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렌 가족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다.”
“엘렌 가족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다.”
  • 양수연기자
  • 승인 2020.12.04 07: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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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수연이 만난 사람

2008년 화제가 됐던 엘렌 가족 이야기의 주인공
시각 장애 부모에게 입양됐던 시각 장애 아이

엘렌은 이번 여름 첫 싱글을 발표했다. 그녀의 홈페이지 elizabethelle.com에서 무료로 감상할 수 있다.
엘렌은 이번 여름 첫 싱글을 발표했다. 그녀의 홈페이지 elizabethelle.com에서 무료로 감상할 수 있다.

 

저는 지금 제 인생을 즐기고 있어요. 저는 돈 버는 일을 좋아 하고요, 전 보다 더 제 자신을 잘 알고 있어요. 풀 타임으로 일하면서 음악을 하는 일. 그 음악으로 어려운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일이 저의 꿈이에요.

2008년에 방영한 KBS 다큐멘터리 <엘렌 가족 이야기>는 시각 장애 가족 엘렌을 이야기를 담으면서 그렇게 말했다. 다큐멘터리는 볼티모어에서 KBS 프로듀서와 시각 장애 부부 메리 니콜스와 올로 니콜스 부부를 만나는 것으로 시작한다. 프로듀서와 니콜스 부부는 그 시점으로부터 8년 전에 만난 적이 있다. 이들의 사연은 이미 2000년 초 방송에 탔고 KBS 프로듀서는 이후 그들의 삶이 궁금해져서 두 번째로 그들을 만나기 위해 2008년 미국에 와 있는 것이었다.

니콜스 부부는 중증 시각 장애 부부였다. 이들은 네 명의 어린아이들을 한국에서 입양했다. 이 네 명의 아이들은 니콜스 부부처럼 모두 시각 장애 아이였다. 두 명의 아들 킴과 마크는 복잡한 수술을 한 뒤 시력을 일부 회복했지만, 장녀 엘렌은 그렇지 못했다. 막내딸 세라는 시각 장애뿐만 아니라 정신 발달 장애로 유아 수준의 인지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시작 장애가 있는 부부가 자신을 부지하는 것도 힘겨울 것 같은데, 시각 장애 아이들을 네 명이나 머나먼 한국에서 입양했으니 프로듀서로서는 두 번이고 세 번이고 다시 찾아보고 싶었을 스토리였을 것이다. 시청자들의 반응도 대단했다. 그때는 어렸는데 지금 그 아이들은 어떻게 자라고 있을까? 니콜스 부부는 건강하게 지내고 있을까? 프로듀서는 그런 이야기를 2008년 다큐멘터리에 담았다. 그리고 2020년, 그때로부터 또 12년이 흘렀다. 엘렌 가족 이야기는 이제 세 번째이다. 이번에는 KBS가 아닌 본지, ‘뉴스엠’이 다룬다. KBS가 ‘엘렌 가족 이야기’라고 이름 붙였던 그 엘렌이 몹시도 궁금하다. 그녀는 우리처럼 뉴요커이다. 2008년 KBS 다큐에서 장애 동생을 챙기는 듬직한 모습을 보여준 장녀 엘렌. 2008년에는 28세의 결혼한 ‘애 엄마’였는데 어찌나 소녀 같은지 눈에 선하다. 시각을 상실한 두 눈은 맑디맑았기에 그저 소녀 같았다. 그녀는 이제 마흔이다. 그러나 길게 내려뜨린 생머리와 고운 목소리는 여전하다.

엘린 엘리자베트 타르. 결혼 전 성은 니콜스. 한국 이름은 김광숙이다. 4살 때 일산의 시장에서 버려진 채 발견되어 복지 재단을 거쳐 니콜스 부부에게 입양됐다. 그녀는 볼티모어에서 자랐고 펜실베니아의 대학에서 스페인어와 커뮤니케이션을 공부했다. 로스 앤젤레스에서도 6개월간 공부했고 워싱턴주 시애틀에서도 2년 살았다. 지금은 뉴욕에 살고 있다.

세 번째 엘렌 가족 이야기는 부모에게서 독립하고 결혼하고 아이를 낳은 엘렌이 스스로 구축한 제2세대 가족 진짜 엘렌의 이야기이다. 시각 장애를 극복하고 워킹 우먼으로서, 아내로서, 엄마로서, 음악인으로서, 봉사 단체를 이끄는 리더로서 살아가는 엘렌을 만나본다.

▶지금 어떤 일을 하며 지내시나요?

저는 병원과 의료 센터의 텔레커뮤니케이션 분야에서 풀타임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음악을 해요. 음악을 통해 봉사하기 위해 저는 TIMCA라는 비영리 단체를 공동 설립했어요.

