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선과 한국교회
미국 대선과 한국교회
  • 박성철 목사
  • 승인 2020.11.07 00: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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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나라를 바라보는 눈

드디어 조지아에서 조 바이든이 도널드 트럼프를 제치면서 기나긴 미국 대선의 '개표 드라마'가 드디어 끝이 났다.

기나긴 개표의 드라마가 드디어 끝난 것이다.

하지만 이번 대선으로 미국의 민주주의는 좌초했다.

과거 미국의 정치는 우리나라가 그렇게 나아가야 할 모델이었지만 이제 미국의 정치는 우리나라가 그렇게 나아가서는 안 되는 모델이 되었다.

물론 영원한 것은 없다.

앞으로 바이든과 미국 시민들이 어떻게 노력하느냐에 따라 미국의 민주주의는 달라질 것이다.

하지만 트럼프의 거짓말과 비윤리적 언행을 명확하게 인지하고도 그를 지지했던 '미국 백인 남성 그리스도인들'의 극우화와 극우 정치세력에 의한 종교의 왜곡은 꽤 오랫동안 미국사회를 괴롭힐 것이다.

이번 미국 대선은 한국교회, 특히 한국 개신교회에 어떤 의미를 지니는 것일까?

물론 여기서 말하는 '의미'란 한국의 일부 극우 기독교인들처럼 트럼프의 당선을 한국사회의 운명과 동일시하는 왜곡된 인식론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현실 정치인에게 종교적 의미를 부여하여 악마로 손가락질하는 것과 메시아와 같은 선의 화신으로 추종하는 것 모두 건강한 그리스도인들의 모습은 아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누가복음 12장 56절에서 예수께서 말씀하신 것과 같이 하나님의 뜻을 깨닫기 위해 "시대"를 "분간"할 수 있어야 한다.

예수께서는 그의 제자들에게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해 '기도 열심히 해서 신비한 방법으로 계시를 받아야 한다'라고 말씀하시지 않았다.

언제나 세상의 변화 속에서 그 의미를 바르게 파악함으로써 하나님의 뜻을 쫓아가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이는 세상의 흐름, 즉 역사적 변화를 신앙의 관점에서 파악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내 개인적인 입장에서는 이번 미국 대선을 통해 한국의 그리스도인들은 정치적 왜곡현상이 종교적 왜곡현상을 가져 온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한국의 많은 보수적인 그리스도인들은 정치적 변화와 종교적 변화는 서로 분리되어 있는 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이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역사 속에서 정치적 변화는 언제나 종교적 변화를 추동해 왔다.

예를 들어, 19세기 번영하였던 독일 자유주의신학은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했을 때, 독일 민족주의에 동조함으로써 전쟁을 공개적으로 지지하였다.

이는 당시 칼 바르트나 루돌프 불트만, 에두아르드 투르나이젠과 같은 젊은 신학도들의 거세 저항을 불러 왔고 결국 자유주의신학의 몰락을 가져왔다.

마찬가지로 루터 연구에 있어 주류를 이루었던 에어랑엔 학파(Erlangen Schule)는 나치 독일에 대해 분명한 단절을 내리지 못한 채 침묵하다가 칼 바르트로 대표되는 스위스 개혁파 신학에 20세기 신학의 주류적 자리를 내어 주었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어떤가?

이승만 정권의 등장으로 개신교의 보수화가 진행되었고 군사독재세력의 등장으로 개신교의 근본주의화와 극우화가 가속화 되었다.

그 결과 21세기 한국 기독교 극우세력의 부상으로 한국 기독교 근본주의의 부정적인 영향력이 표출되면서 몰락의 길에 서 있다.

내가 보기에 미국의 신학적 흐름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이 필요한 시점이 되었다.

현 시점에서 가장 좋지 못한 그리스도인의 자세는 주류적 흐름과 비주류적 흐름을 구분하지 못하는 것이다.

예들 들어, "미국에도 좋은 신학자가 많다"는 식의 논리가 대표적인 것이다.

미국에 좋은 신학자가 없어서 '미국 백인 남성 그리스도인들'이 트럼프를 지지하고 극우 정치 이념을 받아들인 것이 아니다.

미국사회와 미국교회가 문제가 있는 것이다.

지금 우리에게는 그 문제를 밝혀내어 그 부정적 영향력이 한국사회와 한국교회에 나타나지 않다록 해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이다.

사실 이런 식의 논리는 "나치 시대에도 디트리히 본회퍼와 같이 나치에 저항했던 루터파 교회 목사가 있었다"라던가 "한국개신교 내에도 개혁적인 목사들이 많다"는 주장과 동일하다.

그리고 이런 식의 주장은 현실의 부정적인 현상을 파악하고 해결하는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무의미한 반론들이다.

사회적 현상으로서 종교와 그 현상의 인식론적 기반이 되는 신학에 대한 이해는 주류적 흐름이나 헤게모니를 장악한 종교적 세력에 의해 발산되는 실질적인 영향력에 집중해야 한다.

아무리 개혁적이고 비판적인 이들이 존재하더라도 그들이 비주류로 남아 교회나 사회의 부정적 변화를 막아내지 못한다면 그 비주류적 흐름이 주류적 흐름으로 나아가지 못하도록 하는 주류적 신학이나 교회의 모습을 연구해야 하는 것이다.

내 개인적인 입장에서는 마치 나치 독일시대의 루터파 교회와 같이

미국의 주류적 신학 흐름은 미국사회의 극우화를 막아낼 수 있는 영향력이 없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지금처럼 무비판적으로 미국의 신학적 흐름을 쫓아가는 것은 한국교회의 미래에 있어 대단히 위험한 도박이다.

그러므로 현재 미국 정치의 부정적인 변화와 그 변화를 적극적으로 추동하고 있는 미국 개신교 신학에 대한 전면적인 재점검이 진행되어야 한다.

나치 독일에 협력했던 루터파 교회의 오점이 독일 신학에 대한 사대주의를 해체하였듯이 이번 미국 대선과 '미국 백인 남성 그리스도인들'의 모습은 미국 신학에 대한 사대주의가 해체되어야 한다는 것을 명확하게 보여주고 있다.

출처,옹켈박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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