난한 자에게 전파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부유한 사람이 들어오기 힘든 곳이 되어야 합니다. 풍요의 시대를 사는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초기교회 허마스의 이야기를 반드시 기억해야 합니다.

“부유한 사람은 가난한 형제자매를 위해 자신의 부를 벗어버린 후에나 교회에 들어올 수 있었다!!”

근본적으로 부자와 가난한 사람의 구분은 소유의 정도에 따라 구분되지 않습니다. 부자란 더 많이 가지려는 사람입니다. 아무리 가난해도 더 많이 가지려는 사람은 가난한 사람이 아닙니다. 더 많이 가지려는 사람들에게는 아무리 많은 부가 주어져도 평등이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나라 백성들은 단순히 가난한 자가 아니라 더 많이 가지려 하지 않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아무도 더 많이 가지려하지 않을 때 하나님 나라의 평등이 그들 가운데 이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평등은 바로 그렇게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이루어지는 평등이야말로 그리스도인들 가운데 이루어지는 하나님 나라의 가장 현저한 특징입니다.

사랑의 정신으로 모든 것을 포기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임을 보증하는 하나의 표시였습니다. 초기교회는 사랑의 실천이 줄어들 때 그리스도의 정신을 잃어버리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실제로 교회의 모든 소유가 가난한 사람들의 안위를 위해 사용되었습니다. 부유한 사람들이 자신의 부를 벗어버리는 방법 역시 이것이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교회가 이 사랑의 정신을 망각하기 시작하는 시점이 언제부터인가를 따져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교회의 변질이 313년 밀라노 칙령 이후가 아니라 이미 서기 200년 경 교회가 제도화되기 시작할 무렵이었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사도들의 시대가 끝나고 교회 지도자들의 권위가 사라지고 몬타니즘과 같은 교회를 위협하는 운동이 일어나자 주교의 권위가 교회를 장악하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은 교회를 지키기 위한 노력이었음에도 결국 권위가 되었고, 교회 안에 권위가 들어서는 순간 그동안 그리스도인임을 보증하는 사랑의 정신이 쇠퇴하기 시작했습니다. 사랑의 정신이 쇠퇴한 교회가 세상을 닮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교회는 이처럼 언제나 세속화의 위험을 안고 있는 곳입니다.

오직 유일한 교회의 권위란 사랑에서 비롯된 섬김과 희생이 빚어낸 신뢰입니다!! 그것은 권력이 되지 않는 유일한 권위입니다. 그 신뢰가 새로운 교회의 터전이 되어야 합니다.

이 시대 안티크리스천들을 만들어내는 교회들을 개혁할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사랑의 정신이 살아 있는 교회를 다시 시작하는 수밖에는 없습니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합니다. 그리고 새 술은 지나면 묵은 술이 됩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영원히 개혁의 대상이 되는 교회가 아니라 영원히 새로 시작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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