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대통령의 마지막 실기(失機)
트럼프 대통령의 마지막 실기(失機)
  • Young S. Kwon
  • 승인 2020.11.13 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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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석 목사 칼럼 "마지막 기회마저 자신의 욕심을 위해 무용지물로 날려 버리고 있는 트럼프 대통령"
권영석 목사 (전 학복협 상임대표)
권영석 목사 (전 학복협 상임대표)

리더십을 맡았던 사람이 마지막으로 가장 확실하게 이바지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그야말로 잘 물러나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아무것도 하지 않음으로써 뭔가를 확실하게 기여하는 셈이지요. 이렇게 보면 ‘물러나는 것’ 역시도 직책의 중요한 한 부분이라 해야 할 것입니다. 임기가 정해져 있는 선출직 공무원에게 유종의 미덕이란 바로 이 인수인계까지도 잘 감당하는 것을 지칭한다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 이 마지막 임무조차 엉망으로 만들고 온 나라를 카오스로 몰아넣고 있는 트럼프 행정부의 패악질로 인해 세계의 웃음거리는 물론 엄청난 예산을 들여서 치른 선거 결과를 쓰레기통에 처박으려는 것도 모자라 양당의 막대한 소송 자금까지 다시 부담해야 하는 상황을 목도하고 있습니다. 사실 임기 중에 리더십을 책임 있게 감당한 사람이 아니면 이 마지막 물러나기조차 쉽지 않을 것입니다. 뭔가를 확실하고 책임 있게 감당해 온 사람이라면 매듭을 짓는 일도 의당 책임 있게 하려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수고가 무위(無爲)로 돌아가는 것을 원치 않기에 후임자가 계속 이어서 발전 시켜 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인수인계하려 할 것이며, 반대로 해 놓은 것이 별로 없는 사람은 무위로 돌릴 것도 없기에 마무리를 잘하고 말고 할 것이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지난 4년간 트럼프 대통령의 행적을 돌아다보면 정확한 정보나 과학적 데이터에 근거하여 공공의 선을 위해 책임 있는 리더십(義)을 발휘하였기보다 요행을 넘어 사행심까지 동원하여 그저 자신의 인기와 사익(利) 관리하는 일에 몰두해 왔었기에, 어떻게 득템한 권력인데 이제 그 사행심의 원천이 한순간에 사라지는 것을 그저 보고만 있을 수는 없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방귀 뀐 놈이 성낸다’고 마지막까지 분노에 사로잡힌 채 악수를 두려고 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머릿속에 대체 무엇이 들어 있을지 궁금하기 그지없습니다. 아마도 지금 그의 의중에 들어 있는 동기는 4년 전 대통령직을 시작하던 시점에 그의 심중에 있었던 동기와 그다지 다를 것 같지 않습니다.

물론 사람은 변하며 또 변할 수 있는 존재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인간이라 할 수 없겠지요. 그러나 긍정적으로 변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부정적인 것을 먼저 포기해야만 합니다. 아니 그 포기 자체가 바로 변화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포기는 빠를수록 효과가 빠를 것이며 그만큼의 보상이 따를 것입니다. 포기해야만 하는 것을 포기할 줄 모르고 그마저도 실기(失機)한다면, 발전이나 진정한 변화를 기대하기는 더욱 어려워지며, 기껏해야 엎드려 절 받기에 불과하게 되어서 겉으론 마지못해 포기하는 것 같지만 속으로는 분노와 적개심만 배가되어 결국은 스스로 패망을 재촉하고 말 것입니다.

도대체 대통령직이 무엇이길래, 그리고 누구를 위한 대통령직이기에 그토록 목을 맨다는 말입니까? 무슨 대단한 선거 부정이라도 있었다는 것인지, 만일 그것이 아니라면 이 정도의 확실한 득표 차를 어떻게 무위로 돌리고 뒤집기를 하겠다는 것인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못 먹는 감 찔러나 보자’ 식이라면 못 말릴 인간의 심술로 치부하면 그만이겠지만, 아직도 현직에 있는 대통령이 이처럼 사사로운 동기로 소송전을 벌이고, 버젓이 소송 자금을 모금하고 있는 이런 추악하고 천박한 모습을 그냥 보고만 있어야 한다면 이것이야말로 민주주의의 막장이오, 이로 인한 분열과 양극화는 트럼프 개인뿐만 아니라 향후 미국의 앞날에 막대한 상흔을 남길 것이며 두고두고 발목을 잡는 미국 역사의 오점으로 남고 말 것입니다. 왜냐하면 따지고 보면 민주주의는 사실 “다수결 원칙”이란 게임 규칙(Rule of Law)에 불과한데, 이에 굴복하는 것은 민주국가의 정체성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대통령을 포함하여 무슨 권한과 직책이든 이는 다 이 정체성을 유지하고 강화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한 마디로 임기가 정해져 있는 선출직은 직책의 고하를 막론하고 선출한 주체인 국민의 뜻을 받들고 봉사하기 위한 것이며, 임무가 끝나면 즉각 굴복하고 명함(id card)을 반납하는 것이 마땅한 도리라 하겠습니다.

