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답게 살겠다.”
“중답게 살겠다.”
  • 최태선 목사
  • 승인 2020.12.11 05: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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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풀소유 논란이 되었던 혜민 스님의 말입니다. 저는 혜민 스님의 말을 믿습니다. 그런데 정말 혜민 스님이 중답게 살 수 있을까요.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그분은 하버드대학 비교종교학 박사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버리기 어려운 것 가운데 하나가 박사라는 자의식입니다. 그것은 스님의 존재와 거의 하나가 되어 있기 때문에 그것을 버리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버리지 못한다면 그분은 자신이 말한 대로 중처럼 살기가 쉽지 않을 것입니다.

자산에는 유형자산과 무형자산이 있습니다. 영업권이나 로열티나 고객수와 같은 것들은 무형의 자산입니다. 그리고 그런 무형의 자산들은 유형자산보다 더 중요한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돈으로 환산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물질이나 부동산과 같이 형태가 있는 소유가 있습니다. 그러나 무형자산처럼 형태가 없는 소유도 많습니다. 박사학위나 자격증 같은 것들 외에도 자신의 기억 속에 있는 모든 종류의 경험이나 지식들 역시 형태가 없는 소유입니다. 불교에서는 그 모든 것을 공空으로 여겨 소멸시켜야 합니다. 그러나 기독교에서는 그것을 버릴 것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다만 그것에 대한 소유권에 절대성을 부여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서 기독교는 무소유를 말하지 않고 청지기를 말합니다. 우리의 소유는 내 것입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의 궁극적인 소유권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청지기라는 말은 이것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아가 모든 것의 궁극적인 소유자이신 하나님의 뜻에 맞게 자신의 소유를 사용하라는 것이 성서가 우리에게 요구하는 소유에 대한 이해입니다.

가장 먼저 교회가 떠오릅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나 어느 교회를 가보아도 교회가 그리스도의 것이라는 사실을 보기가 어렵습니다. 목사의 것이거나 그 교회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세습은 그것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예입니다. 가끔은 김삼환 부자가 안 됐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이미 감리교 김씨 삼형제를 비롯해 수많은 사람들이 아무런 문제없이 세습을 완료했습니다. 사실 건물이 있는 시골교회들도 대부분 세습을 완료했습니다. 그런데 자신들만 그렇게 문제가 된다는 사실이 많이 억울할 것입니다. 어쨌든 세습이 악한 것은 그들이 교회를 자신의 소유로 여기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청지기로서의 자신의 정체성을 망각한 하나님께 대한 불충이기 때문에 세습이 악한 행동이 되는 것입니다. 특히 교회가 그렇게 되면 다른 모든 것에 대한 소유권에 절대성을 부여하는 것이 되기 때문에 세습이 가장 큰 악이 되는 것입니다. 대형교회 다니는 사람들이 민주주의와 시장의 자유를 진리처럼 아는 것도 다 이 같은 사고를 지녔기 때문일 것입니다.

저희 교회는 작은 교회였습니다. 작은 교회 목사로 산다는 것은 그다지 좋은 일이 아닌 것으로 보일 것입니다. 하지만 제겐 작은 교회 목사라는 사실이 정말 은혜 가운데 은혜였습니다. 왜냐하면 교회가 제 것이라는 생각 자체가 무의미 할 정도로 교회가 작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희 교회는 늘 다른 교회와의 연합예배를 드릴 수가 있었습니다. 다른 교회로 가거나 다른 교회가 저희 교회로 와서 함께 예배를 드렸습니다. 다른 교회로 가서 예배를 드리는 경우에는 특별히 헌금을 강조했습니다. 가능한 많은 헌금을 드리라고 부탁을 드렸습니다. 그 주가 십일조를 드리는 주일이라면 그곳에 십일조를 드리라고 구체적으로 부탁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모두가 최소한 감사헌금 봉투를 마련해서 헌금을 드렸습니다. 또 수해나 재난과 같은 상황에서는 교회 헌금을 보내드렸습니다. 그것은 나누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저희 교회의 헌금이 저희 교회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이라는 사실을 기억하고 실천한 것일 뿐입니다.

