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회장의 가짜 편지와 자신을 잃어가는 사람들
이건희 회장의 가짜 편지와 자신을 잃어가는 사람들
  • 박성철 목사
  • 승인 2020.11.04 07: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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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나라를 바라보는 눈]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의 편지라고 알려진 가짜 편지가 SNS 상에 돌아다닌다.

짧은 시간에 많은 이들의 댓글과 '좋아요'를 얻어 확대•재생산되고 있다.

하지만 유사한 내용의 글이 몇년전부터 SNS상에 돌아다녔다고 한다.

​새로움을 찾아 SNS를 집착적으로 파고드는 현대인들의 특성상 이미 어디선 본 듯한 내용의 편지가 이건희 회장의 이름을 달고 돌아다니는 것을 발견했을 때 금새 가짜라는 것을 알아 채렸을 것이다.

그럼에도 삼성그룹에서 가짜라는 것을 공식적으로 발표한 후에도 복사본이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걸 보고 있자니 묘한 기분이 든다.

​가짜 편지라는 것을 알고 나서도 '좋아요'를 누르고 "감동받았어요"라는 댓글을 남기는 현대인들의 심리가 무엇보다 신기하기만 하다.

내 입장에선 단순히 확증편향이나 '믿고 싶은 것을 믿는다'는 일반적인 설명으로 다 담아낼 수 없는 현대인들의 복잡한 심리상태을 보는 듯 하다.

​가짜 편지라는 것이 밝혀졌음에도 새로운 아이디로 복사본이 돌아 다니는 걸 보면 익명의 그림자 뒤에 숨어 타인의 시선을 끌기 위해서는 가짜마저도 아무런 문제가 될 것이 없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이 적진 않은 듯 하다.

하지만 내 입장에서는 가짜에 의존해서라도 관심을 받고 싶어하고 사람들이나 반대로 감동을 얻고 싶어하는 사람들이나 건강하지 못한 자기 정체성을 가진 것처럼 보인다.

​혹자는 과거의 소설이나 만화와 같이 가볍게 소비하는 허구의 한 종류일 뿐이라고 가볍게 넘길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소설이나 만화는 명백히 허구라는 것을 알고 소비하는데 반해 유명인의 실명을 걸고 돌아다니는 가짜 편지는 가짜를 진실이라고 믿고 싶어하는 왜곡된 욕망의 문제이니 분명 그 결이 다르다.

​가짜를 통해 감동을 얻고 싶어하는 마음은 가짜를 진짜라고 믿고 싶어하는 변형된 형태의 '리플리증후군'일 뿐이다.

하지만 가짜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정립하고 그를 통해 현실을 도피하거나 심리적 결여를 채우려 할수록 자신을 잃어갈 뿐이다.

​분명 처음 그 가짜 편지를 창작해낸 사람이 있었을 것이다.

왜 그 사람은 자신의 이름이 아닌 이건희의 이름을 빌렸을까?

​어쩜 감동이나 삶의 진실마저도 내용 그 자체보다 유명인의 인기가 더 중요한 세상이 그렇게 자신의 이름을 숨기게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가짜를 진짜라 믿음으로 현실을 부정하고 싶어하는 현상은 이미 한국교회 내에서 팽배하다.

지난 총선과 코로나19 사태를 지나면서 극우세력의 가짜 뉴스에 의존하여 현실을 부정하려 했던 그리스도인들이 만들어낸 수없이 많은 사회적 문제들을 우린 충분히 경험했다.

하지만 문제의 크기가 크지 않을 뿐 가짜 예화에 의존해서 억지러 만들어 내는 감동, 즉 '싸구려 감동'은 한국교회 내에 널리 퍼져 있다.

가짜 예화를 통해 감동받고 정립된 신앙이 참으로 거친 현실을 '넉넉하게 이겨나갈 수 있도록 하는 믿음'을 만들어 낼 수 있을까?

결코 불가능할 것이다.

​더구나 가짜 예화를 통해 가짜 감동으로 성도들에게 가짜 '은혜로움'을 전하려는 목사들의 가짜 신앙은 과연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일까?

성서에 대한 이해보다 예화가 더 중요해진 한국교회의 설교현장은 결국 기독교신앙을 통해 하나님 앞에서 참된 인간의 모습을 찾기보다 종교적으로 왜곡된 가짜를 통해 현실을 부정하고 그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자신의 미성숙한 정체성을 덮으려는 한국 그리스도인들의 문제를 잘 보여준다.

​하지만 이런 비극적 현실 앞에서 가짜를 조작해 냄으로써 성도들을 감동시키려 하는 목사와 가짜를 통해서라도 감동을 받으려는 교인들의 관계는 약장수와 구매자의 관계일 수는 있어도 결코 목회자와 성도의 관계일 수 없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인식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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