이렇게 보면 리더십이란 그 자체가 목적은 아니며 수단적인 가치에 불과하다 하겠습니다. “민주”란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면 이런 권력 기구나 직임이 뭐 그리 대단한 것이겠습니까? 대통령 되기 전이나 대통령 된 후에나 이 점은 불변의 원칙이며, 대통령일 때나 대통령 임기를 마칠 때나 이 원칙은 변개할 수 없을 것입니다. 심지어 왕정 시대에도 회자하던 “민심이 천심”이란 말로 대변되는 이 대원칙이 무너지고 나면 ‘민주 국가’는 더 유지될 수 없거나 무의미한 수사로 전락하기 때문입니다. 대통령의 마지막 임무는 참으로 간단한 것입니다. 국민들의 다수가 결정하였기에 대통령직을 맡았던 것이었으면, 매한가지로 국민들의 다수가 결정하였기에 대통령직을 놓고 물러나야 합니다.

이런 단순한 원리를 따르는 것이 트럼프 대통령으로서는 아마도 무엇보다 힘든가 봅니다. 이런 기본 원리조차 굴복하기 힘들어하는 사람을 애초에 대통령으로 선출하였던 사람들, 특히 공화당의 리더십에 일차적인 책임을 물어야 할 문제이겠습니다만, 그들은 책임은커녕 아직도 뭐가 문제인지 심각하게 인식조차 못 하고 있는 듯이 보입니다. ‘재개표를 요구하는 것이 후보자의 당연한 권리인 이상 그 권리를 요구하는 것이 뭐가 문제냐’ 하는 식의 논리를 들이대고 있으니 참으로 기준이 한심할 정도로 낮아지다 못해 처절하게 바닥으로 떨어진 정치적인 감수성과 후안무치의 민낯을 보인다 하겠습니다. 조지아 주에 할당된 상원 의원 2석에 대한 결선 투표(runoff)에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기 위해서 전 국민을 혼란과 분열에 빠뜨리는 이런 몰상식하고 몰염치한 행동을 획책하는 것이라면, 이는 그야말로 부도덕하고 사악하다 해야 할 것이며, 이런 토양에서 민주주의는 결단코 꽃은커녕 줄기조차 제대로 자라지 못할 것이며 도리어 독재보다 더 해로운 돌연변이 독버섯으로 변질되고 말 것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그동안 진정으로 국민을 위한 대통령이었다고 한다면, 국가 전체와 온 국민을 이런 혼란과 분열의 위기로 몰아넣기까지 하면서 다수결의 원칙에 승복하지 않으려는 작금의 태도를 어찌 이해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상식적으로만 가늠해 보더라도 패배가 뻔해 보이는 어리석은 싸움을 고집하는 까닭이 참으로 궁금합니다. 잘 물러나는 것만으로도 마지막으로나마 진정성 있는 봉사를 할 수 있음에도, 적어도 진정성 있어 보일 수 있음에도 끝까지 자신의 자존심과 이익에는 한 치의 양보도 없이 자기 뜻대로 여전히 컨트롤하려 들고 있으니 나르시시스트의 끝판왕이 되려는 노력 하나는 참으로 가상하다 하겠습니다.

그나저나 결론은 이미 정해져 있으니, 민주주의의 근간인 다수결의 상식과 원칙에 입각한 전 방위적 압력을 트럼프 역시도 결국은 견디지 못할 것이며, 엎드려 절 받기 식의 마지못한 승복이든 아니면 공권력이 동원되는 강제력인 굴복이든 간에 시간의 무게를 끝내 견디지는 못할 것입니다. 해서 더더구나 포기는 빠를수록 좋은 것이며, 잘만 하면 그간의 실추된 이미지를 그나마 상쇄할 수도 있는 마지막 기회임을 트럼프 대통령과 공화당 의원들은 이쯤에서나마 자각하고 결단함으로써 국민들을 특히 트럼프 지지자들을 안돈시켜야 할 것입니다. 

작금에 벌어지고 있는 추태는 이번 선거가 역시나 최선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최악을 피하기 위한 것임을 여실히 드러내고 말았으니, 미국은 지금 2016년의 잘못된 선택에 대한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으며, 다만 그 대가가 그나마 감당할만한 것이기만 바랄 뿐입니다. 

“욕심이 잉태하면 죄악을 낳고 죄악이 장성하면 사망을 거둔다”고 하는 알량스러운 교훈을 건져 올리기 위해 치르는 대가치고는 너무 엄청난 것이어서 웃프기 그지없지만, 현실보다 더 엄정한 것은 없으니 현재로서는 현실을 직시하고 또다시 민주주의의 자정력을 기대해 볼 수밖에 없겠습니다. 어쨌든 시간은 언제나 민심의 편이니, 우리의 인내가 결코 무위로 돌아갈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것입니다. 지난 4년을 인내해 왔는데 한두 달 더 못 견디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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