▶저는 당신이 다큐멘터리에서 노래하는 것을 들었어요. 아름다운 가스펠에 인상 깊었는데, 본격적으로 음악을 시작하신 것이군요.

네. 저는 친구들과 함께 곡을 썼고, 여름에 녹음해서 발매했어요. 제목은 Victorious랍니다. 코비드-19동안 희망을 주기 위해서 만들었어요. 코비드-19 현장에서 봉사하는 의료진들과 필수 근로자들을 위해 바치는 곡입니다. 제 아티스트 이름은 엘리자베스 엘르랍니다. 제 웹사이트(elizabethelle.com)와 유튜브 채널에서 첫 싱글을 찾으실 수 있어요.

▶축하합니다! 코비드-19동안 음악 작업하기 쉽지 않았을 텐데, 지난 몇 달씩 어떻게 하루를 보냈나요? 삶이 많이 바뀌었나요?

네. 저도 팬더믹으로 인해 삶이 많이 바뀌었어요. 제가 일하는 의료센터는 팬다믹 직후 대부분의 외래 진료를 마감했기 때문에 저는 일주일에 3-4일만 일했어요. 지금은 다시 풀 타임으로 일해요. 예전 생활이 그립습니다. 가족과 함께 영화를 보러 가고 콘서트를 보고 볼링을 치거나 사교 모임을 했던 그때로 돌아가고 싶어요. 저는 코로나 바이러스로 세상을 떠난 사람들, 가족을 잃어 슬픔에 잠긴 사람들을 몇 명 알고 있어요. 저는 매일 하나님께 모든 사람이 건강하게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합니다. 2020년 원래 제 목표 중 하나는 저 재미있게 노래하고 기타를 연주하는 것이었어요. 그것이 딱히 이루어지지 못해서 마음 아팠지만, 그래도 빅토리어스 곡을 만들었고 발표하게 되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부모님(니콜스 씨 부부)과 형제는 건강하신지요?

아버지는 꽤 건강하지만, 어머니는 많이 아파요. 어머니를 치유해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모두 보고 싶어요. 팬더믹 때문에 저희는 장거리 기차와 버스를 타지 못하고 있어서 만나지는 못합니다.

일주일에 한 번씩 부모님과 이야기를 나누지만, 더 자주 전화하려고 해요.

▶형제자매는 잘 지내고 있나요?

내 오빠 킴은 아내와 함께 두 아들을 키우느라 바쁘고요, 둘째는(마크) 전염병으로 직장을 잃었고 건강 문제가 있습니다. 그래도 잘 해내고 있어요. 제 여동생 세라는 지금 그룹 홈에 살면서 부모님과 교류하는데 이제는 부모님이 지금은 나이가 많아서 돌봐주기가 더 어려울 거에요.

▶지금 당신의 가장 큰 관심은 무엇인가요?

저는 음악, 언어 및 문법, 음식, 성경, 시각 장애인을위한 점자 읽기, 특히 한국에서 장애인을 위한 옹호 및 권한 부여, 심리학, 일반 영양 등에 관심이 있어요. 밀알 선교단, 고아원, 수학 동아리 등 다양한 봉사 활동을 위한 기금 마련을 위해 비영리 단체를 설립했구요. 제가 음악 경력을 쌓는 것도 TIMCA 비영리 단체의 봉사 프로젝트를 위해 자금을 모으기 위해서에요. 제 웹사이트와 유튜브 채널도 그래서 만들었구요. 봉사 활동이 저에게는 지금 큰 관심사인 것이죠.

▶결혼하신 후 현재 가족을 소개해 주시겠습니까?

제 남편은 내성적인 성격이지만 정말 친절하고 가족에게 큰 도움을 줍니다. 그는 스포츠를 좋아하고 잘 한답니다. 그리고 숫자를 다루는 일을 잘 하고 시도 멋지게 잘 쓰는 남편이에요. 아들도 아빠를 닮아서 운동 능력이 뛰어나고 야구를 한답니다. 이제 아들이 고등학생이 됐어요. 요즘 아이들처럼 비디오 게임을 좋아하지만 아직도 소년 같아요. 똑똑하지만 학교는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는 것 같아요. 역사를 좋아하고 사회 문제에 대해 매우 잘 알고 있구요. 의지도 강하지요. 질풍노도의 10대라고 할 수 있지만, 하나님이 강한 사람으로 키워주실 것으로 믿습니다.

▶남편을 어떻게 만났습니까?

우리는 서로 매우 다르고 공통점이 많지는 않지만 좋은 친구입니다. 우리는 전화로 만났습니다. 그는 잘못된 번호로 전화를 걸었고 우리는 채팅을 시작했습니다. 아마도 우리 둘 다 그 당시 지루했을 수도 있습니다. 하하.