수도 없이 많은 목사들을 만났고 여러 교회들을 가보았지만 그러나 자기 교회라는 바운더리를 가지지 않은 목사나 교회들을 보지 못했습니다. 브루더호프 공동체는 메노나이트 교회들과 형제교회임을 선언했습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입니다. 단순히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라는 의미가 아니라 그들과 모든 것을 공유한다는 의미입니다. 자신들의 모든 소유가 그들의 것이기도 하다는 의미이고 그들의 모든 소유가 자신들의 것이기도 하다는 선언입니다. 바나바가 사울을 데리고 올 수 있었던 것도 안디옥 교회가 자신들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임을 행동으로 실천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모든 것이 소유와 관련된 일입니다. 만일 우리가 참된 예수의 제자이며 진짜 그리스도인이라면 우리는 우리의(내) 것이 없어야 합니다. 그것을 잘 보여주는 것이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기사입니다.

“아나니아는 들으시오. 어찌하여 그대의 마음이 사탄에게 홀려서, 그대가 성령을 속이고 땅 값의 얼마를 몰래 떼어놓았소? 그 땅은 팔리기 전에도 그대의 것이 아니었소? 또 팔린 뒤에도 그대 마음대로 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니었소? 그런데 어찌하여 이런 일을 할 마음을 먹었소? 그대는 사람을 속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속인 것이오.”

우리는 이 기사에서 성서의 소유권에 대한 명확한 입장을 알 수 있습니다. 소유는 개인의 것입니다. 그것을 소유한 사람 마음대로 처분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궁극적인 소유권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청지기란 그것을 기억하는 사람입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도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자신들의 소유를 팔았습니다. 그것을 다른 사람들처럼 사도들의 발아래 가져다 놓았습니다. 그런데 전부가 아니라 일부를 감춘 나머지였습니다. 자신의 것이라는 생각을 이기지 못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 부부는 청지기의 사명을 완수하지 못했습니다. 사실 그래도 괜찮았습니다. 전부가 아니라고 말만 하면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러질 못했습니다. 결국 하나님을 속이는 죄를 범했습니다. 그것은 궁극적인 소유권이 하나님께 있음을 부인하고 자신의 소유에 절대성을 부여한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소유관은 무소유가 아닙니다. 다만 언제라도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모든 것을 하나님의 것으로 사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께 돌려드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일이 어렵습니다. 그래서 수많은 사람들이 이 일에 실패합니다. 부자 관원이 그랬습니다. 바리새인들이 그랬습니다. 돈을 사랑하는 마음은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임을 부인하는 마음입니다. 그러므로 청지기 사상이야말로 그리스도인들이 기억해야 할 가장 중요한 사고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세이비어교회의 정식교인이 되는 서약에는 이것이 들어있습니다. 자신의 모든 소유를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사용하겠다는 내용입니다. 이것은 오늘날과 같은 자본이 신인 세상에서 진정한 자신의 주님이 누구이신가를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이비어교회의 교인수는 백오십 명을 넘지 않습니다.

로마의 인사는 “황제는 주님이시다.”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그런 로마의 인사를 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예수님이 주님이시다”라는 인사를 하였습니다. 그것은 황제에 대한 반역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로마 당국에 의해 체포되어 믿음을 철회할 것을 요구받았습니다. 그것을 거절했기 때문에 그들은 각종 잔인한 방법으로 처형되었습니다. 과일을 깎듯 살을 발라 죽이기도 했습니다. 사자와 같은 맹수들의 먹이가 되기도 하였습니다. 끓는 기름에 튀겨 죽이기도 했습니다. 검투사들에게 죽기도 하였습니다. 콜타르를 발라 태워 밤길을 밝히는 가로등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이처럼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잔인한 방법들로 그리스도인들은 체포되어 죽었습니다. 그들이 죽은 이유는 자신들의 주인이 그리스도임을 감추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에게도 똑같은 기회가 주어져 있습니다. 로마 대신 돈이 그 자리를 대신했습니다. 돈이 주님이시냐 하나님이 주님이시냐를 초기 그리스도인들처럼 우리도 드러내놓고 고백 드려야 합니다. 그 고백이 바로 우리의 소유권에 대한 사고와 그것을 실천하는 것으로 드러나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청지기 사상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무소유를 지향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모든 것이 주님의 것임을 우리의 소유를 통해 입증해야 합니다.

“이와 같이, 너희도 명령을 받은 대로 다 하고 나서 '우리는 쓸모없는 종입니다. 우리는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였을 뿐입니다' 하여라.”

이 땅의 그리스도인들이 초기 그리스도인들처럼 세이비어교회 교인들처럼 자신의 유무형의 모든 소유를 주님을 위해 사용한 후에 주님께 이와 같이 말씀드릴 수 있는 청지기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중뿐만이 아니라 그리스도인들 역시 그리스도인답게 살고자 한다면 소유에 대한 인식이 변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겐 그것이 바로 청지기 사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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