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유와 사랑
소유와 사랑
  • 최태선 목사
  • 승인 2020.12.08 04: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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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 놓고 보니 낯이 섭니다. 에릭 프롬의 소유냐 존재냐가 떠오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오늘의 주제는 소유와 사랑입니다. 성서는 소유와 사랑의 이야기입니다.

얼마 전 작은 아이가 넷플렉스를 깔아주었습니다. 핸드폰과 컴퓨터에서 공짜로 많은 것들을 보게 되었습니다. 아이는 주로 연작 드라마를 봅니다. 저는 그런 긴 드라마들을 보면 어딘가 하나님께 불충하다는 생각이(너무 많은 시간이 요구되어) 들어 가끔씩 영화를 봅니다.

어제는 '적과의 동침'이라는 영화를 보았습니다. 줄리아 로버츠가 로라로 분한 영화입니다. 로라와 남편은 바닷가에 있는 넓고 아름다운 집에 살고 있습니다. 영화에서 로라는 남편에게 구타당하는 아내의 역할을 합니다. 남편은 자신이 정해놓은 규칙에 조금만 어긋나도 로라를 구타합니다. 한 대를 치면 쓰러져 못 일어날 정도로 과격한 구타입니다. 그런 남편에게 지배를 당하여 로라는 남편이 시키는 대로 합니다. 모든 것에 만족하고 행복하다는 표정도 연출해야 합니다. 남편은 그렇게 자기 아내를 지배하면서 그것을 사랑으로 인식합니다. 자신이 아내를 얼마나 사랑하는가를 아내인 로라에게 늘 확인시켜줍니다. 아내를 구타한 후에는 미안하다는 사과와 함께 자신이 로라를 때릴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로라가 잘못했기 때문임을 설명하고 좋은 식당에서 외식을 시켜주기도 하고 선물과 꽃을 주기도 합니다.

로라는 차분하게 남편으로부터 도망갈 수 있는 기회를 준비합니다. 어디로 도망을 가든 남편은 즉시 로라를 찾아냈습니다. 어느 날 밤 이웃으로 이사 온 사람의 초대로 셋은 요트를 타고 항해를 합니다. 그런데 갑자기 예보에 없던 폭풍우가 몰아쳤습니다. 큰 혼란이 일어납니다. 그 와중에 로라는 바다에 빠진 것처럼 사라졌습니다. 남편은 로라가 수영을 못하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신고를 하여 샅샅이 주변을 수색했지만 로라는 발견되지 않고 로라가 입었던 구명조끼만 발견되었습니다. 시체를 찾지 못했지만 모두가 로라가 바다에서 죽은 것으로 알게 되었습니다.

주인공은 마지막이 아니라면 결코 죽는 법이 없습니다. 로라도 죽지 않았습니다. 로라는 수영을 하여 먼저 집으로 들어와 준비해두었던 도망용 가방을 들고 남편이 모르는 곳으로 가서 이름을 감추고 정착했습니다. 쉽지 않은 과정(남편의 트라우마에서 벗어나는)을 거쳐 이웃에 사는 남자와 연인 관계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남편에게 전화 한 통이 걸려옵니다. 로라와 같이 수영을 배우던 여자였습니다. 로라는 그동안 남편 모르게 수영을 배웠습니다. 그날 바다로 뛰어들어 수영을 하여 남편보다 먼저 집에 올 수 있었던 이유입니다. 로라는 도피용으로 준비해 놓은 가방을 챙기고 손가락에서 결혼반지를 빼 그것을 변기에 넣고 물을 내렸습니다. 그런데 로라가 수영을 배웠다는 여자의 말을 듣고 이상한 생각이 들어 집을 살피던 남편이 변기에서 그 반지를 발견했습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남편은 로라를 찾아냈습니다. 로라를 찾은 남편은 로라가 자신의 것임(!)을 주장하였습니다. 그리고 총을 들고 로라와 새로운 연인이 된 이웃 남자를 죽이려고 하였습니다. 로라를 지키려 남편에게 달려들던 이웃 남자는 남편이 총으로 머리를 내리쳐 기절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로라를 향해 갑니다. 자신이 이처럼 로라를 사랑한다는 것을 설득시키려 합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로라가 이겼습니다. 갑작스런 로라의 공격으로 남편이 총을 떨어트리고 그 총을 로라가 먼저 주워 남편을 쏘아 죽였습니다. 남편도 주인공이라 잘 죽지 않았습니다. 여러 발의 총을 맞은 후에야 죽은 것으로 보였습니다. 마지막 반전도 있었습니다. 죽은 줄 알았던 남편이 총을 맞은 상태로 로라에게서 총을 빼앗은 것입니다. 남편이 로라를 향해 방아쇠를 당겼지만 총에는 총알이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결국 남편은 로라를 죽여서라도 자기 것임을 확인하려 했습니다.