추억의 사진을 보내달라고 엘렌에 부탁했을 때 그녀는 이 사진을 보내줬다. "알아요. 뒷 모습만 보이고 보도하기에 적합하지 않다는 것을. 그래도 저는 제가 가족과 스케이트를 탈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이 사진이 너무 소중하거든요."
추억의 사진을 보내달라고 엘렌에 부탁했을 때 그녀는 이 사진을 보내줬다. "알아요. 뒷 모습만 보이고 보도하기에 적합하지 않다는 것을. 그래도 저는 제가 가족과 스케이트를 탈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이 사진이 너무 소중하거든요."

▶당신에게 가장 즐거운 기억은 무엇인가요?

아들이 어렸을 때 함께 놀았던 것. 가족 휴가. 하나하나가 소중해요.

▶주부로서 어떻게 지내세요? 일하는 주부는 정말 힘든 일이잖아요?

저는 집 밖에서 많이 일해요. 제 직업은 속도감이 있고 스트레스가 많아서 집에 오면 많이 피곤합니다. 저는 슈퍼 우먼이 아니어서 집안 일을 많이 못 해요. 특히 청소는 저에게 힘든 일이에요. 그래서 남편이 청소, 요리, 집안일 등 많은 일을 해준답니다. 우리 집은 전통적인 가정이 아니랍니다. 저는 풀 타임으로 일하고 남편은 가사 일을 주로 하구요. 그것이 우리 집에는 맞고 정말 도움이 된답니다.

▶지금 가장 힘든 점은 무엇인가요?

사춘기 십대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서 그것이 힘들어요. 내 사랑스러운 꼬마가 어디로 갔지? 가끔은 궁금할 정도이죠. 가끔 엄마의 한계를 시험하기도 하지만 꼬마의 모습을 여전히 깊은 곳에서 발견할 때 더없이 사랑스럽습니다.

지금은 고등학생이 된 아들 벤. 아이를 존중하고 모범을 보이기 위해 엘렌은 최선을 다한다고 했다.
지금은 고등학생이 된 아들 벤. 아이를 존중하고 모범을 보이기 위해 엘렌은 최선을 다한다고 했다.

 

자녀를 어떻게 교육합니까?

저는 아이에게 침착하게, 존중을 하면서 대하고 그 앞에서 모범을 보이는 것이 교육하는 가장 중요하고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그렇지만 항상 성공하지는 않습니다. 아들을 격려하고 옳고 그름을 가르치려고 노력하지만 도전적인 십 대이다 보니 정말 쉽지 않아요. 십 대들은 종종 자신이 모든 것을 알고 있고 부모는 아무것도 모른다고 생각합니다. 십 대는 자신의 정체성을 찾으려고 노력하고 있는 것이지요. 저는 묵묵히 그리고 인내심을 가지면서 그 길을 잘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습니다.

▶당신의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은 언제였어요?

저는 지금 제 인생을 즐기고 있어요. 저는 돈 버는 일을 좋아 하고요, 전 보다 더 제 자신을 잘 알고 있어요. 대중 교통이 잘 되어 있으니까 독립적으로 돌아다닐 수도 있고 뉴욕에서 할 일이 많아서 이곳이 너무 좋습니다.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기는 언제였나요?

아들이 갓 태어난 첫 몇 달 동안은 정말 힘들었어요. 저는 어머니가 되는 타고난 재능이 없는 것 같다고 느꼈어요. 갓 태어난 아기에 대한 경험이 없었기 때문에 잘 돌보지 못할까 봐 걱정이 됐어요. 저에게는 새로운 경험이었어요. 아이는 우는 것이 유일한 의사소통 방법이고, 저는 그 울음소리를 기억합니다. 우는 아이 기저귀 갈기, 간호하기….잠은 모자라고 앞을 못 보는 어머니다 보니 사람들이 저를 많이 관찰하고 분석하는 것 같았어요. 

▶시각 장애인으로서 겪는 어려움마저 더해져서 힘들었을 텐데 어떻게 어려움을 극복하나요?

기도를 많이 합니다. 그리고 결단을 내리기 위해서 생각을 많이 하구요. 다른 해결책도 시도해보고 끊임없이 연구합니다. 신뢰하는 사람들의 조언을 구하고 인내한답니다.

▶가족은 당신에게 무엇을 의미합니까?

정말 흥미로운 질문이에요. 왜냐하면, 솔직히 그 단어에 대해 많이 생각하지 않았거든요. 제 인생에서 가족을 가지고 있지 않았던 때가 있었기 때문이에요. 저에게 가족이란 사랑하고 잘 아는 사람들의 그룹입니다. 서로를 사랑하고 보살피고 서로 돕는 사람을 말합니다. 같이 있으면 안전하고 편안하게 느낄 수 있는 사람들. 그것이 저에게는 가족입니다.

▶한국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한국은 당신에게 어떤 의미인가요?

고등학교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제가 한국인이라고 생각하지 못했고 한국인을 많이 알지 못했어요. 고등학교 때 저는 한국에 대해 배우는 것에 관심이 생겼습니다. 한국어, 한국 문화, 한국 음악, 한국 음식 등을 말이죠.

한국인 친구도 만들고 싶었어요. LA에서 한국어를 공부할 때 밀알 선교단에 있는 세 명의 다른 집에서 은혜롭게 접대를 받았어요. 저는 미국에서 가능한 한 많이 한국 문화에 몰입했습니다. 밀알 모임, 교회, 어학원, 가정, 상점, 식당,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 어떤 면에서는 문화적 충격이었지만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제가 만난 한국인들은 매우 똑똑하고 재치 있고 따뜻하고 배려심이 많고 깊은 감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제가 한민족이라는 것이 너무나 자랑스럽습니다.

▶한국어를 어디서 배우셨어요?

네 살에 입양되었고 그 이후로는 한국어에 노출되지 않았기 때문에 한국어를 완전히 잊었죠. 이제는 아주 기본적인 한국어를 말하지만 더 많이 공부하고 더 많은 어휘와 문법을 배워야 합니다. 2001년 LA 밀알 선교단은 저를 KBS에 소개해 주었어요. KBS는 저에게 장학금을 주었고 서울 연세대학교 한국어 프로그램에 참석할 수 있었습니다. 몇 가지 안타까운 상황 때문에 서울에서 공부하지 못했지만 LA에서 열린 연세 아카데미 한국어 프로그램에 2학기 동안 다녔습니다. 저는 두 학기 동안 개인 과외를 받았으며 한 학기에 그룹 수업을 들었습니다. 하지만 한국어를 배우기 전에 한국어로 노래를 부를 수 있었지요.

엘렌에게 가족은 새로운 의미이다. 생물학적인 관계를 너머서로 사랑하고 돕는 사람을 뜻한다.
엘렌에게 가족은 새로운 의미이다. 생물학적인 관계를 너머서로 사랑하고 돕는 사람을 뜻한다.

 

▶한국에 가본 적이 있었나요? 어떤 인상을 받았나요?

한국을 두 번 방문 했어요. 한 번은 KBS와 밀알과 함께 한 번, 그리고 한 번은 <세상에 눈멀고 사랑엔 눈뜨고>라는 책을 쓴 김홍덕 목사님과 함께 북 투어를 했습니다. 사람들은 따뜻하고 친절했고 음식은 훌륭했어요. 저는 쇼핑과 찻집을 즐겼답니다. 특히 기독교인이 제가 만난 가장 따뜻하고 관대한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게되었습니다. 다시 한번 콘서트를 열고 시각 장애인을 돕는 고아원과 단체를 방문하고 싶어요. 제주도에도 다시 가고 싶어요.

▶하나님과 어떻게 관계를 맺고 있나요? 신앙은 당신에게 무엇을 의미합니까?

저는 어린 나이에 기독교인이 되었어요. 부모님은 항상 우리와 함께 성경을 읽고 교회에 데리고 가셔서 기도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과의 관계가 더 개인적이고 성숙해지기까지 수 년이 걸렸고 힘든 과정이 있었습니다. 저는 여전히 많은 약점이 있지만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그분과의 관계의 확고한 토대가 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저의 믿음은 제 삶의 강력한 기초입니다. 어렸을 때는 하나님과 가까워지기를 많이 원했지만 그렇지 못했어요. 하지만 시간이 흘러 성경을 더 깊이 이해하게 되면서 하나님께서 제 삶에서 어떻게 역사하셨고 그분의 사랑을 보여 주 셨는지 알게되었습니다.

이 세상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지만 하나님은 모든 것을 다스리는 능력의 하나님입니다. 최선을 다하여 하루를 살고 그분을 믿고 그분이 원하시는 대로 하실 것임을 믿고 따릅니다.

▶당신의 꿈은 뭔가요?

제가 쓴 곡의 녹음을 끝내고 계속해서 더 많은 곡을 쓰는 거예요. 하나님께서는 제가 노래를 통해 수많은 사람들을 감동시켜 그분의 사랑과 능력과 희망을 나누기를 바라십니다. 저는 제 음악과 비영리 TIMCA를 통해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위해 노래하고 모금하기 위해 전 세계를 여행하고 싶습니다.


양수연기자 / <월간 NEWS 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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