이 영화를 보고 사랑을 묵상할 수 있었습니다. 남편의 사랑은 이기적인 사랑이었습니다. 이기적인 사랑은 상대방을 소유합니다. 소유한다는 것은 지배하는 것입니다. 남편은 지배를 강화함으로써 자신의 소유를 확인하고 그것을 사랑으로 알았습니다. 이기적인 사랑은 남편에게는 사랑이었지만 아내인 로라에게는 공포요 결박이었습니다.

참된 사랑은 상대방을 소유하지 않습니다. 인간이 아가페의 사랑을 어려워하는 이유는 근본적으로 결핍의 존재(전지전능하지 않은)인 인간이 소유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인간에게는 소유에 대한 뿌리 깊은 욕망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자기를 부인한다는 것은 바로 이 욕망을 부인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를 부인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제자들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좇았습니다. 제자들처럼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좇을 때 우리도 사랑의 문 안으로 첫 발을 디디게 되는 것입니다.

오래 전 다니는 교회의 목사는 자신이 자신의 자녀들보다 교인들을 더 사랑한다고 자랑스럽게 말하곤 했습니다. 참 미친놈(미안한 표현이지만)입니다. 아니 어쩌면 인간은 로라의 남편처럼 이기적인 사랑을 사랑 전체로 아는 존재인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사랑을 모르는 인간들이 목사가 되니 목회가 “밥그릇 싸움”이 되고 주님의 양들이 목사의 양이 되는 것입니다.

말은 쉽지만 이기적이지 않은 사랑을 알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성서가 말하는 아가페의 사랑, 혹은 아가페를 지향하는 필레오의 사랑(형제애)을 알지 못한다면 그리스도교는 결코 진리의 종교가 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소유에 집착하는 한 그들이 이야기하는 사랑이란 결국 소유에 묶여 있는 이기적인 사랑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런 사랑으로 아무리 서로 사랑한다 해도 결국 그런 사랑을 하는 곳은 교회가 아니라 맘몬의 신전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 사랑을 하려면 하나님처럼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불완전한 인간에게 자유를 주셨습니다. 그냥 자유의지가 아니라 자유를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이 만드신 인간을 소유의 결박으로부터 풀어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인간의 신음소리에 반응하시는 것입니다. 자유로운 인간이 하나님을 사랑하여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하고 하나님의 뜻과 정의를 위해 살아갈 때 하나님의 사랑은 완성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간들 역시 서로에게 이끌리는 사람들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당신의 양들을 베드로에게 위임하시면서 베드로에게 다른 사람에게 이끌리는 사람이 될 것이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이끌리는 사람은 줏대 없이 흔들리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처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자유를 주는 사람입니다. 사랑 때문에 자신의 힘과 능력을 사용하지 않고 오직 낮은 자리에서 섬기는 사람입니다. 사랑의 주도권을 사랑하는 자가 가지는 것이 아니라 사랑을 받는 자가 가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진정한 사랑의 오직 유일한 시금석입니다. 사랑받는 자가 모든 힘을 가지는 사랑, 그것이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서로 사랑하라고 하신 사랑의 본질이자 특성입니다. 인간이 소유에 집착하는 한 이 사랑은 불가능합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이 당신의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틀린 말씀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창조주이십니다. 그것은 창조된 모든 것들이 하나님의 것이라는 말과 같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모든 것의 소유권을 주장하지 않으십니다. 그분이 만물이 당신의 것임을 말씀하시는 것은 인간이 그것을 자신의 소유로 알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근본적으로 그분이 당신의 소유를 당신의 것으로 행사하지 않으시기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인간에게 소유하지 않는 사랑을 하라는 것입니다. 당신의 사랑을 완성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이룰 수 있는 모든 힘을 사랑 받는 자인 인간에게 위임하셨습니다.

제가 베드로 이야기를 할 때 사람들은 들으려 하지 않습니다. 이끌리는 것이 싫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싫은 보다 근원적인 이유는 소유를 포기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인간이 소유를 포기할 수 없다면 인간은 영원히 서로 사랑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착각하는 존재로 살아갑니다. 그리스도인은 그 착각에서 깨어난 사람들입니다. 소유를 포기하고 사랑을 택한 사람들입니다. 소유를 포기하고 사랑을 택한 사람들에게 지배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사랑과 평화의 나라인 하나님 나라는 권력 자체가 없는 나라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오늘도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이제 나는 너희에게 새 계명을 준다.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모든 사람이 그것으로써 너희가 내 제자인 줄을 알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의 사랑이 '적과의 동침'이 아니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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